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22)
122 공사판
봄은 사방 천지가 움트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공사판이 화려하게 열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날이 따뜻해지니 나주혁신산단이 연일 공사판이다.
광활한 대륙에서 넘어온 미세먼지로 창문 열기도 무서운데, 공사 먼지도 무시무시하다. 안성파워는 이미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공장을 완공하며, 이 바닥 1위 기업의 위엄을 과시했다.
크기는 우리 공장과 같은데, 없는 돈에 겨우 지은 우리와 달리 돈을 넉넉하게 쏟아부은 테가 난다.
조경부터가 때깔이 다르다. 얼마 하지 않지만, 주차장에 카스토퍼까지 박아 둔 것을 보니 꽤 신경 썼다는 느낌에 부럽기 그지없다.
가장 부러운 것은 공장 지붕에 달린 태양광 패널이었다. 매번 변압기 부하 거느라 전기료가 기본이 억 단위까지 나오는 상황이니, 저거 몹시 탐난다.
공장 지을 때 돈 부족해 못 단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참에 우리 공장 지붕을 저걸로 도배해야겠다.
“강 사장님. 공장 완공 축하드립니다.”
“아니, 지 사장! 말로만 축하해 주면 됐지, 이게 다 뭔가!”
안성파워 공장 완공 기념으로 화분 하나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강 사장 덕분에 우리 회사가 빠르게 자리 잡은 것은 물론, 날개까지 달아 훨훨 날고 있으니 마땅한 보답을 해 주고 싶었다.
“하하. 제가 여기 터줏대감 아닙니까? 안성파워 나주 입성 기념으로 안성파워 직원들에게 선물 좀 돌리려구요.”
“공장은 내가 세웠는데 기분은 자네가 다 내는 것 같네. 하하하. 고맙네, 고마워. 이거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겠어.”
LA갈비 2kg씩이라 해 봐야 4만 원밖에 안 된다. 기껏 천만 원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생색을 냈으니 아주 실속 있는 장사를 했다.
강 사장 덕분에 번 돈이 수백 배에 달하는데, 소 몇 마리가 대수랴. 난데없이 LA갈비를 받은 우리 직원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돈 많이 쓰셨다고 하더니, 이거 용적률 다 채우신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가 품목이 많지 않나. 3천 평이래도 어림도 없어. 이왕 돈 쓰는 김에 처음부터 제대로 짓고 시작해야지 않겠나?”
“부럽습니다. 전 돈이 없어서 이제야 층 나누고 있습니다. 하하.”
“아니, 이 바닥 돈은 자네가 다 쓸어 갔다고 하더니, 이리 엄살을 떠나. 하하.”
공장 건설비로만 100억을 넘게 썼다고 하더니, 겨우 45억을 쓴 우리 공장과 너무 차이가 난다. 이렇게 제대로 지어 놓고 시작하는 것이 몹시 부럽지만, 문자님 말씀대로 욕심 내지 않고 내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지.
“지 사장. 얼마 전에 최웅민 이사장한테 전화가 왔네.”
“중전기조합 이사장요?”
“SPRD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나한테 막 뭐라 하지 않나? 허 참. 최웅민이 그 자식 많이 컸어. 조합 이사장 오래 해 먹더니 아주 나날이 거만해져.”
“중전기조합 회원사에만 가격 높게 받는다고 한마디 했나 봅니다?”
“고작 개당 3천 원 가지고 말이야. 사업 쪼잔하게 하는 것들은 몇십 원, 몇백 원 가지고 벌벌 떨지. 그런 배포로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쯧쯧.”
자신과 가족들 가져갈 돈 챙기느라 인건비 쥐어짜는 사람들이니, 3천 원에도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대한전력에 한 달 납품하는 변압기가 600대가량 되는데도, 고작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저리 극성을 떨다니, 참 모양새 안 나온다.
“대한전력에서 SPRD 부착하라고 변압기 단가 3만 원씩 올려 줬는데도, 그 욕심을 부리는 모양입니다.”
“이것들이 그 몇 푼에 나한테 전화까지 할 정도면, 올해 입찰은 보나 마나네. 아주 박살을 내 주자고. 자네 역할이 제일 중요한 것 알지?”
역시나 강 사장의 생각도 나와 일치한다.
저 좀생이들한테서 물량 더 먹겠다고 입찰 단가 후려칠 용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내 비밀 병기를 장착한 우리 조합이 대한전력 입찰 모조리 먹어 치울 일뿐이다.
“만발의 준비를 해 놓겠습니다. 사장님께 약속한 자동권선기도 예정보다 보름 가까이 일찍 만들어 냈습니다. 밤낮없이 만들고 있으니 걱정 마시죠.”
“하하. 나주 터줏대감, 우리 조합의 보물이 그리 말하는데 걱정할 일이 뭐 있나. 그나저나 골프는 시작했나?”
“하하. 이제 봄이니 연습장 등록해야죠.”
“허허. 내가 자네 머리 올려 주겠다고 이리 벼르고 있는데! 사업은 귀신같이 하면서 이런 일은 참 굼뜨단 말이야. 그래, 말 나온 김에 내가 골프채 하나 선물해 주겠네. 아니, 우리 직원들 먹인다고 이리 준비를 해 왔는데, 내가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그래, 당장 골프 연습장 등록해서 경쾌한 타격감을 느껴 보자.
예전에야 사장 차 트렁크마다 있는 골프채를 볼 때면 씁쓸했었다. 나는 이 고생 하는데, 골프나 치러 다니고 팔자 좋다고 말이다. 이제 괜한 분노를 가질 필요가 없다. 직원들 대우 충분히 잘해 주고 있고, 나도 열심히 일했다. 누가 뭐랄 사람 없다.
“강 사장님! 축하드려요. 지 사장님도 여기 계시네요?”
대화가 골프로 빠지기 직전에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이 등장했다.
“이 먼 데까지 왜 왔어? 기공식 때 왔으면 됐지 말이야. 하하.”
“아휴, 당연히 와야죠. 우리 조합 이사장님인데, 제가 안 오면 되겠어요? 하하.”
“잘 왔네. 떡이라도 잔뜩 먹고 가.”
“떡 말고 소고기가 잔뜩이라고 하던데요. 소문이 자자해요.”
“지 사장이 나주 내려왔다고 소 한 마리를 잡아 왔지 뭔가. 하하하.”
생색내기 효과가 이리 좋네. 업체들이 왜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하는지 알 것 같다.
“안성파워 번창하라고 신경 좀 썼습니다. 금성전기 올 때도 신경 쓸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하하. 당연히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기대하겠습니다.”
박 사장한테도 소 몇 마리 기꺼이 잡아야지. 돈 벌게 해 준 사람에게는 소를, 돈 못 벌게 하는 사람에게는 소름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압기 자재 공급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강 사장님. 자재는 지 사장님네 걸로 바로 적용하기로 하셨어요?”
“물론이지. 지 사장이 100원이라도 싸게 해 준다고 하는데, 바로 해야지. 기술 미팅도 다 끝났고 외함 인증 시험도 다 끝냈네. 지 사장, 자재 공급 문제없지?”
변압기혁신조합 신년회 때 합의한 대로 회원사들이 속속 자재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역시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안성파워다. 변압기는 관수밖에 하지 않아서 물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트랙레코드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안성파워가 쓴다는 것 자체가 신용장이다.
“외함은 바로 공급 가능합니다. 코아는 캐파 부지런히 늘리고 있으니까 다음 달부터는 전량 공급할 수 있습니다. 폴리머부싱만 조금 기다려 주세요. 여름까지는 준비 다 끝내 놓겠습니다.”
“내가 자동권선기도 반년을 기다렸는데, 그깟 며칠을 못 기다려? 하하. 지 사장이 우리 돈 다 쓸어 가겠어! 하하하.”
“돈 쓸어 가도 제가 허튼 데 쓰지 않잖습니까? 하하.”
“좋은 말이야, 지 사장!”
“네.”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알지? 투자도 잘해야 하고, 좋은 곳에도 많이 쓰라고. 돈을 아끼기 시작하면 욕심이 생기는 법이야. 일을 그르치는 것은 욕심 때문이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긴장하겠습니다.”
진짜 좋은 말이다. 돈에 욕심 생겨 현장에 너트 하나 떨어졌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자. 박 사장이 귓속말이지만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소리로 한마디 곁들인다.
“강 사장님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세요. 모르셨죠?”
“하하. 그게 뭐 자랑이라고 그리 얘기하고 다니나. 별거 없어, 어차피 세금 낼 거 기부하면서 좋은 일 하는 거지 뭐.”
최소한 1억 원 넘게 기부해야 가입할 수 있다는 아너 소사이어티라니. 그저 성격 화통하고, 돈 냄새 잘 맡는 사업가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 달라 보이네.
“강 사장님은 회사도 자식한테 안 물려주신대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자식 놈이 뭐 회사 경영을 해 봤나? 그냥 배당이나 받으면서 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 됐지 뭐.”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회사 물려받아서 민망하네요. 호호.”
“준희 넌 떡잎부터 남달랐잖아. 하하. 우리 애는 그냥 비실비실해.”
박 사장이 또 나한테 다가와 귓속말인 척 크게 속삭인다.
“강 사장님이 말씀은 저렇게 하지만, 아드님이 미국에서 엠에스에 다녀요.”
“하하. 뭐 조그만 아이티 회사 다니는 것 가지고. 하하하.”
이렇게 돌려서 자식 자랑하는 경우도 있군. 회사를 중견 기업 수준으로 키워 내고, 좋은 일도 하고, 자식 농사도 잘 짓고. 그래서 볼 때마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흥겨운 표정인가 싶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이뤄 낸 사람. 부지런히 보고 배워야겠다. 오늘 LA갈비 사 오길 잘했네.
안성파워 나주 공장 완공식 갔다가 회사로 복귀하니 갈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점심부터 고기 파티를 벌였군.
“아휴, 사장님. 조금만 일찍 오시지. LA갈비가 아주 입에서 녹았어요.”
“하하. 저도 맛있는 것 먹고 왔습니다.”
김지연 대리 몸에서 갈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근데 고기 산 것 영수증은 왜 안 주세요?”
“이건 제 돈으로 샀는데요?”
“아이, 진짜. 사장님!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요! 영수증 처리하면 되는데, 왜 매번 그러세요?”
“법인세도 면젠데 경비 처리할 필요 있습니까? 저 돈 많으니까 걱정 마세요. 세금 많이 내야 해서 돈 많이 써야 합니다.”
“부가세 생각도 하셔야죠! 하여간 사장님도 참, 유별난 데가 있으셔.”
황 사장한테 인수인계를 어떻게 받았는지, 틈만 나면 구박이다. 회사 돈은 회사 돈일 뿐이지.
내 돈도 내 돈이고, 회사 돈도 내 돈이라고 마구 쓰는 그런 사장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살고 있다. 직원들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김 대리님. 다음 달부터 자재 대금 당월 마감해서 지급하는 것으로 바꿀 거니까, 그렇게 준비해 주세요. 박 대리님도, 결제 조건 좋아졌으니까 자재 업체들한테 단가 인하 가능한지 진행해 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돈 잘 벌고 있으니, 좋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사실 좋은 일이라기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이겠지.
이 바닥 거래에서 어음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당월 마감 후 익월 말 지급이라는 외상 거래가 여전하다. 익익월 결제도 허다하다. 규모 좀 있는 회사들은 어찌 버티겠지만, 영세한 업체들은 잔뜩 깔린 미수금에 속이 다 타 버릴 것이다.
우리 회사만큼이라도 결제 좋게 해 줘야지. 그러면 또 고맙다고 단돈 십 원이라도 빼 준다. 상생이 뭐 별것인가. 나도 마음만큼은 아너 소사이어티다.
* * *
그렇게 회사가 안정을 찾아 갔다. 피곤에 절어 있던 직원들 얼굴에도 봄기운이 가득해졌다.
그 봄기운을 빌려, 세 번째 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나에게는 영원한 상무님인, 김희철 상무가 태인산업 대표이사로 데뷔하는 날이다.
“우리 김희철 사장님. 이제 부담 잔뜩 가져야 합니다. 지금 폴리머부싱 기다리는 업체들이 번호표 뽑고 기다리고 있으니 빡세게 해 주세요.”
“하하. 사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사장님 이제 회장님 소리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휴. 듣기만 해도 나이 든 냄새가 너무 납니다. 부지런히 벌어서 배당으로 돈 많이 보내 주세요.”
“완공이 6월이니까, 그 전까지 준비 다 끝내 놓고 영업까지 싹 마무리 지어 둘 테니까, 돈 얼마나 잘 버는 지 구경만 하라고.”
“하하. 좋습니다. 고기 실컷 드세요.”
우리끼리 조촐하게 연 기공식이지만, 기분 좀 내고 싶어서 통돼지 바비큐를 준비했다. 꽤 비쌀 줄 알았더니 한 마리에 60만 원밖에 안 하더라. 요리사가 잘라 주는 고기가 어찌나 연하던지.
“윤 상무님, 많이 드시고 앞으로 힘 좀 써 주십시오.”
“아이고, 사장님. 회사를 이렇게 키워 주시니 제가 다 기쁩니다. 제가 고민 많이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왜 고민했나 싶습니다.”
기공식이라고 부산에서 올라온 태인산업 창업자, 이제는 회사 팔고 상무로 내려온 윤희태 상무. 이제 얼굴에 근심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무로 내려앉았지만, 월급으로 치면 사장 때 벌던 돈보다 더 많을 것이다. 돈 걱정 말고 맘 편히 좋아하는 일 실컷 하면서 회사 잘 키워 주셔.
“제작 중인 설비는 보셨죠?”
“물론이죠. 좋은 회사라 그런지 실력도 엄청 좋더군요. 그걸 그렇게 개선할 줄이야.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 기대됩니다.”
“회사는 파셨지만, 상무님 회사라고 생각하시고 잘 키워 주세요.”
“아이고, 당연하지요. 부산에서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가, 공장 완공되면 바로 직원들 데리고 넘어오겠습니다. 이래저래 많이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부산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다 나주로 오기로 했다. 그래 봐야 윤 상무까지 합쳐서 7명이지만, 경력자들이 와 주는 상황은 땡큐이다.
가족을 데리고 오겠다고 한 직원들에게 당연히 아파트를 제공한다고 했더니, 큰 은덕이라도 입은 듯이 감사하다 소리를 연발한다. 민망하게.
황미연 사장이 이끄는 ODI도 다음 달이면 새 공장에서 신 나게 달릴 것이다. 연일 계속된 공사판으로 미세먼지가 많아져도 목구멍이 전혀 칼칼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