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다시 만난 미오 론티아
리들쓰론은 그야말로 태풍의 눈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러하기에 겉으로는 매우 평온했다.
아직 선포는 하지 않았지만 리들쓰론의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귀족 계급 타도! 결과적으로 신분의 철폐.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주류가 교체되는 과도기를 마주한 시민들.
리들쓰론 시청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원래 시장을 포함해 고위급 관료들은 모두 귀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그리하여 최초로 평민이 시장에 임명되었고, 거의 모든 관료도 귀족에서 평민으로 대체되었다.
리들쓰론 시청 토지 측량 부서를 책임지는 휴이는 혁명의 과정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귀족의 피를 타고났으니까. 그런데 웬걸? 숙청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났다.
처음엔 영문도 몰랐다.
가문에서 내쳐진 서자라 불쌍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꼭 필요한 인재라서 그런 걸까?
휴이는 후자라고 판단했다.
‘흐흐흐, 귀족들도 없는 마당에 시청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지. 날 포함해서…….’
그것이 살아남은 이유지.
그는 요즘 확실하게 고무되어 있었다.
시청의 물이 매우 더러워졌다. 귀족 관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긴급하게 평민들을 투입했기 때문에 행정 업무는 삐걱거렸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천한 평민 놈들이 뭘 알겠나? 문서 작성도 제대로 못하는 것들이.
‘하찮은 무지렁이 놈들.’
그 과정에서 휴이는 상급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멍청한 평민 관리들을 통솔하는 것이 휴이의 임무.
“서식이 틀렸잖아! 누가 마음대로 글씨체를 바꾸랬나?”
“하지만 정자체가 알아보기 쉬워서…….”
“비루한 놈, 흘림체를 써라! 네 주제에 품격 있는 서체를 어떻게 알까?”
“아, 알겠습니다.”
토지 측량부에서 휴이는 독재자나 마찬가지.
“이딴 식으로 할 거면 꺼져!”
“이 아둔한 새끼, 그러니까 네놈 머리카락도 빠지는 거다.”
“대체 뭘 배웠나? 아! 내가 실수했군.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을 텐데 말이야.”
휴이는 하급 관리들을 사정없이 몰아쳤다. 그전에 누리지 못했던 권력을 마음 내키는 대로 행사하고 있었다.
적성에 맞는 일이다.
그래도 된다. 적어도 자신은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하찮은 평민보다는.
그래서 못 보던 촌놈이 쭈뼛거리며 토지 측량 부서에 들어섰을 때도 휴이는 눈살부터 찌푸렸다. 어차피 여기 오는 민원인이라 해 봐야 평민들밖에 더 있겠나?
“나가! 지금은 안 돼!”
“…네?”
“귓구멍까지 막혔나. 아직은 업무를 시작할 여력이 없다. 그러니 다음에 와!”
“언제 다시 오면 되나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평민 주제에 민원은 무슨 민원!”
운호는 기가 막혔다.
‘이 새끼가?’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이계의 관청이지만 민원인이 왔으면 용건이라도 물어봐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폴리모프를 풀고 다시 올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자신이 왔다는 걸 알면 시장이 직접 달려올 것이 부담스러워 얼굴을 바꾸고 시청에 왔다.
‘바로 시장에게 가서 물어봐?’
고민하던 운호에게 토지 측량 부서의 말단 직원이 슬쩍 다가왔다. 지켜보다가 딱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무슨 일이신지… 제가 처리할 수 있으면 해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토지를 매입하고 싶어서요. 되도록 광장 주변으로.”
“네?”
말단 관리 프랠은 깜짝 놀랐다.
광장 주변이라면 도시의 중심, 그곳에 땅을 매입하려고 하는 사람이 평범할 리 있나? 장난치려는 것 같지도 않고, 혹시 웰루안 상단에서 나온 사람인가?
프렐은 당장 리들쓰론의 상세 지도를 가지고 와 책상 위에 펼쳤다.
“여기는 어떠십니까? 광장과 가장 가까운 지역입니다.”
“살짝 좁은데…….”
“그럼 여긴?”
“너무 멀어요.”
“여긴요?”
맘에 드는 부지가 없다.
수도에 하나뿐인 찜질방이다. 아니, 대륙에서 유일한 것이 될 터.
“여기 마음에 드네요.”
운호는 지도에서 적당한 장소를 짚었다. 위치도 좋고, 부지도 넓고.
그러나 프랠은 난감한 표정.
“어, 좋긴 하지만…….”
프랠은 지도에 나온 작은 점을 짚었다.
“이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뭔데요?”
“던전입니다. 중앙에 버티고 있는 이 자유 던전 때문에 이 공터에 건축 사업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아!”
이 좋은 장소가 아직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겠다.
“실망하진 마십시오. 던전은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음? 제거가 가능하다고요?”
“네, 마탑의 협조를 얻으면 가능합니다만 그게 좀… 비용도 많이 들고 아시다시피 마법사들이 이런 사소한 일에 나설 리 없고…….”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운호는 해결이 가능하다.
“이 땅, 전부 제가 매입하죠.”
“네? 아, 안 될 건 없지만…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대금도 완전하게 치르겠습니다.”
“아, 그, 그러시면 먼저 양식을 작성해야… 먼저 성함부터.”
“우노 드 어쓰랜드입니다.”
프랠은 귀를 의심했다.
“…네?”
누구라고? 우노, 우노라……? 우노라니!
순간 스르르 변하기 시작하는 남자의 얼굴. 폴리모프 마법인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거기에 품속이 들썩이더니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이름표 달린 고양이.
“냥?”
프랠은 잠시 사고가 정지됐다.
“호, 혹시 신탁자님?”
“네, 남들이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어허헉!! 시, 신탁자님!!”
시청 업무실엔 토지 측량 부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탁자라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당연히 업무실 전체가 폭발했다.
후다다다닥! 미친 듯이 운호 앞에 와서 소리치는 시청의 하급 관리들.
“영광입니다.”
“어, 언젠가 감사하다는 말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천상의 밀이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들 다 굶어 죽을 뻔했습니다.”
“세, 세상에! 신탁자님을 제가 직접 뵐 날이 올 줄이야!”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보려고 아우성.
반면 휴이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시, 신탁자? 저 촌뜨기가?’
등허리에서 흐르는 식은땀. 정신은 이미 머릿속을 가출했다.
‘어, 어쩌지?’
급기야 시청 건물 꼭대기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시장도 황급하게 내려왔다. 오다가 콰당 넘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엎드려 기면서 운호의 앞까지 도달했다.
“오오오! 우노 님!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시청에 직접 오시다니!”
폴리모프를 풀지 말걸 그랬나?
“일이 생겨서요.”
“자, 잘 처리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분이 잘 도와주셨어요.”
운호는 프렐을 잡아끌었다.
“오! 다행입니다.”
시장은 감격스런 표정으로 프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잘했네. 아주 잘했어. 자네 이름이?”
“프, 프렐, 프렐입니다.”
“그 이름 반드시 기억하지.”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냥 갈 수 있나? 한마디 더 하는 운호.
“그런데 한 분은 좀 그렇더라고요.”
“…네?”
“오자마자 용건도 물어보지 않고 다짜고짜 나가라고만 하고.”
“그, 그런 찢어 죽일 놈이……?”
운호는 휴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휴이에게 모아졌다. 시장의 살기 어린 눈빛, 하급 관리들은 혀를 끌끌 찼고.
휴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
부지 문제는 해결됐다. 광장 주변, 커다란 분수대가 있는 곳이니 물을 끌어오는 데도 문제가 없을 것이고.
운호는 바로 황궁 마탑을 찾았다. 찜질방 예정 부지 중앙에 떡하니 놓인 던전 제거에 관한 안건 때문에.
“문제없소. 던전 내부의 마나를 역류시키면 되는 일이니. 결정석이 대량으로 필요하지만 그거야 뭐. 그런데 그 땅에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지.”
“…음, 그냥 목욕탕?”
화들짝 놀라는 그림워커.
“모, 목욕탕을?”
“네.”
“과, 광장 주변에 말이오?”
왜 저리 놀라지?
“으흠, 그렇구먼. 이것도 다 신의 뜻이니 여자들이 필요하겠구려. 원하시면 내 포주들을 연결해 드리리다. 일급 매춘부들을 고용하게 되면 장사하는 데 문제는 없을…….”
“잠깐만요!”
무슨 개똥 같은 소리?
“포주라뇨? 매춘부가 여기서 왜…….”
“응? 목욕탕을 차린다고 하지 않았소?”
그제야 깨달았다. 오해가 있었나 보다.
애론 대륙에서 목욕탕은 일종의 환락가, 매춘 업소 같은 느낌. 뭐, 변형된 터키탕 같은 거?
“제가 만드는 목욕탕은 그런 것이 아니고요…….”
설명하려니 힘들다.
“일단 다 만들어지면 보여드리죠.”
“으흠, 알겠소이다.”
용건은 하나 더 남았다.
“혹시 바리안 왕국과 텔레포트 마법진 연결이 가능한가요?”
“바리안 왕국이라. 하아, 미안하오. 그건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소이다. 일단 너무 멀고, 포인트 연결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네…….”
어떡하지?
육로로 데리고 오려면 너무 멀다.
골드리안 상단을 불러들여 출판 사업과 라디오 방송 사업을 진행해 보려 했는데, 직접 해야 하나?
“하아, 미오 론티아라도 곁에 있어 줬으면…….”
운호의 혼잣말에 그림워커가 반응했다.
“응? 방금 무어라 하셨소?”
“아! 미오 론티아라고 사파이어 마탑의 마법삽니다. 제가 바리안 왕국에서 사업할 때 옆에서 많이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죠.”
“흐음…….”
그러자 잠시 고민하는 그림워커.
“텔레포트는 안 되지만 미오 론티아, 그녀에겐 연락이 가능할 것 같소만.”
운호는 반색했다.
“오! 연락을 해 주시면 감사하죠.”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그림워커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을 전하려고 하나? 메시지 마법? 거리가 멀면 닿지도 않을 터인데, 설마 광휘처럼 전화로 통화하는 건 아닐 테고.
잠시 후.
삐걱.
천천히 열리는 문.
누군가가 방 안에 들어왔다.
“어……?”
앙트 시 사파이어 마탑의 지탑주, 7클래스 마법사 미오 론티아였다.
그녀가 왜 저기서 나와!
* * *
그림워커의 말을 들어 보니 그녀가 이곳에 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고 했다. 아주 비밀리에.
사파이어 마탑이 제국과 연합한 걸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는데, 그래도 슬쩍 이야기만 해 줄 것이지.
그녀의 빨간 머리만큼이나 붉어진 미오 론티아의 얼굴, 운호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조신하게 말했다.
“보고 싶었… 아, 아니,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네, 잘 지냈어요. 미오 씨도 얼굴이 좋아졌네요.”
“음, 아, 고, 고마워요. 그, 근데 절 찾으시는 이유가…….”
“아!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앙트 시에서 같이 했던 작업들을 이곳에서도 해 보고 싶어서요.”
미오의 눈이 아련하게 변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최상급 아공간 가방에서 쉴 새 없이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대체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는 통신 수정구들, 그중 몇 개는 색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것들.
심지어 출판 인쇄기계까지 들고 왔다.
“이, 이게 다…….”
“미리 준비했어요.”
자랑스러운 표정의 미오 론티아.
“제가 영감을 얻어 몇 가지 준비해 봤어요.”
색깔이 다른 수정구를 들어 보이며.
“이건 메인 수정구예요. 메시지 마법과 메모리 마법을 응용했어요.”
마나를 주입하자 낯익은 음악이 울려 나온다.
“오호!”
그림워커가 탄성을 터뜨렸다.
‘클래식이네.’
다른 수정구를 작동해 보니
-나도 같이 바다에 빠져 죽을래요. 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 없는 세상에서?
‘이건 라디오 드라마.’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올 필요도 없겠다. 이미 온전하게 재현해 냈으니.
천재는 따로 있었다.
운호는 빙그레 웃었다.
“이제 목욕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가 다 갖춰졌네요.”
“어머! 모, 목욕탕을…….”
흠칫 놀라는 미오 론티아.
“그, 그게 아니라…….”
운호는 어쩔 수 없이 찜질방 계획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그러자 점점 표정이 환해지는 미오 론티아, 그림워커도 연신 감탄하며 자신도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물었다.
드디어 완성된 계획.
적당한 부지 선정에 건설을 담당하는 드워프들과 장인들, 엔터테인먼트를 책임지는 미오 론티아까지.
이제 필요한 건 시간.
지구로 가서 푹 쉬었다가 오면 리들쓰론에 최초의 찜질방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