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불필요한 감정은 기력에 큰 영향을 준다.
주변 시선으로 차오르는 불안감을 버리고. 앞길을 가로막는 미련에 감정들을 버렸다. 불안의 기초인 걱정을 버리고. 소중함을 느끼는 감정들을 버렸다.
감정은 차오를 때마다 버려져, 이내 더 이상 차오르지 않았다.
내 무의식이, 알아서 버렸기에.
그렇기에 나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너무 뒤늦게 뒤돌아보았다.
그곳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데.
고통에 잠식당하며 한참을 울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상에서 홀로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며 소멸하기 직전. 하얀 탑이 내 앞에 나타났다.
“…….”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설원처럼 새하얀 탑이었다. 지독하게 검은 나와 정반대되는. 아주 새하얀 탑.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탑으로 향했다. 몸의 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는 와중에도 비척비척 걸어, 탑에 도달했다.
그렇게 탑으로 들어갔을 때. 조각나던 몸은 영상의 재생을 정지시킨 것처럼 멈췄다.
고통이 사라짐을 느낀 후, 주변을 살폈을 땐. 평범한 도서관이었다.
[환영합니다. 두 세상의 끝을 본 유일한 존재.]거대한 석판에 글이 자동으로 써졌다. 순간 던전인가 싶었지만, 이미 그건 내가 다 없애버렸지 하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여긴 어디지? 두 세상은 뭐고?”
[이곳은 두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집합한 도서관. 당신의 지구와 지구의 쌍둥이별. 그대가 말하는 몬스터의 세상.]“…왜 그딴 거랑 쌍둥이별인 거지? 애초에 이런 곳이 왜 존재하는 거지?”
석판은 잠깐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태어났을 뿐.]“누구한테?”
[세상의 탄생과 같음.]“…말이 안 되잖아.”
[무엇이?]“그냥… 별도 아니고 탑 같은 게 생겨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몬스터 같은 것이 우리랑 같게 태어났다는 것도 그냥… 말이… 안 되잖아.”
[…한 생명의 기준. 이해시키기 불가능. 본디 태어나길 그리 태어남.]“…그래 좋아. 그래서 나를 왜 이곳으로 데려온 거지?”
[이곳은 이야기가 끝나면 올 수 있는 곳. 본디 그 끝은 죽음. 그러나 그대는 죽지 않고 이곳에 도달하였으니, 하나 기회를 주려고 함.]“기회?”
[시간을 되돌릴 기회.]“…시간이라고?”
[하나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은 강한 생명이라도 불가능한 짓. 그러니 그대는―]“긴 설명은 됐고! 어떻게 하는 건데! 당장 해! 애초에 너도 우리 세상과 연관이 있는 존재라면, 진즉 해야 했던 거 아냐?”
[이곳이 끼어드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남. 법칙을 위반. 무엇보다, 나는 어느 한쪽의 편도 아님.]“형평성? 지금 우리 꼴을 보고도 형평성이라는 말이 나와? 내가 없었으면 지구는 진즉 멸망했다고!’
[하나. 그대가 존재.]“그건…….”
[또한. 그대의 말도 맞음. 두 세상과 이곳은 연결되어있으며,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존재가 없으면 가라앉을 곳. 그러니 이것은 거래. 그대는 시간을 돌리고, 이곳은 이야기가 다시 써내셔짐.]“…됐어. 구할 수만 있다면. 살릴 수만 있다면.] [수락.]
“그래.”
[Z-99999]이후 석판은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번호만 남긴 체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아. 이 일련번호의 뜻을 직접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건 쉬웠다.
나는 Z-99999이 적힌 문을 찾아내고, 곧바로 들어갔다.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심정인지라. 시간을 당장 돌리고 싶으니.
그렇게 들어간 공간은, 이전 도서관과 달리 끝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하늘은 지독하게 푸르고 맑았으며. 바닥은 그 하늘을 비추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사라지고,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엉거주춤 책상으로 향하자, 그곳엔 책 한 권과 펜이 놓여있었다.
“…뭐 어쩌라는 거야?”
어영부영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책을 펼쳤다.
‘아무것도 안 적혀있잖아.’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책 맨 앞장에 짧게 글을 적었다.
[과거로 돌아간다.]그 직후. 하늘을 보여주던 바닥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건.”
어린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 스스로 걷는다.
“이걸…….”
왜 보여주는 거지?
“이게 무슨 짓이야! 날 빨리 과거로 돌려보내라고!”
피가 식는듯한 기분에 곧장 소리쳤으나. 바뀌는 건 없었다. 그때 불현듯 책이 떠올라, 무작정 펜을 들고 이렇게 적었다.
[세상에 몬스터와 문양은 사라진다.]그러나 문장을 끝마친 순간. 글은 사라졌다. 마치 용납할 수 없는 글인 양.
“왜.”
[세상은 평화로워진다.]“왜.”
[아무도 죽지 않는다.]“왜!”
[던전은 생기지 않는다.]쓰던 문장이 전부 지워졌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줄 줄 알았던 책의 존재에 큰 허망함을 느껴 펜을 놓았다. 그리고 멍하니 나의 유년 시절을 바라보았다.
“…너무 허황된 꿈이어서 그런 건가.”
나는 다시 펜을 들고 종이에 펜촉 끝을 가져갔다. 책은 내 예전의 나날들을 소설로 작성돼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중간에 글을 적으려 하였으나, 끝내 무언가를 적지는 못했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 그리운 과거를 바뀌지 않는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
나는 또다시 펜을 놓고 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럴 때도 있었지. 아 저건 조금 부끄럽네. 저 때 정말 즐거웠는데.
세상에 던전이 생겨났을 때도 무언가를 바꾸진 않았다. 나에게 문제는 문양이었으니까.
어느덧 졸업식이 다가왔고.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계속 옆에 있으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가는가.
그러나 이 고민을 하는 사이에 ‘나’는 친구들과 웃으며 부모님과 멀어졌다.
곧장 부모님에게 다가가라고 적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었다.
“…바꾸지 못했어.”
정신을 놓고 있던 게 아니었다. 이미 몬스터에게 죽임당하기 직전의 부모님의 상황까지 들이닥쳤다. 여기서 내가 무얼 쓰든 변하는 건 없을 거다. 갑자기 문양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망할……”
부모님? 당연히 구하고 싶다. 구하고 싶었고. 그러나 바닥을 통해 보이는 나와. 지금의 나는 구하지 못하고. 못할 것이다. 구하고 싶다. 구하고 싶다고.
“구해!”
나는 무작정 책에 구하라는 글을 적었다. 그 순간.
콰광! 처음 보는 모습의 내가 몬스터를 처리했다.
“…뭐야 이게.”
하얀 낫? 쓴 적 없다. 검은 도포? 형의 문양 개방 모습을 카피해서 입은 두루마기 말고 한복은 입은 적이 없다.
애초에 난 저렇게 약하지 않았다.
“저게 뭐냐고! 다르잖아! 저건 내가 아니야! 아니라고! 당장 나를 과거로 돌려보내! 이딴 짓 하지 말고 과거로 보내라고!”
쾅! 책상을 내려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책이 시야에 들어왔다. 곧이어 책에는 내가 적지 않아도 글이 적히기 시작했다.
[끝난 이야기를 바꾸기는 불가능.]“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대는 끝난 존재. 저 아래에 그대는 새로이 만들어진 이야기.]“그렇다면… 저건 내가 아니라는 거잖아…… 이게 뭐가 과거로 돌리는 거야! 사기잖아!”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은 잘못.]“무슨 헛소리를…….”
그 순간.
“구할 수 있어.”
내가 하지 않은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나’는 어렴풋이 나의 기억을 전승받았다.
그렇다면 저건, 내가 맞는 게 아닐까?
힘도 전부 달랐다. 그러나 저건 나였다.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나는 펜을 들어. 글을 썼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들은 꽤 다양했다.
책을 버리면 그 이야기는 끝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죽더라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나는 약하다. 그러나 문양이 생길 때에 기억을 전승받는 듯 보였다.
‘형이라도.’
형을 제외한 나머지가 죽었을 때. 나는 책을 버리지 않았다. 멍청한 가족을 둔 형이, 본인의 길을 가길 바라서. 나에게 발목 묶이지 않고 홀로 앞으로 향하길 바라서.
그러나 형은 늘 죽었고. 나는 책을 버렸다.
“또 죽었어!”
나약한 나는 금방 죽었다. 다만 다른 소중한 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소중한 이들만이라도 살아가는 걸 보았다.
그렇게. 나는 안중에도 없는 글을 써 내려가다가 우뚝. 더 이상 가능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결국 펜을 놓았다.
이전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한참을 방안에만 둔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약한 나를 놔둔 체. 나는 바닥 한편에 누워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너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내가 적지 않는다면 제대로 진행하지도 않을 줄 알았던 너는. 스스로 이야기를 적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너와 나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너의 이야기에 개입하려던 나는. 그저 하나의 욕심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의 세상은 멸망했고. 끝났으며, 지금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예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을.
내가 아무리 너의 이야기에 개입해도 소중한 것들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