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아이고.”
나는 이리저리 부딪쳐 뻐근해진 몸을 풀었다.
‘그래도 이건 안 바뀌어서 다행이네.’
내가 화진 길드와 협력 관계를 맺은 이유는 단순 친목 때문이 아니었다. 우선 흑백 던전은 A급이 아닌 S급 던전이며, 내가 늘 지니고 다녔던 아이템의 드롭 장소였기에 바로 그것을 얻고자 협력 관계를 맺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애초에 계약서도 쓰지 않은 관계니 수틀리면 슬쩍 빠지면 되기도 했고.
“…후.”
나는 조심스레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주위는 온통 검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건지 뜨고 있는 건지, 원.
이곳은 외우려고 해도 외워지지 않고, 벽이 어디 있는지도 감각으로는 찾을 수 없는 기묘한 장소였다.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자 턱, 둔탁한 벽이 손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
아까 전 페이크 보스를 잡을 때 힘을 아낀 이유는 다 여기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파앗. 손바닥에서 하얀 별이 하나둘 만들어졌다. 이내 힘이 쭉 빨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별들이 벽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를 뒤덮으며 바닥과 벽을 분리했다.
“으.”
이 짓밖에 안 했는데 힘이 반은 빠져나간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힘의 반을 쓴 것은 아니지만 아직 힘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아 이곳저곳으로 새어 나가다 보니 반이나 빠져나간 것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게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는 점.
‘이동해야지.’
검은 바닥과 하얀 벽. 이젠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케 됐다. 나는 별로 뒤덮여 하얗게 된 벽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있었으면 좋겠는데.’
바뀐 게 하필이면……. 이게 바뀌면 좀, 많이 곤란한데. 곧 던전을 클리어할 중요한 열쇠였기에, 그게 바뀌면 정말, 아주 많이 곤란했다.
‘눈치 있게 있었으면 좋겠네.’
일단 그 전에 나도 할 일이 있었다.
훅. 나는 아까 놓쳤던 낫을 다시 손아귀에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길이 이렇게 기니 힘이 쭉 빠져나가지.’
도대체 누가 이따위로 만든 건지. 나 같은 능력이 없거나 능력을 세밀하게 조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으면 벽에 이리저리 치이며 아무도 찾지 못한 채로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게 뻔했다.
‘그런 관계로 김서영 선배라 다행이지.’
김서영 선배의 능력은 빛을 내니 힘을 과소비하지 않더라도 쉽게 방을 밝힐 수 있을 테니까.
하염없이 길을 걷다 보니 작은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거의 다 왔네.’
나는 걸음을 빨리해 앞으로 걸었다. 귀에 미세하게 들렸던 소리가 이제는 가까이서 들려오고, 마지막 코너를 지나자.
“…어?”
내가 찾던 것이 있었다. 단지 조금, 아니, 아주 달랐으니.
“형?”
내가 찾는 것은 형. 그러니까, 던전 보스를 죽일 열쇠였다.
형이 열쇠인 이유? 간단하다. S급 던전 클리어에 필요한 건 S급 헌터. 그리고 형은 S급 헌터 중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었기에 던전을 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열쇠였다.
‘근데…….’
나는 시선을 작게 굴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던 장면이랑 너무 다른데.’
본래였다면 내가 코너를 도는 순간 형은 숨어든 스파이에게 암살을 당할 뻔해야 했다. 물론 금세 눈치채고 제압하긴 한다만.
“…지언아?”
귀에 들려오던 소리가, 정확히는 스파이를 구타하던 소리가 멈추고 소리의 원인이 나를 돌아보았다.
“어…….”
내가 아는 장면과는 거리가 먼, 아주 먼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쉽게 금이 가지 않는 던전의 벽에 금이 가 있었고, 곳곳에는 그을린 자국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본래 내가 보는 타이밍에 들켜야 했을 스파이가, 이미 형에게 들켜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형이 왜 여기……. 아니, 그 전에 왜 사람을 그렇게 패고 있어!”
“…환각제를 맞은 기억은 없는데. 치졸한 놈들. 그새 사용했나.”
“뭐?”
형이 혀를 차며 훅, 한순간에 나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잠만. 나 맞거든?”
나는 형의 검은 검을 손에 상처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쥐어 목 옆으로 두었다. 그러자 형의 몸이 흠칫 떨리더니 이윽고 형이 검을 거두며 제 손목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아. 벌써 시간이…….”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눈치네.”
“…….”
대답을 회피한 형이 손목시계의 뚜껑을 열고는 밧줄을 꺼냈다. 꺼낸 밧줄이 주르륵 바닥에 떨어졌다. 형은 금세 줄을 줍고는 손쉽게 스파이의 몸을 묶었다.
“…….”
이런 것도 소설에 나왔나 보네.
‘이러니까 다시 궁금한데.’
소설에 이런 내용이 얼마나 세세하게 나왔는지,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렀을지, 내 성격은 어땠을지.
‘자신의 패를 숨기는 것은 좋은 태도긴 한데, 미끼를 줘 놓고 도망가는 건 무슨 심보냐고.’
쭈욱. 형이 기절한 스파이의 몸을 완전히 묶고는 한 손으로 남은 밧줄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스파이를 질질 끌 기세로 다시 일어나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가자.”
“가자니? 어딜?”
“네 일행이 있는 곳.”
“형이 그걸 어떻게 아는데? 누군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김서영 씨잖아.”
“어? 그걸 어떻게 알…아. 알 수도 있겠구나.”
“…….”
진짜 끝까지 ‘소설’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도대체가, 저런 태도를 보일 거였으면 애초에 왜 말한 것인지. 일단은 전보단 거리를 두지 않는 것 같다만 그뿐이니 영 답답했다.
“잠만, 같이 가!”
형이 스파이를 묶은 밧줄을 질질 끌며 점점 밝아지는 검은 공간을 걸었다. 나 역시 갈 곳이 없어 형을 뒤따라 이동했다.
어느 정도 걷고 나자 밝아진 공간에 벽과 바닥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공간이 끝없이 펼쳐진 것이 문제였지만.
“형, 여긴 형이 돌던 던전이지?”
색이 없는 무채색 던전. 내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 형이 먼저 따로 공략을 위해 들어갔던 던전이었다.
“형, 어디로 가는 거야?”
“네가 있던 곳.”
“그걸 다 알아? 신기하네.”
“…다 왔어.”
어느 정도 걷고 나니 사슬로 막힌 거대한 하얗고 검은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라고?”
“응.”
“사슬로 막혀 있는데?”
그러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이 사슬을 잡고는 세게 당겼다. 뚜둑, 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윽고.
촤르륵―
문을 가로막기 위해 단단히 박혀 있던 사슬이, 형의 힘에 못 이겨 전부 떨어져 나갔다.
‘잠만, 저러면…….’
나는 곧장 형에게 다가가 형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내가 예상한 대로, 형의 팔은 어디서부터 나는 건지 모를 피들로 흠뻑 젖어 들어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그걸 막 뜯어! 헌터라는 인간이 이래도 되는 거야?”
“포션 있으니까 괜찮아.”
이건 힐 포션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겪어 본 적이 많았기에 남들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상처가 난 적도 없는데 이렇게 피가 나는 거면은… 저주 아니야?”
“아마 맞아.”
“미친 인간아! 그러니까 엄마가 뒷목 잡고 쓰러지지!”
뭘 알고 있긴 한 건지. 막무가내로 나가는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편하고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게 최고인데. 도대체 왜.
“괜찮아. 빨리 끝내면 되는 거라.”
“뭘…….”
끝낸다. 그건 즉, 보스를 뜻하는 거였다.
“도대체 뭔데 그렇게 막 나가냐고! 아무리 그…게 있어도 자중을 해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형의 손은 이미 문을 열었다. 끼이익. 살짝 밀친 문이 홀로 열리며, 문 사이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이 미친.”
너 그거 죽이려면 10분은 족히 걸린다고. 그래. 저주에 걸려도 보스에게서 해독 포션이 나오긴 하다만, 10분 전에 저주가 온몸에 퍼져 죽을 텐데, 설마 그걸 모를 리가.
‘상당히 막무가내네.’
기억과 실전이 다른 건 지난 4년간 이미 체험해 봤을 테니 잘 알 텐데. 자신 있는 건가?
나는 여전히 불안에 가득 찬 얼굴을 내보이며 형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형이 성큼, 방 안으로 들어가며 이윽고 보스가 나타나는 선을 정확히 넘어섰다.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저렇게 자신만만해하는데 말리기도 뭐하니 그냥 두고 본다만.
쿠르르릉. 바닥이 미친 듯이 울리며 이윽고 저 앞, 벽에 박혀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번쩍, 눈을 떴다. 그것이 형을 바라보곤 벽에 박혀 있던 몸을 빼내며 쿵, 한 발을 내디뎠다.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거대 골렘. 비록 형이 저주에 걸린다는 전제는 없었다만 일단 형을 통해 잡을 보스였다.
‘아마 저주에 걸린 상태로 싸웠을 때의 결과를 모르는 모양인데.’
형이 저주에 걸린 상태로 골렘과 싸우는 경우는, 그야말로 초반부터 망한 거였다. 시간이 너무 지체돼 팔 한쪽이 날아가거나 죽기 직전까지 다다르니까.
‘…역시 돕는 게 낫겠지.’
속으로 한숨을 쉬고 한 발,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딛자 형이 고개를 휙 돌리며 입을 열어 말했다.
“지언아.”
“어?”
쿵. 골렘의 나머지 발이 바닥에 내려오자 골렘의 형상이 완벽하게 드러났다.
“괜찮으면 미끼 역할 해 줄 수 있어?”
“어? 어.”
“그래. 고마워.”
철컥. 언제 꺼냈는지 모를 은색의 뱅글 팔찌를 제 손목에 착용하더니, 형이 지금의 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골렘에게 뛰어들었다.
“…허.”
어디 믿는 구석이 있나 싶었건만. 저걸 갖고 있어 그런 거였나.
형이 방금 찬 뱅글 팔찌는 일주일에 한 번, 일시적으로 힘을 엄청나게 증폭시켜 주는 아이템이었다. 본래 주인은 분명 외국에 있던 터라 경매에 내놓기 전까지는 구하지 못했던 아이템일 텐데.
‘그래. 멍청하게 있진 않았네.’
안심돼서 한숨이 다 나오네.
‘그러면 일단 믿어 보는 쪽을 택해야 하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걸 보면 형 나름의 계획이 잘돼 가고 있는 모양이니, 일단 믿는 게 낫겠지.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으니.’
쿵! 방 안을 울리는 거센 진동이 온몸에 느껴졌다. 어느새 날아가듯 튀어 오른 형이 골렘과 이미 맞붙고 있었다.
‘미끼라면…….’
시선을 끄는 거야 내 전문이긴 하지만, 겨우 시선을 끌어 주는 정도로 되려나.
‘그래도 지루하진 않아서 좋네.’
턱. 나는 단숨에 뛰어올라 골렘의 머리에 그대로 낫을 휘둘렀다. 터엉 하고 플라스틱에 튕긴 소리가 들려오며 골렘의 머리가 휘리릭 돌아갔다. 바닥으로 낙하하기 직전, 나는 손을 뻗어 이번에는 별을 쏘아 냈다.
펑! 퍼버벙!
‘아직도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이변이 일어난 김에 나도 바뀐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써 봤건만, 바뀐 건 없고 여전히 능력이 새어 나가는 비율이 더 높았다. 그냥 낫을 휘두르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턱. 골렘의 어깨에 안착했다가 곧장 다시 튀어 올라 골렘의 머리 중심을 강하게 내려찍자 골렘의 머리가 갈라져 나갔다.
“아.”
골렘의 다리가 빠르게 나에게 다가와 하마터면 압축될 뻔했다. 폴짝. 나는 위로 뛰어 골렘의 다리에 안착하고 곧장 골렘의 다리에 다시 공격을 가했다.
투우웅 하며 울리는 골렘의 다리에 골렘이 더욱 미친 듯이 발작하며 팔을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이쯤이면 됐을 텐― 아.’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도망쳐야지.’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검은 안개 속에서 푸른 빛이 미세하게 일렁였다.
‘팔찌 효과도 여전하네.’
검은 연기가 단숨에 거대한 구를 만들어 냈고, 그것은 곧 형의 손을 따라 그대로 골렘에게 던져졌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