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65)
개표상황이 뒤바뀌는 순간.
거리와 광장에서 탈퇴 쪽 유권자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
탈퇴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전 런던시장 보리스 케인은 지지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영국은 EU에서 독립해 주권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하나 된 영국, 강력한 영국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레이트 브리튼 만세!”
“영국은 하나다!”
유니언잭이 휘날렸다.
방금 전까지 환호하던 잔류 쪽 유권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 * *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비명과 절규가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EU통합이 어쩌고, 안도랠리가 어쩌고 하는 리포트를 쏟아냈던 애널리스트들은 재빨리 태세를 바꿔서 브렉시트가 가져올 경제적 충격과 향후 암울한 전망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했다.
개표상황이 뒤바뀐 건 현지시간으로 새벽 5시, 한국시간으로는 오후 2시 무렵이었다.
마감 전에 소식이 전해지자, 완만하게 상승하던 아시아 증시는 수직으로 고꾸라졌다.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등. 어느 한 곳 빠짐없이 파란불이 들어와 있었다.
영국의 EU 잔류만 믿고 롱 포지션에 베팅한 금융사들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의 증권사들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장상황과 손실액을 점검했다. 그러나 역삼동에 위치한 작은 투자회사만은 분위기가 달랐다.
정기홍은 몇 십분 전까지만 해도 회사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내일부터 실업자 신세고, 이걸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이렇게 된 건 동아리 선배가······ 아니, 대표가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회사 자금을 전부 긁어다가 전세계 증시의 풋옵션을 사들이는 미친 짓을 할 리는 없었을 테니.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어리석은 자신과 달리 대표는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표님! 이렇게 될 걸 알고 계셨던 겁니까?”
“······.”
그거야 말로 진짜 착각이었다.
대표는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다. 망했다고 생각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회사의 CEO와 통화한 뒤 화장실에서 대성통곡하고 돌아왔을 정도다. 그 증거로 눈 주위가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박상엽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우와아아!”
그러자 직원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으하하!”
“완전 대박이다!”
증시는 폭락했지만, 풋옵션은 폭등했다. 이후 열릴 유럽증시와 아메리카 증시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전세계 증시에서 돈을 쓸어 담는 셈이다.
물론 자신들이 버는 만큼 옵션을 발행한 각 나라의 금융사들이 손실을 입게 되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게 싫었으면, 애초에 그딴 옵션을 발행하지 말았어야지.
직원들은 서로를 얼싸안은 채 환호했다.
박상엽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정 대리!”
정기홍은 재빨리 대답했다.
“예! 대표님!”
“당장 부동산에 연락해서 테헤란로에 매물로 나온 빌딩 있는지 알아봐!”
그동안 비슷한 농담을 자주 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었다. 풋옵션에 무려 1조1천억 원을 베팅했다.
대체 수익이 얼마나 될까?
모르면 몰라도 테헤란로 일대의 빌딩 수십 채를 사기에 충분할 것이다.
박상엽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금융회사 빌딩들을 보며 확신했다. 오늘의 일로 자신의 이름은 한국 금융계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강진후와 오택규라는 이름은 세계 금융계의 역사에 기록되겠지.’
밀려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기뻐서 미쳐버릴 것 같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박상엽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대한민국 금융사들 다 꺼지라 그래!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한국 최고야!”
* * *
골든게이트 아시아지사.
모두가 업무를 멈춘 채 놀란 표정으로 한 곳을 바라보았다. TV에서는 BBC의 개표상황 생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가 소리 좀 키워봐!”
홍콩이 한 때 영연방 소속이었던 만큼 아시아지사에는 영국인 직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개표상황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EU 잔류를 희망했다.
그런데······
“어어?”
“이게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다들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한 여성만은 두 팔을 벌리며 기뻐했다.
“제시카! 봤어요? 진후가 해냈어요!”
좋아서 펄쩍 뛰는 엘리와는 달리 현주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까 마신 술기운이 올라오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멍했다.
현주는 안경을 벗은 채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얘들 때문에 진짜 제 명에 못 살겠네.”
하루 사이 10년은 늙은 것 같다.
돈이고 뭐고 얼마 못 살고 죽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뭐해요? 어서 진후에게 연락해요!”
“번호 누를 기운도 없어.”
엘리는 신나서 말했다.
“그럼 제가 해도 돼요?”
“알아서 해.”
현주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현지시간으로 새벽 7시, 한국시간 오후 4시.
영국 선거위원회 위원장은 잔류 49.1 대 탈퇴 50.9로, 브렉시트 투표가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고작 1.8퍼센트, 100만 표도 안 되는 차이로 영국과 EU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던 만큼 후폭풍은 거셌다.
상승하던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폭락했고, 이어서 열린 유럽과 미국 증시도 줄줄이 폭락했다.
파운드는 20퍼센트 폭락했고, 반대로 안전자산인 엔과 금은 1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
놀란 영국인들은 보유하던 파운드를 유로나 달러로 환전하려 했으나, 영국 내의 환전상은 영업을 중단했고, 해외계좌 인출마저 정지되었다.
사실 이 결과에 가장 당황한 나라는 다름 아닌 영국이었다.
국민투표를 부친 정부도, 잔류를 외친 정치인도, 탈퇴를 외친 정치인도, 심지어는 투표를 한 국민과 안 한 국민들까지도 정말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날이 밝자 데이비드 홀트 총리는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임의사를 밝혔다. 공은 탈퇴파 정치인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런데 탈퇴파 정치인들은 갑자기 말을 바꿨다.
알고 보니, 영국이 EU에 내던 막대한 분담금은 다시 영국에게 지원금 형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웨일스는 당장 EU로부터 지원금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탈퇴만 하면 이민자들을 내보내고 영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말 역시 거짓이었다.
EU라는 단일시장과 교역하기 위해서는 EU 규제에 따라야 한다. 즉, EU와 경제관계를 끊지 않는 이상 물적, 인적자원의 이동은 처음부터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탈퇴파를 이끌던 보리스 케인 전 런던시장은 슬그머니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며 책임을 다른 곳으로 떠넘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 말은 믿는 게 아니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국민들은 일제히 투표무효와 재투표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이미 투표는 끝난 뒤였다.
이후 국제정세 또한 영국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잔류가 우세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아예 이번 기회에 영국에서 독립해서 EU에 재가입하자는 주장이 터져 나왔고, 런던 역시 크게 반발했다.(잉글랜드 전체에서는 탈퇴가 우세했지만, 런던만 놓고 보면 잔류가 우세했다)
브렉시트가 방아쇠가 되어 유럽연합 전체가 분열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영국의 상황을 지켜본 EU회원국들은 더욱 강하게 뭉쳤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손을 붙잡고 하나 된 유럽을 천명했으며, 어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라고 영국을 압박했다.
이전까지 탈퇴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영국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런던에 거점을 두고 있던 금융회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JP모건과 모건스탠리, 칸라인 그룹 등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옮기기로 했고, 심지어는 영국계 은행들과 PEF들 마저 런던을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골든게이트 역시 영국지사에서 일하는 5천 명의 직원 중 중계업무를 담당하는 1천 명의 직원을 독일지사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 * *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세계 금융 중심가에 있는 금융회사 건물들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질 줄을 몰랐다.
직원들은 세계 증시와 채권시장, 외환시장 등을 체크하고, 향후 전망을 예측하며, 대응책 찾기에 분주했다.
홍콩 센트럴에 있는 골든게이트 아시아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물 전체가 대낮 같이 밝았다. 직원들은 퇴근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일에 매달렸다.
체이스 사우스웰 자신의 집무실의 창가에 서 있었다. 발 아래로 빅토리아 하버가 내려다보였다. 이곳에서 보는 홍콩 야경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그는 이곳에 온 후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일을 겪었다.
일본 부동산 버블붕괴, 중국의 성장, 홍콩의 중국 반환,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등.
이곳은 그의 또 다른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체이스는 몇 달 전 만났던 동양인 청년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훗날 훌륭한 투자자로 성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잘못 봤어.’
청년은 이미 그가 생각한 것 이상의 존재였다.
모두의 의심과 불신을 깨부수고,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위해 나아갔다.
모두가 아니라고 했을 때조차 청년은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어째서 그런 판단을 한 건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건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OTK컴퍼니는 승리했다. 그야말로 금융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승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의 정체는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건가?’
오늘따라 늙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20년만 젊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서 같이 활약할 수 있었을 텐데.
체이스는 이제 전설적인 투자자가 된 청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미스터 강.”
[감사합니다.]“저 역시 마지막까지 의심했으나, 결국 당신이 맞았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누구에게나 운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을 용기가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요.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짧은 통화가 끝났다.
이어서 체이스는 오랜 친구이자 상사인 제임스 C. 골드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지사 설립을 최대한 서둘러야겠습니다.”
* * *
브렉시트라는 폭탄으로 혼란스럽던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일본정부의 강력한 의지 덕분에 달러당 99엔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104엔까지 올랐으며, 파운드 역시 일시적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그 사이, 우리는 포지션을 청산하고 수익을 확정지었다.
전세계 증시가 도미노처럼 쓰러진 덕분에 K컴퍼니는 파생상품 시장에서 4조8천억 원을 벌어들이며, 자산이 5조9천억 원으로 늘어났다.
OTK컴퍼니 역시 외환시장에서 포지션을 정리했다.
[30,170,000,000]FX마진의 엄청난 거래수수료와 이자를 물고, 금융사들에게 빌린 원금과 이자를 전부 갚은 후, 우리 수중에 남은 돈이었다.
301억7천만 달러.
원화로는 약 33조 원.
3배에 약간 못 미치는 수익이었다.
금액을 확인한 택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실화냐?”
“······.”
난 할 말을 잃었다.
FX마진 거래는 제로섬 게임. 누군가의 이익은 곧 누군가의 손실이다. 영국과 일본의 외환보유고, 그리고 전세계 금융회사들을 털어먹은 결과였다.
이 정도면 해먹어도 너무 해먹은 거 아닌가?
택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축하해.”
“뭘?”
“이제 니가 대한민국 최고 부자야.”
대한민국 부자 부동의 1위는 서성전자 회장 임일권. 알려진 재산은 대략 20조 원.(숨겨놓은 비자금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OTK컴퍼니 자산은 45조원. K컴퍼니까지 합치면 51조.
이중 내 지분이 거의 80퍼센트니, 약 40조 원이다.
“······.”
어머니 아시면 기절하시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