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3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43화
사라는 순간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눈을 비벼 보았다.
하지만 눈을 이리저리 비벼 보고 깜빡여 봐도 한번 보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유모, 쟤 엄청 슬픈가 봐. 막 울어.”
멀리서 보아도 후드를 쓴 아이가 펑펑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 몸집보다 훨씬 큰 후드가 자꾸만 흘러내리는데 그걸 추스를 생각도 못 하고 연신 눈만 비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소맷자락이 흥건히 젖어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클로드는 사방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홀로 남겨져 우는 아이가 신경 쓰이는지 자꾸만 가 보자고 재촉했다.
하지만 사라는 선뜻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저 후드에 새겨진 문양은 분명 어둠의 꽃에서 내가 묘사했던 것과 똑같아…….’
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라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태양을 그려 넣은 무늬 뒤에 태양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달을 새겨 넣은 문양.
‘어둠의 꽃’에서 남자 주인공이었던 클로드와 여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서브 남자 주인공 일렉사 드 크롬벨을 나타내는 문양이었다.
‘우리 클로드 님의 연적이잖아?’
박혜연이 본 미래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어둠의 꽃’에서는 존재하는 아이.
3황자 일레온 드 크롬벨이 숨겨 둔 사생아, 일렉사 드 크롬벨이 지금 사라와 클로드의 눈앞에 있었다.
“한번 가 보자, 응?”
그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지 클로드는 다시 한번 그녀를 재촉했다.
“……네, 한번 가 봐요.”
“응!”
사라는 결국 못 이기는 척 클로드의 손에 이끌려 갔다.
‘결국 엮일 인연은 이렇게 되는구나.’
일렉사 드 크롬벨은 ‘어둠의 꽃’에서 아주 뒤늦게 등장하는 존재였다.
남자 주인공 클로드 암브로시아가 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가다가 여자 주인공의 구원을 받았을 때.
황족들 또한 죽고 없어 무너져 가는 크롬벨 제국을 일으키기 위해 혜성처럼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제국을 재건하려는 여주인공을 돕던 클로드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었다.
“…….”
이렇게 박혜연이 본 미래에는 없지만 ‘어둠의 꽃’에서만 존재했던 인물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꽉 막혀 왔다.
사라는 제 손을 끌고 앞서 걸어가는 클로드의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클로드도 원래라면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어.’
복잡한 심경에 사라는 클로드와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둠의 꽃’을 써서 디엘린의 인생을 망쳐 버렸다. 아니, 디엘린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의 인생까지 망쳐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고 항상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어둠의 꽃을 쓰지 않아서 지금 클로드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과연 과거로 다시 돌아가면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선택을 할까?
“유모, 유모. 뭐라고 말을 걸면 좋지?”
“아?”
그녀가 상념에 잠겼던 사이 아이가 울고 있는 골목 앞까지 당도한 클로드가 사라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까 전엔 바깥에서도 보일 만한 곳에서 울고 있었지만 클로드와 사라가 다가가는 사이 아이는 골목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간 듯했다.
힐끔 보니 골목 안쪽 커다란 상자 뒤에 숨어 있었지만 튀어나온 쪼그마한 발이 보였다.
“흑흑, 흐윽…….”
시끄러운 시장 골목이었지만 그 틈 사이로 서러운 울음소리는 선명하게 새어 나왔다.
“어떡하지? 너무 슬픈가 봐.”
클로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클로드의 따뜻한 마음씨가 흐뭇하긴 했지만, 벌써부터 일렉사 드 크롬벨과 인연을 만들어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를 외면하고 그냥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클로드에겐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좋은 것만 알려 주기로 했으니까. 세상을 멸망시킬 흑막으로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클로드 님은 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으세요?”
“으음, 울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해도 될까?”
“그럼요, 그게 클로드 님의 진심이라면 그대로 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예요.”
“알았어.”
클로드는 씩씩하게 사라의 손을 놓고 아이가 울고 있을 골목으로 들어갔다.
‘귀엽기도 해라.’
어느새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지게 된 클로드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어린아이는 빠르게 자란다고 하던데, 그 말이 참 실감되었다.
처음엔 그녀를 보고 엉엉 울던 클로드가 어느새 울고 있는 다른 아이를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을 다 하다니.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어둠의 꽃’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긴 했지만 사라는 클로드가 이렇게 성장하는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너 이름이 뭐야? 왜 울고 있어?”
“……!”
클로드가 다가가서 말을 걸자 울고 있던 일렉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 대충 얹어져 있던 후드가 벗겨지며 아이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땀에 젖어 이마에 들러붙은 가는 금발, 머리카락 색처럼 환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 눈물 젖은 통통한 뺨과 깨물어 붉게 부어오른 입술.
과연 성장한 뒤 클로드만큼이나 환상적인 외모를 자랑하던 아이답게 퍽 귀여웠다.
‘우리 클로드 님이 백배 천배는 더 귀엽지만!’
사라는 속으로 클로드에 대한 생각을 삼키며 일렉사를 바라보았다.
“흐으윽!”
일렉사는 클로드와 사라가 많이 낯설었는지 다시 후드를 푹 뒤집어쓰며 울먹였다.
대답도 해 주지 않고 대화를 거부한 일렉사의 태도에 당황했는지 클로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클로드에게 사라는 아무 말 없이 생긋 웃어 주었다.
“……으음, 어쩌지.”
클로드는 일렉사를 앞에 두고 잠시 고민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일렉사와 같이 온 어른은 없는 것 같았다.
같은 또래 아이를 대할 줄 모르는 클로드였기에 더욱 고민이 되었다.
그때 클로드의 머릿속으로 사라가 했던 첫 번째 가르침이 스쳐 지나갔다.
“……!”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기분을 모른다. 표현하지 않는데 알아줄 사람은 없다.
클로드는 그것을 기억해 내곤 사라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빛에는 사라를 향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어서, 그녀는 클로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클로드가 우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려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클로드야. 6살이고, 지금 유모랑 같이 시장 구경을 하려고 나왔어.”
“……흑.”
“유모가 그랬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네가 왜 이렇게 슬픈지 아무도 모른대. 그리고 아무도 그걸 몰라주면 더 슬퍼질 거야.”
“…….”
“그러니까 왜 우는지 말해 줄 수 있어?”
또랑또랑하게 울리는 클로드의 목소리에 훌쩍이던 일렉사의 울음소리가 천천히 멎었다.
“……일렉사.”
“응?”
“흑, 내 이름은 일렉사야……”
드디어 일렉사의 입을 여는 데 성공한 클로드가 반짝반짝한 눈을 하고선 사라를 바라보았다.
‘내가 해냈어!’라고 이마에 쓰여 있는 듯한 얼굴로 말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라는 클로드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 주었다.
사라는 자신이 해 준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타인에게 말할 줄도 아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똑똑하고 당찬 우리 아기 고양이 같으니라고.
모자 아래로 사라의 손길을 느끼며 클로드도 헤헤 웃었다.
“안녕! 일렉사. 그래서 왜 여기서 울고 있었어?”
“……흑, 아빠가, 아빠가 보고 싶어서.”
“아빠가?”
“다섯 밤이 지나면 보러 오신다고 했는데 안 와……, 흑.”
“그래서 울었구나!”
“흑, 흐윽, 흑…….”
막상 클로드에게 말하고 보니 더 서러웠는지 일렉사는 서럽게 울며 훌쩍였다.
사라는 일렉사의 말을 들으며 아이가 이러고 있는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3황자께서는 아주 바쁘실 테지. 2황자에게 넘어가게 생긴 황위를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할 테니까.’
3황자는 매우 유약한 성격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두 명의 형님들 중 한 명에게 순순히 황위를 양보하고 살아갔을 것이다.
다만 ‘어둠의 꽃’에서는 달랐다.
3황자가 미천한 신분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일렉사를 품에 안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황실 그 누구도 몰랐다. 심지어 황제까지도 말이다.
3황자의 연인은 동쪽의 노예 출신이었다. 노예 제도가 불법인 크롬벨 제국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제국 시민권도 없는 채였다.
그런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인 일렉사는 적법한 작위를 받을 수 없었다. 귀천 상혼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3황자는 무슨 짓이든 할 거야. 그러기 위해선 황위가 필요해.’
황제가 된다면 일렉사의 어미에게 적당한 신분과 작위를 내려 주어 국혼을 치를 작정일 테지.
‘어둠의 꽃’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 봤자 클로드에게 모두 빼앗길 테지만.’
사라는 복잡한 눈으로 일렉사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만약 어둠의 꽃을 바꾸지 않는다면, 클로드의 손에 모든 것을 빼앗길 불쌍한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울지 마!”
“흐으…….”
만약에, 정말 만약에.
저 둘이 사이가 좋아지게 된다면 ‘어둠의 꽃’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