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기억을 잃었다니, 무슨 말이지? 나는 널 본 기억 자체가 없는데.”
―그러니 기억을 잃었다 하는 것이다. 너와 나는 마주하였고, 서로를 통타하였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분명 나와 동일하게 시간을 되돌아온 것 같은데, 어째서 너는 나를 기억 못 하는 거지?
“만난 적이 없으니까…….”
왕은 나와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와 달리 전의를 상실한 것만 같았다. 몸을 찌르던 위압감이 점차 줄어들었으니. 그렇다면, 대화가 가능할 터.
“나는 기억이 없다. 고로, 너에 대해 알지 못해.”
―…그 어느 것도 말인가?
“그래.”
―기억…하지 못한다고?
꾸득. 왕이 앉아 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아주 살짝 건드린 듯 보였으나 팔걸이는 너무나 쉽게 부서져 내렸다. 나는 잠깐 느껴졌던 압박을 애써 무시한 채 물었다.
“너는 왜, 우리의 세상을 멸망에 이르게 한 거지?”
―멸망? 하. 별 섬뜩한 소리를 다 하는군. 멸망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니.
그러며 왕은 가슴팍에 제 손을 얹고는 말했다.
―이 내가, 너희의 세상을 친히 보살피려 한 것이다.
“…웃기는 소리 하고 앉아 있어.”
보살펴? 그러면 죽이지 말았어야지. 단어 선택 개같이 하네.
“그럼 왜 사람들을 죽인 건데.”
―뭐가 문제지? 너희가 우리를 공격해 우리도 그에 따른 반격을 한 것뿐이거늘. 이 탑도 마찬가지다. 군주들을 죽이는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한 네가 그곳에 있었기에 그 땅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래. 정당한 복수라고 할 수 있겠군.
“먼저 쳐 놓고, 헛소리 지껄이지 마!”
자기들이 먼저 우리에게 나타나, 우리에게 악몽을 심고, 먹어 치우려 들었다. 그런 자식이 뭐? 반격? 복수? 웃기지도 않아.
―헛소리라고? 우리는 당연한 섭리를 취하였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내려진 사명. 우리가 태어나 당연히 가지는 욕구에 불과하다. 약하면 잡아먹힌다. 그러니 너희가 우리의 먹잇감이 된 것이지. 쯧……. 방해만 없었어도.
“방해?”
―아무 힘도 없는 너희 세상과 우리의 세상을 잇는 길을 만드는 것까지는 순탄하였다. 그러나, 나는 넘어갈 수 없었다. 강한 이들은 넘어가지 못하고 약자만이 길을 넘어갈 수 있었다. 전부 네 세상이 방해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너희는 마음 편히 길을 넘어와 날뛰었지.
“…….”
―생각하니 화가 나는군. 설마 그런 잔재주를 가지고 있을 줄은…….
나는 왕이 했던 말들을 차근히 생각했다. 길을 만들었다는 건, 게이트가 생기기 이전에 처음으로 몬스터가 생겨난 시점을 말하는 걸 테고. 그걸로 인해 두 세계가 연결됐지만 우리 세상의 힘이 왕이나 강한 것들이 넘어오는 걸 막았다는 건가? 반면 우리는 마음대로 게이트를 왔다 갔다 했고?
‘…던전이 단순한 게임 같은 건 아니리라 생각하긴 했었다만.’
다른 세상 같은 거였나.
아예 예측 못 했던 건 아니었다. 확실한 근거가 없었을 뿐이지.
다만, 이 세상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건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그나마 안전했다는 것도. 뭐… 세상에 자아라도 있는 건가?
―그 잔재주 때문에, 하늘의 별들이 너희 세상으로 흘러갔다.
“별?”
―영혼. 그래… 너희에겐 문양이라는 말이 더 와닿겠군그래?
“…….”
문양. 우리가 이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능력이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문양은, 모두 우리 세상의 생명체였다. 너희가 말하는 몬스터 말이다! 그 몬스터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본인들의 능력을 그곳에 새겨 두었거늘… 그걸 너희 세상이 집어삼켰다. 그리고 텅 비어 있던 너희에게 내려 주었지. 나조차 잡지 못하는 것을.
설마 문양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잠만, 그렇다면 겔탄이 말한 영혼은 뭐지? 능력과 그릇이라 했는데.
‘…자기들과 우리들의 기준은 다르다고 하긴 했는데.’
텅 비어 있다는 건, 그릇 안에 들어 있어야 할 능력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형은 빙의된 게……. 아니다. 그래도 형은 빙의가 아닌 근거들이 더 많다. 이전 회차의 형이 말했던 거나, 전생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러니 형은 형이다. 이 이유가 사라졌다고 형이 아닌 건 아니야.’
왕은 계속 떠들었다.
―너희는 세상의 은혜를 받으며, 계속, 편하게 우리 땅에서 날뛰었다. 우리의 세상에 침입하여, 주민들을 죽이고, 온갖 것을 가져갔다.
“…길을 뚫은 건 너희잖아? 그리고 계속 쳐들어오려 했고.”
―그러나 결과적으로, 너희가 우리 쪽을 침략하였다.
“업보야.”
―아니. 너희는 잔인하고 극악무도하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생명체를 습격하고, 도움이 되는 것들을 강탈하였지.
“…….”
―그래도 강한 존재들이 많이 남았었으니 상관없었다. 우리의 승리가 예견된 싸움이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그래도 상관없다. 이전 생의 실패했었던 기억이 내게 들어왔으니, 이젠 성공의 길만이 남았으니. 또한 너 역시 약해졌으니, 승리는 뻔하다.
그 말에 머리가 대굴대굴 굴러 하나의 생각에 도달했다.
이 왕은, 이번에 처음 회귀한 거다. 반복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이전 생의 실패했던 기억이 이번에 들어왔다 하였으니.
물론 왕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뭔 기억이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 회차의 왕에게 어떠한 기억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변이, 일어난 거였나.’
그래. 이상했었다. 형이 빙의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변이 일어났는가. 그런데 여기에 해답이 있었다. 그 이변의 중심이 회귀하였으니까. 그것이 이유였다.
‘회귀를 한 게 아니라 머리를 다친 것 같지만.’
왕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곤,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니, 네게 묻겠다.
“무엇을?”
―나의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나?
“…뭐?”
―네 힘은 약하다. 그래. 분명하다. 하지만 그 그릇. 앞으로의 가능성! 그건, 명백한 강함이다. 지금까지 내가 말해 준 것을 전부 모른다는 듯이 구는 걸 보니 기억은 없는 게 분명할 터. 그렇다면 나와 싸웠던 일은 모두 묻고 우리 세상의 것으로 새로 태어나라.
“허.”
―내가 자비를 베풀어, 너를 살려 주겠다. 그리고 네가 소중히 하는 것들도.
“…….”
그 말에 현혹되진 않았다. 될 뻔하지도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만 따로 빼내서 새로운 인생을 산다? 일견 달콤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건 다른 사람들은 존중하지 않는 거였다. 그리고, 내 인생도. 평화만을 목표로 여기까지 왔는데, 인제 와서 그 목표를 저버리기엔, 너무 늦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사람들만 따로 빼내기에는, 내 친구의 소중한 사람이 있고, 또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 있어. 마음이란 건 나무의 뿌리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어서 결국엔 커다란 하나가 되지. 아쉽게 됐네.”
―…나의 자비를 거절하고 본인의 세상을 원한다는 말을 굳이 그리 돌려 말하는군.
“잘 아네.”
괜히 왕이 된 건 아니군.
―그래. 결국,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사락.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나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긴 시간이 꼬일 정도로 걸어온 것 치고는 지독하게 약하군. 보잘것없어. 내가 이런 것에 두려움에 떨었었다니.
꾸드득. 왕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몸이 검게 물들고, 하얀 머리칼이 몸에 엮이며 기이한 형태를 띠었다. 동시에 거대해지기 시작한 몸이, 저 드높은 천장에 닿기 직전까지 가서야 크기를 부풀리기를 멈췄다.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몬스터였다.
그래, 몬스터인데.
‘…지겠네, 이건.’
아니, 나뿐만 아니라 누가 와도 못 이긴다. 저 아득한 하늘에 누가 닿겠는가. 신이나 다름없는 것만 같은 이것에게, 누가 덤비겠는가. 그러나.
‘…내가.’
내가 덤빌 거다. 죽어서라도. 지더라도. 닿을 거다.
드디어 회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끝이 바로 앞에 있는데. 저 힘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패배가 예정돼 있더라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그 만약에 모든 것을 걸어 지금까지 왔다. 그러니 한 번 더, 만약의 가능성이 나의 곁에 머물러 준다면.
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낫을 만들어 내 손에 쥐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왕이 말했다.
―너는 신이었다. 이 세상의 신이나 다름없는 나와 대적하는 존재였다. 끝내 네가 나를 이겼을 때 나는 한낱 왕이었고 너는 내가 감히 우러러볼 수조차 없는 신이었지. 하지만, 지금의 너는 어떤가.
거대한 팔이 느리게 움직여, 검지를 피고 나를 가리켰다. 붉고 긴 손톱이 날카로워, 그대로 날아와 나를 덮치기만 해도 꼼짝없이 죽을 것 같았다.
―너는, 한낱 인간이다. 그리고 내가 신이지. 내리는 비조차 어쩔 수 없는 네가 나를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우리는, 비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냈다.”
―그럼 뭐 하는가. 그 수단이 단숨에 사라지면, 너는 비를 쫄딱 맞을 터인데.
“덤비기나 해. 끝내자.”
―…애처롭구나. 넘볼 수조차 없던 존재에서, 어찌 이리 불쌍한 존재가 되었는가.
“네 알 바야?”
쾅! 나는 겁을 숨기고 왕에게 달려들었다.
―나 카트렐리온. 드디어, 내 손으로 너를 죽일 수 있게 되었구나.
얕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몸이 찡 울렸다.
터엉! 낫이 왕의 손에 튕겨 나가며 부러졌다. 나는 낫을 다시 만들면서 사방에 별 무리를 만들어 냈다.
별 무리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왕에게 쏘아졌다. 퍼버벙! 속절없이 터져 나가는 별 너머, 왕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 이제야 정확하게 알겠군.
왕이 무어라 떠들건 말건 나는 왕에게 달려들었다. 왕의 저 눈이라도 파고들길 바라며 낫을 휘둘렀으나.
콱!
거대한 손에 몸이 붙잡혔다.
“윽……!”
불쑥. 왕의 호박빛 눈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세로 동공이 내 상체만 했다.
―너, 어째서 텅 빈 것이지?
“헛소리를……. 이거 놔!”
―어째서 틀만 남아 있는 거지? 그 많던 능력이 다 어디로 갔냐는 말이다!
꽈드드득. 몸 전체가 아스러졌다.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던져져, 그대로 벽을 받았다가 땅에 추락했다.
‘몸이… 안 움직여.’
목 아래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망가졌다.
―가능성조차 사라진 상태라니……. 자비를 베풀 필요도 없어졌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하찮아진 것이냐! 이것이 정녕 나와 대적했던 자란 말인가! 아니다! 이건, 단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겉껍데기에 불과하다!
쾅! 쾅! 왕이 거대한 몸을 끌어 내게 다가왔다. 단숨에 다가온 왕이 그대로 손가락을 들어, 내 팔을 짓눌렀다. 그러자, 팔이 사라졌다. 아니, 으깨졌다 해야 하나? 정신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죽음이 가까워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괜찮다. 그래도 이제, 왕에게 도달했다. 손끝에라도 닿았다. 그러니 차근차근. 차근차근…….
‘가능한가. 이게.’
왕이 화풀이라도 하는 듯, 내 몸의 끝부분부터 차근차근 짓밟아 으깼다. 아스러지는 몸에도 나는 다음을 기약했다.
기약을…….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런 존재가 우리의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니,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수가 없는 거지.
그래. 왕은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닿으려 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망했다.
앞으로 이 짓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까. 두 배? 아니, 세 배?
모르겠다.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나는, 결투의 장갑을 던지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래. 나는.
계속 반복해야 하는 거구나.
끝이.
없던 거구나.
끝을 따지던 내가 멍청했어. 내 생은, 이거였다. 그냥, 영원한 죽음의 반복.
“…하하.”
뚝.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은 그렇게 멎었다. 나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