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5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5화
네이슨 자작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황궁 회의가 끝난 뒤 암브로시아 공작과 잠시 동안 독대를 했었다.
‘내 아드님의 어디가 네이슨 영식의 자비를 필요로 했는지 자작의 입으로 듣고 싶군.’
암브로시아 공작의 창끝이 너무나 선명하게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황제의 마음을 붙들어 두었던 1황자가 실각했으니 남은 후보는 이제 둘. 이런 상황에서 2황자에겐 암브로시아의 힘과 지지가 누구보다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암브로시아의 분노를 산 네이슨 자작은 2황자에게 필요치 않은 인물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그대는 그간 내게 충실한 개였지. 내가 그대를 퍽 귀엽게 여겼다는 건 자작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거야.”
“황자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는 정말……, 말로 다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황자님 제발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시면!”
네이슨 자작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납작 엎드렸다.
제 아들에 대한 원망도,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보내 놓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지금은 집어넣었다.
일단 2황자의 곁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니 나의 충실한 개로서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바칠 수 있는 충정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네.”
“예, 예……, 황자님!”
2황자는 무릎을 꿇고 있는 네이슨 자작의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곤 희미한 희망으로 번뜩이는 눈을 보며 물었다.
“암브로시아 공작을 달랠 만한 선물을 주어야겠는데, 무엇이 좋을까?”
2황자의 물음에 네이슨 자작의 머리가 아주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그와 그의 가문의 운명이 결정되리라.
“머, 머스튼……. 머스튼 영지의 다이아몬드 광산에 암브로시아 상단이 입찰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음?”
“제가 책임을 지고 머스튼 영지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입찰해서 암브로시아 공작께 선물을…….”
“하!”
2황자의 입에서 허탈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네이슨 자작을 내려다보는 황금색 눈동자에는 한 줌의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자네의 멍청함이 좋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
“화, 황자 전하……!”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광산은 그저 푼돈이나 다름없다는 것조차 몰라?”
“하지만 머스튼 광산은 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암브로시아야, 자작. 암브로시아라는 이름을 생각해 봐.”
“…….”
네이슨 자작은 머스튼 광산을 얻으려면 전 재산은 물론이고 영지의 일부를 팔아넘겨야만 했다. 그마저도 빚을 질 것을 각오하고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암브로시아의 이름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가치한 것이라는 걸, 네이슨 자작은 치가 떨리게 깨달았다.
“그대 또한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 같으니 내가 알려 주도록 하지.”
2황자는 뒤를 돌아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들 중 가장 위쪽에 놓인 것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그것을 네이슨 자작의 머리 위에 던지듯이 뿌리며 말했다.
“모든 것을 그대가 끌어안고 가.”
“……황자님!”
“필요한 작업은 내가 이미 해 놓았어. 그것에 대해선 내게 따로 감사를 전할 필요는 없네.”
2황자는 그대로 네이슨 자작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뒤를 보좌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귓속말을 하였다.
“암브로시아 저택에 보낸 사람이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이쪽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만나 주지 않을 거랍니다.”
“……조치는 방금 취했으니 다시 사람을 보내.”
그렇게 말하며 떠나가는 2황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네이슨 자작은 주섬주섬 제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서류들을 끌어모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읽어 내리던 네이슨 자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
그 서류에는 1황자를 보필할 사람으로 네이슨 자작이 지목되었으며, 식솔들을 전부 끌고 가 1황자의 거처 바로 옆에 저택을 마련해 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네이슨 자작은 이제 영영 중앙 귀족으로 진출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을 잘못 키운 탓에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자작의 울부짖음이 2황자의 텅 빈 집무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
“2황자는 네이슨 자작을 버렸습니다.”
“쯧. 재미없게 됐어.”
제이드의 보고를 받으며 에단은 작게 혀를 찼다.
그의 손아귀에서 네이슨 자작을 떼어 놓은 것을 보니 2황자도 네이슨 자작을 퍽 아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쳐 낸 것을 보면 역시나 손속에 자비가 없었다.
“그리고 2황자 측에서 다시 사람을 보내 초대장을 전달해 왔습니다.”
“1황자를 밀어낸 자리에 둥지를 틀려는 파티를 굳이 빛내 줄 필요는 없지. 거절하도록 해.”
“아, 그런데…….”
일부러 말꼬리를 늘이는 제이드를 보며 에단이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가 그럼 더 있다는 건가.
“클로드 님께도 초대장이 왔습니다.”
“뭐?”
“사과의 의미라며 클로드 님을 초대했습니다.”
에단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고민에 잠겼다.
암브로시아 공작이 제 아들을 끔찍하게 아낀다는 소문이 돌면 네이슨 자작과 연관이 있는 2황자는 자연스럽게 그와 척을 지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클로드를 초대한 것이다.
“클로드 님 또래의 아이들도 전부 초대한 모양입니다. 새로운 놀이 상대를 찾기에 적합하지 않을까요.”
“……2황자께서 머리를 꽤 쓰셨군.”
네이슨 영식을 포함한 다른 자제들 또한 영 못 쓰게 되었지만, 클로드에게 사교 활동을 위한 또래 자제들과의 친분은 만들어 주어야 했다.
앞으로 클로드가 암브로시아 공작이 되어 정계를 이끌기 위한 포석이었다.
“지금 클로드는 뭘 하고 있지?”
“밀런 소백작님과 외출했다가 이제 막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클로드가, 웃고 있던가?”
“예. 아주 함박웃음을 달고 오셨답니다.”
에단은 안심한 듯 크게 숨을 내쉬며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아까부터 지끈거리던 머리의 통증이 이제야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
그동안 외면한 탓에 여태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뒤늦게 알아 버린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이에게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채워 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암브로시아의 힘으로부터 지켜 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렇게만 해 주면 클로드는 그와는 달리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휘겔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군.’
에단은 휘겔에게 닿지 못할 맹세를 홀로 하였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클로드를 지키겠노라고.
하지만 무언가를 지켜 본 적이 없어서, 지키는 법을 몰라서 에단은 이번에도 놓치고야 말았다.
‘형님은 제가 싫으신 거죠? 내가 암브로시아를 차지할까 봐서요? 그건 어머니의 뜻이지 제 뜻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잖아요.’
‘대체 아버지와 둘이서 뭘 하시는 건데요? 아버지와 독대하고 나면 형님은 항상 아프잖아요. 제발 제게도 그 짐을 나눠 주세요.’
‘형님의 곁에서 내가 사라지는 게 좋겠습니다. 그편이 형님도, 디엘린도 위하는 길이겠지요. 다신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암브로시아의 이름 또한 버리겠습니다.’
아버지에게서 휘겔을 지켰다고 생각했을 때, 휘겔을 잃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클로드를 잃을 뻔하였다.
“사라가 있어 주어서 다행이야.”
에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암브로시아의 힘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적막하게 어두운 길을 걷던 그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멋대로 다가온 사라에게 말이다.
그 해사하고 맑은 얼굴을 떠올리면 어지럽게 얽히던 속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밀런 소백작님이 대단하긴 하시죠. 클로드 님이 아직도 저를 경계하는 거 아십니까? 그런데 밀런 소백작님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그건 경의 잘못이 커.”
“예? 제가 뭘 했다고!”
“사라에게 좀 배우도록 해. 그녀가 배움이 부족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십니다.”
제이드는 시무룩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올라가던 에단의 입꼬리가 제이드가 건네준 보고서를 뒤로 넘길수록 천천히 일자로 굳어졌다.
“이 아이가 왜 지금 내 저택에 있는 거지?”
“밀런 소백작님이 클로드 님이 새로 사귄 친구라며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사라가?”
“예.”
에단이 들고 있는 보고서에는 아이가 암브로시아 저택에 왔을 때 입고 있던 후드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경.”
“예, 주군.”
“사라가 이 문양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3황자가 모든 힘을 다해 숨겨 놓았으니까요. 폐하께서도 모르고 계실 겁니다.”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마냥 신기해하는 제이드와 달리 에단은 운명을 믿지 않는 편에 속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이만 퇴궁하지.”
“예? 하지만 곧 폐하와 알현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특별히 부르신 건데요!”
“선약이 있어.”
“무슨 선약이요! 폐하와 독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선약이 어디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경도 그 자리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설마 그 밀런 소백작님이랑 한 약속 말이에요?”
“그래.”
제이드는 그제야 사라와 에단이 나눈 약속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라가 암브로시아에 들어온 이후로 이러저러한 일이 많다 보니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이었다.
“재밌는 시간이 될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