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바라보고 있는 곳】
지독하게 잠잠하다. 설마 그곳이 본거지였을까 싶을 정도로 사이비들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 찝찝하게 만드네.’
나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화연 씨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다 찾아 놨는데 빈 곳이었어요. 기껏해야 사이비 문양이 그려진 정도.”
“놀아난 기분이군그래.”
“놀아난 거죠. 그런 기분이 아니라. 인질극으로 시선을 끈 후에 싹 다 비워 버린 거 같은데.”
“그때 나는 던전 공략 중이었고.”
기껏 찾아 놓았던 지도는 무용지물. 그렇다고 다른 단서들을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사이비들의 배후에 던전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로밖에 사용을 못 했으니까.
지화연 씨가 몸을 뒤로 쭉 뺐다.
“그래도 뭐, 한지언 씨의 명예를 되찾았잖아요. 무승부라고 해야 하나, 이걸.”
지화연 씨의 말에 유아한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솔직히 졌다고 봐야죠. 저희는 원점으로 돌아온 거고, 저쪽은 저희가 쉽게 당하는 걸 확인했고 인질극까지 벌이고 도주했으니까요.”
난 솔직히 원점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놈들이 우리를 더 아래로 추락시켜 놓을 줄 알았거늘, 이 정도로 몸을 쭉 빼고 도망칠 줄이야. 던전이랑 손을 잡았으면 도망치는 전략은 제외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던전의 하급 몬스터랑 손을 잡기라도 했나.
나에 대한 인식을 되돌려 놓기는 쉬웠다. 방해하던 것들이 손을 뗀 덕분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질극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납치되며 그 일이 뉴스를 타고, 동시에 사이비에 관한 이야기도 퍼져 나갔다. 그 후 내가 협박 편지를 받았으며 당시 붙잡고 폭력을 행사하였던 존재가 사이비였다는 사실을 퍼뜨리니 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은 금방이었다.
심지어는 홀로 불합리한 소문에 시달리면서도 사이비에 맞선 존재로 거듭나기까지 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내 명예가 드높아졌다. 뭐,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거야 시선을 빼앗을 만한 스토리가 있으면 그만이긴 했다.
‘솔직히 내 소문이 구리든 말든, 숨어 지내야 하든 말든이지만.’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나만 날 잘 생각하면 되는 문제니까.
류천화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이비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이상, 모일 일은 없을 것 같군.”
“그쵸. 아무래도 그게 가장 큰 문제니까.”
더 이상 오갈 대화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한 명 한 명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형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던 차,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불린 이름에 뒤를 돌아보니 승현 헌터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승현 헌터?”
“한지언 헌터. 던전 하나만 돌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늘요?”
“아뇨. 오늘은 아니고―”
“내일모레 우리 병원으로 오세요.”
뒤에서 쑥 나타난 유아한 씨의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병원이요?”
“병원 근처에 게이트가 하나 생겨서요. S급. 그런 거 내버려 두면 사람들이 무서워하시니까요. 그런데 이번 달에 스케줄들이 꽉 찼더라고요. 그래서 그나마 비어 있는 한지언 씨에게 협조 요청을 하는 거예요. 시간 괜찮으신가요?”
“저야 뭐 상관없는데……. 저 혼자 공략하는 건가요?”
“아뇨? 저랑 해요.”
“둘이서요?”
“아뇨. 주한이도 포함되어 있어요.”
“…….”
날 벽이라 생각하고 둘 사이에 끼워 두려는 건가.
“괜찮아요?”
“네, 뭐… 그럼 내일모레 뵙죠.”
가시방석이 될 것 같은 날을 기약하며,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
약속한 날이 되어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곧장 향하려 했으나, 유주한과 유아한 씨 둘 다 조금 늦어 병원에서 기다리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들은 대로 병원으로 향하자, 익숙하면서 익숙지 않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유아한 씨라기엔 머리가 긴데.’
그렇다고 유주한이라기에는 여성분이고.
‘…저 집 둘째분인가?’
슬며시 지켜보고 있었더니 눈이 마주쳤다. 멋쩍게 웃어 보이자 그녀는 눈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한지언 헌터 맞죠!”
“네? 네, 네.”
“주한이한테서 말 많이 들었어요! 잘 챙겨 주던 형이라고. 이거 뭐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하필 마주친 타이밍에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없네요.”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이거 어쩌지?”
“괜찮습니다.”
“아뇨, 뭐라도 해 주지 않으면 제가 밤잠을 설칠 거예요.”
그러더니 그녀는 내 소매를 붙잡고는 무작정 병원에 갖춰진 카페로 향했다.
“제가 사 드릴 테니까 원하시는 거 고르세요. 소소한 보답이에요.”
“거절은 선택지에 없는 건가요?”
“당연하죠.”
“…그럼 그냥 아메리카노 마실게요.”
“자몽에이드 어때요? 여기 자몽에이드 달거든요.”
“아메리카노로 괜찮습니다.”
“정말요? 이상하다. 분명 달달한 걸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누가요?”
“주한이가 마허윤이라는 헌터한테서 들었다던데요?”
“…….”
마허윤은 도대체 언제 적 얘기를 끌고 와서 내 취향을 조작하고 있는 건지.
“…자몽에이드로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유주한의 작은누나로 추정되는 사람이 방긋 웃었다. 우리는 주문을 끝마친 이후에 자리에 앉았다.
“헉!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전 유다한이에요. 스물두 살. 아한 언니의 동생이자, 주한이의 누나고요.”
“저는 한지언입니다. 스물다섯 살이고요.”
“반가워요. 제가 은혜는 반드시 갚는 편이라 초면부터 너무 막무가내로 행동했네요.”
“아녜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이 집안은 도대체 나이 차이가 왜 이렇게 띄엄띄엄이야. 스물여덟 살, 스물두 살, 열일곱 살. 다양하다, 참.
“그러고 보니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
“유아한 씨랑 주한이랑 게이트 공략이 잡혀 있어서요.”
“…그 두 사람이랑요?”
“예, 뭐…….”
“…반응을 보니 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은 걸 아시나 보네요.”
“아무래도… 자주 같이 있다 보니까…….”
“그렇게 눈치 안 봐도 돼요. 뭐, 집에선 아예 말을 안 하는걸요? 밖에선 어때요?”
“뭐, 음… 비슷해요. 평소엔 말 안 하다가 어떨 때 좀 얘기한다 싶으면 그때마다 싸우려 하고.”
“밖에서도 그래요? 하유. 잘하는 짓이다, 아주.”
“그래도 유아한 씨는 주한이를 챙기려 하긴 하는 것 같던걸요.”
“의무적인 행동일걸요? 절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배려가 아닐 거예요, 그 언니는.”
“…그렇군요.”
“그래서 주한이를 엄청 걱정했어요. 저 온실 속 화초가 어른들 사이에서 휘둘리지만 않음 좋겠는데 하고. 그런데 다행히 한지언 헌터가 잘 챙겨 준다고 만날 때마다 얘기하더라고요.”
“그거 다행이네요.”
“…언니는 어때요?”
“유아한 씨요?”
“네.”
뭘 궁금해하는 걸까. 헌터 생활을 할 때의 유아한 씨? 아니면 사람으로서의 유아한 씨?
‘사람으로서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전자일 확률이 높겠지.’
나는 적당히 머리를 굴린 후 답했다.
“대단하시죠. 헌터이기 이전에 의사시고.”
“저희 언니 엄청 대단하지 않아요? 전 헌터가 되어서 의사를 때려치워 버릴 줄 알았는데, 그냥 다 해 버리니까요.”
“대단하시죠.”
“언니는 예전부터 대단했어요. 어릴 때부터 저나 주한이를 챙기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법도 한데 아득바득 공부해서 인서울 의대를 가질 않나, 유명 병원의 인턴으로 가질 않나, 기대를 한 몸에 받질 않나. 전부 혼자서 해낸 일이에요.”
유다한의 말에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보통 애들을 챙기는 건 어른의 역할이 아닌가. 왜 어릴 적 유아한 씨가 애들을 키웠다는 소리같이 들리지.
유다한은 본인이 본인의 집안 사정을 말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게다가 공부할 시간이 엄청나게 적었어요. 학교에서는 계속 수업 진도를 나가지, 집에서는 공부만 하려 하면 아기가 울지, 그렇다고 어디 애를 맡길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저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괜찮은 건가요? 저희 오늘 처음 만났는데.”
“네? 뭐가요?”
“그…….”
“아아. 제가 좀 덜 돌려서 말하긴 했죠. 부모님이 안 계신 건 아니에요. 있으나 마나일 뿐인 거지.”
“…….”
더 돌려 말해 달라는 거였지 그렇게 더 돌 직구로 말하라는 말은 아녔는데.
“하물며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튼 뭐가 엄청났대요. 근데 주한이가 태어난 이후로 잠잠해져서, 그렇다고 자식들을 챙겼던 건 아니라 그나마 나이가 많았던 언니가 저희를 케어했는데… 솔직히 미친 소리죠, 다. 애가 애를 어떻게 돌봐. 언니도 엄청 힘들었을걸요?”
유아한 씨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만 가진 채로 과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유아한 씨나 유주한도 말한 적 없고.
“이렇게 자세히 말씀하셔도 괜찮으신가요?”
“괜찮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딱히 부끄러운 얘기도 아닌데. 오히려 대단한 얘기죠.”
“그렇긴 하죠.”
“아무튼 그래서― 아. 언니!”
유다한이 내 뒤쪽을 보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유아한 씨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근데 어찌 좀… 화난 것 같기도.
유아한 씨가 들고 있던 휴대폰 모서리로 유다한의 머리를 쿵 찧었다. 유다한이 제 머리를 만지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 왜애.”
“너 또 이상한 소리 했지.”
“이상한 소리라니? 난 그냥 언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한 것뿐인데?”
“그게 이상한 소리야. 왜 자꾸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내 지인한테.”
나한테만 한 게 아니라 유아한 씨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전부 말하고 다닌 건가. 무슨 포교 활동도 아니고.
“뭐 어때. 부끄러운 얘기도 아니고. 하여튼 속이 좁아서……. 아아, 왜, 또!”
“구시렁구시렁하지 말고 이곳에 온 이유나 설명해.”
“도시락!”
“…….”
“놓고 갔어.”
“그냥 사 먹으면 되는 걸 뭐 하러 가져왔어?”
“언니 사 먹는 꼬라지 보면 누구나 도시락 싸 주고 싶을걸? 뭔 삼시 세끼를 빵 하나로 때우질 않나. 에너지바로 때우지 않나.”
“꼬라지는, 뭔. 말 좀 가려서 해.”
“그만 때려!”
콩콩. 유다한의 머리 위로 유아한 씨의 핸드폰이 쏘아졌다. 그 광경을 빤히 보고 있자 유아한 씨가 그제야 내게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애가 조금 철이 없죠.”
“아뇨, 괜찮아요. 즐거웠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유주한도 곧 온다고 하니 슬슬 움직이죠. 너 가, 이제.”
“여기까지 찾아온 동생한테 매몰차다, 진짜.”
“가. 빨리.”
“네네. 갑니다, 가요. 만나서 즐거웠어요, 한지언 헌터!”
그러곤 유다한은 금방 자리를 떴다.
‘…이 집안은 성격이 다 달라.’
외모는 복사한 것같이 같은데.
유아한 씨가 멀뚱히 서 있는 나에게 말했다.
“유다한이 별말 안 했죠?”
“네, 뭐… 유아한 씨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뭐. 제가 거의 키우다시피 했으니까요. 잡담은 이쯤 하고 어서 가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유아한 씨를 따라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앞에서는 유주한이 이미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