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나는 보따리상
목적은 완수했지만 운호는 바로 지구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 게이트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았고, 지구에서 열릴 예정인 재판 일정도 많이 남았다.
‘보따리도 싸야지.’
그런데 뭐로 가져갈까? 이게 제일 큰 고민이다. 그래서 에론 대륙에서 며칠 더 머무르는 중.
골드리안 상단주 윌리엄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상단 직원들과 장인들, 상인의 추진력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저돌적이다.
지구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사건들의 배후엔 언제나 상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세상을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선한 의도로 그러한 일을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실. 그러나 이익을 좇는 상인들의 욕망이 문명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상인들이 기득권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
아직 에론 대륙은 귀족과 마법사들의 세상이다. 발전을 위해선 상인들이 더 활발하게 움직여 줘야 한다.
운호는 지금은 자신의 소유가 된, 상단주가 직접 마련해 준 호화로운 저택에서 에고 가이드 흡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금으로 받은 저택. 꽤 많은 양의 골드도 만년필 판매에 따른 수익금으로 받았다.
‘이러다가 재벌 되겠네.’
흡수를 기다리는 도중 두 사람이 운호를 찾아왔다.
상단 창고 관리인 카렌과 용병 대장 메이슨.
[에고 가이드 흡수 진행률 58%, 59%, 60%…….]“경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노 님만을 위한 경비조와 호위조, 상주 인원이 용병대에서 편성, 배치될 예정입니다. 바라는 것이 있으시면 지금 말씀을.”
용병 대장 메이슨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견습 용병 때와는 180도 변화한 대우다.
“아! 네…….”
거물이 되어 버린 운호, 상단주와 동업 관계이고 마탑에서 에고 가이드를 이식받은 인물.
특히 마법사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운호의 신분은 귀족과 비견될 만했다.
메이슨의 경우 자신과 동급으로 대하라는 윌리엄의 언질을 받은 터라 더더욱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호의 입장에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대장님, 대장님 하면서 따라다녔는데 하루아침에 역전되니 적응이 어려운 건 사실.
“말씀 낮추시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부하였는데…….”
“절대 안 됩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메이슨은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저자세. 창고 관리인인 카렌도 비슷했다.
“우노 님, 전 저택 일꾼들 배정 문제로 찾아왔어요.”
“아이고! 누님, 누님까지 이러시면…….”
정말 부담된다. 고착화된 신분 제도에서 자신보다 등급이 높은 사람에게 고개를 넙죽 숙이는 것은 이들에게 일상화된 일이지만 지구인 운호로선 생경한 일.
“어머? 호호호, 우노 님,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하아!”
[에고 가이드 흡수 진행률 71%, 72%, 73%…….]사적으로 만나면 괜찮다는 말이지?
“요리사와 정원사는 섭외가 끝났고 시중들 메이드는 다섯 명 선별 끝냈어요. 일꾼들의 모든 임금은 상단에서 지불하게 될 겁니다.”
메이드라.
“메이드복…….”
“네?”
“음, 아, 아닙니다. 흠, 흠.”
[에고 가이드 흡수 진행률 85%, 86%, 87%…….]흡수가 다 되어 간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데…….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잘 알아서 처리해 주시라 믿습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운호는 품에서 골드가 넉넉히 든 돈 자루를 꺼냈다.
골드리안 용병대, 그가 잠시나마 몸담았던 곳. 사람들도 좋았다.
기억을 잃은 불쌍한 놈이라고 이것저것 챙겨 주던 사람들. 스스럼없이 다가와 준 순박한 사람들이다.
“메이슨 대장님, 이거…….”
“네? 이게?”
“용병대원들 이끌고 회식이나 하시죠. 얼마 안 넣었습니다.”
운호는 메이슨에게 3백 골드를 건넸다. 한국 돈으로 3천만 원?
메이슨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입꼬리는 귀에 걸렸다.
“이, 이 많은 돈을…….”
“전체 회식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죠.”
상행조, 경비조, 호위조, 던전조 등등 약 100명의 골드리안 용병대. 회식하려면 돈 많이 든다.
사실 100골드만 해도 배가 터지겠지만 나머지 돈은 메이슨을 위한 기름칠이다.
상단 용병 대장이니 나중에 도움받을 일이 많을 터.
“감사합니다. 충심을 다해 봉사하겠습니다.”
메이슨은 거절하지 않았다. 윗사람이 하사하는 돈이다. 거절하는 것은 아랫사람으로서 건방진 행동.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하게 인사 하는 걸로 대신했다.
기대감 가득 찬 카렌, 그녀에게도 20골드 정도 하사.
“누님, 맛있는 거 사 드세요.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해요.”
“어머! 통이 크시네요, 우리 우노 님.”
생긋 웃는 카렌, 그리고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원래 저택 메이드들은 무릎 위로 훨씬 올라간 짧은 치마가 정복이랍니다.”
“오!”
거의 다 끝나간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도요.”
“안녕히 가세요.”
다시 혼자가 된 운호.
[에고 가이드 흡수 진행률 98%, 99%, 100%.]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신어 체계 업그레이드를 시작합니다.]됐구나!
그런데 업그레이드까지? 이건 얼마나 또 기다려야 할까?
순간!
[업그레이드 도중 사용자의 신체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었습니다.]“엉! 무슨…….”
오류라니! 뭐가 잘못되었나?
갑자기?
[에고 가이드에서 사용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발견했습니다.]부정적인 요소란 말이지. 에고 가이드에서? 왜?
확장 모드, 설명이 시작되었다.
[에고 가이드 각 저장 슬롯의 소실되고 변이된 오러 이론과 창술, 체술, 오리지널 구결을 복원합니다.] [오러 심법과 창술, 체술이 20단계로 세분화됩니다.]“아!”
불완전한 구결이구나.
[복원이 끝나면 홀리 마인드 오러 심법과 디바인 소울 스피어 창술, 트윙클 체술의 대성이 가능해집니다.]음? 복원되지 않았다면 대성이 불가능했다는 말인가?
아무튼 다행이다. 어쩌고저쩌고 해도 복원이 끝나면 대성이 가능하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야 대만족이지.
러스 네이든이라는 마법사가 자랑하던 에고 가이드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하긴, 희한한 기계 장치로 내뱉듯이 툭, 하고 만들어 낸 원판 따위가 완전한 물건일 리 없지.
“트리플 슬롯 에고 가이드라고 한껏 으스대더만 영 불량품이었네.”
하지만 그 정도는 다음 들려온 메시지에 비하면 약과였다.
[리미티드 오러 마법을 삭제합니다.]“리미티드… 오러, 제한된 오라?”
[오러 능력을 일정 능력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금제를 걸어 놓은 마법입니다.]금제?
“어쭈, 이 새끼가…….”
러스 네이든, 음흉한 놈!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런데도 에고 가이드를 받고 좋아했던 과거가 부끄럽다. 그래도 삭제되었으니 뭐.
[증폭 세뇌 마법을 삭제합니다.]“……!”
잘못 들었나?
[에고 가이드로 진척도를 올릴 때마다 에고 가이드 제작자에게 종속되는 마법입니다.]“이런, 개새끼!!”
운호의 두 눈에서 시뻘건 불길이 튀어 올랐다.
“세뇌? 이 미친 마법사 새끼가 멀쩡한 사람을 세뇌시키려 들어?”
분통이 터진다. 분노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뇌가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어쩔 뻔했나? 마법사의 노예가 된다는 거다.
“날 노예로 만들려고 했어?”
야비하고 더러운 새끼, 그런 줄도 모르고 선심 쓰듯 던져 준 에고 가이드가 고마웠다.
“쌍놈의 새끼!”
운호는 네다섯 번, 심호흡을 크게 했다.
“후우, 후우.”
침착하자.
무슨 일이든 흥분은 금물이다. 참아야 한다.
에론 대륙에서 마법사들의 권력은 황족보다 더 위에 있다. 열 받지만 자신은 아직 약하다. 일단은 앞에서 알랑방귀라도 뀌어 준다. 당분간은!
‘에고 가이드가 원래는 마탑 수호기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랬지?’
그럴 것이다. 힘을 가진 이를 옆에 두려면 배신하지 않게 철저하게 통제해야 하니.
이런 식으로 기사들을 통제해 왔구나.
‘씨발놈, 조금만 기다려라.’
이윽고.
[모든 부정적인 요소 제거 완료!] [신어 체계 업그레이드 완료!]부정적 요소 제거는 알겠는데, 업그레이드는?
어디 한번 보자.
[홀리 마인드로 축적되는 오러의 양이 증가합니다. 또한 육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에서 서서히 오러홀의 크기를 향상시킵니다.]오러 증가, 그릇 크기까지 키워 준다고?
마음에 든다.
[디바인 소울 스피어와 트윙클 체술의 심상 수련을 적용합니다. 앞으로 꿈속에서 현실적인 실전 수련을 경험하게 됩니다.]꿈속 심상 수련, 잠도 편하게 자지 말란 말이네. 그래도 불만 없다. 강해진다는데 뭔들 못하랴!
[신어 체계의 업그레이드로 인해 사용자의 신체가 리플래시되었습니다. 앞으로 복용하는 모든 비약과 포션의 효과가 300% 이상 극대화됩니다.] [신어 소통이 기본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어허?”
이건 정말 좋다. 무지무지 좋다.
약빨이 세 배나 더 잘 듣는다는 의미니까.
‘그러고 보니 오러 크기를 늘려 주는 비약도 있었지? 이참에 연금술사 찾아가 봐야겠어.’
골드리안 상단 소속의 연금술사들, 적어도 앙트 시에선 최고의 장인들이다.
‘잠깐! 이번에 지구로 가져갈 보따리도…….’
약이다. 약초들로 만드는 비약 레시피.
지구 던전에도 약초가 나온다. 실제로 던전 약초의 성분들을 이용해 신약 사업이 유행 중이고.
만약 지구에 없는 레시피로 신약을 제조하면?
‘괜찮은데?’
제대로 만들어 효과만 있다면 마나 철광산 사업보다 훨씬 더 전망이 있다.
‘대영 그룹도 신약 사업 부문이 있잖아. 정 회장과 말도 통하고, 지훈이와의 관계도 있고.’
졸지에 지구로 가져갈 보따리가 결정되어 버렸다.
운호는 자신의 본분을 잘 알고 있었다.
에론 대륙과 지구를 오가는 보따리상.
그게 바로 운호의 정체성이다.
* * *
운호가 에론 대륙에서 며칠간 머무는 사이 한국은 조용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말이다.
대영 병원 VIP실.
김경일은 대영 길드 소속 헌터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속만 태우고 있었다. 오늘도 경찰이 다녀갔다. 그냥 앉아만 있다가 갔다.
사실 김경일은 심문이 뭐든 진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묵비권? 개나 주라지. 물어보기만 하면 다 대답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미 물밑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검찰 내부와 경찰 내부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팽팽한 신경전, 대영 그룹과 신화 그룹의 파워 게임.
오늘 온 경찰은 아마도 신화 그룹에 줄을 대고 있는 놈일 것이다. 그러니 물어보지도 않았지.
어느 쪽에 붙을지는 너무도 확실했다.
신화 그룹은 자신이 필요치 않다. 물론 회유를 통해 입막음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그냥 죽여 버리는 게 더 효율적이지. 돈도 들지 않고, 후환 없이 깔끔하고.
반면 대영 그룹은 자신이 필요하다. 재판까지 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증언은 신화 그룹에 치명타를 가할 궁극기다. 대영에 붙으면 산다. 최소한 죽지는 않는다.
대영에 몸을 의탁한다. 잘될 것이다.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것, 김경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따르르르릉!
갑자기 귀가 따갑게 병원 안을 울리는 화재 경보. VIP 병실 문틈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
“불이야!”
“서두르지 말고, 어디서 난 건지 우선 알아봐!”
“소화기는?”
복도 바깥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로 매우 소란스럽다.
‘불?’
웃기는 소리! 불이 날 리 있나? 김경일은 직감했다. 그래서 자신의 병실을 지키는 헌터에게 말했다.
“저, 이거 우연히 난 불 아닙니다. 아마도…….”
“시끄러! 알고 있어. 우리가 병신인 줄 알아?”
정신없이 무전을 통해 작전 지시를 받는 대영 헌터들.
“1조! 병원 정문 지키는 인원은?”
“본부에 무전 때려! 비상 상황이야!”
그러나.
퍽! 퍽! 퍽!
털썩, 털썩, 털썩.
헌터들이 누군가의 갑작스런 공격에 의해 눈 깜짝할 새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
김경일은 척추뼈가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안녕, 경일아?”
“어어? 어아아아…….”
신화 길드의 금춘복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S등급 헌터가 길드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럼 게임 끝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