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메이린은 도무지 영문을 몰랐다.
빚을 받으러 왔다면서 지금 뭐하는 짓이지?
이상한 마족 노인은 아공간에서 조그만 탁자를 꺼낸 후 다리를 이상하게 꼬고 앉아 물건 몇 개를 꺼내 올렸다.
“쓸 만한 지필묵 구하기 정말 힘들었어. 주인이 하급 마족 주제에 헛짓거리하지 말고 아무거나 쓰라고 했는데 영 적응을 할 수 있어야지.”
“…….”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넓적하고 움푹 파인 까만 돌에다 물을 조금 붓더니 역시 까만색 막대기를 대고 천천히 문질렀다. 그러자 물이 새까만 잉크로 변한다.
이럴 거면 잉크를 가지고 다니면 되지 굳이 저런 귀찮은 짓을?
다음으로 하얀색 종이를 꺼내더니 끝부분에 털이 달린 필기구를 먹물에 찍어 정성스레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삼두마견 꼬리털로 만든 붓이야. 다른 마족들은 켈베… 뭐라고 하는데 입에 짝짝 붙지 않아서. 역시 붓은 개털이 최고지.”
메이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노인, 아니 마뇌(魔腦), 지금 뭘 쓰고 있는 거냐?”
“마뇌라고 부르지 마라. 빌어먹을 주인이 새 이름을 지어 주셨지. 이블브레인이라고 불러.”
“…이블브레인.”
“그래, 기존 계약자가 빚을 갚지 못하고 영혼이 소멸당했으니 연대 보증 원칙으로 부채를 넘기는 계약서를 작성 중이야.”
보증?
누구 마음대로?
“개수작 부리고 있구나! 이블브레인, 나라고 마족의 계약을 모를 줄 아나?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응하게 될걸?”
“하! 시간 낭비하지 마라. 위협이라도 할 참인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알고?”
“홀홀홀. 거, 사람 참! 내 비록 하급 마족이지만 꽤 능력 있는 징수관이라네. 어디 보자. 다크 엘프들이라…….”
그러더니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 이블브레인, 자세히 보니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둘둘 말린 종이 두루마리였다.
“으흠, 세계수에게 버림받고 동족에게 쫓기고 있구만. 쯧쯧, 골육상쟁은 여기나 마계나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지.”
메이린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1년 동안 쫓겨 다녔다. 이미 대륙 전체에 널리 퍼진 이야기.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지금부터 몇 가지 제안을 할 텐데, 빚을 넘겨받을지 말지 들어 보고 결정해라.”
“…말해 봐.”
“지옥엔 마계목(魔界木)이라는 것이 있다. 세계수와는 다소 손색이 있다만 너희를 거두어 보살필 능력은 충분하지. 마침 너희들의 몸에 이미 마기(魔氣)가 들어 있으니 안성맞춤이고, 어차피 환영받지도 못하는 세계수 따윈 버려라.”
흠칫 놀라는 메이린.
“마계목?”
“그렇다. 그걸 옮겨다 적당한 장소에 심어 주마. 이곳 또한 악의가 넘치는 세상이니 마계목이 쑥쑥 자라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혹한다.
생존이 가능하다는 의미 아닌가!
그러나 이블브레인의 제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프들이라면 정령도 다뤄야지. 어떠냐? 너희들과 상성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 정령들도 소환할 수 있다.”
“저, 정령도?”
“당연하지. 하지만 마(魔)의 속성을 가진 어둠의 정령 하나뿐이야.”
메이린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속성이 어둠이면 어떤가? 정령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다크 엘프들의 생각도 마찬가지.
“왜 이렇게까지……. 그럼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마계가 내거는 조건이 달리 있겠느냐? 바로 너희들의 영혼이다.”
대가가 영혼이라는 말은 누가 들어도 기분이 섬뜩하다.
“영혼…….”
“클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마계가 영혼을 가져가서 뭘 할까? 혹자는 갈아 마신다느니 누구는 제물로 바친다느니 말들 하지만 그것 잘 모르고 하는 소리야. 간단하게 노예 계약이라고 보면 돼.”
“노예?”
“그래, 나처럼 마계에서 노예로 영원히 살아가는 거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의외로 대우는 좋은 편이고. 다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메이린은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귀한 엘프가 마계의 노예로 전락한다?
일족의 운명은 판가름하는 순간, 이건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일족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쳐다봤는데…….
‘…모두 다 넘어갔구나.’
간절한 표정의 다크 엘프들, 메이린이 승낙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입술에 기름칠한 듯 매끄러운 하급 마족의 혀 놀림에 순진한 다크 엘프들은 이미 유혹당한 지 오래. 하긴! 세계수를 대체하는 마계목과 정령 소환이라는데, 어느 엘프가 거부할 수 있겠나!
‘멸족보다는 낫겠지.’
사실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최악의 순간에 이 늙은 마족은 자신들에게 구명줄을 던졌다. 잡을 수밖에 없다. 잡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어떻게 하면 되지?”
“모두 한 사람씩 나와서 이 종이에 이름을 적거라. 숫자가… 어이쿠! 어림잡아도 6백 명은 족히 되겠군. 종이가 모자라겠는걸?”
선택은 끝났다.
메이린이 제일 먼저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나 심장으로 파고드는 음습한 마기, 계약이 이루어졌다.
“자자, 줄을 서시오!”
마뇌, 이블브레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공적인 채권 회수, 인간 따위의 질 낮은 영혼이 아니라 엘프들의 영혼이다. 숫자도 어마어마하지. 무려 6백 개.
주인은 매우 만족할 것이다. 당연히 보상도 따를 터.
‘중급 마족으로 올라서나?’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 이블브레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중급이든 뭐든 무슨 소용인가? 그래 봐야 노예인데.
서명을 마친 메이린이 그에게 물었다.
“원래 인간이라 했지? 너도 계약을 통해 이곳에 왔나?”
“계약은 무슨, 그냥 속아서 끌려온 거다.”
“누구에게 속아 넘어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홀홀홀, 욕망이라는 게 그런 거야.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지. 하아, 후회는 인간의 몫이라더니. …등선(登仙)했다고 생각했는데 마계였어.”
“등선?”
“그런 게 있다. 나 혼자 오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당신 말고 한 사람 더 있다고?”
“…한 사람뿐일까? 사실 숫자가 꽤 된다.”
왠지 씁쓸한 이블브레인의 표정이었다.
* * *
지구도, 에론 대륙도, 망한 차원 글리제도, 마족이 사는 마계도 아닌 세상.
사람들은 이곳을 ‘중원’이라 부르며 ‘강호’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강호엔 십만대산(十萬大山)이라는 곳이 있다.
강호인들은 이곳에 세워진 하나의 종교 단체에 마교(魔敎)라는 이름을 붙였다.
물론 마교인들은 스스로를 신교(神敎)라 칭하고 있지만.
등선한 스승, 전대 마뇌의 뒤를 이어 현 마뇌의 직책을 물려받은 감여태가 신교 교주 천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교주님,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검마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인가?”
“일단 사라진 건 확실합니다. 검마의 거처에 가 보니 입고 있던 옷과 독문병기인 혈천마검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살짝 말끝을 흐리는 감여태.
“계속 말하라.”
“드, 등선한 것 같습니다.”
“큭큭!”
가소로운 듯 천마는 코웃음 쳤다.
“등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구나. 검마 새끼가 마선(魔仙)이 되었다고? 차라리 참새가 봉황이 되었다면 믿겠다.”
“하오나 모든 정황이…….”
“여태야, 너 아직도 네 스승이 등선했다고 믿고 있구나?”
감여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엄하신 교주전이다.
그가 하늘이 네모라면 네모라고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여태는 믿었다.
자신의 스승, 전대 마뇌는 등선한 것이 틀림없다고.
“쯧쯧, 마교에 적을 두고 있는 놈들이 정파 호랑말코들 흉내나 내고… 등선?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냐? 병신 같은 놈!”
“정파 쪽에서도 등선한 이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지라.”
“너 마뇌 맞냐? 왜 이렇게 멍청해?”
“깨달음을 내려 주소서.”
“고수들이 사라진 시점을 생각해 보아라. 갑자기 중원에 기이한 마물들이 나타나면서부터였지.”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어 나가는 천마.
“사라진 새끼들의 공통점도 그렇다. 마물들이 뒈지면서 뱉은 반짝이는 돌덩이, 그걸 갈아서 영약이랍시고 만들어 처먹었지.”
“하오나 그 반짝이는 결정체를 복용하면 공력이 상승하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수련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서 정체도 모르는 돌멩이 처먹고 내공을 키우면 현경의 경지에라도 오른다더냐? 사라진 놈들이 다 그랬다. …혹시 너도 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
“아서라,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천마는 신랄하게 감여태를 몰아붙였다.
“강해지는 것엔 왕도가 없다. 오직 혹독한 수련뿐. 날 봐라! 반짝 돌멩이 영약 처먹은 새끼들이 떼로 덤벼도 나 하나 이기지 못했다.”
그것도 맞는 말,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공이 10갑자에 올랐다며 천마에게 호기롭게 도전한 검마도 죽지 않을 만큼 맞고 손바닥이 닳도록 빌어야만 했다.
“등선, 마선이라고? 난 천마다. 설사 내가 등선을 한다 해도 신선이 아니라 선계(仙界)의 천마다! 지옥에서도 천마다. 천지의 기운이 모여 있다던 우주(宇宙)에서도 본좌는 천마다. 우주천마!”
광오한 천마, 하지만 감여태도 인정했다. 그는 그럴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니 허튼 생각 집어치우고 가서 수련이나 열심히 해라. 네 스승, 전대 마뇌처럼 까불다가 휙 사라지지 말고.”
“…명심하겠나이다.”
한바탕 험한 말을 쏟아 낸 후 천마는 생각에 잠겼다.
전대 마뇌도 사라졌고 검마마저 사라졌다.
모두 자신의 부하였고, 신교의 교인이었으며 절대 경지의 고수였다. 출혈이 크다.
갑자기 나타난 마물, 그 마물의 몸속에서 나온 반짝이는 기의 결정체.
누가 그걸로 영약을 만들어 뿌렸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하지만 지금도 무인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주워 처먹고 있었다.
주화입마라는 부작용도 없으니까 내공에 눈먼 무인들이 그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쉽겠나?
“넌 일단 가서 그 돌멩이를 모아 오거라.”
“서, 설마 교주님도?”
“멍청한 놈, 대책을 세워야지! 이대로 교인들이 사라지는 걸 눈뜨고 지켜만 볼 것이냐?”
“아, 알겠사옵니다.”
천마는 결심했다. 자신이 나서기로 말이다.
일단 연구해 보고, 안 되면 직접 먹어 볼 참, 등선인지 뭔지 확실하게 알아보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 * *
운호는 오랜만에 지구로 왔다.
대영 그룹 정휘선 회장을 만나는 자리.
“자네 회계사가 곡소리를 내던데…….”
“왜요?”
“세금 때문에 죽겠다는군. 돈을 벌었으면 써야지. 차곡차곡 모아만 두니까 세금을 줄일 방법이 없지.”
“아하.”
“차도 몇 대 더 사고, 부자들처럼 요트나 개인 비행기도 사고, 아무튼 돈 좀 쓰게.”
그렇지 않아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차원 기여도 점수도 남아도니까 관세 걱정 안 해도 되고.’
그래서 운호는 백화점으로 쇼핑을 갔다.
쪼르르 달려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대영 백화점 사장.
“어,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휴일인데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해요.”
“천만에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현재 비치된 물건을 다 사신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신지.”
“네, 이 한 층만 빼고 백화점 텅텅 비워 버릴 겁니다. 점원들도 다 철수시켰죠?”
“네, 저 하나뿐입니다.”
“사장님도 이만 집에 가서 쉬세요.”
백화점 사장의 입이 딱 벌어졌다.
거래 금액만 천억에 육박한다.
사업에 뛰어든 후로 별별 고객들을 다 만나 봤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
“물건들을 어떻게 다 실어 가시려고?”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하, 네네, 그, 그러시겠죠.”
하기야 워낙에 유명한 사람인데.
그래서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퇴근했다.
이제 홀로 남은 운호.
지하의 푸드 코너부터.
‘모조리 쓸어 담자.’
드래곤의 아공간, 너무 널찍해서 채워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지구의 각국에서 강탈한 무기에다 글리제 차원에서 받은 수십 대의 제트 드론, 태블릿, 위성 드론, 각종 장비, 없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분의 1도 다 채우지 못한 공간.
1층엔 화장품과 잡화, 명품관.
2층에서 5층까지는 주로 정장, 캐주얼, 아웃도어 등의 의류.
7층 스포츠와 취미 용품.
8층 가구와 생활 용품.
6층 가전제품은 제외, 생각보다 관세가 비싼 편이라…….
진열된 모든 제품, 창고에 보관된 상품들까지 진공청소기로 흡입하듯 아공간에 넣었다.
‘하루 종일 걸리겠네.’
각각의 매장마다 들러 집어넣는 것도 일이고, 그것들을 아공간에서 분류하는 것도 일이다.
그리하여 운호의 아공간엔 백화점 하나가 거의 전부 들어갔다.
‘관세가 얼마일까?’
1억? 2억?
상관없다.
또 벌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