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20
20화 물건 떼서 가야지
병원에서 납치된 김경일은 그 즉시 눈이 가려지고 두 손이 묶인 채 차에 태워졌다.
어떡하지?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쓰겠다고 말해야 할까? 실제로 그럴 마음도 있었다.
이윽고, 김경일은 차에서 내렸다. 몸을 뺄 수가 없었다. S등급 금춘복은 둘째 치고 다른 신화 헌터들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스우웅.
그리고 그의 몸이 어떤 막 같은 것을 통과했다.
‘던전?’
던전이 맞는 것 같다. 공기 자체가 다르다. 결국 죽은 목숨이네.
맥이 탁 풀렸다.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이쯤 되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안대가 벗겨졌다. 그리고 김경일은 보았다. 눈앞에 있는 커다란 노천광산을.
‘설마 여긴?’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마나 철광산 대전 신화 던전, 그러니까 옛 이름으로 오룡 던전이었다.
‘왜 하필 여기서……?’
죽일 곳이 그렇게 없나? 흔한 게 자유 던전인데.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 손이 묶인 한 여인.
“혜, 혜정아!”
“씨발, 내 이름 부르지도 마!”
최혜정의 눈엔 김경일에 대한 원망만이 가득하다.
‘쌍년! 피해자 코스프레 오지게 하네. 지가 더 설쳐 댔으면서.’
금춘복이 두 사람을 주저앉히며 숫자판이 달린 가방 하나를 그들과 함께 묶었다.
“뭐, 뭐야?”
“뭐긴 뭐야? 폭탄이지. 조금 쎈 폭탄.”
“아!”
김경일은 깨달았다. 그들은 모든 증거들을 깡그리 지우려 하고 있었다. 던전과 함께 모든 것을 날려 버리려 하고 있었다.
던전 폭파!
의외로 쉬운 일이다.
처음 인류가 던전과 마주했을 때 그들이 느낀 감정은 당연히 공포였다.
회색의 반투명한 막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적대적인 마물들과 언데드들, 무섭고 괴이한 공간이다.
안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쏟아지면 어떡하지?
이유 있는 불안.
그래서 던전들을 없애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두었다. 실제로 몇몇 던전들을 과학의 힘으로 완전하게 소멸시켰다.
던전을 소멸시킨 과학의 힘이란 다름 아닌 소형 핵배낭. 핵의 위력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 특히 결정석과 같이 터뜨리면 그 위력은 배가된다. 당연히 한국도 소멸 작업을 시도했고.
그러나 나중에 던전이 인류에게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기회가 된다는 걸 알고 작업은 전면 중단됐다.
지금은 쓸모가 없어진 핵배낭. 물론 그걸 빼돌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하지만 신화 그룹인데, 그리고 빼돌릴 핵배낭이 한국에만 있나?
“이게 말이야, 굉장히 친환경적이야. 이 안에서 뭔 짓을 해도 바깥세상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단 말이지. 안에서 핵이 터지면 바깥 던전은 그냥 펑! 하고 마술처럼 사라지는 거야.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크크, 뭐가 있어야 증거도 찾지.”
소문에 어느 나라에선 처리 불가능한 폐기물을 던전에 꽉꽉 채워 넣고 같이 터뜨려 버린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금춘복은 김경일과 최혜정 사이에 놓인 핵배낭을 보며 실실 웃어 댔다.
“그나저나 그놈도 함께 잡아 왔으면 금상첨환데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 있어야지.”
그놈이라면 정운호를 말하는가 보다.
“나, 이제 나갈 건데 어때?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 피울래?”
김경일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지금 한 대 피운들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나 최혜정은 그렇지 않았다.
“나 줘, 내가 피울게.”
“어? 너 담배 피웠어?”
“아니, 이제 곧 죽을 건데 잠깐이라도 안 해 본 거 해야지.”
“크크크. 그래그래, 한 대 줄게. 맘껏 피워.”
금춘복을 최혜정의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려주고 불까지 댕겨 줬다.
“억울해 마라, 400조짜리와 함께 사라지는 거잖아.”
그 말을 끝으로 금춘복은 밖으로 나갔다.
핵배낭의 신관 타이머는 어느새 1분.
“왜 이렇게 됐지?”
김경일의 자조 섞인 독백.
“콜록, 콜록. 이 병신아 너만 잘했어도… 아니야. 그래, 경일 씨.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뻐끔뻐끔.
꼬질꼬질한 행색의 최혜정은 두 손이 묶여 있음에도 잘도 입술을 움직여 담배를 빨았다.
“후우, 천국이 있을까나?”
“있어도 가겠냐? 니가?”
“지옥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후회는 이미 많이 했다. 정운호가 살아 돌아왔을 때, 기습에 실패해 개망신을 당했을 때, 그가 유명해져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 되었을 때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시간이 후회, 또 후회였다.
그래서 죽는 순간만은 절대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김경일이 담배 연기를 코로 뿜어내는 최혜정을 보며 물었다.
“담배 맛있어?”
“어.”
부럽다. 한 대 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리고!
쿠우웅!
강렬한 섬광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400조짜리 마나 철광산과 함께 말이다.
* * *
“헉!”
운호는 대저택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 주인님, 무슨…….”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가 깜짝 놀라서 운호의 침실문을 두드렸다.
“아닙니다. 꿈자리가 어수선해서.”
“아! 다행이에요. 일어나셨으니 목욕물 대령할게요.”
꿈속 심상수련의 현실감이 생각보다 너무 생생하다. 창으로 대가리를 찔러 대고 광폭화를 시전하고 달려드는 오크, 결국 놈의 주먹에 대가리가 으깨져 죽었다.
“후우, 이거 만만히 볼 게 아니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잠을 깨자마자 느껴지는 오러홀의 충만감. 꿈속에서 펼쳤던 트윙클 체술과 디바인 소울 스피어 창술의 여운이 지금도 남아 있으니.
목욕을 하고 식사를 끝낸 운호는 외출 준비를 마쳤다. 지구로 가지고 갈 보따리가 결정된 이상 주저할 필요 없었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근거리에서 따라붙은 두 명의 용병들. 메이슨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았나 보다.
앙트 시.
도시 중앙에 위치한 시청 주위로 광장과 주거 지구, 그 옆 구(舊)시가지 쪽으로 상업 지구, 광부 조합 지구, 연금술 조합 지구, 대장 조합 지구, 가죽 재봉 조합 지구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농업 지구는 성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먼저 상업 지구로 목적지를 정했다. 지구에 장신구나 몇 개 사 가자.
정휘선 회장에게 팔아넘긴 10억짜리 따뜻한 활력의 반지. 사실 간단한 마법이 인챈트된 것이다.
공격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숨을 구해 줄 방어용도 아니다. 활력을 돋우어 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기초적인 마법진이다.
상업 지구 장신구 상회나 잡화상에 가면 살 수 있는 것들.
걸고 있으면 눈이 좋아지는 귀걸이, 밤중에 어두운 길을 비춰 주는 모자, 숨을 오래 참게 해 주는 목걸이, 집중력이 높아지는 반지, 수전증이 사라지는 골무, 그리고 수많은 마법 스크롤.
물론 마법처리와 결정석, 진은, 백금이 포함되어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굳이 마탑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가격대는 다양하다. 같은 효능의 아이템이라도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 5골드짜리에서 비싼 건 100골드짜리도 있다.
‘활력 아이템을 사자. 제일 무난하지. 집중력 아이템도 괜찮고.’
둘 다 바쁘고 고달픈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
골드는 많다. 저축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펑펑 써도 된다.
돈이 문제나? 관세가 문제지.
윌리엄에게 이래저래 받은 돈만 10만 골드가 넘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오! 신타… 악, 아니아니 우노, 우노군 아닌가! 이거 반갑군.”
음?
‘이 새끼?’
러스 네이든이다. 샤파이어 마탑, 앙트 지부 지탑주, 7클래스 마법사.
움찔.
반사적으로 대가리 후려치고 싶지만 참는다.
근데 지탑주라는 새끼가 할 일이 없나, 상업 지구는 왜 혼자 싸돌아다녀? 마법사가 말이야.
“아! 안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용건이 있어 자넬 찾았네만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윌리엄도 모른다고 하고.”
“용건요? 무슨 일이신지.”
말해 봐라. 음흉한 마레기야!
“흠흠, 나하고 던전에 가 줄 수 있겠나? 우리 마탑에서 소유하고 있는 특수 던전인데, 수도에 있다네. 아! 걱정 말게. 마탑에서 텔레포트 타면 금방 가니 반나절이면 충분할 게야.”
“특수… 던전요?”
“그래, 필요한 아이템이 있는데, 특수 던전이라 내 부족한 능력으론 구할 수 없고. 하지만 자넨… 신탁자니.”
은근한 말로 회유하는 러스 네이든.
그래, 신탁자. 운호도 안다. 에론 대륙에서 알려진 신탁자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템이 되지 않는 물건을 아이템화 시키는 능력, 자신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런데…….”
“그런데? 뭔가? 빨리 말해 보게.”
공짜로 해 줄 수 있나!
“혹시 마법을 배우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마, 마법?”
오묘한 러스의 표정.
“그러면 마, 마탑에 제자로 등록해야 하는데…….”
“안 되나요?”
실망한 표정을 내비치자 러스가 황급하게 손사래를 친다.
“아니, 안 될 건 없지. 자네는 신분이 특별하니. 그리고 스승님께 자네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원하는 거 있으면 무조건 들어주라 하더군.”
“그럼?”
“당연히 되지. 마검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 학파가 클래스 학파라, 오러와 병행해도 문제 될 건 없지. 다만…….”
“다만요?”
“마검사라면 3클래스가 한계야. 더 이상의 성취는 힘드네.”
“그건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든 마탑으로 찾아와 주게.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상관없다. 빌어먹을 마레기놈들이지만 마법의 효용성은 뛰어나다. 배우면 반드시 쓸데가 있을 터.
“그럼 우노군. 더, 던전은 언제……?”
“오늘은 제가 볼일이 있으니 내일 오전쯤?”
“딱 좋아! 시간 비워 두겠네.”
지금은 친해져 주겠다. 아직 때가 아니니까. 빼먹을 거 빼먹고.
오히려 친분을 쌓아 둬야 한다. 마치 세뇌가 걸린 것처럼 말이다.
마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자신에게 걸려 있는 증폭 세뇌 마법이 확실하다 믿고 있으니까 순순히 승낙하는 거겠지.
러스 네이든과 헤어지고 난 뒤 상업 지구를 벗어나 광부 조합 지구에 들어섰다. 연금술 조합 지구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구다.
광부 조합 지구에 들어서자마자 후끈! 열기가 솟아오른다.
광부들은 광석만 캐는 것이 아니다. 제련도 한다. 주괴를 만들어 대장간에 납품하는 것도 그들의 주요 업무, 공방의 용광로들이 뜨거운 화기를 내뿜으며 광석들을 녹이고 있었다.
운호는 광부 용품 잡화점에서 발길을 멈췄다.
“가만 있자, 여긴 뭘 파나?”
돈이 많으니 쇼핑 욕구가 마구마구 샘솟는다.
주로 광부 용품, 곡괭이와 안전모, 불을 밝히는 마법등, 신발, 장갑 등등. 그런데 마법 스크롤도 있네?
“이건 뭐하는 스크롤인가요?”
“네, 나으리, 그건…….”
광부용품 상인이 운호의 눈치를 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용병 두 명을 호위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어찌 평범한 인물일까?
“광맥 탐색 스크롤입죠.”
“탐색 스크롤?”
“흐, 기호가 새겨진 양피지 면을 살살 문지르면 광맥이 묻혀 있을 거라 예상되는 지형이 스크롤에 약도로 떠오릅니다요. 물론 시간 제약과 거리 제한이 있습죠. 인간은 드워프가 아니라서, 헤헤.”
“호오.”
괜찮은 물건이다. 효용성도 많다.
그러나 호위 용병은 생각이 다른가 보다. 슬쩍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이는 호위용병.
“우노 님, 저 스크롤, 생각보다 탐지 반경이 작습니다. 그래서 좁은 반경에서 사용해야 효과가 좋고요. 그리고 바위에 광석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무조건 떠오르기 때문에 난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채굴 수익성이 있는 광맥을 구별하기 힘들죠.”
“아! 그런가요?”
“광산 안에서 새로운 광맥을 찾을 때나 쓰기 좋지만 아무것도 없는 넓은 지역에선…….”
그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지구의 던전에선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용병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운호의 시선은 스크롤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가격이 다르네?”
“등급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요. 하급은 철광석만 탐지 가능하고, 중급은 구리와 주석, 상급은 금과 은, 최상급은 진은과 백금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헤헤헤.”
“하급 20장, 중급 10장, 상급 5장, 최상급은… 1장만 줘보세요.”
“…어허? 네? 사, 상급 5장에 최, 최상급도 말입니까?”
상인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최상급 한 장에 50골드다. 한국 돈 5백만 원!
“아이고, 귀인이 오셨네.”
펄쩍 뛰며 좋아하는 광부 용품 상인. 서비스로 하급 스크롤 두 개를 슬쩍 찔러 준다.
만족스런 쇼핑이다.
대장 조합 지구 볼일은 마쳤고, 연금술 조합 지구로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