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70
70화
갑작스레 정해진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두 번째 경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뒤늦게 움직인 거라 볼 수 있었다.
뒤바뀐 던전. 우리와 같은 외형을 취하고 있는 것들. 그것이, 우리에게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첫 번째 탑에 들어가 클리어했던 사람 중 던전에 들어간 모든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개중에는 큰 피해를 본 헌터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리 조용하게 가기 있나.’
뉴스에도 뒤늦게 떴다. 두 번째로 들어가는 탑은 하늘에 떠 있었기에, 나라별로 차례차례 헬기를 이용해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의 순서가 꽤 앞이라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고.
참고로 이번에 참여하는 A급 헌터는 지극히 적었다. 끽해야 네다섯 명 정도.
‘그나저나 클리어 가능하려나.’
지금의 형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두 번째 탑은 형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아니, ‘사람’이라면 애초에 누구나 두 번째 탑을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걸 알면서도 들어간 거겠지.’
첫 번째 탑에서처럼 실수만 안 하면 좋겠다만.
‘신경 써 봤자지만.’
두 번째 탑 공략은 이미 시작됐다. 내가 낄 곳은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두 번째 탑을 신경 쓸 바에야 어떻게 해야 세 번째 탑에 갈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는 게 나았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두 번째 탑의 공략이 진행되는 동안의 바깥은, 예상과 달리 고요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생겨나는 던전들마다 모두 얌전했으며, S급 던전은 생길까 말까 하는 지경이었다.
“첫 번째 탑 클리어 때도 이랬나요?”
“그때 당시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잦게 일어났고요.”
“지금이랑은 극과 극이네요.”
승현 헌터와 함께 근처에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 현상을 처리하고, 주변 건물이 수복되는 걸 지켜보았다. 오래간만에 일어난 브레이크였지만 피해는 작았다. 끽해야 가로등이 부서지고 땅에 금이 간 정도.
승현 헌터가 빠르게 수복되는 현장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유아한 헌터가 탑에 들어갔기에 최대한 인명 피해가 나지 않도록 막을 생각이었습니다만, 현재 상황을 보니 유아한 헌터를 보낸 것이 다행인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 옆에서 리플 길드원이 다가와 유주한의 던전 공략이 종료됐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 일 이후, 유주한은 멀쩡했다. 유아한 씨와 싸운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멀쩡해 보였다. 평범히 던전을 돌고, 성장을 했다.
나이 때문에 S급 던전을 돌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데, 자신이 S급 던전을 돌 수 있는 때가 와도 돌 S급 던전이 없어 못 도는 거 아니냐는 말도 했었다.
“경관이 많이 정리된 것 같으니 전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며 자리를 떴다. 물론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건 아녔다.
현재 내 일은, 헌터를 잡는 것이었다. 말이 그렇지, 그냥 순찰이었다.
잠잠해진 현 상황. 내가 돌 만한 던전은 없었다. A급 던전을 돌 수는 있겠지만, 이 역시 수가 적어 다른 길드들이 전부 독차지했다.
애초에 내가 길드들과 협력을 맺은 건, 인력이 부족할 때 땜빵을 하려는 거였다. 다시 말해 던전의 수가 적은 지금, 길드들에서 굳이 내게 던전을 돌라고 요청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만약 던전을 돌고 싶다면 직접 매입해야 했다. 다만 당장 매입할 수 있는 던전은 전부 등급이 낮았다.
물론 굳이 돌 생각은 없지만. 별 소득도 없는 거 돌아봤자 몸만 상한다.
게다가 탑이 나타나며 탑을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 난리를 쳐 대고 던전이 적다는 핑계로 밖에서 날뛰는 헌터도 여럿 있었기에 비교적 한가한 내가 순찰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하나 있으니까.’
중요한 일. 어쩌면 내가 탑에 들어가지 못한 건 이 일을 위해서일 수도 있었다.
미리 준비하려고 계속 길을 걷던 중, 저 멀리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상대가 이내 나를 알아본 듯,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만나네요.”
“그러게.”
짙은 나무와 같은 머리칼에, 삼백안. 강희민이었다. 얘도 할 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인사를 나눈 강희민이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 허공을 쳐다보다, 이윽고 다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침 형이랑 나누고 싶은 대화가 있었는데… 혹시 지금 시간 되세요?”
“어……. 안 될 건 없지.”
시간은 남았으니 대화 정도야.
나는 인근 카페로 가 간단한 음료를 테이크아웃한 뒤 강희민에게 건넸다. 직후 공원 벤치로 가 앉았다.
벤치에 앉고서도 강희민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의아해 고개를 돌리자, 강희민은 차가운 음료에 의해 컵에 서린 물방울을 만지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하는 모습에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아! 그, 그게 말이죠.”
강희민이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그는 이내 한숨을 쉬고는 겨우 입을 열었다.
“윤시아 씨… 말인데요.”
“윤시아 헌터?”
“그……. 네.”
“왜? 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팀과 던전을 돈 건, 요릴리아 이후로는 없었는데. 그 뒤에 내가 모르는 다른 일이 있었나?
“혹시 지금 뭐 하시는지 아세요?”
“윤시아 헌터가?”
“네.”
“…뭐를?”
“그러니까, 던전 공략 중이라거나, 산책 중이라거나, 뭐 그런…….”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온연 길드에 문의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네.”
강희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희민이가 윤시아 한테 호감이 생겼나?’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나누고, 사랑과 이별하는 이들이야 회귀하면서 질리도록 보았다. 그러나 그중에 강희민은 존재하지 않았거늘, 설마 그 상대가…….
‘윤시아…를?’
윤시아. 눈치도 빠르고 실력도 좋은 인재였다. 나 역시 마음에 드는 인물이고.
물론, 어디까지나 헌터로서의 얘기였다. 사람으로선 글쎄. 갑자기 튀어나온 인물이라 잘 모르겠다. 사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강한 인물이 어째서 이변이 활개 하는 이번 회차에 나타난 것일까 싶어 의심이 더 커졌다.
강희민이 무어라 말하고 싶은 듯, 시선을 굴리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나 끝내 말을 잇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말을 잇지 못하는 강희민을 대신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희민아. 설마 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 너 윤시아―”
“생각하시는 게 맞을 거예요.”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희민이 인정했다. 그 모습에 더욱 아리송했다. 이렇게 금방 인정한다는 건, 그만큼 빠져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언제부터?”
“그, 사막에서 사라졌을 때, 저희는 숲속으로 이동됐다고 했던 거 기억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요릴리아 사태 때 사라진 세 사람은 숲속으로 먼저 이동됐었다. 그리고 요릴리아를 만나, 전투에서 패했고. 그게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들이 쓰러져 있던 이유였다.
“그때… 제가 위험에 처하니까 윤시아 씨가 앞에서 공격을 막아 주셨을 때…일 거예요.”
“…되게 금세 빠지는 성격이구나, 너.”
강희민이 멋쩍게 웃으며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혹시 팀 내 연애 금지, 막 이런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닌데…….”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자신이 위험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가 멋지게 튀어나와 구해 준다면, 그래, 반할 수는 있지. 다만 그때 생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이냐가 문제였다. 혹여 고마워하는 마음과 선망을 헷갈려서 연애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일단 하나 짚고 가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뭔데요?”
“네가 뭔가를 헷갈리는 걸 수도 있어서.”
“헷갈리다뇨?”
“그때 생긴 감정이 호감인지, 아니면 팬심인지 말이야. 멋있게 널 구해 준 모습에 반한 거면 후자일 가능성이 크니까.”
“아뇨. 호감이에요.”
“진심이야?”
“네.”
“헷갈린 걸 수도 있잖아?”
“아뇨, 진짜예요!”
“연애 안 해 봤잖아, 너.”
“…왜 갑자기 폭력을 휘두르세요? 그리고 짝사랑은… 나름 많이 했어요.”
나는 살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희민이 이리 확고히 의사를 표명하는 건 처음이었다. 뭐든 형 생각이 맞을 거예요! 어, 잘 모르겠어요, 하며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르던 사람이었거늘.
아니, 강희민이 나와 만나기 전에 연애를 한 적이 있었나? 이번 회차 전에는, 원래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만났던 인물인지라 그사이의 일은 나도 잘 몰랐다. 단순히 내가 몰랐던 것이었을 수도 있지. 이맘때쯤 강희민이 사랑에 빠지는 게 당연한 운명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강희민이 저 연애했었어요! 라고 한 적은 없었다. 연애하는 듯한 행동도 안 했고. 사귀었다 헤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내 눈앞의 강희민이 하는 얘기는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었다. 뭐가 어찌 됐건 말릴 생각은 없다만.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네?”
“뭐, 고백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거.”
“예? 무슨 한 번밖에 안 만난 사람한테 고백을 해요.”
“한 번밖에 안 만난 사람에게 반하는 건 퍽이나 말이 되겠다.”
“그…거랑은 다르죠! 사람의 첫인상은 3초 만에 결정된다잖아요!”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윤시아 헌터를 좋아한다. 끝?”
“아뇨……. 그건 아니고, 그…….”
강희민이 또다시 시선을 굴렸다. 그 모습이 어느새 익숙해져, 나는 가만히 말을 기다리며 손에 쥔 플라스틱 컵을 매만졌다. 얼음이 녹고, 겉면에 맺힌 물방울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실 뭔가를 물어보려 했는데요. 생각을 해 보니 아직은 지켜보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그럼 상담은 필요 없다는 거?”
“그건 아니고, 그, 호감 표시는 하고 싶어서…….”
“호감 표시?”
던전을 돌려고 만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표시한다라. 몬스터의 목을 잘라 건네라 하면 욕먹겠지.
“별거 없어. 그냥 네가 느끼는 그대로 표현해.”
“느끼는 그대로라뇨?”
“윤시아 헌터 만나면 뭐 하고 싶어?”
“…대화?”
“그래. 그거 해.”
“그게 끝이에요?”
“갑자기 호감을 표시하면 오히려 그게 더 부담스러울걸.”
“그건… 그렇네요.”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다가가, 천천히.”
“…네.”
컵에 담긴 얼음이 전부 녹아내렸다. 진했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연해진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이게 운명, 그런 건가.’
만약 강희민이 전 회차에서 연애를 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있다면, 강희민이 이번 회차에 처음 나타난 윤시아에게 반한 게 퍽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입장에서는 강희민이 윤시아가 나타나길 기다린 것만 같았으니.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거겠지.’
말을 하며 목이 탄지 음료를 몇 번이고 마셨던 강희민과 달리 음료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내 컵에는 아직도 커피가 가득했다. 얼음이 녹아 커피 양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했다.
강희민을 슬쩍 바라봤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강희민은 앵무새 같았다.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배운 대로만 말하는 앵무새 말이다. 그런 강희민이 제 뜻대로 움직이고 말한 건, 내가 아는 한 그의 생에서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어떤 회차에서든, 멸망이 도래한 날, 내가 부상을 입었건 안 입었건, 공격을 대신 맞아 죽었을 때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몇 번을, 몇십 번을, 몇백 번을 계속해 왔다.
수없이 회차를 반복하며 내가 느낀 것 중 하나는, 사람이 죽을 때는 정해져 있다는 거였다. 이따금 다른 타이밍에 죽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다. 강희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강희민이 새로운 운명을 따르기라도 한 건지.
‘…기쁜 일이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참 많은 일이 일어나는구나 싶기도 했다.
물맛만 가득한 음료를 삼키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강희민을 응원했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