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나는 스스로 적히는 이야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에 곧장 펜을 들려고 했으나, 그 전의 결과들이 떠올라 내 손을 주저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들었던 펜을 내려놓고, 나의 이야기를 보았다.
아니. 더 이상 내 이야기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네가 주저할 때마다 펜을 들고 싶었다. 돌아갈 때마다 올바른 길로 안내해 주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을 부여잡고 참았다. 단순 참견이 아니라는 걸 나 자신이 잘 아니까.
이것이, 지금까지 해 온 것이, 결국,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하지만 나는 그것 하나 못 참을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았기에, 그거 하나 인정하지 않고 우길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기에 의외로 금방 인정하고 이야기를 지켜보았다.
“드디어.”
내가 왕에게 향했다. 지금과 달리 너무나 나약해 군주들에게 픽 죽어버렸던 내가. 드디어.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약하고. 왕은 강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강했다. 적어도 물러나지 않을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러니까… 부탁이야. 이번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까.
너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 이런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뭐. 이전이랑 다르니까 그럴 수 있겠지.
드디어 둘이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참혹했다.
“안 돼!”
이래선, 제자리잖아. 겨우 무언가 바뀐 것이 보였는데. 이제야 새로운 세상이라도 구할 줄 알았는데. 내가 죽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지? 개입한다고 뭐가 바뀌진 않을 거야. 이미 난 죽었으니까. 그렇다고 되돌려? 내가 개입하면 다시 원상 복귀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어떻게. 어떻게. 어떻…….”
꾸깃. 손에 쥐어진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이야기가 적히지 않는 책. 하지만 없어지거나, 되돌아가진 않았다.
“…없었던 일로 하면 되는 거잖아.”
늘 그래왔듯이. 다만 이번엔 중간만.
찌지직! 죽음이 적힌 페이지를 찢었다. 이미 책과 떨어진 종이를 찢고, 찢고 또 찢어 산산조각낸 순간, 눈앞이 컴컴해졌다. 곧이어 찢어버린 종이처럼 몸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헉 소리를 내며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할 아득한 고통에 몸을 굽혔다가, 피자.
‘…….’
왕이. 내 앞에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아 멍하니 서 있자, 옆에는 멀쩡한 상태의 내가 있었다. 분명 밟혀 으깨고, 망가져 형태 자체를 알아보기가 어려웠을 내가.
심장이 아려왔다. 고통에 식은땀이 다 흘렀다. 숨이 가빠왔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건 아직도 주저하는 나였다.
뒤에 있는 내가 물었다.
“…누구야.”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고. 어째서 네가 살아난 건지도 모르겠다.
손가락질만으로 모든 곳을 초토화할 수 있을 것 같던 능력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나 재빨라 금방 평범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겠다.
“…자.”
힘이 약해지고 있더라도 지금의 나는. 왕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걸.
뒤에 있던 나는, 아니. 너는 지쳤는지 곧바로 기절했다.
나는 왕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심장이 타들어 간다. 몸이 썩어들어간다. 내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왕을 죽일 수 있는 거니까.
콰직. 왕을 손쉽게 죽이자, 내 몸이 이동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냐. 아직 갈 수 없다. 다른 사람들도 구해야 해.
나는 능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향했다. 그리곤 계속해서 살아나는 몬스터를 소멸시키고, 잠시 형을 바라봤다.
살아있었다.
그러나 이미 내 이야기가 아닌데. 이 형은 과연 내 형일까.
착잡한 심정을 가진 체, 나는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을 안내하다가 하얀 탑으로 이동됐다.
“…안 아파.”
아스러질 것만 같았던 몸이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얌전해졌다. 하지만 몸 상태 자체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분명 한 번 더 했다간, 여기서 죽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그 한 번 더. 도울 수만 있다면.
나는 이전까지 나라고 생각했기에 접촉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다르게 생각해 나 자신과 접촉했다. 그리고 기회를 주었다.
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순 없어도. 작가로서 너를 응원할 거니까.
자리를 탐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한 번 정의로웠던 마음을 끝까지 가져갈 거다. 과거를 후회했더라도. 그걸 안고 지금을 극복할 거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거야?
나보다 더 심한 말을 듣고. 나보다 더 고통스러웠고. 나보다 약한데. 어째서 그렇게.
‘강인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감정 하나하나에 휩쓸릴까봐 그 감정들을 버렸는데. 너는.
계속해서 질문했다.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사용했을 때. 나의 몸은 툭 건드리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 네가 죽지 않겠지. 어려운 일은 다 끝났으니까.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끝까지 살 줄 알았던 너는. 다른 이들을 구하려고 너무나 손쉽게 본인을 포기했다.
살고 싶어서, 계속 살아왔던 게 아니야? 살기 위해 싸워왔던 거 아니냐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어째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야?
왜?
도대체 왜?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너와 닿을 기회가 다시 생겼다. 너의 죽음은, 내가 존재하는 이상 올 수 없었으니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행복한지. 지금은 행복한지. 정녕 내가 했던 것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하지만 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적었다.
나는 끝내 고르고 골라 물었다.
“왜 세상을 구하려고 해?”
세상은 너를 배신하고 아프게 했다. 그나마 세상을 구하려 했던 나 역시. 네 이야기를 보며 세상을 혐오하게 됐다. 소중한 사람만 살면 됐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너도나도.
왜 그런 걸까. 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물었다.
“말해 줘.”
너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다가 이내 실소를 내뱉었다가, 소중한 것을 추억하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독하게 살고 싶었나 봐.”
안다. 하지만 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욕심을 포기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고…….”
거기까지 하면 됐던 거 아니야? 왜 굳이 다른 이들보다 더 노력해서 세상을 구하려 했던 건데?
“그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도 지키고 싶었고.”
그 말에 머리를 누군가 때린 기분이었다. 내 입장에서 소중한 사람들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스쳐 지나갔다.
“그냥. 세상이 싫었는데. 살다 보니 좋아졌나 봐. 아직은 더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고 싶었나 봐.”
“…….”
너는 더 이상 변명이 무의미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그냥 사랑했나 봐. 이것저것. 그래서 구하고 싶었나 봐.”
그냥. 사랑한 거였다. 이 세상을. 뒤죽박죽이어도 돌아가는 이 세상을.
“그렇구나.”
상처를 받아 부정해 왔던 것이, 지독하게 품어왔던 고통이 어째서인지 단숨에 사라졌다. 그저 잃었기에.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혐오로 묻어왔던 것이.
사실이 지독하게 그리워서. 구하고 싶어서. 감정을 버렸음에도 구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녔었어.
“그래서였구나. 너도, 나도.”
난 웃기게도 살고 싶었다. 모두를 잃었음에도. 지금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그랬듯. 소중한 것을 위해 쉽게 희생한 네가 그랬듯.
지금 나는 네 이야기가 무척 소중해졌다.
네 이야기가 계속 이어 나갔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어쩌면 정말 끝일지도 모르는 내 힘을. 전부. 내게 줄 것이다.
내가 살아있어 한평생 약하게 살아왔던 너에게.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며 무시했던 것을. 이제야 모든 걸 인정하고 놓을 수 있게 되었기에.
하지만 네 이야기의 끝을 역시나 보고 싶었기에 나는 정말 소중한 힘을 제외하고 전부 네게 주었다. 욕심부리는 게 퍽 못나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자연스레 내게 돌아갈 힘이었다. 아주 잠깐 내 목숨을 연장해 줄 힘이었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줘.”
이미 끝난 나와 달리 아직 이을 수 있는 네 이야기를.
그리고 조금만 더 욕심을 내자면… 나와 만나 내 이야기를 듣고. 기억해 주기를.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속에서, 내 이야기가 기억되기를.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면서 욕심을 부리는 나를 용서해 주기를.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나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너를 바라봤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진짜 네 이야기의 작가인 네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