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8)
118 칼빵
내일이면 8,600대나 되는 엄청난 양의 변압기를 실어 나를 트럭들이 장사진을 펼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 시집장가 보내는 기분이겠지?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밤 9시가 넘는 시간임에도 현장의 불은 환하게 밝혀져 있다. 오늘도 10시까지 달릴 모양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어마어마한 주문량을 쏟아 낸 대한전력이 밉고, 그걸 받아 낸 직원들이 고맙다.
오늘도 집에 못 들어가겠네. 집에 간들 바로 씻고 잘 텐데, 번거롭지 뭐.
의자를 최대한 젖혀서 간만에 휴식을 취했다. 아, 좋다. 이렇게 그냥 잠들고 싶다. 그걸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직원이지.
노트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박아름 대리가 머뭇머뭇하면서 사장실에 들어왔다. 아까 얘기 다 했는데, 무슨 또 할 말이 있는가?
다른 직원들은 바로 얘기하는데, 템포 조절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머뭇거리는 것이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긴장이 안 풀렸군.
처음 회사 세워서 직원들 여럿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흔한 사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던 직원들. 맘 편히 얘기하라고 해도 눈치를 보던 직원들 말이다.
지금은 매일매일 소원수리함이 가득 찰 정도로 거침없이 떠들어 댄다. 미드에서나 보던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아주 좋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도 빨리 적응하길 바랄 뿐이다.
“대리님, 뭐 할 얘기 있어요?”
“아, 네. 아까 직원 뽑으신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지인을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아는 사람 데려오고 싶다는 것이죠? 저야 좋죠.”
“친한 후배 동생인데, 아주 똑소리 납니다. 일 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같은 과 후배인가요? 철학과가 아무래도 취업이 쉽지 않죠?”
“네에. 지방대인 데다 과도 그래서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을 간판으로 평가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네요. 데려와 보세요. 대리님이 일 잘할 것이라고 보증했으니, 기대됩니다. 한 명 더 데려와도 좋습니다. 사무직도 많이 뽑을 생각이니까 일 잘하는 직원이 많을수록 좋죠.”
“사장님, 감사합니다.”
“채용 결정되면 그때 얘기하세요. 면접도 봐야 하니까 아직 결정된 것 아닙니다. 하하.”
가장 좋은 회사는 직원들이 서로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내는 회사일 것이다.
사병의 적이 간부이고, 직원의 적이 상사인 것은 말 같지도 않은 걸로 2절, 3절 지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리 갈굼은 있어도 내리 사랑은 없다.
그래서 직원들이 직급에 구애 받지 않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일을 밤나무잣나무같이 하면 천둥벼락을 쳐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격의 없게 지내야지.
부작용도 있겠지만, 직장 내에서 맘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내가 직원 면접 볼 때 인성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 이 때문이다. 업무 수행 중 동료가 다쳤을 때 일과 동료 중 무엇을 택할 것이냐고 늘 물어본다.
회사니까 일이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연히 동료가 중요하지!
수익은 생산성에서 나오고, 생산성은 동료 간 시너지에서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고로 인성이 돈이다.
질문 몇 가지로 인성을 파악하긴 어렵다. 그래서 기존 직원들 소개로 많이 뽑으려고 한다. 친구로 지내던 사람을 뽑으면 위험 부담이 줄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은 직원이면서 헤드헌터이다.
박 대리도 이 극심한 청년 취업난 속에서 친구 하나 구제했다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 기쁨은 회사 일에 매진하는 동력으로 이어지겠지.
이러다 잠이 들어 버렸다. 양치도 안 했는데…….
아침부터 트럭 들어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8,300대의 변압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서 들어올 트럭만 무려 247대이다.
변압기 하역에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한참 공사판이 벌어진 혁신산단에서 덤프트럭과 화물차들이 서로 뒤엉키며 주짓수를 하는 광경이 장관이다.
화물차 후진할 때 나는 경고음과 지게차의 후진 음악, 호이스트 움직이는 소리가 한데 어울리며 웅장한 교향곡이 만들어진다. 변압기 이동하면서 소리치는 직원들 목소리는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리베라 합창단 같다.
날도 점점 따뜻해지고, 회사 통장도 따뜻해지고, 역시 봄이 오는 소리는 좋다. 직원들 얼굴에는 악귀가 도사리고 있지만, 며칠만 참거라.
마지막으로 배차된 트럭이 물건을 싣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담배 한 대 태우고 있는데, 구석에 처박혀 하얗게 다 불태운 듯이 앉아 있는 덕준이가 눈에 들어왔다.
넋이 나간 표정이다. 보조로 투입된 사람이 더 힘든 법이다. 정해진 일 없이 이것저것 다 하다 보면, 사지는 곡소리를 내고 오장육부는 피눈물을 흘리니 말이다.
“한덕준 부장님. 죽겠지?”
“아우, 진짜 죽겠다야. 우리는 언제 한가해지냐? 직원이 110명이 넘는데도 이리 살아야 하냐?”
기존 업무를 박 대리에게 넘기고 영업 업무로 넘어가려다, 대한전력의 대규모 공습에 자발적으로 현장으로 달려간 덕준이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현장 일을 자원해 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덕준이는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봐, 봐. 3월 되면 물량 확 줄어들 거야. 아직 발주가 14번 남았는데, 벌써 70프로 가까이 나왔잖아? 이제 정비의 시간이 다가온 거지. 맘 편히 상무님 따라다니면서 영업 잘 배워 봐.”
“대한전력 미친놈들, 진짜 대단하다. 하루도 안 쉬고 한 달 가까이 이렇게 뺑이 치니까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다야. 요 며칠 하도 힘들어서 빨래 안 했거든? 오늘 출근하려고 옷 입는데 시댕 양말이 없더라고.”
“설마, 뒤집었냐?”
“진짜 왜 그래? 나 한덕준이야. 그래도 부장인데! 편의점 졸라게 달려갔더니 양말 하나가 4천 원이나 하네? 근데 시댕, 발목 양발이야! 이거 신고 안전화 신었드만 뒤꿈치 다까지고 죽겄다야.”
“그냥 뒤집어 신지 그랬냐? 너 옛날에 팬티고 양말이고 맨날 뒤집었자나?”
“아, 진짜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 찌질하긴 했어도 재밌었는데. 그치?”
덕준이와 함께했던 냄새나는 대학 시절이 생각난다. 서로 방어율 경쟁하며 그 시절. 난 최동원이었고, 덕준이는 선동열이었다. 조교 형이 학사 경고 누적으로 제적된다고 알려 주지 않았다면 방어율 경쟁은 내가 이겼을 지도.
“그래도 이거 다 출하하고 나니까 후련하긴 하네. 확장 공사했는데도 출하 드럽게 오래 걸리네.”
“포장까지 했어 봐.”
“어휴. 끔찍하다야. 포장 그거 한 번 하는 것도 죽겠던데, 넌 어떻게 3년을 했냐?”
“노예의 자질 아니겠냐? 최고의 자질을 가진 노예. 슈우발.”
이춘배 부사장님 고맙습니다. 진짜 저 많은 물량을 포장까지 해서 보낸다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는다. 공장 마당에 파전을 얼마나 부쳤어야 했을까?
“우리 한 부장. 연애도 해야 하는데 말이야. 꽃 피는 봄 오면 연애할 시간 보장해 줄게! 그 기자랑은 뭐 진척이 있어?”
“퇴근하면 곯아떨어지기 바빠서 연락할 시간도 없다야. 간만에 맘에 드는 애 찾았는데, 잘못되면 다 니 책임이야!”
“아이고, 우리 한 부장님. 제가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일보다 건강과 가족이 우선이라고 늘 강조해 왔지만, 대한전력의 정신 나간 공습에 일이 우선이 돼 버렸다. 2월은 정말 잔인한 달이다.
“박 대리는 일 잘하고 있지? 어제 잠깐 얘기했는데, 힘든 일 없다고 씩씩하게 대답하더라고.”
“인수인계 다 해 주고 현장에 처박혀 있으니,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뭐 물어보는 것도 없는 것 보니까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재도 문제없이 잘 입고되고 있고.”
“이놈 자식. 부사수 아주 잘 키웠네.”
“박 대리가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자립심이 있다고 할까? 암튼 뭐, 끙끙 앓으면서도 혼자 해 보려고 하더라고. 그래 봐야 너만 고생하니까, 모르는 것 있으면 바로 물어보라고 하는데도, 성격이 그런가 봐. 근데 그런 애들이 책임감은 또 장난 아니잖아? 잘할 거야.”
“내가 본 게 맞구만. 애가 표정변화 없고 차분하고 뭐, 아니다. 아무튼 아주 씩씩해.”
아무래도 회사 차리고 나서 사람 복까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일 잘하는 직원들이 넘쳐 나니, 월급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사장들은 일하는 것보다 많이 준다고 아까워한다던데, 나는 오히려 더 주고 싶다.
“참. 올해는 민수 쪽에서도 아주 공격적으로 영업을 할 생각이야. 목표는 장난치는 놈들 없애는 거야. 담당자 바뀌자마자 그러면 눈치가 보이니까, 네가 눈치껏 잘해 봐. 뭔 말인지 알지?”
“하하. 그런 거라면 아주 잘할 자신 있지. 딱 2년. 2년 동안 내가 장난치는 놈 다 없애 주고 시장 아주 깨끗하게 만들어 줄게. 근데 좀 아쉽네?”
덕준이가 쓴소리를 할 시동을 걸고 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나? 쓴소리는 언제든 환영이다. 근데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뭐가 아쉬운데?”
“우리 거의 2년이 다 돼 가잖아? 당연히 아직 멀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로드맵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겠어?”
“로드맵? 당연히 계획은 다 세워 놨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면서 올라가고 있잖아?”
이 머릿속에는 중장기 계획이 잘 스케치되어 있단 말이야. 사장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이지. 난 또.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네.
“그러니까 음. 뭐랄까? 스케치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이 딱 나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로드맵이 일정표같이 나와 있어야 한다는 거지? 우리 회사가 일이 많아서 페이퍼 워크는 좀 약하잖아. 사무직도 거의 없고.”
“현실은 알지. 근데 현실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니까.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겠지만, 타임테이블이 딱 정해져 있어야, 나나 직원들도 나름대로 계산하면서 완급 조절한단 말이지. 가만 생각해 보면, 좀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많은 것 같지 않아?”
음. 뭔가 날카로운 물건이 배를 깊숙이 쑤시고 들어오는 느낌이네.
“민수변압기 사업을 보자고. 우리가 원래 올해 60억 정도 매출 계획했는데, 지금은 공격적인 영업을 주문하잖아? 작년보다 고작 15억 늘리겠다고 그 얘기 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지? 계획은 바뀌기 마련이지만, 처음 계획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짰다는 뜻도 된단 말이야.”
“그건 맞아. 태양전기가 이탈하는 것을 보니까 민수 쪽도 확 늘려도 되겠다 싶더라고. 내심 매출 100억은 넘었으면 싶은 생각이긴 해. 뭐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지.”
“거봐.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계획을 바꿨겠지. 이건 내 생각이긴 하지만, 사업할 때 계획을 구체적으로 잘 세워야 그에 맞춰서 예산이나 설비나 직원 교육 등등 준비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시행착오가 많고 직원들이 고생하지 않겠어?”
아휴, 뼈가 아프다 못해 시리네. 중소기업들이 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지 그렇게 욕해 놓고 나도 그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아무래도 경영 기획, 생산 지원, 노사 협력, 교육 등 사무직 직원이 지금보다 많아져야 한다. 사무직은 돈 축내는 직원이 아니라, 회사를 회사답게 만드는 직원이다.
사무직이 뭐 필요하냐는 중소기업 마인드 벗어던지자. 재무랑 자재 직원 뽑는 김에 더 뽑아야겠구만. 투자할 때는 확실히!
“이 자식 되게 아프게 찌르네. 내가 회사 성장만 생각하다 보니까 생산에만 집중하긴 했지. 페이퍼 워크에도 힘을 썼어야 하는데…… 일단 급한 불 끄고 나면 준비해 보자. 3년차에는 제대로 된 회사답게 운영해 보자고.”
덕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표정이다. 배를 깊숙이 찌르는데 그치지 않고, 찌른 것을 한 바퀴 돌리겠다는 뜻인가?
“우리가 회의가 없는 회사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회의가 아니어도 사업 계획 프레젠테이션은 당연히 해야 하고, 계획이 바뀌면 사전에 충분히 알리고 논의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 물론! 우리 사장님, 아주 잘하고 있지만, 집단 지성의 힘에 의지하는 것도 좋다 이 말이지.”
“그건 확실히 인정! 내가 미처 신경 못 쓰고 있었는데, 알릴 것은 확실히 알리고 논의할 것도 확실히 논의할게. 대면이 어려우면 인트라넷에 잘 정리해서 올리기라도 해서.”
“오호라. 우리 사장님도 확실히 변하긴 했어. 예전 같았어 봐. 쌍욕 날리면서 지랄염병하셨을 텐데. 푸크크.”
“이 새끼, 또 거친 말 나오게 하네. 너나 나나 근 2년 가까이 빡세게 일하긴 했지만, 경험 부족은 어쩔 수 없다야. 뭐 이렇게라도 배우면서 고쳐 나가면 되지 않겄냐?”
배웠으면 시습지해야 불역열호 하겠지.
문자님 도움도, 사장 원맨쇼도 없이 자생할 수 있는 회사. 지금 직원들도 아주 잘해 주고 있지만, 그런 회사를 위해 보다 속도를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