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64)
제64화
64화. 3위의 실력(6)
상쾌한 오전 수업 시간.
오늘도 르앵 선생은 우리에게 벌점을 선사했다.
매일 할 일을 잊지 않는다니.
어떻게 보면 참된 선생이라 말할 수 있겠다.
“에고, 드디어 끝났네. 오늘은 뭐 하고 놀래?”
루나가 기지개를 펴며 물어 왔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고?
아이들이 귀를 우리 쪽에 갖다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갖다 대다시피’도 아니다. 말 그대로 ‘갖다 대고’ 있었다.
내 의자 등받이에 뒷사람의 책상이 닿을 정도였으니, 확실했다.
‘아니, 우리 얘기를 왜 듣고 싶어 하는 거냐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다.
진짜 변태들이 따로 없다.
‘곤란하네.’
은밀하게 행동하려는 나에게 있어 이런 관심은 독이다.
1장 보스인 르앵 선생을 격파함과 동시에 해금되는 아카데미의 숨겨진 장소들.
‘그곳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를 얻어야 하는데…….’
이렇게 관심이 집중되면 뭘 할 수가 없다.
1장이 끝나기 전에 미리 수를 써 놔야 했다.
‘뭐, 루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친구가 나밖에 없는 루나.
현재 그녀는 우수반의 연예인이나 다름없었다.
웬만한 아이들에게 말을 걸면 친구가 되어 줄 거라는 소리다.
문제라면, 그걸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
“뭘 봐?”
“……그냥요.”
“싱겁긴. 왜? 이 누님이 너무 예쁘냐?”
“예?”
“자, 실컷 봐라. 너니까 특별히 허락해 줄게.”
들썩들썩-.
쿵쿵쿠쿠쿠쿵!
교실이 들썩였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곧장 뒷사람에게, 뒷사람은 또 그 뒷사람에게 전달됐다.
이내 모든 아이들이 우리가 나눈 대화를 알게 됐고, 교실이 울리게 된 거다.
‘평소보다 더 심하네.’
아이들이 듣기에는 너무 자극적인 대화였기 때문일 거다.
“뭐야? 지진인가?”
루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데도 모른다니.
이 정도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병이다.
‘알렉스가 알려 줬지.’
우리가 썸인지 사귀는 중인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둘 다 아니므로, 단호히 말해 줬다.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레이몬이 부리나케 이 사실을 전달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우리 사이가 워낙 각별(?)했기 때문이다.
딱- 따다닥-.
“으으, 저의 제로 군이……!”
레이몬이 눈에 불을 켜고 루나를 노려봤다.
……저놈도 참 중증이다.
이제는 알렉스랑 같이 보낸 날이 훨씬 많은데, 왜 나한테 집착하는 걸까?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확실히 말해야겠다.
우리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후후, 루나 양.”
“응?”
“오늘은 쉬는 게 좋겠습니다.”
“아, 방에서 같이 쉬자고? 피곤한가 보네? 그러지 뭐.”
쿵쿵쿠루쿠루쿵-!
콰지직! 콰직!
음, 아주 소문에 박차를 가하는구나?
이 정도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니요.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겁니다.”
“응, 방에서 각자 쉬면 되잖아.”
“각자의 방에서 쉬면 더 좋지 않을까요?”
“응, 넌 네 방에서 쉬어. 나도 네 방에서 쉴 테니까.”
“???”
이놈의 기숙사는 뭐 하나.
숨어 들어오는 루나 하나 안 잡고!
“봐 봐! 저러는데 어떻게 안 사귀는 사이니!”
“어머 어머, 사귀는 게 확실하네.”
“결혼! 결혼을 시키자!”
“이번 연도에 바로 식을 올리기로 했다는데?”
그런 적 없단다, 얘들아.
오해는 오해를 낳고, 소문은 더 큰 소문을 낳는 법.
더 이상 커지기 전에 막아야 했다.
“루나 양.”
“왜? 놀러 갈까? 어디 갈래?”
“잠시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잠시 떨어져 지내자는 말입니다.”
쿵.
교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 하나, 종이가 팔랑거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먼지까지도 허공에 뜬 채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만 같은.
그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었다.
루나가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너 어디 아파?”
“전혀 아닙니다.”
“그럼 왜 떨어져 지내자는 건데?”
“저하고만 다니지 않습니까. 아카데미는 넓습니다. 다른 친구도 한번 사귀어 보시죠.”
루나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난 너만 있으면 되는데?”
그건 너니까 그렇지.
난 다른 사람도 있어야 한단다.
“유리디아 양에게 부탁해 보겠습니다. 좋은 친구를 소개해 줄 거예요.”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그런 거 아닙니다.”
“아, 어제 내가 때린 것 때문에 그러는구나? 미안해. 많이 아팠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내가 뭐든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루나가 내 소매를 꽉 붙들었다.
목소리는 물기가 가득했다.
“날 떠나지 마. 내가 잘할게.”
아니, 왜 연인이 헤어질 때처럼 말하는 거야?
이러면 내가 곤란해진다고!
슬쩍-.
눈을 슬쩍 돌리자, 아이들이 나를 향해 욕을 내뱉는 모습이 보였다.
응, 분노한 아이들의 손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슬슬 떼어 낼 때긴 해.’
평생 나한테 의지한 채 살 수는 없다.
모험을 할 때는 떨어져야 할 때도 있을 텐데, 이래서는 곤란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됐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 루나의 독립을 연습하는 것도 좋아 보였다.
일종의 걸음마 연습이랄까?
“진정하세요. 잠깐, 아주 잠깐만 떨어지자는 겁니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왜 갑자기 떨어지라는 건데!”
“이런 것 때문입니다.”
“……뭐?”
“제가 없을 때는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안 떨어지면 되잖아.”
“불가능합니다.”
루나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윽, 이런 건 버티기 힘들다.
서둘러 의자에서 일어난 후 문 쪽으로 향했다.
“나가지 마.”
“…….”
“나가면 두 번 다시 너 안 볼 거야.”
“…….”
“내 고집 알지? 분명히 얘기했어. 나가는 순간 끝이라고.”
루나야, 미안.
하지만 이게 다 널 성장시키기 위한 거란다.
저벅.
잘 닦인 복도에 청아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가지 말라고!”
루나가 복도까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뒤돌아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된다. 지금 뒤로 돌면 평소처럼 돌아갈 거다.
‘루나는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자격이 있어.’
착한 아이니까. 배려할 줄 아는 아이니까.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곁에 없는 동안 더 많은 친구를 사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루나.
파이팅이다.
* * *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 방문 앞에는 오늘도 수많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절대 루나해!
-루나 왕자님 지켜!
-넌 남자도 아니다!
-당장 루나를 체포해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기만 해도 아이들이 입을 모아 수군덕거렸다.
“갑자기 찼다고? 너무하네.”
“루나 양이 얼마나 귀여운데.”
“갖고 놀다 버린 건가?”
“역시 외모값을 하네요. 관상은 과학이라니까?”
그 외에도 이런저런 말을 들으며 기숙사를 나섰다.
-야!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라고 말하며 루나가 달려올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도 루나는 오지 않았다.
‘……내가 떨어지라 해 놓고 섭섭해한다니. 제정신이냐?’
식당에서 혼자 아침을 먹은 후, 오전 수업에 들어갔다.
나를 발견한 루나가 고개를 홱 돌렸다.
눈두덩은 오늘도 퉁퉁 부어 있었다.
“…….”
루나에게는 새로운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을 때마다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거절 의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일종의 시위일 거다.
‘그것도 적당히 해야 할 텐데.’
저러다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루나가 곧장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갈 거면 깨우라는 뜻이다.
주변 아이들이 우리를 살폈다.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로.
하지만.
저벅-.
나는 루나를 지나쳐 교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루나가 훌쩍이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하여튼 저 멍청이.’
새로운 친구 한 명만 사귀어도 ‘축하합니다! 이제 걱정할 게 없네요! 다시 전처럼 다닙시다!’라고 말해 줄 생각이었는데.
미련하게 계속 시위만 하는 걸까.
주먹을 꽉 말아 쥔 채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점심도 역시.
맛이 없었다.
* *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루나는 하루를 혼자 보냈다.
팅-.
돌멩이가 아쉽게 항아리를 스쳐 지나갔다.
종종 제로와 같이했던 항아리에 돌멩이 던져 넣기 놀이다.
“쳇, 뭐야. 재미없어.”
제로랑 할 때는 진짜 재밌었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내일 제로한테 찾아가서 머리라도 박을까?’
제로가 자신을 밀어내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문제가 자신 쪽에 있다는 건 확실했다.
‘나는 성격이 거지 같으니까.’
지금껏 참아 준 제로가 용한 거였다.
그래, 결정했다. 내일 가서 머리를 박든, 다리를 잡고 늘어지든.
어떻게든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고 말 거다.
“저, 저기…….”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희미하다고 말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옆에 있었다.
눈앞을 커튼처럼 가리는 긴 앞머리가 인상적인 여자아이였다.
‘저래서 앞이 보이기는 하나?’
교복 색깔을 보니 동갑인 듯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이상할 건 없었다.
아직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뭐야? 왜?”
“아, 안녕하세요. 저, 저는 레제라고 해요오…….”
“……그런데?”
“하, 한 번만 도,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시, 심부름을 하는 중인데 호, 혼자는 너무 무거워서요…….”
레제라고 이름을 밝힌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와 함께 땅으로 기어들어 갈 기세다.
“그래, 뭐 마침 할 일도 없으니까.”
“가, 감사합니다아…….”
“뭘 옮겨야 하는데?”
“이, 이쪽으로 오세요오…….”
레제의 뒤를 따라가며 루나가 생각했다.
‘가만, 이거 이용할 수 있을지도?’
일단 도와주고 친구가 된 뒤, 제로에게 같이 데려가는 거야.
그리고 자랑을 하는 거다.
친구가 생겼다고. 너 없이도 나는 잘 살 수 있다고.
그리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할 거야.’
두 번 다시 너를 안 보겠다고 말한 건 실수였다고.
그동안 나랑 놀아 줘서 고마웠다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안 되겠냐고.
계속해서 말할 거다. 제로가 받아 줄 때까지.
‘제로, 조금만 기다려.’
루나가 레제의 뒤를 따라 10분쯤 걸었을 때였다.
“여, 여기예요.”
“응? 여기는…….”
결투장이다. 실전 수업이 있을 때마다 이용하는.
평소에는 단단히 잠가 두는 걸로 아는데.
심부름 때문에 열어 준 걸까?
“왔군.”
사각형 형태의 결투장.
그 위에는 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루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테르온파의.
“고드너?”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군? 하긴, 내 실력 정도면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해.”
“아니, 너 제로한테 개털렸잖아.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 건데?”
“……건방진 것.”
루나가 결투장으로 올라갔다. 레제라는 아이도 그 뒤를 따랐다.
“잘 데려왔군.”
“이, 이제 가 봐도 되는 거, 건가요?”
“잠시 대기해라.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히, 히익…….”
레제라는 아이가 쭈그려 앉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루나가 그런 레제의 앞에 섰다.
“상황을 보아 하니 네가 나를 부른 모양이네?”
“맞다.”
“왜 불렀는데?”
“결투장에서 뭘 하겠나? 뻔하지.”
“……흐응.”
“검을 뽑아라.”
검을 뽑으라는 고드너의 말.
루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과실을 내 쪽으로 돌리겠다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