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6)
116 사장 노릇
대한전력이 만든 짧은 설 연휴가 끝났다.
회사로 복귀하는 직원들 얼굴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남들 다 쉴 때 일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고생하면 그 대가를 확실하게 치른다는 믿음이 있으니 망정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돈은 돈대로 쓰고, 성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도 기술과 설비, 돈이 중요하지만, 사람 관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사람 관리? 결국 얼마나 잘 대접해 주느냐에 달렸지.
“공장장님,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우리 사장님이 소고기 보내 준 덕분에 아주 잘 보냈네. 아니 월급도 많이 주는데, 뭐 또 소고기까지 보냈어?”
“공장장님 잘 먹여야 많이 부려 먹지요. 하하.”
“이거 진짜 연체 없이 잘 납품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 급하게 만들다가 불량이라도 나면 고생하나 마나 아닌가?”
발주가 많으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떻게든 납기 맞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대한전력 입회 시험이야 이규철 부장이 잘 추려 낼 테니 걱정 안 한다. 그러나 자체 시험에서 불량 때문에 납품할 대수가 부족해지면, 죽어라 고생하고도 연체 먹는 것이다.
“대한전력 놈들한테 매번 알면서도 당하네요. 앞으로 캐파를 크게 늘릴 생각이니까, 이번 고비만 잘 넘겨 주세요.”
“캐파 늘리면 현장이야 편하겠지만, 나중에 비수기 때는 어쩌려고 그러나? 고정비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네만 고생하는 것 아닌가?”
“늘어난 캐파만큼 일거리 물어 와야죠. 공장장님 안 심심하게 해 드릴 테니까 체력 관리 잘하세요.”
“예전 같았으면 밤새워 일할 테니 일만 물어 오라고 했을 텐데, 요즘은 못 그러겠네. 말이 8,300대지, 어휴.”
베테랑 중에 베테랑인 공장장도 무서워하는 이 무지막지한 물량. 입에서 단내가 나더라도 이겨 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었는데, 이 정도는 가뿐히 이겨 내야지!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설비제작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만들어야 할 설비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뜻하지 않게 소문이 퍼져 대란이 일어난 것이 이런 것일까 싶다.
“이사님. 아이고, 우리 이사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하. 사장님 오셨어? 이야, 이거 해도 해도 끝이 없네.”
출근과 동시에 구리스 팩으로 피부 관리를 하는 유재준 이사. 오늘도 여전하다.
“이번엔 생산 쪽도 정신없이 바쁘니까 좀 위안이 되죠? 하하.”
“그래도 자동권선기가 만들기 수월해져서 저번처럼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확실히 김 이사님이랑 최 부장님이 손본 설계가 예사롭지 않어.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거 한번 읽어 보세요.”
“이건 뭔가요? 설비 생산 일정표? 아이쿠, 언제 이런 것까지 만드셨어요?”
그동안 서류라곤 모르고 살았던 유 이사가 처음으로 서류를 만들어 냈다. 그것도 생산 일정표!
거느리는 직원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발전하는 직원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나도 그만큼 성장하고 있겠지?
“이 일정대로 정말 가능하세요? 많이 무리하실 것 같은데요?”
“아니, 사람도 이렇게 붙여 줬는데, 서둘러야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사람 많이 데려간다고 욕먹을까 봐 걱정인데.”
“너무 무리하지만 마세요. 월급을 억만금 받아도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시죠?”
“하하. 소용없긴! 우리 아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잖아!”
자신의 고생이 자식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가장의 담백한 고백.
자식이 없어서 그 감정을 모르겠다. 모성애, 부성애는 애를 낳고 키워 봐야 안다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그런 가장들의 삶을 뒷바라지해 주는 내 역할도 무겁게 느껴진다.
“안성파워에 보낼 자동권선기는 이달 말까지만 하면 되니까 일정 조절 잘해 주세요.”
“그럼, 그럼. 대당 6억짜리니까 잘 만들어 둘게. 근데 사장님.”
“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자동권선기도 그렇고, 부싱체결기도 팔기로 했잖아? 그럼 AS 인원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리 봐도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 좋아 AS지. 한 번 갔다 오면 하루 이틀 그냥 날아가는데 괜찮겠습니까? 제가 직원 교육도 신경 썼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나도 그렇고, 형님들도 애들 교육 좀 잘 시키자고 말만 했지, 막상 쉽지가 않더라고. 회사가 워낙 빨리 성장하니까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어. 우리 사장님 스트레스 안 받게 현장도 현장 나름대로 잘 준비해 보겠습니다요.”
예전부터 마냥 좋은 형님, 착한 형님이었던 유 이사가 이제는 회사 중역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난다. 공장장도 그렇고, 회사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태양전기 다닐 때야 현장만 가면 온갖 잡일 하느라 스트레스만 받았는데, 여기서는 현장 가는 일이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일도 비슷하고,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도 있다. 달라진 것은 사장과 현장 분위기뿐이다. 회사가 직원을 믿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는 것이 이리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공장 불이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켜진 상태로 대한전력 입회 시험 요청일이 다가왔다. 사실상 납품일이나 마찬가지인 날이다.
자체 시험이 일부 지연되고 있지만, 무지막지한 발주 8,300대가 결국 다 나왔다. 그나마 재고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생으로 시작했다면 백 프로 연체였다. 2월 2차 발주도 4,900대가 나와서, 여전히 미친 듯이 물량을 뽑아내야 한다.
2월에만 147억 원 어치를 쏟아 낸 미친 대한전력. 연간 물량의 18퍼센트를 한 달에 쏟아 내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이냐!
1차 납품분 8,300대를 제 날짜에 뽑아낸 생산 현장은 다시 2차 납품분 생산에 혼을 쏟고 있다. 이제 검사부가 시험 잘 합격해 잘 납품하면 그만이다. 이규철 부장을 찾아가 시험 준비가 잘되는지 확인해 보자.
뭔가 소란하다. 시험 물량이 엄청나니 검사부도 신경이 곤두선 것이 분명하다. 근데 공장장이 왜 여기 와 있지?
“아니, 회사 생각을 해야지. 내가 뭐 야매로 하자는 소리도 아니고, 이 정도는 이 부장이 해 줄 수 있잖아!”
“공장장님. 그랬다가 입회 시험 때 불량이라도 맞으면 제가 다 책임져야 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현장 전 직원이 피똥 사면서 만들었는데, 연체가 다 뭐야!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야 하는데 기운 빼게 하려고 작정했어?”
“저도 압니다. 아는데요, 아직 시험을 다 못 끝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잖습니까!”
공장장과 이 부장이 결국 한판 붙었다.
검사부에서 자체 시험으로 골라내는 불량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생산과 검사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선을 넘지 않고 줄타기를 잘하던 갈등이 결국 터진 모양이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한 탓에 신경이 예민해졌으리라.
“공장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 사장님 왔어? 내 얘기 좀 들어 봐. 아니, 내일이 시험 의뢰일인데, 이 부장이 내일 시험 요청 못한다고 하잖아. 연체 먹겠다는 소리 아니야? 이게 말이 되냐고! 직원들 뺑이 치면서 만들었는데, 연체 걸렸다는 소리 들어 봐. 힘이 나겠냐고!”
공장장이 하소연하듯 말을 쏟아 낸다. 생산과 검사의 갈등은 일상사이고 당연한 일이다.
두 부서가 친하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검사는 규정대로 일을 진행하면 되고, 생산은 납기에 맞춰 물량 뽑아내면 된다. 그래도 말이 쉽지, 서로 안 싸울 수 없겠지.
“부장님. 자체 시험이 다 안 끝났습니까?”
“휴우, 죄송합니다. 물량이 너무 많습니다. 500대 정도는 부하를 못 걸었습니다. 3일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부장 표정도 밝지 않다. 쏟아지는 물량 검사하느라 그 고생을 했는데, 공장장에게 한 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럼 이틀 연체를 해야 한다는 얘기인가요? 500대 때문에 8,300대 연체 걸리는 것이 아까운데, 어떻게 가능한 방법이 없습니까?”
“오늘 마저 부하를 걸면 내일 확인이 가능한데, 그렇다고 바로 시험 의뢰할 수 없습니다. 변압기 식으려면 아무리 못해도 꼬박 하루는 지나야 합니다. 후반 작업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제품 검사부터 출하까지 총괄하는 이 부장이 안 된다고 하는데,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부장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연체료 몇 푼 아껴 보겠다고 확실한 검증 없이 물건 내보내는 것처럼 멍청한 짓도 없지.
“공장장님. 시험 안 끝내고 대한전력 입회 시험 받다가 불량 생기면 오히려 문제가 더 크지 않겠습니까?”
“생산에서 물건 늦게 보내 줘서 그런 것인지 알지만, 사장님도, 이 부장도 다 알지 않나? 진짜 죽을 둥 살 둥해 가면서 만들었다고.”
“현장 고생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그 고생을 해 가며 물건 만들었는데, 연체 먹었다고 해 봐. 일할 맛이 나겠냐 그거야. 이건 연체료가 아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야. 그깟 연체료 내 돈으로 내면 그만이네.”
솔직히 나도 좀 억울할 것 같다. 설 연휴 이틀 쉰 것 말고는 주말도 없이 계속 일했는데 말이다. 최유리가 모처럼 시간 났다고 보자고 했는데도 거절할 정도였다. 뭐 고생은 직원들이 하긴 했지만.
그렇게 전 직원이 빡세게 일했는데, 결과가 연체라면 의욕 상실이지.
“이 부장님. 오늘 부하 걸어서 내일 유도 시험까지 끝내면 일단은 시험 의뢰 조건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시험관이 변압기 안정 안 된 상태에서 시험 의뢰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내일 시험 신청했는데, 시험관 바로 나와 버리면 그냥 불합격입니다.”
“이 부장님이 총책임자이니까, 그렇게 결정한다면 그게 맞다고 봐야겠지만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공장장님 말씀도 틀린 얘기가 아니고 말입니다.”
“그래, 이 부장. 너무 아깝잖아? 우리도 그 많은 변압기 만들려고 정말 힘들었다고. 현장 직원들 생각 좀 해 줘.”
공장장이 감정이 가라앉았는지 애걸하기 시작했다. 돈 문제도 자존심 문제도 아니다. 계속된 물량전을 원활히 끝내기 위해서는 현장 직원들 사기를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보름 동안 만들어야 할 양만 4,900대. 지난 2주간 하루도 쉬지 않고 강행군하느라 직원들 체력이 바닥이다. 피지컬을 지배하는 것은 멘탈이라고, 멘탈이 흔들리면 와르르 무너진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공장장님 말씀도 맞는데,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에프엠대로면 부하 끄고 안정화까지 72시간은 지나야 합니다. 규정대로 하지 않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둘 다 맞는 소리를 하니 이거 참 미칠 지경이다. 공장장은 생산을 계속 독려해야 하는 처지라 사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장은 검사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
빤한 사장이라면 이 부장한테 헛소리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면서 바로 내일 시험 신청하라고 할 것이다. 연체료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돈도 아까울 것이기 때문에. 그러다가 불량 맞고 몇십 배 더 큰 손해 본 경우도 허다하지.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말이야…… 이럴 때는 둘 다를 만족시킬 수 있는 꼼수가 필요하다. 그게 사장의 역할일지도.
“이 부장님. 안정화가 온도만 낮춰지면 되지 않습니까?”
“뭐 그렇다고 봐야죠. 근데 절연유 양이 많아서 빨리 식지 않습니다.”
“아니, 그럼 빨리 식게만 하면 되잖아? 날 추운데 밖에다 내놓으면 하룻밤에 다 식을 것 아녀?”
공장장도 머리를 쥐어짠다. 옮기는 데 시간 좀 걸리겠지만, 그렇게라도 온도 떨어트리면 입회 시험은 가능할 것이다.
“저도 그 방법 생각해 봤는데, 위험 부담이 많습니다. 온도가 급격히 변동되면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단호박. 상무가 이 부장 추천했을 때 얘기했던 진한 꼴통 냄새가 이런 것이구나.
검사부장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모습이 대견하지만, 융통성 없는 모습이 조금 아쉽다. 공장장은 속이 터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이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게 사장의 역할이다. 사장 노릇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