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4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4화
* * *
“다 울었어?”
“으응…….”
일렉사는 한참 울어 퉁퉁 부은 눈을 애써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드는 일렉사가 충분히 울 때까지 옆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그 모습에 마음의 문을 열었는지 일렉사는 어느새 클로드의 옷자락을 꽉 쥔 상태였다.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혼자 왔어?”
“응……. 집에 있기 싫어서 몰래 나왔어. 어차피 아빠도 안 오시는걸.”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면 안 돼?”
“안 돼. 다들 아빠는 바쁘니까 방해하면 안 된다고 했어.”
“맞아, 그건 그래. 아버지를 방해하면 안 돼.”
클로드는 일렉사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공통된 관심사가 있는지 아이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도 아버지한테 보고 싶다고 하는 게 무서워.”
“너는 왜?”
“그랬다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해.”
“으음……. 아빠가 싫어한다고? 어떻게 그래?”
일렉사는 아빠가 자식을 싫어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력에 욕심이 없는 3황자가 아이를 위해 황위 다툼에 뛰어들 만큼 일렉사는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일렉사는 클로드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그래. 우리 집은 그런가 봐.”
“그렇구나. 너도 힘들겠다, 클로드. 괜찮아?”
간단하기 그지없는 클로드의 설명에도 일렉사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클로드를 위로했다.
서로 위로를 건네는 상황이 참 풋풋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면서 반대로 저게 과연 여섯 살 난 아이들의 대화가 맞을까 싶어 씁쓸해졌다.
서로 묘하게 통하는 점이 있는 만큼 저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의 꽃’과는 달리 말이다.
“응, 나는 괜찮아! 유모가 있으니까!”
“클로드는 유모랑 사이가 좋은가 보다! 나는 유모가 무서워. 매일 나를 혼내는걸.”
일렉사는 진심으로 부럽다는 눈빛을 담아 클로드와 사라를 번갈아 보았다.
클로드는 마치 엄청나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아, 맞다! 여긴 사라, 내 유모야!”
“안녕, 사라…….”
클로드의 소개에 일렉사는 미약한 경계를 지우지 못한 채 인사를 건넸다.
조금 전 유모가 무섭다고 했던 일렉사는 유모라는 소리에 겁을 좀 집어먹은 듯했다.
“안녕하세요, 일렉사 님. 제가 클로드 님의 유모인 사라랍니다.”
사라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일렉사와 눈을 맞추며 상냥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클로드의 첫 친구가 되어 줄 것 같으니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기분이 많이 안 좋을 때는 단 걸 먹으면 조금 괜찮아지는데. 혹시 사탕 좋아하세요?”
“사, 사탕……?”
“네. 저한테 클로드 님이 들고 있는 사탕이랑 똑같은 게 하나 더 있거든요!”
“…….”
일렉사는 힐금 클로드의 손에 들려 있는 사탕을 바라보았다.
사라는 무서운데, 사탕은 먹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후후.”
그 모습이 퍽 귀엽다고 생각하며 사라는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사탕을 뿅 하고 만들어 냈다.
물론 사탕을 파는 노점상 주인은 또 허공에서 떨어지는 동전을 맞아야만 했지만 말이다.
“와!”
“짜잔, 맛있겠죠?”
사라는 일렉사가 거부할 틈도 없이 그의 작은 손에 큼지막한 사탕을 쥐여 주었다.
“……고마워, 사라.”
달달한 사탕을 먹으니 일렉사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사르르 풀렸다.
제아무리 경계를 해도 맛있는 것 하나에 금세 기분을 풀고 좋아하는 것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히히.”
일렉사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클로드 또한 덩달아서 웃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또래 친구와 오래 이야기를 하고 사탕을 함께 먹는 것도 처음이라 신이 난 모양이었다.
오늘 상대한 루스 네이븐 같은 자와는 달리 일렉사는 순수함이 뚝뚝 묻어 나오는 것이 클로드의 친구로 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두 아이가 은연중에 서로에게 끌려 한다는 점이 더욱 그랬다.
‘……클로드 님의 놀이 친구로 적당한 상대이려나.’
아무것도 모른 채 서로를 보며 웃는 아이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사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둠의 꽃’의 내용은 그렇다고 쳐도 지금 1황자의 빠른 실각으로 2황자와 3황자의 경쟁에 불이 붙은 시점이었다.
클로드와 일렉사가 친구가 되는 것은 2황자의 입장에서도, 3황자의 입장에서도 바라지 않는 만남일 것이다.
‘3황자 입장에서는 꼭꼭 숨겨 두었던 아이가 노출되는 게 부담스러울 거야. 2황자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으니까. 2황자 입장에서도 3황자와 암브로시아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게 달갑지 않을 테고.’
아이들의 우정에 어른의 속사정이 끼어드는 것은 굉장히 씁쓸한 일이었지만, 사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장 암브로시아 공작인 에단만 해도 그렇다.
클로드를 황위 다툼의 불씨로 만들 남자가 아니었다.
‘……더 이상 가까워지면 안 돼.’
클로드와 일렉사가 서로에게 은근히 끌려 하는 것이 사라의 눈에는 아주 잘 보였다.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자라 온 클로드처럼 일렉사도 엄중한 3황자의 보호 아래 분명 외롭게 성장해 왔을 것이다.
‘겨우 마음이 끌리는 친구를 만난 아이들을 억지로 떼어 놓는 유모 따위, 되고 싶지 않았는데.’
평범한 삶이 가장 좋은 것이다. 사라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쳤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가진 힘 때문에, 마탑이라는 존재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잠들어 있을 또 다른 자신 때문에.
그래서 클로드에게는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뛰노는 삶을 알려 주고 싶었다.
“…….”
어느새 또 둘이 사이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자 무언가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클로드의 인생에서 악역을 맡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으…….”
사라는 결국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괴로워했다.
“유모?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파?”
두 아기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사라를 바라보았다.
그 귀여운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을 때, 사라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일렉사 님, 클로드 님 집에 놀러 오지 않을래요?”
“응?”
난데없는 초대에 일렉사는 놀랐는지 멍하니 사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반대로 클로드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는데, 두 뺨에 혈색이 붉게 돌 정도였다.
“맞아! 우리 집에서 같이 놀자!”
“그, 그치만…….”
“사라가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다고 그랬어! 혼자 있으면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할 거야!”
“정말?”
“응, 사라는 거짓말 안 한다고 했어. 그치, 사라?”
사라는 자신을 쳐다보는 동그란 눈을 마주하며 뿌듯하게 허리에 양손을 가져다 댔다.
“물론이죠!”
호언장담하는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 당당한 목소리와 해맑은 얼굴에 일렉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 * *
최근 2황자의 기분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지긋지긋한 1황자를 저 멀리 알톤 영지에 처박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1황자가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오길 바란다는 뜻에서 주최하는 파티는 그의 승전 파티가 될 것이다.
그렇게 황위까지 나아가는 길에 거슬리는 것 따위는 다 치웠다고, 그는 생각했었다.
그의 충실한 심복 하나가 일을 전부 망쳐 버리려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연줄을 잡으라고 보내 놨더니, 그 줄을 끊어 먹는 걸로도 모자라서 아주 활활 태워 버렸군 그래.”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2황자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2황자의 곁을 지킨 네이슨 자작이 알아듣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분노가 흘러넘쳤다.
네이슨 자작은 여유를 잃은 얼굴로 황급히 변명했다.
“2, 2황자님……. 정말 억울합니다. 겨우 어린아이들의 사소한 다툼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사소한 다툼이라……. 네이슨 자작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물론, 우리 루스가 잘못한 점은 분명 있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들 아닙니까!”
이번 일을 겨우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으로 여기는 네이슨 자작의 말에 2황자는 답답함을 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저택으로 돌아온 영식과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들었는데, 그저 아들의 투정만 잔뜩 들어 주다가 온 모양새였다.
“자네 아들은 곧 사교계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하지 않았나?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해서 다 큰 성인이나 다를 바 없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그대가 아니었나 이 말이야.”
“그, 그건!”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네이슨 자작의 발치에 2황자는 두꺼운 보고서를 툭 하고 던졌다.
“자네 아들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암브로시아 공자를 괴롭혔는지 여기 이 보고서에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네.”
“……!”
“네이슨 영식이 겨우 여섯 살 난 아이가 뭐가 그리 밉다고 이런 짓을 저질렀겠나. 자작이 잘못 가르친 탓이야.”
보고서를 주워 든 네이슨 자작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손바닥에 가득 느껴지는 종이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듯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저택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개미 새끼가 똥을 쌌다는 얘기도 흘러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내 손에 이 보고서가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자작?”
“…….”
“암브로시아 공작이 일부러 흘린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