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141
분신으로 절대무신 141화
다음 날 이른 아침.
만풍은 스승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 그것을 찾아오겠다고 고하고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덕분에 장일은 아무도 모르는 이들 사이에 홀로 남게 되었으나,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만풍으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던 것인지, 제갈천부터 시작하여 본관의 모든 이들이 그를 극진히 대하였기 때문이다.
부담스럽기는 했으나 본래 이 같이 자신을 대하는 것을 겪은 바가 많은 장일은 이를 태연히 받아들였다.
“무공을 살피고 싶네.”
“알겠습니다.”
그의 시대에서 비급이라 할 무공들이 널리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시대였다. 하여 장일은 이 기회에 다양한 무공을 살피기를 원했다.
의외로 장일이 알고 있는 무공은 많지 않았다.
이미 검존이었을 때부터 대종사의 길에 올라서다보니 달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에 흥미를 일게 할 정도의 무공은 이미 단체의 비급이라 할 만한 것이라서다.
사파인이었다면 빼앗아서라도 살폈겠으나 장일은 정파인을 자처하는지라 그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다.
우선 그가 원한 것은 정파의 무공을 살피고자 했는데, 과연 천시받는 덕분인지 장일은 순식간에 수십 개에 달하는 무공서를 앞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장일은 그 무공서들 중 다섯 개만을 골라 살폈을 뿐이었다.
“천시받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래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일까? 이 중에 본의가 그나마 담긴 것은 이뿐이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 알맹이가 없는 무공서들에 장일은 아쉬움을 보였다.
이래서야 정파의 무공의 정수를 얻고자 하는 자들이 있어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후 장일은 사파의 무공 또한 얻어 살펴보았는데 확실히 많은 사람이 찾아서인지, 정파의 무공에 비해서 그 사정이 나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장일은 마교의 마공들을 살폈다.
부작용이 많은 삼류 마공부터 나름 일류라 할 수 있는 마공까지 스물 여섯 개에 달했다.
덕분에 장일은 무려 나흘을 꼼짝없이 이 마공들을 살폈으며, 이후 열흘을 명상을 하더니 다음 날이 되어서야 긴 한숨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하아. 인간의 본성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해부하다니.”
마공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해부는 좀 더 세밀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자연 의(義)와 선(善)을 비웃게 하였고, 이(利)를 중시하게 만들었다.
불가에서는 모정(母情)을 가장 큰 사랑으로 여긴다.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을 가여워 살피는 대자대비를 이 모정으로 비유하는데, 이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공에서는 이러한 모정을 가장 큰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람은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을 싫어한다.
하나를 주면 최소 하나를 받기를 원한 것인데, 이는 단순히 물질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 자식을 키우는 것도 훗날을 대비하는 안배에서 시작된 것이라 본 것이다.
이 중 열 달을 품어 낳는 어미의 경우는 그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며 고생 끝에 낳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후 젖을 물리고 키우는 과정에서 오랜 고생을 하게 되니 그 스스로 손해를 보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점점 그 손해는 커질 뿐 받을 길이 없다는 것에 있다.
그렇게 물질로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순간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의연 중에 알 수 없는 더 큰 것을 바라며 지속적으로 더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마공에서는 사랑을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으로 풀어냈다.
장일은 마공에서 말하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마냥 부정하지 못했다.
권력과 돈 앞에 부자가 상쟁하고 형제 간에 칼을 드는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가에서도 이러한 삶 자체를 번뇌 자체로 여기고 있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화합을 해야 하는 만큼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고승은 다르다.
본시 악도 선도 없고 의와 불의도 없다. 그저 마음만이 그리 여길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말하자면 본래는 아무것도 없으나 그것에 의미를 두면서 그것이 있고 자신이 이에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공은 불가의 그러한 가르침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악도 선도 없고 의도 불의도 없다고 여기는 것은 같으나, 큰 차이가 있었으니 바로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감정뿐이라 말하다는 점에 있다.
감정의 크기를 기준으로 둔다는 것으로 이는 살의와 연민을 같은 선상에 둔다는 말과도 같았다.
장일이 마공을 두고 적나라한 사람의 본성을 해부하였다고 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장일은 천마가 어째서 마공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가장 빠르게 힘을 얻는 방법이라서다.”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천살성만 따져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미 하늘에 닿는 살의를 품은 것만으로도 천살성의 소유자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장일은 이후에도 마공을 살피며 그에 대해 고찰했다.
마공이 말하는 바가 옳고 그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성장이 정체된 자신에게 변화를 주지 않을까? 라는 직감해서다.
어느새 한 달이 흘러 겨울이 찾아왔다.
그 해 첫눈이 내리던 날.
오랫동안 길을 나섰던 제자가 돌아왔다.
세 달 가까이를 떠나 돌아온 만풍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원영신을 얻어 지선이 되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들이 곳곳에 즐비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것이냐?”
자칫 다시 만난 제자를 다시 볼 수 없게 될 뻔한 것을 알았던 장일은 그에게 질책했으나 만풍은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만풍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스승에 기뻐하며 조심스럽게 서책 한 권을 장일에게 내어주었다.
그것을 본 장일은 이내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껍데기를 벗겨 특수한 약물에 제조해 만든 인피지로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실로 끔찍한 물건이었지만, 그 서책의 이름을 본다면 오히려 그 외형은 당연한 것이었다.
천마심법(天魔心法).
그것은 바로 천마가 다루었던 심법이었다.
“과거 마교의 본부에서 찾은 것입니다. 듣기로는 천마가 다루는 천마신공이 그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만풍은 이것이 그곳에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에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찾지는 않았는데, 이는 그 위험도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도 적기 때문이다.
천마신공이라면 모를까? 천마심법으로는 지선인 그도 별다른 것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승님이라면…….’
무신이라는 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장일이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만풍은 이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 것이다.
물론 장일과 함께했다면 이처럼 큰 부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천마가 스승님을 노렸던 것을 알고 있던 그로서는 감히 그 같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여 홀로 길을 나섰고, 다행히 이를 가져올 수 있었다.
“미련한 것아.”
장일 또한 그를 알았기에 더는 그를 질책하지 못했다.
그렇게 제자가 고생 끝에 가져온 천마심법을 살피게 된 장일은 그 안의 내용에 한동안 말문을 잃고 말았다.
앞서 마공은 그저 그 감정의 크기만을 따질 뿐이었다.
급이 높을수록 그 감정의 순도가 달라질 뿐인데, 이는 그래야만 그 감정을 더욱 크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마공도 한계는 있게 마련이었다.
인간은 실체가 있는 유한적인 존재라 주관적인 감정도 유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천마심법은 그러한 마공의 한계를 알아보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사람의 감정의 근원은 무의식에 있다. 하면 무의식은 무엇인가? 바로 당사자가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 구분된다. 그런 감정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의식을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천마심법의 시작은 바로 이 무의식을 의식으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대로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 인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뇌였다.
“뇌를 다루는 무공이라!”
천마다운 발상이며 실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무신의 경지에 이르렀던 장일이었기에 이러한 파격적인 행보가 크게 다가왔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더니.’
불가에서는 감정이란 실체가 없으니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고통의 근원은 집착에 있으니 그 집착을 내려놓으며 괴로워할 것이 없다 여기는 것이다.
천마는 반대로 그 집착을 극에 다다르게 바라보았고, 그 끝에 이르게 되면 모든 감정을 여의하게 된다고 여겼다.
다만 이러한 천마심법은 마공을 익힌 자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 생각했을 때 과거 만풍이 천마심법의 존재를 알았음에도 물러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이미 도가의 길의 끝에 이른 그에게 있어 천마심법은 여느 삼류무공 따위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장일에게 있어 이 천마심법은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어쩌면 구음진경의 한계를 끌어 올릴 수 있을지도.”
그리고 이것은 장일에게 있어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장일을 무신의 자리에 오르게 하는 데 있어 그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도가도 불가도 아니었다.
바로 구음진경이다.
이 구음진경이 있기에 그의 터무니 없는 존재감의 일부나마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구체화 된 것 중 하나가 유검이며, 도가와 불가의 가르침은 그저 그 유검을 생성하고 다루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장일은 알 수 있었다.
“천마가 이 심법을 만든 것은 단순히 마공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천마심법을 만든 것은 바로 이 구음진경 때문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천마의 구음진경이 장일의 구음진경을 넘지 못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그가 다루는 마공이 구음진경을 온전히 넘지 못한 탓이다. 격정에 젖은 마공이 구음의 순도를 제대로 높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천마는 꼭두각시와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사용하려 했던 것일 터다.
두 번째는 역시나 존재감 때문이다.
구음은 존재감을 표현해 내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장일과 천마의 존재감의 격차는 해와 달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만(萬)에서 꺼내는 것과 십(十)에서 꺼내는 것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구음을 구현화하는 뇌의 한계치로 인해 그렇게까지 극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천마심법이 이러하다면 천마신공은 어떤 것인지 짐작되는구나.”
천마심법이 뇌를 극한으로 다루는 것을 지향한다면 천마신공은 그 뇌의 역량 자체를 높이는 것에 집중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천마는 역천의 길을 걷는 이었고 하여 그는 이를 이루어냈다.
천마가 역천을 이룬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것이 천마를 죽이는 데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만풍은 천마가 역천을 성공할 수 있던 그 근원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상대할 방도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장일은 이 천마심법을 익힐 방도를 찾았다.
마공인 천마심법을 그대로 익히기에는 그가 그간 익힌 모든 무공의 근원이 무너질 수 있으니,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을 때쯤 장일은 크게 고개를 저어야 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구나.”
분신을 다루는 장일에게 있어 이 시간은 언제나 그의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마냥 그리 믿기에는 의심되는 게 있었다.
우연일지 모르나 당악이 본신의 시간에 떨어진 시점과 장일이 능력을 발휘하려던 시점 사이의 시간이 차가 이 세상에서 시간이 흘러간 시점과 거의 비슷했다.
이 말은 본신과 이곳에서의 시간대가 함께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간단히 말해 당악이 과거로 오면서 두 시간대가 이어지게 된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무기라 할 수 있는 장일에게 있어 지금의 방식은 맞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여기까지일 것 같군.”
장일은 그리 판단하였다.
그는 바로 제자를 만나 한동안 여정을 나서겠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요괴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외진 산속의 굴을 찾아 자신의 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