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45
45화 군던 (1)
만년필 공방과 본도자기 가마, 종이 공장, 출판 인쇄 공방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던 윌리엄 상단주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화들짝 놀라는 카렌.
“어머! 사, 상단주님! 코에 피가…….”
“응? 크헉, 이, 이거 참!”
“좀 쉬었다 하세요. 나도 좀 쉬고…….”
“쉬긴 어떻게 쉬어? 물건 실어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상인들이 안 보이나?”
“제 얼굴을 보세요. 할머니 다됐다고요!”
“그거야 나이 탓…….”
“뭐요?”
왕궁에서 독점 판매권을 얻은 만년필과 본도자기는 이미 왕국 전체에 팔려 나갔고, 거기에 후속타 소설책! 이건 뭐, 찍으면 잉크 마르기도 전에 팔려 나간다.
공방에서 만든 종이도 무조건 인쇄소로 넘겨진다. 따로 파는 건 상상도 못한다.
공방을 24시간 풀가동 해도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지경.
막장 소설 ‘백작 부인의 유혹’과 판타지 로맨스 ‘사랑받는 악녀로 사는 법’ 같은 여성향 소설과는 달리 ‘마법사 람보’는 특히 남성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육체가 따라가지 못할 지경, 활력 반지나 피로 회복 포션도 한계가 있다.
“어흐흐허허.”
“상단주님, 지금 울어요? 아니면 웃어요?”
“나도 모르겠군. 카렌, 자넨 어떻게 보여?”
“모르겠어요. …둘 다?”
만년필과 본도자기는 이미 짝퉁이 출현했다. 하지만 품질 면에서 명백하게 차이가 나고, 가짜가 오히려 홍보에 도움이 돼 주문이 무섭게 쏟아졌다.
책을 읽어 주는 신종 직업이 출현한 것도 책 판매량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사람들의 교육열만 자극했다. 글을 배우자! 글을 배워 나도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어 가며 글을 읽고 싶다.
바리안 왕국의 골드는 앙트 시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운호의 재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고.
벌어들이는 돈을 생각하자니 웃고 싶고,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생각하니 울고 싶다.
“호, 혹시 우노 님 오셨나?”
“아뇨, 아직…….”
“다행이군.”
“네, 다행이에요. 다른 아이템을 들고 오시기라도 하는 날엔…….”
“어흐흐허허.”
사실 운호는 이미 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카렌과 윌리엄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플랜 B까지 세우고 에론에 도착하자마자 쏟아지는 차원 기여 메시지의 향연, 소설책이 앙트 시를 벗어나 바리안 왕국 전역으로 퍼졌다는 말.
3쇄 달성! 5쇄 달성! 10쇄 달성!
심지어 만년필과 도자기는 이미 타국으로 수출을 시작했단다.
통조림을 가지고 오느라 사용한 관세는 초코파이, 현찰까지 합해 47,202pt.
기여도 점수가 천도 남지 않았는데 어느새 복구되어 4만 점이 넘어간다. 지금도 간간이 들리는 기여도 획득 메시지 점수가 조금씩 쌓이고 있었고.
아무튼 가지고 온 통조림으로 새 사업을 시작할까 제안하려 했는데…….
‘많이 힘든 모양이네.’
윌리엄과 카렌의 꼴이 말이 아니다. 이쯤 되니 살짝 미안하다.
이번 물건은 골드리안에 넘기지 말고 다른 유통 경로를 알아봐야겠다. 바리안 왕국을 제패하겠다는 골드리안 상단의 목표도 이미 달성한 것 같고.
‘바로 수도로 가야지.’
운호는 다시 발길을 돌려 던전으로 갔다.
밀린 숙제도 하고.
바리안 왕국 수도 리안 시 외곽에 위치한 용던의 게이트를 여는 운호.
스우웅.
스팟!
눈앞으로 펼쳐지는 미로 같은 용던,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운호에게 접근하는 언데드들, 바닥에 깔린 쓰레기들.
운호는 200만 원 받고 뻥 서플라이를 달아 줬던 그 사기꾼 언데드에게 다가갔다.
“키힉! 크에엑! 캬학!”
운호를 보자마자 괴상한 소리를 내는 판매원 언데드. 아마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여어! 호구 왔는가?
그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
“자! 이번에도 200만 원이다.”
“킥!”
현찰을 받은 용산 언데드는 즉시 본체 조립을 시작했다.
허공에서 불쑥불쑥 나오는 부품들, 메인보드, CPU, 그래픽카드, 메모리… 그러다가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그 뻥서플라이!
덥석!
“동작 그만! 이 새끼가…….”
그럴 줄 알았다. 저번에 모른 척 넘어갔더니 사람을 호구로 보나! 언데드 따위가!
“…끼이잉.”
몇 번 눈을 부라리자 드디어 제대로 된 파워 서플라이를 꺼내는 용산 언데드.
조립이 끝났다.
케이스 군데군데 녹이 슬긴 했지만 용던 판매원에게 완성된 를 받은 운호.
‘용던 숙제는 끝냈고…….’
다음은 군던.
군던의 위치는 수도와 가깝긴 하지만 용던과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처음 가는 곳이라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 한다.
[트윙클의 체술 신속 질주를 발동합니다.]군던도 경비가 지키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용던을 용병들이 지키고 있었다면 군던은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피하자.’
용던을 나올 때 용병들 속였던 것처럼 움직이면 될 것.
[트윙클의 체술 그림자 숨기를 발동합니다.]스슷! 슷! 스스슷!
“헉!”
“엉?”
스우웅.
기척은 감지했지만 기사들은 우왕좌왕, 그 틈에 운호는 성공적으로 군던에 들어갔다.
“어, 어디서 바람이 부나?”
“게이트가 살짝 흔들린 것 같기도 하고.”
“…보, 보고해야 하겠지?”
* * *
특수 던전은 일반 던전과 많이 다르다. 배경은 물론 등장하는 언데드도, 아이템도, 획득 방식도, 품질도, 다 특수하다.
여기 군던도 그렇다.
‘곽 병장… 황 이병?’
밤이지만 사물을 식별하기 불가능한 건 아니다. 군부대가 확실하다.
들어가는 대문 옆으로 초소가 있었고, 군복과 위장을 한두 명의 군인 언데드, 과 이 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각 차원의 발전을 위해 서로 연결한 것이 던전, 종이가 나오는 회사 던전, 컴퓨터 본체를 얻을 수 있는 전자상가 던전,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할 터.
그런데 군대 던전이라…….
공격 목적이든 방어 목적이든 군대의 존재 이유는 전쟁이다. 신의 차원 발전 계획안에는 전쟁도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
하지만 운호는 전쟁이 싫다.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온 이유는?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었지. 운명이라고.’
신이 전한 말이니 거짓은 아니겠지.
에론의 국가들은 서로 동맹, 또는 친인척 관계로 묶여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다 엮인다. 지구의 세계 대전과 같은 양상이 벌어질 터.
그렇다면 바리안 왕국 또한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전쟁이라면 최소한의 대비는 해야지. 뭐, 반전 소설 하나 번역해서 뿌려는 뒀지만 그렇다고 일어날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니.
‘무기는 먼저 파밍해 두자. 넘겨줄지는 나중에 판단하고.’
지금 저 초병 둘이 들고 있는 총, 그것이 운호의 목표다.
‘그냥 걸어가서 뺏어 봐?’
운호가 다가가자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총을 겨누는 .
“캬악!”
역시 병장, 개념은 제대로 박혔네. 그럼 은?
“킥!”
다를 바 없다. 사수에게 교육 잘 받은 모양.
할 수 없지. 두드려 패는 수밖에! 공격 목표는 이등병보다 병장이다!
스슥!
휘리릭!
아공간에서 장창을 꺼낸 운호는 오러를 불어넣은 창두로 단번에 곽 병장의 머리통을 갈라 버렸다.
“키엑!”
동시에 의 소총에서 발사되는 총알.
타탕! 타타탕!
[아뮬렛에 인챈트된 실드 마법이 자동 발동됩니다.]후두둑! 툭툭!
“어?”
희한하다. 던전 언데드 병사들이 결정석 탄환을 쏘나?
실드가 깎여 나가는 느낌, 분명하게 느꼈다. 언데드 병사들의 총알에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
‘마력 깃든 총탄이라, 이래서 여기가 힘든 거구나!’
그럼 저 병사도 처리해야 한다. 불쌍한 이등병, 미안하다.
[디바인 소울 스피어 은하 찌르기를 발동합니다.]피피핏!
콰콰콱!
단숨에 산산조각이 난 두 명의 초병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엔 두 정이 소총이 남겨져 있었다.
‘쉽네. 괜히 쫄았어.’
총기 한정을 들어 올려 보았다.
바사삭!
“아이고.”
녹이 슬었는지 잡자마자 바스러지는 소총. 나머지 한정은?
툭!
절반으로 갈라졌다. 이 정도면 괜찮나 싶지만 안쪽을 보니 노리쇠 뭉치도 없고, 가스 활대도 없고, 지랄 맞은 가스 마개도 없고, 아무튼 주요 부품은 다 빠졌다.
이제 알겠다. 이러니 몇 놈 때려잡아도 소득이 없는 거지. 겨우 잡아서 획득한 아이템이 죄다 불량품.
들어가서 모조리 잡아 봐야 하나?
순간!
“커아! 크르큭!”
멀리서 들려오는 언데드의 외침!
연병장 쪽? 눈에 힘을 줘보니 언데드 쫄병 하나가 부리나케 뛰어가 긴 막대기 하나를 땅에다 꼽았다.
‘저건…….’
퐁!
휘이이이.
갑자기 멀리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설마…….’
점점 가까워 오면서.
콰아아아앙!!
“으억! 씨발!”
굉음과 함께 엄청난 마나의 폭발이 일어났다. 다행히 운호가 서 있던 위치에서 멀리 떨어져 망정이지 가까웠다면…….
81미리 박격포. 좀 전에 땅에 꽂은 건 겨냥대일 터, 언데드가 외친 소리는… 전방 차렷포?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휘이이, 휘이이, 휘이이, 휘이이…….
또 날아온다. 아주 많이 날아온다.
초탄이 떨어지고 수정하여 재발사하는 간격이 매우 빠르다. 실력 있는 놈들이다. 주특기 교육, 열심히 받은 것이 틀림없다.
포탄 몇 발이야 체술과 실드로 버텨 본다지만 저건 거의 융단 폭격 수준.
운호도 개구리 마크 달고 전역한 군바리다. 비상시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알고 있다.
“젠장! 디그! 디그! 디그!”
푹! 푹! 푹!
운호는 황급하게 땅을 팠다.
스펠 세이브에 디그 주문은 세 개밖에 저장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5서클로 올라선지라 한번 시전에도 꽤 깊게 파인다. 보상 안 받았으면 어쩔 뻔했나!
“실드! 실드! 실드…….”
개인 참호를 파고 들어간 다음 보호막도 둘렀다.
꽈광! 콰콰쾅!
휘이이이이이.
쾅! 쾅쾅!
파바바박!
다짜고짜 박격포를 때려? 참호에 거의 근접한 채로 떨어지는 끔찍한 고폭탄.
박격포뿐이 아니다. 콩 볶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수백 발의 불꽃들이 지나간다.
언데드들 총출동했다.
타타타타탕!
군던이 어려운 이유가 있었다.
그냥 화기가 아니다. 마나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기사나 마법사라도 제대로 맞으면 걸레가 될 정도.
참호에 납작 엎드린 운호.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간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 버릴 터.
최소한 하나는 알았다. 때려잡는 것은 위험하다. 별 이득도 없고.
시간이 지나니 점점 조용해진다. 소강상태, 그래서 머리를 빼곡 내밀어 보는 운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온하다. 폭탄이 떨어진 자국도 없다.
‘끝났구나.’
태풍이 지나간 느낌. 더 이상의 위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 쟤들 또 나왔어?’
자신이 좀 전에 죽였던 과 이 부활해서 초소를 지키고 있었다.
방금 운호의 손에 죽은 것은 잊어버렸는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리젠도 빠르고.’
정면 돌파가 위험하다는 것은 몸소 겪어 봤다. 그럼?
‘계획대로 초코파이를…….’
설마 될까? 솔직히 기대도 안 한다. 반응만 보는 거다. 반응만!
운호는 초코파이를 꺼내 에게 던졌다.
‘자! 군바리들아! 초코파이다! 반응해라!’
그러나 은 심드렁하다.
‘역시 병장이구나.’
그럼 이병은?
운호는 쪽에도 초코파이를 던졌다.
“키익?”
오! 반응이 온다.
주춤주춤 초코파이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키이이…….”
하지만.
“캬악!”
바로 경고를 날리는 .
멈칫! 은 뒷걸음질하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쉽다. 꼬드길 수 있었는데, 하나하나씩 떨어뜨리면서 정문 멀리 유인해 죽이지 않고 총만 빼앗으면 끝났는데.
, 저 새끼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도 소득은 있다.
먹을 것에 반응했다. 그런 초코파이 말고 달달한 열대 과일 통조림은?
틱! 찌익!
움찔.
의 눈은 돌았지만 움직이진 않았다.
스팸은?
기름진 스팸! 이등병 땐 이만한 게 없지.
틱! 찌익!
…쳐다보지도 않았다.
‘씨발, 곽 병장 새끼, 이것도 안 되면 넌 또 죽인다. 백 번 죽인다.’
마지막이다. 참치 캔, 운호는 바로 참치 캔을 땄다.
틱! 찌익!
바로 그때!
스팟!
스윽.
탁!
눈 깜짝할 새 운호의 앞에 나타난 물체.
“어?”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왜 여기에… 아!”
참치 캔을 따자마자 운호의 발치에 나타난 생물? 언데드? 붉은 글씨로 정확하게 머리 위에 떠오른 이름표.
수북한 털에 뚱뚱하고, 그래서 미련해 보이는…….
“냥?”
“미친!”
돼지 같은 고양이, 일명 가 참치 캔 앞에서 혀를 홀짝홀짝 내밀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