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이후 세상은 마치 게이트가 생긴 처음 그날처럼 난리가 났다. 게다가 탑이 생긴 곳 중 하나가 미국 워싱턴이었던지라 하루빨리 탑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탑을 공격하면 몬스터가 나오니.’
청록색 머리가 했던 말. 게이트처럼 클리어하면 탑이 없어진다. 그 말을 완벽히 믿을 순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세계 헌터 연합회는 우선 각국의 헌터를 소집했다. 헌터를 소집하는 건 쉬웠다. 그야 ‘헌터’이기만 하면 됐으니. 정확히는 문양만 발현됐다면 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헌터든 기술자든 그냥 평범하게 사는 문양 발현자든, 문양만 있으면 누구나 탑에 출입이 가능했다.
‘자격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더니, 그 자격이 그냥 문양이었냐고.’
뭐, 그래도 내가 못 들어가는 것보단 나으니 그러려니 한다만.
“근데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텅! 나는 가볍게 가로등을 박차 바닥으로 내려왔다.
형조차 탑에 대해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즐거움을 버틸 수 없어 쓰러져 웃었다가 곧장 고개를 올려 아픈 척을 했다. 이후 유아한 씨가 몸을 진찰했을 땐 아무런 이상도 없어서, 정신적 문제일 수 있으니 당분간 던전을 돌지 말라 하여 돌 수 없게 되었다.
‘하필 아픈 척을 해서.’
던전을 돌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탑이 생긴 지금 S급이 아무런 활동을 안 하면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될 가능성이 컸고, 따라서 나는 얼마간 순찰이라는 가벼운 일을 맡게 되었다.
‘이건 또 처음이네.’
처음인 건 좋다만, 할 게 없었다. 헌터들이 난동을 피우지도 않고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도 않는 평화로운 낮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시간 동안 시간만 허비했다.
‘특히 여기는 다른 데에 비해 천만 배는 평화로운 거로 아는데.’
이름이 꽤 알려진 길드들이 밀집해 있는 곳인지라 더더욱 큰일이 일어날 일이 없었다. 설사 무슨 일이 난다고 해도 S급 난동이 아닌 이상 내가 없어도 알아서 일이 해결되는 곳이었다.
‘다른 데 가야지.’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비척비척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던 때였다.
번쩍.
“어.”
근처 골목에서 빛이 번뜩였다. 휴대폰 빛이라기에는 밝은 빛이었고, 손전등이라기에는 뜬금없었다.
‘아니, 애초에 느낌이 달랐지.’
잠깐이었지만 빛의 감각 자체가 달랐다.
‘헌터들이 싸우나?’
탁. 나는 단숨에 빛이 났던 골목 근처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는 것은 A급 헌터 한 명과 B~C급 정도 되는 헌터들의 모습이었다. 놀라운 것은 A급 헌터가 다른 헌터들에게 겁박당하고 있다는 점.
“…아하.”
이거 그거네. 이제 막 문양이 발현된 새내기한테 사기 계약하는 거.
“너 뭐야.”
꽤 실력이 됐던 모양인지 A급 헌터를 겁박하던 헌터들 중 한 명이 기척 없이 다가간 나를 단숨에 눈치챘다. 하긴 이것도 눈치 못 채면 저런 양아치 짓도 못 하겠지.
“야, 저거 한지언 아니냐?”
“한지언이 왜 여기 있어!”
“차림새 보니까 그냥 지나가던 길 같은데. 아, 씨……. 운도 지지리도 없네.”
사람들을 훑어보다 보니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뿐히 걸어가 종이를 주워 읽자 누가 봐도 계약해 봐야 이득이 없는 계약서였다.
‘증거도 확실하고.’
나는 계약서를 적당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사기를 당할 뻔한 A급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사기꾼 짓을 하면서 이렇게 티를 내는 멍청이들이 있을 줄이야.”
이런 일을 잘 안 해서 내가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저쪽이 멍청한 거겠지. 길드가 밀집해 있는 곳, 그것도 대낮에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멍청하지 않은가. 음.
“응?”
그 멍청한 것들에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이것들, 아직도 도망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나.’
내가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고 있자 A급을 겁박하던 헌터들이 무언가 확신에 찬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설마 이것 때문인가.’
나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다. 노란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벌집무늬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무력화 능력인가?’
내가 아무런 반응도 안 하는 걸 보고 이게 통한다고 생각한 건가.
‘통하긴 통하는데…….’
이 무력화 능력은, 공격 능력만 무력화시키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종합 능력치, 힘이나 속도는 그대로라는 말이었다.
‘등급이 차이가 심하면 이렇게 하자가 생겼던가. 공격 능력은… 사용은 할 수 있네. 차이가 얼마나 나면 이러냐.’
지익. 바닥에 깔린 모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보아하니 덤벼들 생각인가 본데.
“오.”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온갖 능력들이 나에게 쏘아져 왔다.
퍼벙! 옆으로 피하자 민간인들이 있는 곳까지 피해가 갔다.
“아. 맞다.”
“뭐야. 무력화된 거 맞아? 저걸 피해?”
빨리 끝내야겠다 싶어 나는 바닥에 깔린 모래를 한 줌 잡아 쥐었다.
그때 이번엔 헌터들이 직접 나에게 달려들었다. 저 속도로 도망치면 어디가 덧나나.
휘익! 손아귀에 있던 모래를 세게 던지자 헌터들의 피부가 모래에 긁히며 상처가 났다.
“미친! 뭐야, 방금!”
헌터들이 잠시 주춤하던 찰나 나는 나는 듯이 몸을 던져 그대로 그들을 제압했다. 그러고는 금방 끝난 싱거운 싸움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디 보자. 협회 전화번호가…….’
내가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겁박당하던 A급 헌터가 부리나케 일어나 도망쳤다.
“깜짝이야.”
그러나 그는 도망을 시도했던 것이 무색하게 바로 잡혔다.
“도망 안 치셔도 돼요. 그쪽이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이, 이거 놔!”
“예?”
뜬금없는 말에 툭 손을 놓자 A급 헌터가 힘없이 쓰러졌다.
“악!”
“아, 죄송……. 어?”
순간 보인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내 주변에 탈색한 사람이 있던가?’
나는 A급 헌터의 얼굴을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일으켜 주는 척 그의 고개를 휙 올렸다.
“…아아.”
왜 그리 얼굴을 숨겼는지 알겠다.
툭. 나는 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바들바들 떠는 샛노란 뒤통수를 보며 물었다.
“마허윤?”
“……!”
게이트가 처음 생겼던 날, 날 버리고 부리나케 도망쳤던 놈.
‘얘가 헌터가 됐었구나.’
내가 이름을 부르자 마허윤의 몸이 흠칫 떨렸다.
“뭘 그렇게 떨어?”
A급이나 됐으면서 왜 저렇게 겁을 먹고……. 아, 혹시.
“너 문양 발현 신고 안 했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허윤의 몸이 또다시 흠칫 떨렸다.
“허.”
어쩐지 빛만 번쩍이고 자기보다 약한 헌터들도 상대를 못 하더라.
“언제 발현됐는데.”
“…일주일 전.”
“오늘이 딱 일주일째면 촉박하네. 오늘 안에 신고해야 하니까. 가서 빨리 신고하고 등급 확인받아.”
“…내가 알아서 해.”
“그래, 네가 알아서 해라.”
“뭐?”
“뭐가.”
“…아니야.”
마허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의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움직일 때마다 마허윤의 몸이 흠칫 떨리는 게 보였다.
‘그나저나 마허윤이… A급 문양 발현자였다고.’
꽤 좋은 정보였다. 그도 그럴 게 그간의 회차에선 마허윤이 없었으니까.
A급 헌터가 많은 것도 아니니, 마허윤이 A급이 됐다는 걸 알았으면 헌터에 빠삭한 친구가 바로 나에게 말했을 터였다. 하물며 마허윤이라는 사람 자체를 알았으니 더욱.
그 친구가 몰랐다는 건… 마허윤은, 그간 여기서 사기 계약을 당하고 조용히 죽거나 다른 나라로 간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이득 봤네.’
하나가 바뀌니 열이 바뀌는 건지, 무언가 새로운 일이 계속 터졌다.
“마허윤.”
“…….”
“너 나한테 미안한 감정은 있냐?”
“그거야 당연한……!”
“그러냐.”
마허윤은 성깔이 어디 가진 않는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긴 해도 죄의식은 있는 모양이었다.
“뭐… 나도 그땐 화나긴 했는데, 그땐 너나 나나 피하기에 급급한 상황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뭐?”
“너도 살려고 도망친 거잖아. 그러니까 상관없다고. 게다가 미안한 감정도 있다며. 그러니까 됐어.”
마허윤이 입을 벙긋거렸다. 나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협회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A급을 놓치기는 그렇지.’
이후 마허윤과 다른 헌터들은 협회에서 온 헌터들에 의해 협회로 이송됐다.
“마저 순찰이나―”
우웅! 그때 휴대폰이 억세게 진동했다. 진동의 원인을 누르자 익숙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혹시 어디세요?
지화연 씨였다. 어디냐는 물음에 나는 내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려 주었다.
―거기서 기다리실래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그로부터 10분쯤 흘렀을까. 익숙한 차량이 눈앞에 나타났다. 차 안에는 운전기사뿐이었지만, 지화연 씨가 보낸 차량인 건 확실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운전기사에게 짧게 인사 후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이동한 건 당연하게도 화진 길드였다.
“아. 오셨네요.”
응접실에는 지화연 씨 말고도 다른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형?”
“…….”
소파에 앉은 형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삐뚜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뭔데.
“이렇게 모이는 건 두 번째죠, 아마.”
“무슨 용건이신가요?”
띡. 거대한 스크린에 익숙한 모습이 띄워졌다. 알록달록한 색을 띠는 탑이었다. 이걸 띄운다는 거는…….
“한지언 씨 의견도 물어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의견을…….”
“미국 가실래요?”
“예?”
“지화연 헌터.”
형이 화난 듯한 목소리로 지화연 씨를 불렀지만 지화연 씨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연히 설명할 거예요.”
지화연 씨가 팔을 뻗으며 형이 앉아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나는 당황한 기색으로 일단 소파에 앉아 지화연 씨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지화연 씨가 입을 열었다.
“우선 탑이 세 개가 생겨난 건 한지언 씨도 알고 계실 거예요. 그중 미국의 탑이 가장 먼저 열렸고.”
“예에.”
“제가 거기에 가게 됐어요. 그다음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물로 된 탑은 승현 헌터가, 거꾸로 된 탑은 류천화 헌터가 가기로 했고요.”
“…저, 혹시 절 부른 이유가…….”
지화연 씨가 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국에 가겠냐는 건 이 탑을 뜻하는 거였어요. 저 혼자서 가도 되긴 하지만 대― 아니, 높으신 분들께서 미국에 친밀함을 어필해야 하느니 뭐라느니 하셔서 S급 최소 두 명은 가게 됐거든요.”
“근데 왜 저를…….”
“그래서 거기 앉아 계신 한지운 헌터와 가기로 했는데… 한지운 헌터가 제 말을 잘 안 들을 것 같아서요.”
“네?”
“저희만 가는 건 아니에요. 참여를 신청한 헌터들 중 실력이 되는 헌터들을 따로 뽑아서 같이 이동할 거예요.”
“아뇨, 아뇨. 그 전에, 형이 말을 안 들을 것 같아서 저도 낀다고요?”
“네.”
아니, 끼워 주는 건 고맙다만, 정녕 저게 이유라고? 누가 봐도 쌩거짓말이잖아. 내가 간다고 형이 말을 들을 리가 없고, 그렇다고 내가 말을 들을 거라는 확신도 없을 텐데.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말을 아끼는 게 낫겠지.’
말을 해 봤자 되레 불이익만 불러올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가는 게 취소가 될 수도 있으니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나았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있자, 무언가 짜증이 난 형이 입을 열었다.
“제가 말을 안 듣는데 왜 지언이를 데려갑니까.”
“그럼 잠자코 제 말 들으실 거예요?”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어지간해선 듣겠죠.”
“확신할 수 없으니까 이러는 거예요. 저번에도 같이 S급 던전 돌다가 혼자서 보스를 처리하셨잖아요?”
“그건… 결과적으로 빠르게 클리어했으니 다행인 거 아닙니까?”
“저희 팀원 실력 좀 키우라고 들어간 것도 있는데 그걸 홀라당 혼자서 클리어해 버리셨잖아요. 훈련 목적으로 간 거라고 말도 했었는데 말이죠. 업보라고 생각하세요.”
꽈득. 형의 손이 놓인 소파의 팔 거치대가 힘없이 터져 나갔다. 오. 꽤 화났나 본데. 나는 터진 소파를 애도했다.
그러던 와중, 지화연 씨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오려나…….”
“네? 누가 또 와요?”
“아, 류천화 헌터가 본인의 길드에서 A급 헌터 한 명을 함께 데리고 가라고 하셔서요.”
“아아.”
온연 길드의 A급 헌터라면 어지간해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 터. 하나같이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니 별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냥 도움이 되는 사람이 많으면 좋지, 이 정도.
“마침 근처라 오늘 브리핑을―”
지화연 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컥, 응접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포근한 느낌의 검은 머리칼에, 끝부분이 파도처럼 웨이브 진 질끈 묶은 포니테일. 시원시원해 보이는 외모의 여자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잠만.
“누구세요?”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