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지금은 명맥이 끊어질 듯 위태하지만 글리제 차원의 안식처에서 ‘전사’는 경외의 대상이자 존경받는 계층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안식처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멸망한 차원에서 단 하나 남은 피난처, 이어붙인 던전으로 크기를 키운 인위적 공간이 바로 안식처다.
구성원들은 다양했다. 일반인도 있었고 시스템 가이드 각성자, 자연 각성자들도 있었다.
안식처 초기,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곳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법칙은 바로 마나와 오러로 단련된 물리적인 힘.
약육강식,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특히 먹이사슬의 제일 마지막에 있던 일반인들이 대부분, 그들은 생존을 위한 시스템 가이드를 이식하는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폭압적인 지배자의 위치에 올라선 각성자 계급, 그들이 내뱉는 말이 곧 법이었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곧 선(善)이었다. 그들의 만행으로 사회가 합심하여 쌓아 올렸던 소중한 가치들이 모두 부정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일련의 집단들이 있었다.
정의로운 정치가, 천재적인 결정석 과학자와 엔지니어,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용맹한 각성자.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쳐 탐욕스런 각성자들을 추방하고 안식처의 평화를 이끌어 냈다.
이제 남은 과제.
안식처의 미래를 위협하는 불안요소는 무엇일까?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통제받지 못한 힘이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후 시스템 가이드 슬롯에 이식하는 강력한 전투 스킬, 공격 마법 주문을 모조리 폐기했다.
언데드들이야 무기만 있으면 스킬이 없어도 사냥할 수 있으니까.
용맹하고 명예로운 각성자들, 즉 ‘전사’들도 안식처의 통제를 현명한 사람들에게 맡긴 후 은거했다. 그들은 욕심보다 명예를 택했다.
절대 힘으로 지배하지 마라!
공동체에 헌신해라!
평화의 주역이었던 전사들의 전투 스킬, 마법 주문은 마지막 남은 위험 요소, 그래서 그것마저도 전사들이 사망하면 모두 다 폐기될 운명이었다.
안정이 지속되나 싶었다.
안식처에 드래곤 레어가 붙었다는 걸 알기 전까진 말이다.
“던전 크기를 키우기 위해 특수 던전을 붙였는데… 그게 알고 보니 드래곤 레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소. 그 던전은 유독 언데드 몬스터들이 많이 등장해 결정석 생산 농장으로 붙여진 거였지요. 그런데 특수 던전 드래곤 레어라니! 누가 알았겠소? 알았다면 절대 그런 짓은 안 하지.”
“그래서 전사들이 필요했겠군요.”
“그렇소.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전투 스킬과 마법 주문들이 모두 폐기된 터라 ‘전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만이 남은 터라.”
더블 슬롯 이상의 가이드, 스킬을 극도로 수련하여 마나의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전사들은 특수 던전의 드래곤과 용감하게 맞섰다.
하지만 언데드라도 무려 드래곤, 놈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결국엔…….
운호는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죽이지도 못했다니, 왜죠?”
“애초에 인간의 힘으로는 검은 용을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오.”
최첨단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안식처의 능력으로도 드래곤을 죽일 수 없었다?
“으흠, 결정석 과학이 그렇게나 발전했는데도? 보다 강화된 결정석 무기들은요?”
“있으면 뭘 하겠소. 핵이라도 터뜨릴까? 안식처도 던전이요. 일정 위력을 넘어선 폭발성 무기들을 사용하면 던전 내부의 마나 흐름이 요동치게 되고…….”
“아! 던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네요.”
“바로 그렇소.”
결국 폭발력이 약한 무기, 그리고 절반이나 되는 전사들의 희생으로 드래곤을 막아 내기는 했다. 죽이지 못하고 다시 재우는 것까지만!
결사적으로 방어하다가 보면 드래곤은 스스로 레어로 돌아가 숙면을 취한단다. 그렇게 1년마다 그 지긋지긋한 일을 벌여 온 것이고.
“전사들의 피해는 점점 누적되었소. 그나마 합성 결정석으로 신무기와 신장비들을 개발해서 버티긴 했지만…….”
“안타깝네요. 전사들만이 희생을 강요당한 것 같아서.”
사망한 전사들이 가진 시스템 가이드는 그들의 가문에 전승되었다. 추출기를 이용해서 온전한 시스템 가이드를 뽑아내는 식으로.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격체전력(隔體傳力) 같은 거네. 시스템 가이드를 사망자의 몸에서 뽑아내 그걸 후손에게 이식하고, 그 후손은 다시 용감한 전사가 되어 안식처 방어에 몸을 던진다…….’
일리나 미스틸이 어두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이 되었습니다. 선조의 시스템 가이드를 전승받지 않으려는 후손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처음 전사들이 가졌던 희생정신은 후대에 와서 많이 희석되었기 때문이죠.”
“…이해합니다.”
“그들을 탓할 순 없어요. 아시다시피 드래곤을 상대한다는 건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아야 하는 거라.”
핫바 300박스는 전사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조공인 셈, 더불어 그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미끼 역할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고작 핫바 정도로?
어떻게 보면 무리도 아니다. 안식처의 사람들이 진짜 음식에 가지는 열광적인 반응을 감안하면.
안드레이 코헨의 입장에서 동부 도시를 방어할 전사들을 모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그들에게 장비를 공급하고 드래곤의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는 합성 결정석을 확보하는 것도 그렇다.
‘이거 갑자기 급궁금해지네.’
운호도 드래곤에 대해선 접해 본 바가 있다.
짬타를 통한 간접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은 진짜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런 던전판으로 열화된 드래곤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드래곤 출몰 시기가 한 달 정도 남았다고 했죠? 그때 레이드를 직접 참관하고 싶은데, 혹시 기회가 있을까요?”
일리나 미스틸이 기겁했다.
“절대 안 됩니다. 위험한 일이에요.”
차원 거래자가 안식처의 재앙에 관심을 보일 줄이야… 그녀는 후회했다.
괜히 그를 데리고 왔나?
말려야 한다. 드래곤은 그 실체를 보기만 해도 위험한 존재.
안드레이 코헨의 입장도 같았다.
“언데드라 우습게 보지 마시오. 무려 드래곤, 혼자면 말도 안 하지. 놈이 깨어나면 그 지역의 언데드들이 미쳐 날뛰게 될 거요. 그럼 우린 당신을 보살필 여유도 가지지 못할 테니…….”
“그래요. 이건 평범한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것과 차원이 달라요. 참고로 드래곤과의 전투에 돌입하면 차폐막이 없는 일반적인 마나 무기는 쓸모가 없어져요. 마나 억제장을 뚫어야 하는데…….”
“트리플 슬롯을 가진 강력한 전사들도 위험하오.”
운호는 싱긋 웃었다.
하긴, 저들이 알 리 없지. 자신은 그저 차원을 왕래하는 능력을 지닌 거래자일 뿐이니까.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위험하면 잘 도망칠 자신도 있고요.”
그럼에도 안드레이는 미덥지 못한 표정.
그의 관심은 오로지…….
“호, 혹시 하, 핫바를 주지 않겠다는 말씀인지. 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나 혼자 먹고살자는 짓이 아니오.”
역시 사심이 있었구나.
정작 자신이 먹고 싶은 모양, 하긴 데우기만 해도 자극적인 냄새가 팍팍 풍기는 게 핫바긴 하지. 그리고 그 정도 사심이야 귀엽다.
“핫바는 따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전쟁인데 전투 식량으로 핫바 300박스로는 부족한 것 같고, 그 두 배면 어때요? 충분할까요? 물론 제가 참관한다는 가정하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참관석을 마련해 놓겠소이다. 전투 위성 드론을 모두 다 동원해서 경호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고.”
“안드레이! 미쳤어요?”
“그럼 어쩌나? …두 배인데?”
일단 허락은 얻어 냈다.
사실 운호는 참관만 할 생각은 없었다.
‘레이드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모르겠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직접 개입한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순 없잖아.’
그리고 또 하나.
권능으로 얻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드래곤만큼 적당한 대상이 또 있을까?
* * *
10 대 1의 완벽한 합성 결정석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마나 회로도 하나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합성 결정석 마나 회로도 21,452pt.]열을 가해 던전 결정석을 찌꺼기 하나 없이 녹여야 하며.
[결정석 완전 용해 회로도 9,137pt.]그 과정에서 흩어지는 마나를 외부로 못 빠져나가게 막는 동시에.
[마나 차폐막 회로도 10,045pt.]만들어진 결정석의 농도를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살짝 증폭시키고.
[마나 안전 증폭 회로도 12,114pt.]이 모든 회로를 종합해 편의점 전자동 커피 머신처럼 단추 하나만 눌러 합성 결정석을 간편하고 빠르게 생산하는 기계를 만든다.
그래서 관세를 결제해 지구로 가지고 나오니.
[총 관세 67,080pt를 지불합니다.] [현재 사용 가능 점수 2,824,717pt.]남은 관세점수는 겨우 280만pt 정도.
한때 2천만pt를 훌쩍 넘겼는데…….
핫바 600박스면 적어도 관세가 50만에서 60만pt 정도 필요하고.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륙 횡단 철도가 건설되고 나면 포인트 가뭄은 해결될 것이다.
정휘선 회장이 혼비백산하며 물었다.
“마, 맙소사! 500대 매릭스 합성 결정석? 400대가 아니고? 내가 잘 들은 것이 마, 맞는가?”
“네, 10 대 1의 비율로요.”
“…그럼 생산 원가가?”
“던전 결정석 1그램이 22달러에서 23달러 왔다 갔다 하니까, 생산 비용 따져도 240? 250? 초기 투자 비용도 적고, 사용되는 마나 골드도 소량이니까 250달러에 팔아도 손해는 안 보겠어요.”
“끄응.”
정휘선의 벌려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매릭스 600대 합성 결정석도 가능합니다. 결정석과 마나 골드의 양만 조금 더 추가하면 20% 정도 증폭되니까요.”
“아!”
“생산 비용도 500매릭스 결정석 만드는 것과 큰 차이 없죠.”
정휘선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건 혁명이다.
던전에서 결정석이 발견되어 지구의 산업이 눈부신 발전을 시작했을 때가 1차 혁명이라면, 운호가 이계에서 가져온 고농도 결정석을 소개했을 때가 2차 혁명, 그리고 합성 결정석의 자체 생산은 3차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당장 제작에 들어가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아니야, 신중해야지. 현재 국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산업 스파이들이 몇 명인지 아 나?”
“보안 장치를 만들어 두면 상관없어요.”
“껄껄껄, 나야 자넬 믿지. 아무튼 이익 배분에 대해서 논의해 보지. 재단 사업하느라 모아 둔 돈도 없겠지?”
“쓸 만큼 있어요.”
“젊은 사람이 돈에 욕심이 그리 없나? 이참에 욕심 좀 부려 보게.”
운호는 대영 결정석 공학 연구소와 함께 던전 결정석 합성기 제작에 착수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보안,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인원이 있으면 철저하게 걸러 냈다.
기계라고는 하지만 복잡한 장치는 아니다. 다만 정교한 마나 회로도를 올바르게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그 역할은 운호가 맡았다.
클래스 마법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인챈트 마법진 연성, 9클래스 마법사라도 숙련이 필요한 법. 그리고 마나 회로도와 마법진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 * *
연예인 스캔들이 연달아 터지고 국민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몰리자 신종호와 그의 손자 신형섭이 소리 소문 없이 석방되었다.
신종호는 고령으로 인한 구속 집행 정지, 그리고 신형섭은 마나 역류로 폐인이 된 상황을 참작해 치료 목적으로 역시 구속 집행 정지.
태양 로펌의 전 방위적인 무차별 로비가 효과를 보았다.
개인 비서가 구치소 문을 열고 나온 신종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 두부를…….”
“저리 치워. 해외 자산 처분에 대한 거나 말해 봐!”
“현재 약 3억 달러가 회수되었습니다. 그 돈으로 SH 인터내셔널을 설립했습니다.”
지금은 자본금 3천억 원대의 무역 회사로 쪼그라든 신화 그룹.
“조만간 중국에서 고농도 결정석이 풀릴 거야. 독점권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대출이든 뭐든, 가용금액을 총동원해서 모조리 사들여.”
“네.”
중국이 신종호에게 지원하는 혜택 중 하나가 400대 매릭스의 고농도 결정석을 싼 가격에 공급해 주겠다는 것.
도매가 1그램당 450달러, 그걸 수입해서 600달러에 팔면 얼마가 남지?
이익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독점 판매권으로 국내 결정석 시장을 장악한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일이 아무리 잘못된다 해도 최소한 한국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은 단단하게 다져지리라.
신종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뒤에 어떤 나라 가 있지? 중국이다. 중국이 망할 일이 없는 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