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7)
117 가장 긴 2월
1년 중 가장 짧은 달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긴 2월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대한전력의 대규모 공습을 이겨 내고 반격에 나설 시점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 생산 총책임자와 검사 총책임자가 한 치도 물러섬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검사동에 가득 진열된 변압기. 자체 시험을 끝낸 변압기는 식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가고, 빈자리는 생산동에서 넘어온 변압기로 금세 채워진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연체는 너무 아쉽다.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아, 공장 천장만 바라볼 뿐이다. 오호, 그래! 검사동 천장이 훤하다 싶더니, 여기만 공조장치가 없어! 공조장치는 괜찮을까?
“이 부장님! 생산동에 공조장치 가동되지 않습니까? 변압기 품질 좋게 한다고 비싼 돈 들여 설치했는데, 그거면 어떻습니까? 천천히 상온으로 내려가지 않겠습니까?”
“그래, 맞네! 내일 시험 끝나자마자 바로 생산동으로 옮겨서 열 식히자고. 500대면 한두 시간이면 옮기니까 그렇게 하자고? 이 부장, 어때? 그렇게 하자. 내가 다음부터는 물건 빨리 내보낼 테니까 이번엔 그렇게 넘어가자고.”
“부장님. 그리고 시험 의뢰한다고 해서 시험관 바로 오지 않잖습니까? 처음에만 그랬지, 요새는 삼사일은 지나서 오던데, 공장장님 말씀대로 이번만 그렇게 해 봅시다.”
이 부장이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 표정도 잠시, 피식피식 웃기 시작한다.
“아니, 이 부장. 지금 웃음이 나와? 난 지금 속이 터져 죽게 생겼는데 말이야!”
“아니요. 상황이 웃겨서요. 전에 다니던 회사 같았으면 지랄하지 말라고 쪼인트 까였을 일인데, 지금 사장님도 그렇고, 공장장님도 그렇고, 사정사정하잖습니까? 무슨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어서 웃음이 나오네요. 하하.”
“하하. 이 부장, 너 인마. 우리 사장님 잘 만난 줄 알어! 사장님이 쪼인트도 안 까고 이리 간청하는데 말이야!”
“좋습니다. 내일 시험 최대한 빨리 끝낼 테니까, 바로 생산동으로 옮겨서 안정화시키죠. 시험 의뢰는 대한전력 퇴근 시간 맞춰서 해 놓겠습니다. 공장장님, 물건 좀 빨리 보내 주세요. 저도 죽겠습니다.”
“나도 지금 죽을 지경이라고. 인마, 너 땜에 시간 뺏기고 이게 뭐야! 그럼 이번엔 연체 없는 걸로 알고 있겠네.”
공장장이 생산동으로 복귀하면서 나에게 잘했다는 의미로 윙크를 한 방 날린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 맞나? 어찌 됐건 둘 다 만족시켰으니 안심이다. 생산 직원들의 사기를 지켜 냈고, 이 부장에게는 우리 회사만의 새로운 맛을 선사했다. 이게 사장 노릇이다.
그렇게 2월 첫 발주분 시험 의뢰는 연체 없이 이뤄졌다. 입회 시험은 다행히 시험 의뢰하고 3일 뒤에 진행됐다. 대기 시간 덕분에 변압기도 충분히 안정화됐다. 시험관이 이렇게 늦게 올 줄 알았다면, 서로 실랑이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시험관 이 자식, 늦게 오면 늦게 온다고 얘기라도 해 주지. 어떨 때는 시험 의뢰하자마자 다음 날 바로 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냥 늦어지고. 종잡을 수가 없네.
그렇게 찾아온 시험관은 어마어마한 양에 시험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1차 시험만 이틀이 걸렸고, 2차 시험은 3일이나 걸렸다. 매일 출근하는 시험관을 누가 본다면 우리 직원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압권은 2차 시험이었다. 양이 워낙 많아 절반씩 부하 투입을 했는데도, 감히 겨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열기가 이틀 내내 지속됐다. 부하 투입에 들어간 전기 요금도 장난 아닐 것이다.
“아휴, 이거 너무 힘드네요. 내가 진짜 프라임일렉트릭이면 이를 갈 것 같습니다. 1분기 담당자로 여기 오면 죽어나겠어요. 하하.”
시험관은 3개월 단위로 바뀐다. 두 번째 시험관으로 온 이 사람은 첫 시험관에 비해 그나마 수월한 편이었다. 2월만 무사히 넘겼다면 말이다. 2월에 쏟아진 어마무시한 물량에 시험관도 혀를 내두른다.
“저희가 앞으로 3년 동안 불량 제로로 시험 면제받을 테니까 2년 반만 기다려 주시죠.”
“여긴 물량이 너무 많아서 진짜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우리 과장님이 각오 단단히 하라길래 뭐 별거 있나 했는데, 세상에 이게 다 뭡니까? 하하.”
“다음은 4,900대밖에 안 됩니다.”
“아이고 두야. 그나마 여름이 아닌 게 다행이네요.”
여름에 이만한 양이 발주됐다면, 검사부 직원 몇은 쓰러졌을 것이다. 겨울에도 이리 땀을 흘릴 정도인데, 여름이었으면, 어휴. 토토로 같았던 우리 이규철 부장도 아주 홀쭉해졌네.
이 부장의 피땀눈물이 들어간 변압기 8,300대가 불량 없이 완벽한 합격을 얻어 냈다. 일주일 뒤 통장에 94억 원이 꽂힌다. 고생 끝나려면 아직 멀었지만, 다들 고생들 했수다.
한시름 놓인 것 같지만, 진짜 문제는 2월 2차분 납품이다. 입회 시험 준비한다고 생산부서 직원들 총동원하느라 안 그래도 짧은 납기가 더 줄었다. 8,300대 출하한다고 온 공장 다 활용하느라 이틀을 또 날렸다.
2월 2차 발주가 4,900대로 줄었지만, 만들 시간도 줄어들어 곡소리는 여전하다. 생산 현장이 무당이 되어 난리굿을 치르고 있으니, 몇 안 되는 사무직도 박수가 되어 북과 꽹과리를 칠 수밖에 없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다들 퇴근을 안 했다. 현장이 바쁘긴 해도 사무실 직원들은 눈치 보지 말고 제시간에 퇴근하라고 그리 얘기를 했는데도 집에 가질 않네.
역시 일이 많아서겠지? 사무직 충원 서둘러야겠군.
“사장님은 오늘도 늦게 퇴근하세요?”
김지연 대리가 선공을 날린다. 누가 할 소리인데!
경리가 야근한다는 것은 신검 4등급 보충역이 UDT 훈련 받으러 가는 것 같은 일이다.
중소기업에서 경리 업무를 맡은 직원은 대부분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이 보장된다. 이상한 일이다. 사장들이 직원들 한 시간이라도 일 더 못 시켜서 안달인데, 왜 경리에게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는 것일까?
덕준이와 이 난제에 대해 한바탕 토론한 적이 있었다. 여러 추측이 난무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회사에서 경리 업무를 수행했던 김 대리가 그 답을 물어다 줬다.
“저야 큰 회사는 안 다녀 봐서 모르지만, 중소기업들은 법대로 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가족들 죄다 직원으로 등록해 놓고 월급 챙겨 가고 그러죠.”
“잘 아시네요? 챙겨 갈 몫이 줄어드니까 남들이 하는 온갖 것을 다 해요. 정직하게 하면 바보 된다고 하잖아요. 경리는 그걸 다 알고 있죠. 그걸 알아야 업무를 볼 수 있으니까요.”
“오호. 정보가 가진 힘이네요?”
“그런 거겠죠. 작은 회사들은 경리가 맘만 먹으면 회사 뒤엎을 수도 있으니까, 사장도 그렇게 터치를 안 하는 거라고 봐요. 요즘은 횡령하고 이런 거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니까, 솔직히 돈 가지고는 엄청 뭐라고 하죠.”
“대신 다른 걸로는 좀 풀어 준다는 건가요?”
“뭐 대놓고 그렇게 얘기는 안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경리는 경리 업무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출퇴근 같은 걸로는 다른 직원들처럼 뭐라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게 맞는 건데 무슨 특혜를 받는 것처럼 그러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우리 회사는 경리도 야근을 한다. 물론 일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지만, 우리 회사의 사장은 팬티를 뒤집어 까도 터럭 하나 나오지 않으니 꿀릴 것도 없다. 그 사장이 바로 나다.
세무사가 관행처럼 행하는 불법과 편법을 넌지시 알려 줬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정당하게 세금 줄일 수 있는 방법도 많은데, 굳이 왜!
“김 대리님은 퇴근해도 되지 않아요? 전표 정리만 하면 할 것 없잖아요? 퇴근해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까 시간되면 퇴근하세요.”
“아휴. 사무실에 직원 몇이나 있다고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세요? 여기서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구요. 사장님은 왜 다른 회사에서 경리랑 직원들 사이가 안 좋은지 아세요?”
“글쎄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아주 잘 알고 말고. 그렇다고 너무 눈치 보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현장은 바빠서 죽어 나가는데, 퇴근 시간 됐다고 퇴근하면 얼마나 꼴 뵈기 싫겠어요? 다들 고생하는데, 이럴 때 보조를 맞춰 줘야죠. 그게 연대 정신 아니겠습니까? 호호.”
“전 절대 야근 강요 안 했습니다. 아시죠?”
“야근하지 말라고 해도 일이 넘쳐 납니다요. 자금 관리해야지, 이 많은 직원들 뒷바라지해야지, 야근 안 하고 배길 수가 없네요.”
“이제는 아무래도 혼자로는 벅차죠? 앞으로 자회사 일도 떠안아야 하니까 재무팀 직원도 서둘러 뽑겠습니다. 힘든 것 있으면 바로 얘기를 해 주세요. 저도 사람인지라 다 챙기기는 쉽지 않잖아요?”
“아휴, 저는 괜찮아요. 현장 직원이나 넉넉히 충원해 줘요. 현장 갈 때마다 아주 단내가 나 죽겠어요. 호호.”
더부살이 중인 황미연 사장이 저 직원 자기가 데려왔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듯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사장님, 쟤 신경 안 써도 돼요. 집에 가 봐야 혼자라서 저러고 있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남자 만나라고 난리 쳤구만, 다 지 업보예요, 업보.”
“하하. 황 사장님은 퇴근 안 하세요? 애들만 집에 있을 텐데요.”
“중고등학생이면 뭐 다 컸죠.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알아서 잘해요. 부모 없이도 밥해 먹을 줄 알고 그래야죠. 근데, 사장님이 우리한테 왜 퇴근 안 하냐고 물어볼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하.”
그러게 말이다. 회사 일에만 올인하지 말자고 기껏 혁신도시에 집까지 얻었는데, 이거 며칠째인지 원.
이게 다 대한전력 때문이다. 돈 주고 뺨까지 때려 주는 덕분에 매출 급신장하는 것은 좋은데, 이런 미친 짓은 마다하고 싶다.
“하하. 다음 달부터는 사람답게 살아야죠.”
“정말 사람답게 살려면 연애를 해야 한다니까요. 아니 왜 소개팅까지 해 놓고 소식이 없어요?”
“어휴, 진짜. 또 시작입니까? 하하.”
“우리 사장님 같은 분이 연애를 안 하는 것은 나라에 해가 되는 일이라니까요!”
나름 할 것은 다 하고 삽니다요. 저 극성 아줌마와 더 말 섞다 보면 나올 얘기는 뻔하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자식으로 둔 부모의 마음이 저런 것인가. 빨리 도망치자.
“아름 씨, 잠깐 사장실로 오세요.”
극성 아줌마를 피해 사장실로 도망치면서 박아름 대리를 호출했다.
“네, 사장님.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퇴근해야 하는데 제가 붙잡고 있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서 다 끝내고 가려고 남았습니다.”
사회 초년생 박아름 대리. 아주 잘 뽑았는데, 사파리 하겠다고 불러 놓고 사자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무작정 차에서 내리라고 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 아직은 초식동물들 보면서 아름다운 동물의 세계를 감상할 때인데 말이다.
“일은 어때요? 힘들고 정신없죠?”
“아닙니다. 한 부장님께서 잘 알려 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잘하고 있습니다.”
아주 씩씩하면서도 무덤덤하다. 살짝 업된 직원들이 많은 회사에서 박 대리같이 차분한 사람은 귀한 존재다.
그런 직원에게 힘드냐고 물어봤으니, 돌아오는 답은 빤하다. 유격 훈련에서 조교가 힘드냐고 물어볼 때 힘들어 죽겠는데도 아니라고 대답하던 일이 생각난다. 여기를 군대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저도 그 일 했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한 번 실수가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까, 모르겠다, 어렵다 싶을 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저나 한 부장에게 바로 얘기를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 힘든 일 없어요?”
“네, 아직까지는 할 만합니다. 한 부장님께서 잘 정리를 해 두셔서 힘든 일은 없습니다. 어려운 일 생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엄청난 능력자이거나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 같다. 전자라고 믿고 싶다.
“정시에 퇴근 못하면 힘든 거예요. 아무래도 혼자로는 힘들 것 같아서 새로 직원 뽑아 줄게요. 앞으로는 정시 퇴근할 수 있을 거예요. 하하.”
“아! 감사합니다.”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박 대리가 반색하는 표정을 짓는다. 저러니 좀 사람다워 보이네.
“어서 일 마무리하고 퇴근하세요.”
“네.”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2월 내내 이어진 야근과 특근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1.5배 더 받는다는 소소한 맛도 있겠지만, 내 회사, 우리 회사를 키운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있지 않았을까? 난 그렇게 믿고 싶다. 그 믿음만큼 직원들을 생각해야지.
그 어느 때보다 길었던 2월도 이렇게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