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105
분신으로 절대무신 105화
그러나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법존은 미쳤다고 생각한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만큼 장일이 그간 이룬 일들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화왕을 죽여 성녀를 구했고, 망왕을 죽여 남궁세가를 구하였다. 거기에 천살성을 타고난 자마저 길들여 천하의 영웅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칠종칠금의 일화는 그 오만한 무존마저도 그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 하나를 이루었다고 해도 경이로울 지경인데, 그 모든 전과가 한 사람이 이룬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울 일은 그 일을 이룬 게 이제 약관을 넘어섰을 때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법존은 불왕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전생을 자각했다는 것은 그 인과의 그물을 뒤흔들었다는 이야기라서다.
그것은 인간의 탈을 벗은 어느 초월적 존재에 이르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했던 법존이 불왕의 말을 믿게 된 것은 뒤늦게 장일과 투왕과의 전투가 알려지면서다.
개방이 나름 정리를 했다고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혈교의 무인들이 동원되었던 전장이었다 보니 그 얻은 정보는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이 그저 장일이 큰 위기에 처했고, 운 좋게 투왕과 동귀어진을 하였다고 생각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확실치 않았기에 장일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법존은 그 난잡한 정보들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었고, 하여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선은 죽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그 과정이 실로 믿어지지 않는구나.”
살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투왕 본인은 십왕 중 살왕 다음으로 뛰어난 무력을 지닌 자였다.
어디 그뿐인가? 색왕일 것이라 예상되는 자가 그 자리에 있었으며, 이 외에도 나라 하나를 전복시킬 정도의 무인들이 함께했다.
그 모두가 검선 그를 죽이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이런 대계를 개방의 눈에 걸리지 않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투왕은 신기묘산(神技妙算: 귀신같은 재주와 묘책)의 재주를 가졌다 할 수 있다.
한데도 검선은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들을 모두 베어 넘겼다.
아마 살아 있었으면 중부대륙의 절반은 이미 혈교의 손에 들어갔을 게 분명한 투왕마저 죽인 것이다.
이런 일은 할 정도라면 이미 인간의 탈을 반쯤 넘어선 것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법존은 한 점의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아마 이마저도 당시 장일이 중독된 상태로 싸웠던 것을 알게 되면 그 의심마저 내려놓았을 것이다.
법존은 흔들리는 눈으로 장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가……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에 나는 믿지 않았네. 아니, 믿을 수 없었지.”
하여 살왕을 잡겠노라고 장일이 말을 꺼냈을 때 법존은 서둘러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게 혈교의 수작이라 그와 불왕이 죽게 된다고 할지언정 이 궁금증을 가만히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서구를 날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장일은 그들을 찾아왔고, 뒤늦게 그를 본 법존은 요동치는 심장을 쉬이 잠재우지 못했다.
그가 동요하고 있음을 알아본 장일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지금 보니 어떻소? 거짓말 같소?”
“…….”
이에 법존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그간 아등바등했던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럴 줄 알았다면 살왕이고 나발이고 진작에 다 때려치울 것을.”
“아미타불! 그게 무슨 말이시오?”
불왕은 난데없는 법존의 말에 의문을 보였고, 법존은 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이 지긋지긋하던 난세도 이제 끝이라는 말이네. 혈마를 보지 못했지만 그 작자도 저 사람 같지 않은 자를 어쩌지 못하겠지.”
“…….”
법존의 말에 불왕이 놀란 눈으로 장일을 바라보았다.
그가 괴팍하기는 하지만 결코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성품을 알고 있는 불왕으로서도 그 말의 진의를 쉬이 믿기 어려워했다.
그런 불왕의 마음을 안다는 듯 장일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게도 그만한 힘을 얻었습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장일의 말에 불왕은 동자승 때에도 읊지 않았던 관세음보살을 입에 담았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에 평온을 가져다준다는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을 말한다.
본래 관세음보살은 이미 성불을 한 이로 정법명여래라 불렸다.
말하자면 실상은 보살이 아닌 부처님이시며 겉모습만 보살의 모습이 되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대단한 분의 불명이니 지금과 같은 난세에 입에 담을 만도 하건만, 그럼에도 불왕이 입에 담지 않은 것은 아수라계와 같은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을 읊는다면야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이야 지워지겠지만, 이 끝없을 난세는 달라질 게 없었다.
하여 그는 관세음보살에 기대지 않았다.
그저 부처의 길을 가는 수행자로서 그 한 몸을 불태워서라도 천하에 이른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려 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거짓말 같은 기적을 마주하였다. 그야말로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한 이적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그가 관세음보살을 읊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무량수불(無量壽佛: 아미타불을 달리 부르는 말).”
장일은 자신에게 합장하는 불왕에 그 또한 장삼풍이 말년에 입에 종종 담았던 무량수불을 입에 담으며 합장했다.
장일이 살왕을 쫓으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이틀이 지나서였다.
살왕의 행적을 좇기가 쉽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불왕의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대불사의 백단이 좋기는 하군요. 이런 엉망인 몸으로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이대로라면 잘해야 한두 번 정도일 것입니다.”
“홀홀. 그러시오?”
그 한두 번이라는 것이 살왕과의 전투를 말함이라는 것을 모를 바가 아닐 것이다.
한데도 불왕은 마치 그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인 양 쉬이 받아들였다.
“불존도 그렇더니 당신도 참 육신에 대한 미련이 없군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하는 그의 말에 불존은 껄껄 웃어대더니 말을 이었다.
“어찌 미련이 없겠습니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법이거늘.”
“……도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것입니까?”
설마 불왕이 저잣거리의 농을 입에 담을 줄 몰랐던 장일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껄껄. 누구겠습니까?”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게 된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군요.”
“아하하!”
고약하다는 법존과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한다면, 불왕이 저리 농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장일은 크게 웃어대는 불왕에 고개를 저어대며 이내 그의 몸속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대로 생각했던 것보다 최악은 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몇 달은 정양해야 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의술을 맞이하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일단 여기저기 숨어 있는 백단의 기운부터 일으켜 봅시다. 이후에 기혈을 잡고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당장 움직이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적으로 맞춰둔 것에 불과하니 이후에 못해도 한 달은 정양할 것을 권합니다.”
“관세음보살. 그리하리다.”
불왕은 순수히 장일의 말을 따랐다.
관세음보살께서 보살피고 있음을 알게 된 지금, 더는 자신을 불태울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일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불왕에게 임시조치를 마칠 수 있었다.
“가뿐하외다.”
더는 고통이 일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왕의 입가에 미소가 이르렀다.
그런 불왕의 말에 법존은 성이 난 것처럼 투덜거렸다.
“본래 사람 몸이 그래야 하는 거다. 네놈처럼 육신과 혼을 별개처럼 다룬 게 미친 짓거리인 거지.”
“하하하.”
말은 험했으나, 그 안에 깃든 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불왕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는 개뿔.”
자신의 험담에 아무렇지 않아 하는 불왕에 투덜거리던 법존은 이내 장일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생각보다 가까이 있더외다.”
빠르면 하루 길어도 이틀 안에 있을 거리에 있는 것을 모른 채 대륙을 빙 돌아 살폈던 것이 억울했는지 법존은 이를 갈아댔다.
그도 잠시 법존은 이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길을 안내하는 법존의 걸음은 전과 달리 가벼웠다.
살왕을 찾는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보니 고약하기 그지없는 그조차도 두려움이 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인간 같지 않은 장일과 함께하게 된 지금, 이제 그가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그간 자신을 골탕 먹였던 살왕이 처참하게 무너질 것일 테니, 그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을 뿐이다.
사내는 그리 특별한 걸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에,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형이었다. 인상이 흐리다는 말이 있는데, 사내가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제법 경계가 잡힌 장원에 외부인인 그가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그를 저지하거나 하는 이는 없었다.
날카로운 안목을 지닌 일부 몇몇이 잠시 시선을 두었지만 그저 새로이 들인 하인이리라 여기며 이내 시선을 돌렸다.
덕분에 그는 장원을 휘저어 다녔고,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눈앞에는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저 두려움에 젖어 있는 어린 여인이 있었다.
사내는 그 어린 여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존의 핏줄이 이런 곳에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는 당장 이 여인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이 핏줄을 손에 넣음으로써 그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사파제일인인 무존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견고한 무림맹에 균열을 일게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를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던 그 늙은이들을 쫓아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피잇!
그렇게 그녀를 데려가려는 가운데, 검붉은 단검 하나가 그 사이를 갈랐다.
대단한 기운이 담긴 단검은 능히 사내를 물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나, 사내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래도 왕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하오배 같은 짓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흐음. 용케도 찾았군.”
“어이구. 낯빛 하나 안 바꾸는 게 여전히 염치 따위는 없다 이거지.”
“…….”
그 말에 감정의 기복이 없어 보이던 사내는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법존이 염치를 입에 담으니 그도 황당한 것이다.
온갖 추잡한 방법으로 자신을 방해하고 괴롭히던 그가 아니던가? 덕분에 그조차도 몇 번은 잠시 이성을 잃기도 했었다.
“죽어라.”
담담한 말투와 함께 사내의 손이 흔들렸고, 이내 검은 안개와 같은 무언가가 법존을 향해 몰아쳤다.
-까라라라랑!
그 검은 안개에 법존의 손이 크게 흔들렸고, 이에 맞춰 요란한 방울 소리가 뒤를 따랐다.
놀랍게도 그 일어난 방울 소리는 그 몰아치는 검은 연기를 묶어내었고, 이내 흔들어 그를 흩뜨려 버렸다.
“??”
이 모습에 사내는, 아니, 살왕은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조금 전 법존이 다루는 방울 소리는 불왕이 다루는 사자후 같은 것으로, 아무리 법존이라고 해도 쉬이 다룰 수 없는 비기였다.
목숨이 경각에 이르러야 겨우 사용해 볼 법한 것이다.
한데 겨우 이딴 살(殺)에 그를 다루었으니, 그가 그리 의문을 드러낼 만도 했다.
-후우우웅!
그러나 그의 의문은 이내 자신에게 쏟아진 무언가에 흩어져 버려야 했다.
겨우 몸을 피하기는 하였으나, 사실 환상이었던 것처럼 그것이 일으키는 파장 따위는 없었다.
“!!!”
하지만 살왕은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칼을 휘둘렀다면 그는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왜 이제야 오는 건가? 나 죽을 뻔했네.”
“죄송합니다. 괜히 휘말릴 것 같아 치우고 왔습니다.”
“하여간 정파 놈 아니랄까 봐.”
그가 치웠던 것이 바로 이곳 장원을 지키는 무인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았던 법존은 고개를 저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