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에론 대륙인들에게 엄청난 환영을 받고 입성한 지구 사절단의 일정은 매우 빡빡하게 돌아갔다.
지구인들에게 앞으로 에론 대륙과 진행될 인적 물적 교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게 해 주는 기회, 기간도 정해져 있고 그러니 관광조차 할 여유도 없었다.
운호로서도 대량의 차원 기여도 점수를 투입하고 인맥과 자본을 총동원한 사업이었다. 관광은 무슨! 쉴 새 없이 굴려야지.
사절단들도 쉴 생각 따윈 없다. 잠잘 시간도 아깝다.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답게, 사절단에 포함되어 에론으로 넘어온 이름난 가죽 제품 디자이너는 리들쓰론 상업지구에서 완벽하게 무두질되어 팔리는 고품질의 가죽들을 보고 경악했다.
‘이런 가죽들이…….’
손으로 쓸어 보니 솜털처럼 부드럽지만 그 강도는 칼로 후벼 파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을 정도, 하품 오크 가죽이 그렇다.
최고 등급이라는 트롤 가죽과 오거 가죽들은? 그걸로 가방이나 지갑 같은 가죽 제품들을 생산하면 대충 만들어도 명품 반열에 오를 터.
산업 관련 전문가들은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광석에 주목했다.
이미 마나 강철이나 마나 골드는 지구에서도 소량 생산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긴 죄다 마나가 깃든 금속이 아닌가!
드워프들도 지구 금속에 큰 관심을 보였다. 왜냐하면 지구의 광석들은 마나가 깃들지 않은 금속들, 서로 다른 특성이기에 충분한 거래 가치가 있다.
‘물물 교환만 이루어져도…….’
바이오 의약 산업 관계자들은 아예 연금술 지구에서 나오지 않았다. 신약의 바탕이 되는 미지의 물질들이 널리고 널린 곳이다.
그동안 인류가 정복하지 못했던 질병들, 암, 각종 유전 질환, 치매, 탈모 등등 그 해답이 바로 에론 대륙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하게 있다.
‘여길 오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했지?’
언론인들은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에론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양한 모습들. 사람 사는 곳이 다를 바 없다지만 이곳에 사람만 사나?
드워프, 엘프, 드래곤, 그리고 다양한 동식물, 오크나 고블린 등의 마수들, 겉모습만 훑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
과학자들은?
당연히 마탑으로 갔지. 고도로 발달된 마법, 고도로 발달된 과학, 그 둘의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과학자들과 마법사들의 열띤 토론들은 그들이 가졌던 기존 지식과 이론들을 더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글리제 차원의 과학자들이 동석했다면 시너지는 폭발했겠지만 아직 그곳은 교류 대상이 아니다.
모두가 만족했다.
당장 성과를 만들어 냈다기보단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더욱 풍성하다.
그래서 점점 지구 귀환 일자가 코앞에 다가오자 사절단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체류 연장 요청이 무수하게 들어왔지만 운호는 원칙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어느덧 지구로 돌아갈 때.
“정말이지 일주일만 더 있었어도.”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겁니다.”
“지금 가면 언제 또 올 수 있습니까?”
“교류 기반이 빠르게 만들어지면?”
“상품 교류는요? 견본만 가져갈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하고 싶은데…….”
“그것도 마찬가지죠. 교류 기반 마련이 선행되어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견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차원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했으니 본격적인 교류를 위해 각종 법안과 제도 마련이 시급한 상황, 그러라고 데려온 사절단이다.
“그럼 이 ID 워치는요? 반납해야 합니까?”
에론 대륙들의 문물 중 무엇보다 지구인들의 관심을 끈 상품이 있었다.
지구의 무선 통신과 비교도 안 되는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기기, 홀로그램 화상 통화, 동영상 촬영, 심지어 전자 결제까지 도입한 오파츠.
“네! 꼭 반납하셔야죠.”
운호의 말에 아깝다는 눈치, 그러나 궁금증은 여전했다.
“대체 어떤 원리로 작동하죠?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향후 지구에 도입할 계획은요?”
“하나만 가져가면 안 될까요? 대가는 달라는 대로…….”
운호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건 마법으로 작동하는 물건이 맞습니다. 그리고 지구에 도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에론에 체류 시 대여할 생각은 있습니다만.”
“하아!”
“후우…….”
“쩝.”
모두가 실망한 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리제 차원의 존재는 알려져선 안 된다. 에론 대륙 사람들도 극히 일부만이 글리제의 존재를 알고 있다.
운호가 신살자라고 불리는 이유가 어디 자신의 능력 때문인가? 9할이 글리제 차원의 과학 기술이지.
자칫하면 글리제의 운명이 지구와 에론 대륙에서 재현될지도 모르는 일, 아직 두 차원은 글리제 차원의 문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직 보여 드릴 것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만…….”
“오!”
“뭡니까?”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입장한 던전에서 운호는 게이트를 열었다.
지이잉.
“어? 보여 줄 것이 하나 더 남았다고 하셨으면서 왜 게이트를?”
“바로 지구로 가요?”
“지구는 아닙니다.”
“네? …혹시 그럼 다른 차원?”
“이건 차원 이동용 게이트가 아니고 던전 이동용 게이트입니다.”
“…던전 이동?”
뭐지?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운호는 대답했다.
“에론 대륙의 특수 던전을 보여 드리려고요.”
“네?”
“에이.”
사절단들은 살짝 실망했다.
특수 던전이야 지구에도 널리고 널리지 않았나? 이름만 특수지 이젠 특별할 것도 없는 곳이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며 운호를 따르는 사절단들.
“이쪽으로 입장해 주시죠.”
운호가 먼저 들어가 사람들을 기다렸다.
2천여 명이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렸다. 운호의 언질을 받고 골드리안 용병대들이 미리 던전 안의 언데드들을 깨끗하게 정리한 터라 위험하진 않았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들 족족 눈앞에 펼쳐진 특수 던전 풍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헉!”
“…지구가 아니라며?”
“세, 세상에!”
낯익은 도시의 모습.
현대식 건물과 고풍스런 건물이 공존하고 있는 곳, 유럽의 오래된 도시, 그리고 그 도시의 정체성을 명백하게 알려 주는 거대한 랜드마크 건축물. 사람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에펠탑.”
“파리?”
정말 던전 안이라고?
“…여, 여긴 지구 같은데?”
“아닙니다. 에론의 던전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지구의 그림자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네요. 지구의 모습이 투영된 던전이라 하면 이해가 더 편하겠고.”
정말 생각도 못했다.
지구의 도시가 에론의 특수 던전이라니.
“여러분들이 지구에서 봤던 도시형 특수 던전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아!”
사람들은 깨달았다.
지구의 도시형 특수 던전은 에론의 각 도시.
에론의 도시형 특수 던전은 지구의 각 도시.
“또 있습니다. 질서정연하게 이동해 보죠.”
“어디로?”
“다른 도시형 던전으로요. 아무래도 하나로는 부족하니까.”
사람들은 홀린 듯 운호의 뒤를 따랐다.
지구인들도 에론의 던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운호가 수행하는 차원 교류의 의미와 의도를 쉽게 이해할 것이다.
지이잉.
“뉴욕?”
지구가 아닌 건 확실하다. 이제는 사라진 뉴욕의 쌍둥이 건물이 던전 중앙에 우뚝 세워져 있었으니.
지이잉.
“여긴 로마야.”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 랜드마크로 유명한 도시.
“사실 오래전부터 지구는 에론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차원의 교류가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운호의 음성은 2천여 명의 사절단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울렸다.
“이전부터 교류는 존재했습니다. 던전을 통한 간접 연결이었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에론 대륙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그건 에론 대륙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사절단들.
“그래서 지금부터는 간접 연결이 아닌 직접 교류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부작용도 많이 생겨나겠지만… 결국엔 지구와 에론이 동시에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운호의 음성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의 말에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낀 사절단 구성원들.
자신들도 정운호라는 저 특이한 헌터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가져왔었다. 그래서 악마의 하수인, 혹은 마왕일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선전 선동에 혹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계의 존재 증명으로 그 모든 의심은 불식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경험해 보니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에론 대륙인들에게 헌터 정운호가 일으킨 기적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차원의 구원자, 종족들의 희망, 위대한 존재라는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로.
오직 그만이 두 차원 간의 교류를 주재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니면 누구도 못하는 일, 심지어 마법의 종주라는 드래곤도 불가능하다.
정운호는 두 차원을 동시에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차원 이동으로 인한 수혜를 혼자 오롯이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모든 걸 공개한 것도 모자라 이익을 함께 나누려고 하고 있다.
갑자기 무거워진 공기에 밝은 음성으로 말하는 운호.
“자! 아쉬운 건 알지만 이제 돌아가셔서 계획을 세워 봅시다. 그래야 순조로운 차원 교류가 한시라도 빨리 이루어질 테니까요.”
그렇게 사절단들의 에론 일정은 막을 내렸다.
* * *
지구 사절단들이 에론에 가서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들은 지구 각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게다가 촬영 장비 휴대 허용으로 그곳의 문화와 관습들이 생생하게 영상으로 담아져 왔다.
새로운 세상, 이 넓은 우주에 어떻게 지구만이 유일할까? 그래서 언젠가는 지구가 다른 세상과 조우할 것이라고 믿어 왔다. 외부에서 UFO가 날아오거나, 아니면 지구의 과학이 고도로 발전해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행성을 찾거나…….
하지만 이런 식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이제 사실은 분명해졌다.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는 중대한 사실을 협의하는 곳은 국가 연합, 즉 UN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하여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설하기로 의견이 모였다.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운호의 국적이 반영된 결과, 기구의 이름은 가칭 차원 연합, Dmension Nations, DN이었다.
미국은 전적으로 협조했다. 로널드 대통령의 탄핵은 하원에서 즉시 발의되었다. 상원 재판에서도 탄핵 통과가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다.
헤이든 민주당 상원 의원은 정운호가 계획하는 차원 교류 계획에 무조건 참여할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후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중국은 마뇌에게 비공식적으로 접근하다 된서리를 맞았다.
“웃기는구나. 뭐? 강호가 알고 보면 중국이 아니냐고? 착각하지 마라! 문화 혁명인지 뭔지 기존 중화 문명을 모조리 때려 부순 주제에. 강호와 중국은 전혀 다르다. 그럼 에론 대륙은 옛 유럽의 중세냐?”
마뇌는 중국과의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나의 무공이 중국에 전수될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일본도 상황은 비슷했다.
운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즉시 한국으로 차원 이동해 온 야마다 지로.
“전 납치당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도 아닙니다. 부라쿠민의 낙인을 찍어 온갖 이지메와 괴롭힘으로 차별한 주제에 이제 와서? 그런 이유로 에론 대륙과의 차원 교류에 일본이 참여하는 것도 전 결코 반대합니다.”
야마다의 선언에 머쓱해진 일본, 오히려 평판은 더 나빠졌다. 동시에 납치 문제를 들먹이며 차원 교류에 한발 걸쳐 보려 했던 일본의 계획은 조기에 분쇄되었고.
운호의 생각도 비슷하다.
당분간 중국과 일본은 차원 연합 가입을 허용하지 말아야지. 그들이 진실한 사과를 하고 뉘우치면 모를까.
DN 산하에 무수한 기구들이 만들어졌다.
차원 무역 관리소, 차원 연락 사무소, 차원 대사관.
지구만 그렇나?
에론 대륙도 마찬가지다. 바리안 왕국과 로산트 제국이 힘을 합쳐 대륙 협의체를 만들고 이계와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상시적인 소통을 가능하도록 했다.
운호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바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근미래에 적용될 차원 교류는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지구와 에론을 오가며 교류 기반 마련에 몰두할 무렵.
[신어 소통이 확장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에론 대륙의 한 던전에서 신의 음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