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놀라서? 아니.
‘미친 자식이.’
나는 어느새 블랙홀의 뒤로 가 놈의 심장을 꿰뚫은 형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곤 쾅! 형을 붙잡고 넘어져 블랙홀에게서 형의 칼을 빼냈다.
넘어져서도 나는 시선을 곧장 블랙홀로 향했다. 검에 박혔던 보석이 스스로 떨어져 복구되더니 블랙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나는 형의 멱살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미쳤어? 저게 뭔 줄 알고 건드려!”
“…뭔지 아니까 건드린 거야.”
“헛소리하지 마! 저건 감당…….”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혀를 차며 형의 멱살을 놓았다. 말해 봤자 뭔 소용이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며 주워 담을 수 없게 됐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
재생하는 듯한 블랙홀을 향해 다른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공격들은 블랙홀에게 닿지도 못하고 녹아내렸다.
블랙홀의 머리 위로 꽤 큰 링이 생겨났다. 그 링에 주렁주렁 달린 보석들이 짤랑거렸다. 잘 싸우던 헌터들이 블랙홀의 공격에 맞고 갑자기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한 방 한 방이 치명타였다.
진화.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야 죽인 줄 알았더니 금세 더 강해진 채 재생하는데, 그게 진화가 아니면 무얼까.
형이 입을 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 한 방만 노리면 돼.”
“지금 그걸 작전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변화는 3차까지 있어. 지금은 2차고. 2차의 약점은 저 링이야. 저 링만 부수면 바로 3차로 돌입해. 그리고 3차는…….”
쾅! 블랙홀이 형을 공격해 와 형과의 거리가 벌려졌다.
―너였지? 음, 그래. 너구나. 우리 제트리스 님을 귀찮게 한 새끼가.
매서운 손톱이 땅을 긁어내며 형을 공격해 왔다. 여기까지 오며 힘을 소진한 형이 조금 버겁게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짜증이 뇌를 절여 왔다.
‘제대로 느껴 보지 못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겁 없이 덤비는 거지.’
형은 저것의 힘을 ‘실제’로 느껴 본 적 없으니 모를 것이었다. 저게 스치기만 해도 얼마나 위험한지. 저것이 몇천의 사람을 죽였는지. 저것이…….
“한지언 씨?”
“네?”
“혹시 몸에 이상이 있나요? 넋을 놓으시는 것 같길래.”
“아뇨, 그건 아니고, 형이 저것의 약점이 링이라고 해서…….”
“그래요? 근데 왜 그리 멍을 때려요?”
“…무작정 덤비면 위험하잖아요. 저게 부순다고 부서질지도 의문인데.”
“음?”
지화연 씨가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왜 그러냐 묻자, 냉정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시도도 안 하면 제자리걸음이잖아요?”
“…….”
그야 나는 시도를 해 봤으니까…….
“그 과정에서 누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하는 게…….”
“헌터에게 안전이 어디 있어요. 싸워서 이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일단 싸우고 봐야죠. 뭘 해 보기도 전부터 겁부터 먹다니 좀… 예상외네요.”
“…예상외라고요?”
“제가 한지언 씨를 데리고 온 이유가 한지운 헌터 때문이라고 했죠? 사실 그거 거짓말이에요.”
“네?”
그럴 거 같긴 했는데, 갑자기?
“한지언 씨는 이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단편적인 모습만 봐서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제 직감을 꽤 믿거든요.”
그러며 지화연 씨가 제 머리를 꾹꾹 눌렀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건가?
“뭐, 그것 말고도 눈치도 빠른 것 같고, 상황 대처 능력도 나쁘지 않고, 헌터로서의 자질이 충분해서 데려왔어요. 적어도 발목을 잡진 않겠구나, 싶어서. 그런데 지금의 한지언 씨는 그간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네요.”
“…….”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저것과 싸워 봤고, 져 봤고, 이겨 봤다.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험악한지, 얼마나 큰 희생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 희생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비축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포션과 아이템을 사용해야 하는지도.
아마 내가, 여기서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소설인지 뭔지 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형보다, 내가 더…….
“…….”
“뭐… 어찌 됐건 한지언 씨는 아까 일로 힘이 부족한 것 같으시니 대피해 계셔도 괜찮아요. 적어도 발목을 잡진 말아 주세요?”
지화연 씨가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
과거는 과거다. 그 생각을 매번 되풀이하면서, 왜 또 과거를 생각하고 있지? 아니, 과거의 경험도 경험이니까.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니까…….
“…경험이 꼭 중요했던가.”
과거를 안다면서 중요한 걸 놓쳤다. 과거의 형은, 경험이 없어도 역경을 잘 헤쳐 나갔다. 그리고 지금의 형도, 소설이라는 정보만 가지고도 잘만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나조차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지금껏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살렸다.
그럼에도 나는 형을…….
‘믿지 않았어.’
쿠웅. 헌터들 수십이 날아갔다. 그 가운데 형은 고통을 버텨 내며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어차피 노력해도 형만큼 강해질 수 없으니까… 뒤에서 떠받쳐 주는 식으로…….
…그만하자. 이건 그냥 자기 합리화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예전에는… 나도…….
나는 흐리멍덩한 시선을 형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지화연 씨를 보고, 해나 씨도 봤다. 이어 박우윤과 윤시아, 에단 씨에게도 시선을 뒀다. 모두 싸우고 있었다. 가능한지 아닌지도 제대로 모른 채, 일단 싸우고 보고 있었다.
챙그랑! 링이 부서졌다. 모두가 기쁨에 취하기도 잠시, 거대한 링이 블랙홀의 뒤에서 나타났다. 마치 시계태엽 같은 것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블랙홀이 포효했다.
그 포효에 여럿이 날아가 피투성이인 채 굴렀다. 그런데도 형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길게 찢어지는 상처에도, 깊게 파이는 고통에도 자리를 지켜 냈다.
“…….”
문득 궁금해졌다. 형은 왜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건지. 어차피 형에겐 ‘소설’일 텐데.
“…….”
그걸 묻기 위해선, 살아 있어야 했다. 형도, 나도.
나는 인벤토리에 있던 모든 마석을 꺼냈다. 손아귀에 다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많은 마석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떨어진 마석들을 무심하게 밟으며 기력을 흡수했다. 손아귀에 있는 마석도 흡수했다.
잡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 기력이 동난 게 느껴졌다. 직접 구한 걸로도 모자라 구매한 마석들까지 모조리 사용했음에도 기력은 쉽게 차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몸에 희게 빛나는 문양이 떠올랐다. 낫 역시 새하얗게 빛났다.
텅! 바닥을 박차 블랙홀의 뒤로 향했다. 그러곤 낫을 휘두르자 블랙홀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나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 형을 향해 외쳤다.
“계획!”
“…뒤에 있는 태엽이 약점이야!”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물었다. 형을 믿기 위해. 내가 아는 것일수록, 정확할수록, 믿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금세 머리가 붙은 블랙홀을 다시 공격했다. 키기긱! 태엽에 낫이 닿지 못하고 무언가에 가로막혀 대치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태엽을 내려치자, 몸이 무언가에 부딪쳐 날아갔다. 나는 곧장 일어나 싸움에 동참했다.
형이 시계태엽을 공격했지만, 블랙홀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더.’
피부가 뜯겨 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시야로 핏방울이 흩날렸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는지 공격이 벌써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맞겠구나 싶어 대비하자, 지화연 씨가 대신 맞아 나가떨어졌다.
“지화연―”
“싸움에 집중해요! 이딴 하찮은 공격은 안 통하니까!”
그러곤 지화연 씨는 찢어진 배를 짓누르며 흐르는 피를 이용해 더 강한 공격을 퍼부었다. 블랙홀에게서 쏘아진 검은 액체가 지화연 씨의 몸에 퍼지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피에 의해 떨어져 나갔다.
지화연 씨는 포션을 이용해 상처를 치료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겠지. 포션으로 치료하면 저렇게 강대한 공격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지화연 씨가 블랙홀의 몸을 묶어 행동에 제한을 주었다. 그 덕에 틈이 생겨나는 듯했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몇 번이고 블랙홀을 공격했다. 해나 씨와 박우윤, 윤시아, 그리고 다른 헌터들도 몇 번이고 공격을 가했다.
틈이 보였다.
‘더.’
쾅! 나는 흔들리는 다리를 땅에 박아 넣었다. 그러곤 기력을 바닥까지 긁어모은 후, 극심히 몰려오는 피로를 뒤로하고 블랙홀에게 능력을 처박았다.
챙그랑! 투명한 무언가가 조각조각 났다. 방어막이 깨진 지금이 기회였다.
“형!”
나는 반사적으로 형을 불렀다. 형이 대비한 듯 재빠르게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콰장창. 시계태엽이 느리게 조각났다. 블랙홀이 커헉 하며 고통의 기침을 내뱉었다. 시계태엽이 완전히 바스러져 형태도 없이 사라졌고, 풀썩 주저앉은 블랙홀이 절규하며 몸부림쳤다.
―아아. 안 돼. 나는, 나는 제트리스 님의, 제트리스 님의 충실한 대리인……. 아아. 제트리스 님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내가, 내가 제트리스 님의 명예를 실추시켰어. 아아아, 안―
서걱. 나는 낫을 가볍게 휘둘러 블랙홀의 목을 잘라 냈다. 더 들어 봤자 귀만 썩는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떨어진 블랙홀의 머리를 발로 찼다가, 훅, 등부터 바닥으로 넘어졌다.
“지언아?”
“…괜찮아. 그나저나, 아직 안 끝난 거일 수도 있어.”
형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형과 같은 곳을 바라봤다.
검은 하늘, 하얀 눈이 흥미를 잃은 듯 턱을 괴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몬스터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동시에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띄워졌다.
[몰살일 줄 알았는데. 너무 약하게 설정했나 봐. 중간부터 재미가 없더라.] [뭐, 그래도 나쁘지 않아. 그야 너희, 이제 별로 안 남았잖아?]말을 할 생각도 없는지, 탑주는 이제 글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다는 건, 역시나 하얀 눈의 거대 몬스터가 탑주인 모양이었다.
탑주의 말대로 방금 전의 싸움 때문에 이젠 사람이 몇 남지 않게 됐다. 기껏해야 서른 명 정도. 영지전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예순 명은 남아 있었다. 처음엔 몇백은 됐고.
[내 생각을 다 빗나갔어. 어쩜 이렇게 작은 존재들이 이리도 끔찍한 짓만 골라서 하는 걸까?] [내 예상대로만 해 줬다면, 지금쯤 많이 살아남았을 텐데.]그런 놈이 처음부터 반절을 죽이려 했어? 오히려 더 많이 살아남았거든요.
[덕분에 흥미가 다 식었어. 아아, 재미없어. 바로 마지막 층으로 가렴. 대신 그 전에 시간을 많이 줄 테니까, 편히 쉬다 와. 마지막이니까?] [아, 하나 덧붙이자면, 아까 탈락한 사람들이 밖으로 내보내지지 않은 건, 게임을 연속적으로 진행해서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탈락했는데 아무런 벌칙도 없는 건 역시 재미없어서 말이지~] [그럼 나중에 부르면 와?]그러며 하얀 눈이 반으로 접혀 웃었다가 사라졌다. 하늘은 언제 무너져 있었냐는 듯 분홍빛으로 변했으며, 널브러져 있던 블랙홀의 시체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하나 전과 다른 점이 생겼는데, 그건 다름 아닌…….
“호텔?”
깔끔한 보금자리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편히 쉬라는 게 정말 편히 쉬라는 뜻이었나.
몇몇 헌터들이 포근한 잠자리의 유혹에 못 이겨 호텔로 들어갔다. 나 역시 일단은 호텔로 들어가려던 찰나, 모든 기력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렇게 꼬박 며칠을 쉬게 됐다. 탑주가 우릴 부르지 않았고, 텅 빈 대기장에선 할 것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이벤트라고 할 만한 건 몇몇 헌터들의 싸움 정도.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홀로그램 창이 띄워졌다.
[마지막 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