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92)
제192화
192화. 스승과 제자(11)
늦은 밤. 휘영청 뜬 두 개의 달이 내 방 안을 밝혔다.
몽환적인 모습이었다.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달이 두 개라니. 누가 고전 게임 아니랄까 봐.’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내 눈은 지금의 상황을 즐기기 바빴다.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주변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루시아와의 거래 조건이 문서화 됩니다.]-도움 요청 가능 횟수(3/3).
-현재 루시아와 동맹 관계를 구축한 상태입니다.
시스템 창이 내 눈앞을 어지럽혔다.
루시드 가의 비밀을 함구하는 대신 얻어낸 대가. 그게 정식으로 명문화된 거다.
‘루시아가 허당이긴 하지만…….’
든든한 전력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했던 전력이라는 게 크다.
‘4장 이후에서나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루시드 가문이니까.’
루시드 가문과 동맹을 맺지 못한 건 아쉽지만, 제국의 전력 중 하나인 루시아와의 동맹.
‘심지어 안면을 트는 걸 넘어 제자가 되기까지 했지.’
루나와 레제의 성장 속도가 빠른 것도 만족스럽지만, 우리 모두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게 가장 좋았다.
2장 초반부인 현시점에서는 차고 넘치는 행운이었다.
다만,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그에 뒤따르는 대가 또한 감당해야 한다는 것.’
상당히 어린 나이에 영웅의 자리에 오른 루시아다. 그런 그녀를 향한 시기와 질투는 당연한 일.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황제와 루크 후작을 비롯한 강력한 세력이 루시아를 뒷받침해 줬기 때문이다.
‘뭐, 간간이 들어오는 결투 신청을 모조리 승리로 장식한 루시아 덕도 있긴 하지.’
심지어 상식적으로는 이기지 못할 상대와의 결투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스스로 영웅의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한 거다.
루시아의 명성을 떨치게 한 여러 결투가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루시아에게 쏟아내지 못한 시기와 질투는 쌓이고 쌓여 연구회를 빙자한 모임, ‘천외천’을 창설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동안 묵혀놨던 감정을 루시아의 제자들에게 풀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 루나, 레제, 그리고 나.
바로 ‘우리’를 말하는 거였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존재하는 이벤트야.’
루시아와 엮이는 에피소드가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난데없이 등장해 결투를 신청하는 이상한 무리가 있었다.
당시 플레이하고 있던 캐릭터는 루시아의 제자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정보도 적어서 추적할 수도 없었지. 아니, 애초에 관련 루트가 열리지 않은 걸지도 몰라.’
그나마 알아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천외천’이라는 정보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로 루시아의 제자가 된 상황.
그들과 관련된 스토리가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천외천의 습격은 그때보다 더 심해지겠지만.’
게임에서는 경험치와 돈 셔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들.
하지만 우리가 루시아의 진짜 제자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모른다.
루시아가 일단 비밀로 한다고는 했지만…….
‘대비가 필요하겠어.’
대비해야 하는 건 루시아와 적대관계인 천외천뿐만이 아니다.
루시아 측의 사람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들 또한 제자들의 실력을 검증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드르륵-.
책상 서랍에 있는 종이를 꺼내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동안 짜놨던 계획의 변동, 천외천과 관련된 정보, 루시아의 세력, 루시드 가문의 나무패를 이용해 볼 수 있는 이득까지.
모두 다 정리를 끝마친 상태였다.
‘한국어로 써놓았으니 카론이 봐도 알아볼 수 없을 테고.’
심지어 중간중간 영어와 일본어, 게임 용어를 섞기까지 했다.
카론이 아무리 열심히 분석해도 쉽게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찌리릿-!
그 순간, [초감각] 스킬이 발동했다.
누군가가 내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당연히…….
“후후, 늦으셨군요.”
“……건방진 놈.”
과거 황제의 검이자, 제국의 시궁쥐.
현재는 앤우드 아카데미의 교련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카론이었다.
“준비는 잘 되어 가십니까?”
“네놈이 알 필요는 없다. 수업 때도 말했지만, 학생은 학생의 본분을…….”
“이런, 이런. 저희 사이에 이러실 겁니까?”
“…….”
카론이 입을 닫았다. 자각했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 이전에, 비즈니스 관계라는 걸.
“심지어 이번 토벌전에 대한 정보 제공자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정보 공유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건방진 놈.”
내뱉은 말과 달리, 카론은 제법 충실하게 정보를 공유해 줬다.
날짜, 인원, 작전, 준비상태 등등.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알려 주지 않았다.
“8성 기사급 이상의 실력자들은 총 몇 명입니까?”
“알려줄 수 없다.”
“엘레스터 님과 루시아 님이 전부인 겁니까?”
“알려줄 수 없다.”
“당신은 바보입니까?”
“…….”
따악!
카론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질문을 하는 학생을 쥐어박다니! 학생의 창의력을 제한하는 나쁜 선생 같으니라고!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8성 기사 이상의 실력자들은 핵폭탄과도 같다.
그런 그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에 따라 병력의 위치를 바꾸는데, 그들이 향한 곳이 제국의 서쪽 끄트머리인 것도 모자라 다른 나라의 땅으로 침범했다?
전쟁 나기 딱 좋았다.
그래서 카론이 알려주지 않는 것이고.
하지만 만약 저게 끝이라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상대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이니까.’
다른 사천왕도 무섭지만, 준비된 전장에서의 볼칸은 궤를 달리하는 놈이다.
압도적인 물량도 물량이지만,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망자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게 가장 무섭다.
적군, 아군, 지나가던 새와 쥐까지.
무엇이든지 팔다리만 붙어 있다면 일으켜 세우며 전장에 합류시킨다.
싸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군은 약해지고 적군은 강해지는 전투.
‘그게 바로 네크로맨서의 무서움이자, 싸움법이니까.’
그러니 카론, 엘레스터, 루시아를 필두로 한 서른 명의 정예는 나쁘지 않은 숫자와 구성이라 말할 수 있다.
네크로맨서를 상대로 일반 병사 수천 명을 데려가봤자 수천 명의 적을 만들어 낼 뿐이니까.
차라리 쉽게 죽지 않는 강자 서른 명이 낫다.
‘평소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지만, 지금은 2장 초반부야.’
네크로맨서의 최대 약점이자 강점은 ‘마나의 총량’이다.
얼마나 많은 죽음의 병사를 다룰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클래스.
즉, 마나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하고 적으면 적을수록 약한 존재다.
‘다른 특성도 중요하긴 하지만…… 마나만큼 중요하지는 않아.’
후반부에 볼칸이 최악의 사천왕이라고 불리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에서의 이야기다.
지금 그들은 ‘우리를 사천왕이라고 불러줘!’라고 외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볼칸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마나의 최대량이 늘어나는 특성을 가진 캐릭터.’
볼칸의 준비상태도 최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2장 초반부인 지금, 아무리 잘해 봐야 1~2천 정도의 숫자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쓸만한 시체를 구하지도 못했을 테니, 데스나이트와 리치의 숫자도 턱없이 적을 거다.’
즉, 볼칸을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카론, 엘레스터, 루시아.
막상 저 셋이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두려워졌다.
사천왕 중 한 명을 죽일 수도 있는 기회지만. 이건 바꿔 말하면…….
‘저 셋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카론, 엘레스터, 루시아.
저 세 명이 데스나이트와 리치, 또는 그 이상의 언데드가 되어 우리 앞을 막아선다면?
오싹-!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그래서 내가 계속 카론을 추궁하는 거였다.
8성급 이상의, 누가 봐도 ‘강자’라 부를 수 있는 존재를 얼마나 데려가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변할 테니까.
좋다, 고인물의 지식을 발휘해 보자.
현재 이 시기에 카론이 데려갈 만한 인재를 찾아보는 거다.
촤라라락-!
머릿속에 한편의 퍼즐이 펼쳐졌다.
제국의 지도, 세력 구도, 8성급 이상의 강자들, 재야에 있는 인재, 등등.
쓸만한 사람은 많다. 문제는 그들이 현재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거다.
필요 없는 퍼즐을 하나씩 걸러냈다.
움직일 수 없는 사람, 카론이 알면 안 되는 사람, 아직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는 사람…….
“…….”
그리고 찾아냈다.
볼칸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최강의 퍼즐 조각을.
“후후, 그 정도 전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금 불안 요소는 있지만…… 가용할 수 있는 병력 중 최고만을 엄선했다. 그리고 전장에 완벽한 준비는 없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상대의 수에 대응할 뿐이지.”
카론아, 지금 수업할 때가 아니거든?
“성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의 도움을 받는 건 어떻습니까?”
“……너답지 않은 멍청한 소리 마라.”
다수의 실력자가 허락 없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은 성국의 일원들에게 알릴 수는 없다.
“정보가 새는 것도 문제죠. 하지만 그깟 정보가 당신들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텐데요.”
“건방진 놈. 이제는 하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아니, 이건 [오그라드는 말투S]의 부작용이라고!
난 분명 ‘헤헤, 카론 님. 정말 송구하오나 정보가 새는 것보다는 여러분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단 말이다!
하지만 카론의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네 생각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인솔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학생이다. 인솔자도 중년의 신관에 불과하고. 애초에 도움을 요청해봤자 들어주지도 않을 거다.”
카론의 말대로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성국에서 파견한 인원이지만, 그중에는 제국 측의 사람도 몇 섞여 있다.’
열 살 무렵의 아이들을 교육, 각 나라에 간첩으로 잠입시키는 것. 제국의 어두운 면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이유로 성국에 머물게 된 아이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2장 후반부부터 주연 멤버들과 파티를 이루는 사람.
‘황녀 히아신스.’
황제인 레온 13세의 딸이자, 열세 번째 황녀다.
태어났을 때부터 병약한 몸이었던 히아신스.
치료를 위해 성국으로 가게 되었고, 이번에 기회를 틈타 제국으로 돌아오게 된 거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히아신스가 아니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자, 황제의 검.
‘아도니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를테면.
제국의 시궁쥐, 카론 같은 사람.
“황녀의 보호자라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카론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순간에도 연기가 가능하다니.
역시 카론이다.
‘여기서 아도니스라는 이름을 말하면 간단하지만…….’
그 이름을 지금 내가 알고 있다는 건 이상하다. 모종의 이유로 이름을 바꾼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본명을 말하는 게 맞다.
“황제의 검, 더글라스 님 말입니다.”
“……!”
카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물론 아주 잠시뿐이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왜 거론하는 거냐?”
“후후, 해골도 일어나는데 더글라스 님이라고 못 살아날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다. 더글라스는 죽은 사람이다. 아주 호화로운 장례식까지 치른, 과거 제국의 영웅 중 하나였던 사람.
하지만 그는 멀쩡하게 살아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직감한 것일까. 카론이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어떻게 알았지?”
“뭐, 간단한 추리입니다. 더글라스 님의 죽음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으니까요. 더글라스 님 답지 않은 화려한 장례식도 그렇고요.”
“…….”
“그쯤에 성국의 파견이 있었죠. 그래서 치료를 위해 성국으로 갔다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해 갔다거나. 그러지 않았을까 추리했을 뿐입니다.”
“추리라기보단 망상에 가까운 것 같은데 말이지.”
“후후, 지금 이 순간 망상이 현실로 바뀌었습니다만?”
기가 찬 것일까. 카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동시에 의심의 눈초리도 심해졌다.
음, 이쯤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한번 보여 줘야겠다.
“물론 외형을 어떻게 바꿨는지가 의문이긴 합니다. 알려진 얼굴도 얼굴이지만, 나이가 있으니 숨기기 힘들 테니 말이죠.”
“네놈다운 망상을 해본다면?”
“특수한 마법을 개발했다거나?”
“못난 놈. 창의력이 없구나.”
“후후, 그럼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럼 창의력이 쑥쑥 클 것 같은데요.”
그러자 카론이 검지를 자신의 입술 위에 올리며 말했다.
“비밀이다.”
“……학생의 포즈를 빼앗아가다니. 아카데미의 명성이 떨어지겠군요.”
“그렇다고 네놈의 목을 떨어뜨릴 수는 없지 않느냐.”
……농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