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8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58화
* * *
크롬벨 제국의 수도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기 그지없었다.
“여기도 없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아.”
“…….”
“계속 그러고 있을 건가? 벤야민.”
“…….”
“하.”
벤야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벨루나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이곳에 도착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스승의 머리카락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운명처럼, 혹은 기적처럼 스승과 우연히 마주치는 일조차 없었다.
‘어쩌면 마주쳤어도 우리가 스승님을 못 알아봤을 수도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니 제아무리 벨루나라고 하더라도 실망감에 몸이 처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벤야민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건 또 언제 챙겨 와선. 쯧.”
벤야민은 아까부터 땅에 주저앉은 채 스승이 남기고 간 메모를 꺼내 보고 있었다.
스승은 원래 마력으로 머리 위에 글자를 만들어서 소통을 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기분이 좋은 날에는 저렇게 종이를 쭉 찢어서 손으로 글씨를 써서 주곤 했는데, 벤야민은 그것들을 병적으로 모아 놨다.
“아직도 그걸 간직하고 있어?”
“스승님이 남긴 말씀들은 버릴 것이 없어. 하나같이…….”
벨루나는 벤야민이 보고 있는 메모를 힐긋 바라보았다.
[벤야민, 졸고 있었지? 딱 걸렸지롱, 아닌 척해도 소용없단다?]과연, 버릴 것이 없다라.
스승이 농담 삼아 건넨 말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벤야민을 살짝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벨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 여기서 낭비할 시간은 없어. 계속 여기 있을 거면 나 혼자서라도 찾으러 가겠어.”
“……그래.”
벤야민은 읽고 있던 메모들을 소중하게 품 안에 넣은 뒤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눈 밑에는 피로가 노골적으로 꺼멓게 내려와 있었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고된 일정을 계속 강행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 스승에게 저토록 목을 매며 집착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절대 그건 스승이 바라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벨루나는 다시 한번 걸음을 옮기며 마력을 넓게, 그리고 길게 퍼트리는 벤야민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긴 벤야민에게만 뭐라고 할 건 아닌가.”
씁쓸하게 흩어지는 벨루나의 목소리는 답지 않게 힘이 빠져 있었다.
그녀는 벤야민과 마찬가지로 제 품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았다.
[별처럼 빛나는 나의 제자, 벨루나.언제나 고마워. 이건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지만……. 언젠가 내가 더 이상 마탑의 대장로가 아니게 됐을 때 그 뒤를 네가 잇게 될 거라고 확신해.
벨루나, 너라면 훌륭하게 이 마탑을 이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단다. 언제나, 언제나 믿고 있어.
네가 있으니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
스승이 사라지기 며칠 전에 슬쩍 그녀에게 건넸던 쪽지였다.
그때부터 벨루나는 스승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이렇게 납득하지 못하고 스승을 찾으러 나왔지만 말이다.
한숨을 삼키며 벨루나도 벤야민을 따라 마력을 퍼트리려는 순간, 둘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잔잔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력의 색깔에서 이리로 오는 것이 누구인지 눈치챈 벤야민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왔군.”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올리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안녕, 친애하는 친구들아!”
힘차게 등장하는 올리븐의 맑은 목소리에 벤야민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나 버리고 가서 소득이 좀 있었니?”
역시나 도착하자마자 벤야민의 속을 긁기 시작하는 올리븐을 보며 벨루나는 그의 뒷덜미를 한 손에 잡아채곤 물었다.
“왜 이제야 온 거야? 네 실력이면 우리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야, 벨루나……. 이것 좀 놓고!”
“설마 여태까지 토악질만 하다가 왔다고는 하지 않겠지?”
“물, 물론입니다. 벨루나 님. 그러니 이것 좀 놓고 말씀하실까요.”
올리븐은 희번덕거리며 빛나는 벨루나의 눈빛을 보며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벤야민이야 늘 화내고 치고받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정착 화내면 가장 무서운 건 벨루나였다.
올리븐은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벤야민보다 이렇게 조용히 눈으로 경고하는 벨루나가 더 무서웠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자 벨루나는 못마땅함을 감추지 못한 채 올리븐을 놓아주었다.
“휴!”
올리븐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벨루나와 벤야민에게서 몇 걸음 뒤로 떨어졌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아주 자그마한 조치였다.
“너희들을 따라왔다간 이렇게 망연자실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머리라는 걸 조금 굴려 봤거든.”
올리븐은 조금이나마 떨어진 거리가 안심이 됐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해맑게 웃었다.
“내가 말했지? 우리가 스승님께 집착하듯, 스승님께서 집착하는 그 힘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올리븐은 그렇게 말하며 품 안을 뒤적거리다 작은 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뒤집었다.
그러자 천 주머니에서 우수수 작은 보석들이 쏟아져 내렸다.
“올리븐, 이건…….”
“맞아. 스승님이 집착하시는 ‘그’ 힘을 담은 마력석이야.”
“너 설마 스승님의 연구실을 턴 거야?”
경악 어린 벨루나의 말에 올리븐은 뭐가 잘못됐냐는 듯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숨어 버린 스승님을 찾으려면, 스승님이 모습을 드러낼 만한 일을 저질러야지.”
“올리븐!”
“그리고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던데?”
“뭐?”
“스승님의 연구실에 있던 마력석은 이게 다였단 말이야. 그래서 고작 이것만 겨우 챙겨 왔다고.”
“그럴 리가…….”
벨루나는 올리븐의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마력석들을 바라보았다.
대충 보더라도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원래 스승님의 연구실을 한가득 채우고도 부족할 정도로 많아야만 했다.
“설마.”
벨루나의 합리적인 의심을 담은 시선이 벤야민에게로 향했다.
“…….”
그 시선을 은근히 피하는 벤야민을 본 벨루나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머리를 짚었다.
“스승님……, 왜 이 자식들을 이렇게밖에 못 키우셨습니까.”
탄식하듯이 나오는 벨루나의 신음에 올리븐과 벤야민이 동시에 발끈하였다.
“우리가 뭐 어때서!”
“올리븐과 하나로 묶지 마. 불쾌하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며 벨루나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전부 압수.”
“아잉, 벨루나.”
“압수.”
“……너무해!”
올리븐이 애교를 부려 보았지만 벨루나는 칼처럼 잘라 내곤 손을 내밀었다.
결국 그는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마력석을 모아 벨루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벤야민 너도.”
“……내건 안 돼. 쓸 일이 있어.”
“그 많은 걸 가져다가 어디에 쓰려고. 스승님께 해가 되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벨루나의 손에 은색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저 마력석은 스승님이 연구하고 있는 힘이 담겨 있었다.
무려 생명력을 빼앗아 가는 힘이었다.
힘의 주인이 다루지 않거나, 스승님처럼 다른 차원의 생명력을 대가로 치를 수 없다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됐다.
“위험한 물건이야. 다시 스승님의 연구실에 돌려놔야겠어.”
“하지만 벨루나……, 나 이미 썼는데.”
“뭐?”
“이미 썼어. 두 개 정도.”
“올리븐!”
벨루나가 경악하여 소리를 질렀다.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던 그녀가 이토록 화를 낼 정도로, 올리븐은 대형 사고를 친 것이었다.
“벨루나. 스승님께는 별거 아닌 힘이야. 늘 말씀하셨잖아, 피 좀 토하고 마는 거라고.”
“너……, 정말 내 손에 죽고 싶어?”
벨루나의 마력이 순식간에 올리븐의 목을 졸랐다. 올리븐의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바둥거렸다.
“컥, 야, 너무하……!”
“피 좀 토하고 마는 거라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응?”
올리븐은 눈이 돌아간 벨루나를 보며 힘겹게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만해, 벨루나.”
평소 올리븐이라면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던 벤야민이 벨루나의 팔을 잡아 내리며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벨루나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진짜였다.
올리븐은 자신이 여기서 고개를 미약하게라도 끄덕이게 된다면 벨루나가 망설임 없이 제 목을 꺾으리란 걸 깨달았다.
“벤야민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스승님을 다시 만나 뵙기 전에 내 손에 먼저 죽게 될 거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올리븐도 그건 마찬가지다.”
“…….”
“저 새끼는 그냥 심통이 났을 뿐이야, 스승님한테. 저딴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놈이라는 걸 몰랐나?”
벤야민의 말에 벨루나는 서서히 올리븐을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