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9)
119 봄에 찾아온 여유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혁신산단을 환하게 밝히기를 여러 날. 그렇게 험난한 2월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내일이면 봄의 시작 3월이며, 전 국민이 쉬는 삼일절이다. 역시나 삼일절도 쉬지 않기로 했다. 계속된 강행군에 직원들 눈에 오기가 서리고 있다. 나만 쉬기로 해서 그런가?
학기 시작하면 시간 내기 어렵다는 말에 고생하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최유리를 만나러 광주로 달려갔다.
“아휴, 오빠! 얼굴 보기 힘드네?”
“2월은 너무 잔인한 달이었어. 직원들 고생하는데, 나도 옆에서 고생 좀 해야지.”
“얼굴도 좀 핼쑥해진 것 같은데?”
유리는 여전히 꿈을 이루겠다는 욕망의 눈빛을 강하게 발산하고 있다. 자존감 높은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유리를 볼 때마다 나도 마음을 다잡게 된다. 유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 늘 고마운 사람이다.
“밥은 잘 먹어. 그렇게 먹는데도 살이 안 찌네.”
“오빠는 지금보다 10키로 정도만 더 찌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어휴, 안 돼. 여자들이 나를 가만 놔두겠어?”
“눼에눼에. 밥이나 먹으러 가시지요.”
전 국민의 만찬 메뉴 삼겹살 냄새가 나를 파블로프의 개로 만든다. 투뿔 한우가 최고라고 하지만, 삼겹살 기름이 뜨거운 불판에 지져지면서 나는 냄새에는 그 무엇도 따라올 음식이 없지. 가히 신이 만들어 낸 향기이다.
“오랜만에 봤는데, 오늘 보고 나면 당분간 보기 힘들어지겠네.”
“학기 시작하면 많이 바뻐? 2학년이면 그래도 좀 살 만하지 않나?”
“3학년 되면 시험 준비 때문에 숨도 못 쉬어. 그래서 2학년이 더 중요해. 이때까지 학점 관리 제대로 못하면 답 안 나오거든. 난 진짜 사시 출신들이 로스쿨 무시한다는 얘기 들으면 천불나. 눈에 불 켜고 이 고생을 하는데, 나 참.”
“그래도 종종 봐야 얼굴 안 까먹는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야.”
“가만 보면, 오빠가 은근 부담을 주는 것 같어. 자주 봐도 좋을 것 없어. 오히려 이렇게 종종 보면 할 얘기도 더 많고 좋지 뭐.”
이게 나와 유리 사이의 거리인가? 몸은 섞어도 마음은 섞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인가? 하여간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언제든 달려올 테니까 우리 최변께서 필요하시면 망설이지 말고 불러 주세요.”
“푸하하. 하여간 말은. 괜히 전화해서 공부 방해하지나 마셔.”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말이 끊이지 않았다.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고도 2차로 펍에 가서 입가심하고, 그래도 부족해서 3차로 커피까지 마시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서로 구속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런지, 워낙 잘 통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오빠 술 마셨는데 대리 불러서 갈 거야?”
“차에서 한숨 자다가 술 깨면 입 돌아간 채로 가지 뭐. 입 돌아가도 침 한 대 맞으면 금방 돌아오더라고.”
“에이 진짜. 가자.”
아주 길었던 2월의 마지막 날을 기분 좋게 보냈다. 봄을 알리는 3월에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보자.
* * *
봄과 함께 찾아온 3월. 조경이 조악하긴 하지만, 회사 정문과 울타리에 심어진 나무에도 새순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공장 주변에 틈틈이 나무도 심어야겠다. 이 황량한 혁신산단에 초록빛을 채우고 싶다.
대한전력도 봄기운을 만끽하는지 차분해졌다. 1차 발주가 나오는 3일이 되자마자, 박아름 대리가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 왔다.
“사장님, 3월 1차 발주 나왔습니다. 총 2,900대이고, 금액으로는 31억 9,000만 원입니다.”
“2,900대요? 발주가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뭐 그렇게 줄어듭니까?”
“1월 2차 발주가 2,800대였는데, 그다음으로 적게 나왔습니다. 그래도 생산은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수주가 줄어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정도로 역설적인 상황. 그만큼 2월은 힘들었다. 봄부터는 사람답게 살아 봅시다!
힘들었던 2월이 가고 한숨 돌릴 만한 3월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2차 발주는 1차 발주보다 적게 나오니까, 이번 달은 설렁설렁 봄노래 부르며 지내도 될 것 같다. 봄노래를 불러도 할 것 해 가면서 마이크 잡아야지.
벌여 놓은 일도 수습해야 하고, 공장도 손볼 곳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가열하게 가동 중인 설비들에 구리스도 듬뿍 발라 줘야 하고, 뜯겨 나간 창문 실리콘도 쏴 줘야 한다. 기숙사도 확충해야 하고, 구내식당도 만들어야지. 이거 뭐 여전히 바쁘네.
“박 대리. 데려온다는 후배는 어떻게 됐습니까?”
“네, 얘기해 놨습니다. 사장님께서 면접일만 말씀해 주십시오.”
“잘됐네요. 중소기업이라고 꺼려 하지는 않아요?”
“제가 잘 얘기해 놔서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반응이 좀 그랬습니다. 이것저것 얘기해 줬죠.”
“하하. 좋은 얘기 한 것 맞죠?”
“당연하죠. 솔직히 우리 회사같이 좋은 회사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대기업보다 더 좋게 대우해 줄 겁니다. 기회도 많을 것이고, 안정적인 일자리. 최고 아닙니까?”
말하고도 민망하다. 자화자찬이 너무 심했나?
사이비 교주 같은 발언에 박 대리가 당장이라도 양손을 위로 올리며 교주를 찬양할 것 같다. 그래, 우리 회사 좋은 회사다. 너무 겸손 떨지 말자.
“여기서 일해 보니까 왜 어른들이 중소기업도 괜찮다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취업 준비한다고 시간 허비하지 말고 바로 올 것 그랬습니다.”
“박 대리 첫 직장이 우리 회사니까 그러지, 다른 회사였으면 생각이 달랐을 거예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무조건 대기업 가는 것이 좋긴 해요. 대우도 좋고, 대기업인 만큼 기회도 많구요. 우리 회사야 그렇게 해 주려고 노력하니까 그렇지, 다른 곳은 아휴.”
많은 사람들이 취업 준비생들에게 공무원과 대기업만 바라본다고 손가락질한다. 정말 꼰대스러운 손가락질이다. 남의 인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감히 중소기업을 가라고 할 수 있나?
대기업은 40대를 못 넘긴다고 하지만, 상위권 몇 개만 그렇지 안 그런 회사가 더 많다. 정년 보장해 주는 대기업도 얼마나 많은데? 설령 중간에 나온다고 한들, 대기업 출신이면 갈 곳이 많다.
중소기업은 발 들여놓으면 헤어 나올 수 없지. 중소기업 잣 같아서 나왔는데, 또 중소기업을 가야 하는 현실. 그래서 몇 년 재수를 하더라도 이력서는 주야장천 대기업에 넣는 것이 낫다.
중소기업에서 불가능에 가깝다는 10년 근속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벙어리로 3년을, 귀머거리로 3년을, 장님으로 3년을 보내야 근속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렇게 버티고 나면 뭐가 남나? 근골격계와 뇌혈관계 질환을 얻게 되고,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만 꾼다.
“박 대리도 대기업 지원 많이 해 봤죠?”
“저요? 저는 뭐, 대기업은 엄두도 못 냈어요. 공기업은 그나마 블라인드 채용이고 지역 할당제도 있어서 도전해 봤는데, 안 되더라구요.”
“박 대리 같은 인재를 왜 몰라봤을까요? 그래도 운 좋게 우리 회사 왔으니까 오래오래 다니세요.”
“넵!”
대기업, 공기업이 별건가! 월급 많이 주고 오래 다닐 수 있게 해 주면 장땡이지. 우리 회사를 신이 숨겨 놓은 직장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
“면접 보러 올 친구들한테는 아무 때고 좋으니까 오라고 하세요.”
“넵, 사장님. 항상 감사합니다.”
“저는 현장 가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세요.”
민망하게 감사하단 소리를 한담. 사무실 민원을 대충 처리했으니, 현장에 밀리고 묵은 일을 처리하러 가야겠다.
공장장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바쁠 때는 공장장도 한 마리 일개미일 뿐이다.
부지런히 변압기 조립하고 있는 공장장이 보인다. 30년 묵은 전기쟁이 근육을 부지런히 쓰고 있는 공장장 얼굴이 한결 밝아져 있다.
유격 훈련 때 찾아온 황금마차가 엄청나게 반갑듯이, 고된 물량전 끝에 종전 선언이 나왔다는 소식은 공장장을 춤추게 할 것이다.
“공장장님! 이번 발주 확인하셨죠? 다음 주까지만 고생해서 2월 2차분 끝내면 이제 좀 살 만해지겠네요.”
“이야, 이제 좀 한숨 돌리겠네. 내 인생에서 변압기 이리 많이 만들어 보기는 처음이네. 내가 살다 살다 변압기 만들다가 지칠 줄은 몰랐어. 허허.”
“앞으로 25년 더 일하셔야 하니까 이제 안 지치게 해 드릴게요. 그래도 다음 주까지는 고생해 주셔야 합니다. 시험 의뢰일이 9일이니까 늦어도 8일까지는 검사부로 넘겨줘야 하는 것 알죠?”
“무조건 맞춰 줘야지. 이 부장이 꼬장꼬장하긴 해도 살 그렇게 빠진 것 봐. 현장에서 최대한 도와줘야지. 이번 달부터 좀 한가해질 것 같으니까 미리미리 많이 만들어 놔야겠어. 이렇게 준비 못하다간 누구 하나 쓰러지겠어.”
대한전력 물량전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재고품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다. 재무적인 부담이 있지만, 일정한 양을 꾸준히 만들면서 직원들에게 루틴을 각인시켜 주면 오히려 생산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아휴, 안 됩니다. 이제 계약 막바지잖아요. 새 입찰은 품목 바뀌니까 괜히 재고 많이 만들어 놨다가 못 팔면 그냥 똥 됩니다.”
“그렇구만! 이거 뭐 우리 때문에 품목이 바뀌는 거라 누굴 원망도 못하고. 허허. 이거 참 쉽지가 않네.”
대한전력 납품 변압기는 크게 4가지이다. 이 중 일반형과 내염형이 올해 8월 입찰부터는 우리가 개발한 고효율주상변압기로 대체된다. 기존 품목이 없어지는 것이다. 관수 비수기에 접어들었다고 재고를 맘 놓고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발주 많이 나올 일은 없으니까 쉬엄쉬엄하세요. 고효율주상변압기 구매규격이 다음 달에 나오니까, 구매규격 확정되면 그거나 미리 만들어 두시구요.”
“맞네, 맞아. 고효율 그거나 미리 많이 만들어 두면 되겠네. 아휴, 변압기를 얼마나 만들었는지 머리가 돌이 된 기분이야. 하하.”
“3월 발주분부터는 SPRD 부착해야 하는 것 아시죠?”
“하하. 이거 깜빡할 뻔했네. 2월 2차분 생산 끝내면 술 한번 제대로 마시고 정신 좀 차려야겠구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폰 노이만이 울고 갈 정도로 총명함을 유지하던 공장장이 잠시 두뇌 활동을 멈춘 모양이다. 대한전력 물량전이 이리 무섭다.
“SPRD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까 이제 돈 들어올 일만 남았습니다. 돈 막 들어오니까 돈 좀 쓸 생각이에요. 공장장님도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하하.”
“지금도 공장 새로 짓는다고 땅 사고 뭐 한다고 돈 많이 쓰고 있는데, 무슨 돈을 또 써?”
“생산동 확장 공사 시작해야죠! 바빠서 못했으니까, 좀 한가해졌을 때 공사 들어가야죠.”
2월 내내 욕을 해 왔지만, 대한전력 덕분에 돈이 아주 넉넉해졌다.
대출도 넉넉하게 받았겠다, 들어올 돈도 많겠다, 이제 돈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될 것 같다. 내가 다단계나 폰지사기에 빠져 돈 지랄하지 않는 이상.
사업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돈 걱정과 작별을 고할 때가 오다니! 세상 사람들은 이런 걸 두고 혁신이라고 할 것이다. 후훗.
“그렇지, 그렇지. 공장이야 넉넉하면 할수록 좋지! 배치도도 제대로 짜야겠네? 나도 이제 책상에 앉아서 일 좀 할 수 있는 거야?”
“하하. 제가 쉬게 해 드리겠다고 했잖습니까? 동선 안 꼬이게 잘 조율해 주세요. 그리고 ODI랑 태인산업 공장도 고려해 주세요. 어차피 나중에 하나로 합칠 거니까, 배치 잘해 놔야 나중에 고생 안 합니다. 참! 확장 공사는 다음 주부터 바로 들어가도록 할게요.”
“그래그래, 후딱 해치우자고. 공사한다고 일 방해되지는 않겠지?”
“그럼요. 알아보니까 요새 공법이 좋아져서 현장 일 크게 방해 안 하고 공사 가능하다고 하더라구요. 혹시 그런다고 해도 한 납기에 3천 대도 안 되는데 껌 아닙니까? 하하.”
“좋아, 좋아. 우리 회사 날로 발전하네. 아주 좋아. 사장님 최고!”
회사의 성장은 동업자나 마찬가지인 공장장을 춤추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