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106
분신으로 절대무신 106화
장일은 그런 법존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고, 법존은 그제야 살았다는 듯 안도하며 살왕에게 소리쳤다.
“소식은 들었지? 검선이 무신이 되어 돌아왔다고 말이야! 그거 사실일세. 그동안 만나서 참 기분 더러웠네. 자네가 엎드려 빌어야 할 지옥 차사들이 한둘이 아니니 어서 빨리 뒤지시게나.”
-으드득.
저잣거리의 하류배나 할 법한 악의를 쏟아내던 법존은 이를 가는 살왕을 보며 앗 뜨거라 하는 모습으로 서둘러 몸을 빼내려 했다.
그러려던 그를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장일이었다.
“가시는 김에 소저를 데려가십시오. 무존의 하나뿐인 핏줄이 아닙니까?”
“핏줄은 개뿔……. 아, 알겠네.”
그러나 쉬이 움직이지를 못했는데, 이는 아직 살왕과 무존의 손녀가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서다.
“그것참.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분이 뭐 그리 겁이 많습니까?”
“자네가 살왕 저 인간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러네.”
“그런 것 치고는 신경을 잘 건드리시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그 말에 법존은 끌끌 웃어댔다.
“크크. 호가호위로 꿀 빨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참 대단하십니다.”
장일은 그간 겪어 느꼈음에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법존의 괴팍함에 고개를 저어대야 했다.
“…….”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장일의 모습에도 살왕은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분명 겉으로 본다면 아예 시선마저 돌리고 있는 장일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그는 칼을 들지 못했다.
그 칼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는 이가 살왕이 아니었다면, 무시하고 장일에게 손을 썼을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대놓고 빈틈을 보이는 것은 확실했으니, 그를 가만히 두고 본다는 것은 멍청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끝내 칼을 들지 못한 것은 그의 권능과 관련 있었다.
화왕이 불을 다루고 금왕이 금강의 힘을 이루며, 색왕이 색을 다루듯이 살왕이 다루는 것은 살(殺)이다.
아니, 정확히는 살의(殺意)였다.
죽일 뜻을 품는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참 별것 아닌 능력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마저도 살의를 품을 수 있는 것인 데다, 그것이 아니어도 칼밥을 먹은 자라면 자연히 그 살의로 상대를 위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일의 살검이나 조한의 복마검법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살의라고 해도 그 크기와 정수에서 확연히 차이가 날 수 있었다.
장일은 이 살검을 크게 세 가지 경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그 살의를 머릿속에 또는 말하는 단계다. 이 단계는 삼척동자도 가능한 일이었고, 달리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이다음은 살의를 키우는 단계였다.
이 살의를 키우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은 피를 보는 것이다. 짐승이나 요괴를 베어도 되지만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사람을 베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성장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대부분이 이 단계에서 살의에 먹혀 버린다. 주와 부의 위치가 바뀌게 되는 것이었고, 이는 곧 주변과 스스로를 난도질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운이 닿아 두 번째 단계를 뛰어넘게 되면 그때부터 진정한 살검을 얻을 수 있다.
살의를 칼에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기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살의를 무(武)의 의의(意義)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삼류검법 따위도 절정검법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조한이 그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천살성을 살의를 무의로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할 것인데, 그는 그 천살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복마검법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장일은 조한이 살왕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이야기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살왕은 장일이 세운 세 가지 단계를 넘어 또 하나의 경지에 이른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의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게 가능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심검의 세 번째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하지.’
조한 또한 심검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는 했으나, 문제는 그 숙련의 차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생을 자각하였던 시점에서 살왕은 이미 숙련자의 위치에 올라선 데다, 무엇보다 그가 다루는 살의는 권능에서 비롯됐다.
권능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한 힘이다.
이것이 무서운 점은 심검을 통해 그 살의를 표출해야 하는 과정 따위를 그 권능이라는 힘 아래 그저 발현이 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더욱 자유롭게 발휘가 가능한 것으로, 전생보다도 더 큰 권능을 받은 지금 살왕의 살의는 그의 언행은 그 자체로 저주이며 생명의 심지를 끄는 거친 바람이다.
실제로 그는 살검의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그 살의를 표출하는 게 가능했다.
장일이 나타나기 전 그저 뜻과 손짓만으로 법존에게 죽음의 의지를 드러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불왕과 법존이 그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법존의 재주가 뛰어나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불왕의 나한도법의 비중이 컸다.
악귀를 베어내 죽이겠다는 목적 아래 만들어진 나한도법은 사마의 존재일수록 그 영향이 커진다.
당연히 살왕의 살의는 나한도법의 영향의 한계를 넘나들 정도로 커지게 하였다.
이것이 불왕과 법존이 살왕의 일을 방해함에도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였다.
“문제는 나한도법을 다루는 불왕이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아니, 그나마도 불왕이었으니 그 정도의 내상으로 그친 것이다.
다른 이었다면 단 한 번 싸운 것만으로 이미 심마에 들어 그 생사를 점쳐볼 수도 없게 되었을 것이다.
살왕이 다루는 살의는 그처럼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상대가 범인이라면 그는 생각만으로도 상대의 이지를 제압하는 게 가능했고, 그 보는 시야도 달랐다.
한데 그런 그의 살의가 장일에게 닿지 못했다.
이는 나한도법을 다루던 불왕의 견고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끝도 없는 심연(深淵)에 던지는 느낌이었으니, 살왕이 자신의 칼이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기괴함에 살왕의 눈빛이 흔들리는 가운데 마침내 장일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살왕을 바라보는 장일의 시선에는 노기도 살의도 없었으나, 그럼에도 섬뜩함을 보였다.
이는 살왕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한 점의 감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의미한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듯한 그의 눈이었는데, 이는 그가 과거 소 돼지를 도축할 때 보였던 눈이기도 했다.
“으음…….”
전생을 통틀어 그와 같은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던 살왕으로서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지만, 이내 그의 손은 어느새 칼을 뽑아낸 상태였다.
그것은 무언가 달라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에 반발한 본능에 불과했다.
-후르르릉!
기괴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그의 검에 이르러 장일을 지워낼 듯 펼쳐졌다.
“저걸 벌써!”
불왕의 나한도법의 격전 끝에서나 보았던 광경을 시작부터 보았다는 것이 법존은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저 검은 구름이 뒤덮일 때면 뒤에서 지원을 하던 법존조차도 그 힘에 짓눌려 버렸으며, 나한도법에 이른 살적(殺賊)은 그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그만큼 대단한 힘인데도 살왕이 쉬이 다루지 않으려 한 것은, 그 흘려낸 살의를 복원하는 데 적잖은 시일이 걸려서다.
권능에 이른 살의는 그 끝을 모를 정도로 펼치는 게 가능하나, 어느 정도 이상의 살의는 회복하는 데 시일이 걸린다.
법존은 그것을 알아보았기에 이 힘이 펼쳐질 때면 불왕과 함께 단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을 쳤다.
그런 힘이 처음부터 펼쳐졌다는 것은, 장일이 훗날을 기약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살왕 다운 본능이며 매우 뛰어난 판단이기도 했다.
아마 장일이 네 번째 권능을 발현한 뒤가 아니었다면, 장일도 제법 애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우우웅!
용의 울음을 닮은 검명 속에서 장일의 검은 그의 손을 벗어나 살왕이 펼친 검은 구름에 날아갔다.
성이 잔뜩 난 검은 구름에 용이 달려든 모양새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듯 보였다.
-피이잇!
그러나 정작 그 둘이 부딪히자 허무한 결과가 일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이 크게 쪼그라지며 옅어지기를 반복하다 끝내 지워진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도 빨라 그 펼쳐진 검은 구름은 사실 환상이 아니었는지를 의심케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그저 장일이 펼친 심검이 살왕이 일으킨 살의를 지워낸 것에 불과했다.
아니, 대단찮게 말할 필요도 없이 장일의 의지가 살왕의 살의보다 더 고차원적이라 힘 싸움에 살왕이 진 것뿐이었다.
살왕이 다루는 것은 혈교의 신 율의 의지가 담긴 살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이미 장일의 살검은 상식의 범주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의 제자 조한이 보았던 것처럼 장일의 살검은 태극의 탄생과 소멸 중 소멸을 담을 정도라, 혈마 정도가 아니고서는 그의 살검이 이르고자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하기에 장일은 허무함을 느꼈다.
확실히 살왕은 과거의 혈마의 향기를 느끼게 할 만큼 무시무시한 자였으나, 그런 그의 살의도 장일에게 보잘것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 있는 살왕은 그가 수없이 잡았던 소 돼지 따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휘익!
장일은 어느새 돌아온 검을 쥔 채 허공에 내리그었고, 이에 살왕은 바닥을 뒹굴었다.
그와 같은 고수가 그처럼 추하게 몸을 굴렸으니, 참으로 다급한 일인 듯 보였으나 의외로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꼴이 된 것인데, 어째서인지 흙먼지가 잔뜩 묻은 살왕의 눈에는 두려움 가득했다.
“제법?”
그런 살왕을 보며 장일은 하얀 이를 보이더니 이내 다시 칼을 허공에 휘젓기 시작했다.
-우당탕!
그때마다 살왕은 광증에 걸린 이처럼 이리저리 바닥을 굴러댔다.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다급히 뒹굴어 대는 그의 몰골은 참으로 볼썽사나워져 갔다.
어느새 그의 머리는 죄인처럼 아무렇게나 풀어졌으며, 옷은 갈가리 찢겨 엉망이 되어가니 거리의 걸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살왕의 움직임이 아주 미약하게 둔화되었다. 숨을 쉬지도 못한 채 극한으로 몸을 움직여야 했으니, 지친 것인데 그로 인한 결과는 참혹했다.
-서걱!
처음에는 팔 하나였다.
뒹굴던 살왕의 팔이 갑자기 떨어져 나간 것인데, 그 고통이 심할 것임에도 살왕은 신음을 흘리지 않았다.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
몰아치는 장일의 검기가 그를 향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지친 육신에 피마저 그리 흘려대니, 그 움직임이 둔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걱…… 서걱…… 후웅! 차아아앗!
결국, 남은 사지가 끊겼고, 이어 벌레처럼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의 육신은 거인의 태도에 찢기듯 세로로 갈라져 땅바닥에 너부러졌다.
-탁.
그같이 잔혹하기 그지없는 손속을 보였던 장일이었지만, 검을 챙겨 넣은 그의 얼굴에는 한 점의 살의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
그는 도축된 고기 따위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살왕의 살덩어리를 보더니 이내 법존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한숨을 흘렸다.
“왜, 왜 그러시오.”
그 살왕을 그야말로 가지고 놀다 찢어 죽인 것을 본 법존은 장일의 책망하는 듯한 눈빛에 잔뜩 겁에 질려 버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장일은 짜증을 애써 내리누르며 말했다.
“손녀분을 데려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제야 법존은 장일이 짜증을 낸 이유를 깨달았다는 모습을 보였다.
살왕을 가지고 놀고자 했던 장일의 모습이 사실은 자신이 일을 행하지 않아 제한되는 상황에서 칼을 다루면 생긴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살왕이 저처럼 잔혹한 끝을 맺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 법존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겨우 말을 꺼냈다.
“미, 미안하오. 이 늙은이가 노망이 난 터라…….”
“…….”
그 비굴한 변명조차도 참 법존다운 것이라 장일은 다시금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어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