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24)
124 정리하자
허름한 육회집. 주류 도매상에서 제공하는 달력이 걸려 있을 것 같은 더 허름한 방. 소고기 등심이 익어 가면서 등심 특유의 기름진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하다.
잠시 말을 멈췄더니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소고기를 숯불에 굽는 것은 정말 사기적인 기술이다. 참을 수 없어 겉만 바짝 익은 등심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이 잠깐의 침묵이 불편했던지, 바로 입을 열었다.
“자네, 좀 꺼림칙해서 뭐라고 말을 못하는 거지?”
“사장님 말씀은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는데,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유혹이 아닌 선의일지라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대한전력 돈이 세금은 아니지만, 국책은행과 정부가 지분 60퍼센트 가까이 가진 공기업이라 나랏돈을 빼먹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네. 대한전력은 어차피 써야 할 돈이야. 이미 책정된 예산을 전용하는 것이니 문제 될 것이 없어. 대한전력이 왜 적자를 내는지 아나?”
“글쎄요. 공기업은 공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적자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우긴 했습니다.”
“요즘 적자는 대기업에 퍼 줘서 그런 거야. 대기업들 전기 만들면 다 사 주지, 비싸게 전기 사서 싸게 공급하지, 적자가 안 날 수가 없어. 미래제철 알지? 전기가 얼마나 싸면 전기로 철을 만들어?”
산업용 전기가 싸긴 하지. 얼마나 싸면 다른 나라에서 매년 시비를 건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철강제품이다. 자국 산업 보호하려고 국산 철강에 반덤핑관세 물리지만, 표면적으로는 전기료가 너무 싸다는 것을 이유로 낸다더라.
“대한전력이 대기업에 퍼 준다고 해서, 우리가 하려는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래, 지 사장 말도 맞아. 근데 생각을 넓게 해 보자고. 우리가 잘되는 것이 대한전력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야. 대한전력도 그걸 바라고 있고. 잘 이해가 안 되지?”
“네, 좀.”
“지금 대한전력이 혁신산단 키우겠다고 돈을 때려붓고 있어. 왜 그러겠어? 전기산업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거지. 그 덕에 프라임일렉트릭 같은 회사가 신제품 척척 개발하고 있지 않나? 자네 회사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해?”
“우리 조합같이 나주로 내려가자는 움직임이 커져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래서 춘배가 나한테 얘기를 한 거야. 기업들이 더 많이 내려올 수 있게 움직여 달라는 뜻이란 말이네.”
그 말도 맞다. 대한전력이 혁신산단 활성화시키려고 매년 엄청난 돈 쏟아붓는데, 우리 조합이 발 맞춰 준다면 대한전력도 이득이겠지.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인가?
“내가 말하지 않았나? 떳떳하면 도움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도 되는 것이야. 꼿꼿하기로 유명한 춘배가, 그것도 대한전력 부사장이란 사람이 나한테 왜 선의를 베풀었겠어? 내가 사리사욕 챙기는 사람이 아닌 것 아니까 도움을 주겠다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면 일종의 홍보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대한전력이 우리 조합에 힘을 실어 줄 테니까 우리는 그걸로 혁신산단 활성화에 힘을 쏟는다?”
“그렇지, 그렇지. 나도 그 취지를 아니까 이걸 조합 차원에서 좋은 일에 쓰자고 하는 것이지.”
강 사장이 굳이 나에게 먼저 얘기하면서 나를 설득하려는 이유는 알겠다. 한 달에 8천 대씩 만들어 낼 수 있는 회사이니, 내 역할이 제일 중요하겠지. 그런데 하도 당해서 그런지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중전기조합이 안 그래도 벼르고 있는데, 나중에 무슨 말이라도 나오면 골치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합 어려운 회사들 도와줘서 거기 직원들 월급 잘 받게 해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 그 돈이 중전기조합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게.”
하긴 중전기조합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밤낮 없이 재고품 만들어 냈겠지. SPRD 단가 3천 원 가지고도 그 난리 치는 것들이니 몇 푼 더 벌겠다고 말이다.
“그놈들 지들 배 불리기에 바쁜 놈들이네. 그 기름기 가득한 것들한테 주느니, 우리가 좋은 일에 써 보자는 것이네. 저번에 신년회 때 보지 않았나?”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다같이 나주 내려오자고 했을 때 겉으로는 다들 찬성했지 않나? 근데 내색은 안 해도 회사 어려워서 나주 내려오고 싶어도 못 내려오는 회사도 있어.”
백만 원짜리 변압기 한 대 팔면 못해도 순익 10만 원 정도는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코아 관련 기술 미팅하면서 보니까 10만 원도 안 남을 업체들이 꽤 됐다. 자재비가 그렇게 높은데 어떻게 회사를 꾸려 가나 걱정스러운 회사도 있더라.
“어려운 업체들이 잘 자리 잡게 도와주면 좋죠. 그래도 변압기 몇백 대 더 판다고 기금이 업체 도와줄 정도로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대출 이자만 일부 지원해 줘도 크게 도움 주는 것이지. 조합 차원에서 좋은 일 하면 우리 조합 가입하려는 회원사도 늘어나지 않겠나? 우리 조합이 노력해서 나주에 입주 기업 늘리면 그게 대한전력 도와주는 것이야.”
괜히 생각이 많아져서 고기는 자꾸 익어 가는데 손을 못 대고 있다. 이 좋은 고기를 이렇게 많이 익히다니! 일단 먹고 차차 생각하자. 답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답이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다음에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고 조합 회의 때 얘기하시죠. 말씀하신 취지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하하. 자네는 강직한 것이 맘에 들어. 그래도 너무 강직하면 부러지는 법이야. 가끔은 유들유들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도 있어. 사업하는데 이슬만 먹고살 수는 없는 법이네.”
“저도 꼭 그렇게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떳떳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맘에 들어.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제일 먼저 얘기했던 것이네. 아이고, 이거 고기가 다 익어 버렸네. 일단 먹세.”
그래 뭐, 대한전력이 도와주겠다는데 도움 받지. 뭐 몇십억씩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몇백 대 더 파는 것 정도인데.
나 혼자 정의 부르짖다가 나쁜 놈들에게 이득 주는 것이 더 정의롭지 못한 일일 것이다. 진짜 정의는 못된 기업들 혼내 주는 것이겠지.
등심으로만 배를 채웠다. 말이 좋아 꽃등심이지, 좀 먹다 보면 마블링 때문에 느끼해서 물리기 마련이다. 차돌-등심-갈빗살이라는 국룰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등심으로 끝내다니! 이 집 고기 참 좋네.
배도 부르겠다, 강 사장에게 올해 포부를 넌지시 던졌다.
“사장님, 올해는 중전기조합도 밟아 주고, 민수에서도 장난치는 업체들 정리를 할 생각입니다. 제가 돈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깝게 보시지 말고, 많이 도와주세요.”
“그럼, 그럼. 내가 왜 민수 변압기를 안 하겠나. 구질구질한 시장 쳐다보기도 싫어서 그래.”
“유독 변압기 쪽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거야 큰돈 안 들이고도 쉽게 돈 버는 업종이니까 그러지. 대기업 못 들어오게 법으로 보호해 줘, 대한전력이 매년 수천억씩 사 줘. 얼마나 좋나? 아무리 그래도 기본은 하면서 회사를 이끌어야지.”
“제가 그래서 이 바닥에서 메기가 되고자 합니다.”
“하하하. 그거 좋네. 아마 민수변압기 검사 제대로 하면 태반이 불량일 거네. 돈 벌겠다고 안전을 버리면 안 되지. 자네가 노력 많이 해야 할 걸세. 태양전기 같은 회사가 한둘이 아니야.”
“태양전기 소식 들으셨습니까?”
태양전기 얘기에 강 사장 표정에서 오랜 악연을 끊었다는 편안함이 엿보인다.
“거긴 끝난 것이나 다름없어. 자재업체에 돈 못 주면 망했다고 봐야지. 그래도 그 실력으로 25년 했으면 아주 운이 좋았던 거지.”
“최홍집 사장이랑 악연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주 악연이지. 최홍집 그 양반이 우리 회사 있다가 독립한 사람 아닌가? 선친께서 잘되라고 물신양면으로 도와줬더니, 회사 차리자마자 거래처 다 찌르고 다니면서 덤핑치고.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내가 그 짓거리 보기 싫어서 민수에서 철수한 거네.”
안성파워 창업주, 그러니까 강 사장 선친이 우리나라 변압기 1세대였다고 들었다. 변압기 밥 먹은 사람치고 안성파워 출신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교육 기관 역할도 했다고 하더라. 태양전기 창업주는 청출어람을 한 것이 아니라 배은망덕을 했구만.
“최홍집 사장이 꼬장꼬장하긴 해도 맨손으로 회사 세워서 키워 낸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네요?”
“최홍집 그 양반이 능력이 좋아서 회사를 키운 것이 아니야. 그렇게 더러운 짓 하면 누가 못 키우나? 중고 변압기 속여서 파는 것 누가 시작했어? 아주 악랄한 사람이야. 인과응보라고 그 딸이 회사를 말아먹었으니, 뭐 화내고 말 것도 없지.”
응분을 산 태양전기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생각에 좀 뿌듯하기도 하다.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백 번 천 번 망해야지.
“반면교사로 삼아서 회사 잘 키우겠습니다. 사장님이 우리 조합 맡고 계시니, 아주 든든합니다. 조합 회원사들도 안성파워처럼 좋은 회사로 거듭나도록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사기 안 치고 직원들 월급 제때 잘 주는 회사면 됐지 뭐.”
쥐꼬리만 한 월급도 제때 안 주는 회사가 참 많습니다요.
작년이 회사 성장에 올인하는 해였다면, 올해는 못된 놈들, 시장 더럽히는 잔챙이들, 돈 몇 푼 벌겠다고 내 앞길 막는 놈들을 정리하는 해가 될 것이다. 그게 회사를 키우고, 수익을 높이는 길일 테니까.
“사장님 덕분에 오늘 점심 아주 호강했습니다.”
“인사하고 그냥 가려고?”
강 사장이 차 트렁크를 가리킨다. 트렁크에 신사임당 가득한 사과 상자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지.
“골프채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게 끝이야? 이거 안 되겠어. 아예 나랑 같이 가자고. 내가 자네 연습장 등록하는 것까지 봐야 마음이 놓이겠어.”
“하하. 가시죠. 오늘부터 골프의 세계에 빠져 보겠습니다.”
연습장이라고 해서 TV에서 보던 것처럼 망 쳐진 곳에서 시원하게 드라이버샷 날리는 곳인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나주에는 골프 연습장이 없었다. 매번 광주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년에 혁신도시에 연습장 딸린 골프장 완공된다고 하니까, 일단은 아쉬운 대로 스크린 골프로 감만 잡아 두라고. 나도 온 김에 좀 휘두르고 갈까나?”
골프 어렵네. 골프채는 학교 다닐 때 맞아 보기만 했지, 직접 쥐어 본 것은 처음이다. 요즘도 골프채로 애들 패는 교사는 없겠지? 진짜 옛날에는 말이 교사지 깡패였다. 그런 무지막지한 시대를 살았네.
“사장님, 어깨 힘 빼세요.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자세가 안 나와요. 그립은 꽉 쥐세요. 골프채가 흔들리면 안 됩니다. 몸에 힘은 빼고. 그렇죠! 그 상태로 허리만 살짝 구부리세요.”
레슨 등록하니 티칭 프로가 엉망인 자세를 잡아 준다.
남자 프로라 아주 불편하다. 여자 프로였으면 더 불편했겠지?
“자, 자, 이렇게 삼각형이 나오죠? 백스윙 갈 때는 삼각형이 찌그러져야 합니다. 잠깐만요. 골반은 움직이지 마시구요. 그렇죠! 그 상태로 임팩트 빡! 팔로우 스루까지 자세 유지하고. 네, 아주 좋습니다.”
한 시간이 금방이다. 삭신이 쑤신다. 등짝에 담이 올 것 같다. 강 사장이 웃음을 참지 못하며 연신 화통한 웃음소리를 뱉어 낸다.
“어때? 할 만하지?”
“아휴.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데요? 맘은 시원하게 펑펑 칠 것 같은데, 자세 신경 쓰니까 아휴, 어렵네요.”
“처음이니까 그렇지. 몸은 한 번 기억하면 절대 안 잊어버리니까 잘 배워 두라고. 잘 배워 둬야 폼이 이쁘게 나와. 어설프게 배우면 나중에 폼 고치기 힘들어져.”
“골프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지런히 배우겠습니다. 근데 등짝이 많이 아프네요.”
“하하. 며칠 고생 좀 할 걸세. 자세만 몸에 익으면 금방이야. 골프채는 얼마 안 하니까 부담 갖지 말고.”
점심 먹겠다고 나와서 너무 오래 시간을 보냈다. 사장은 그래도 된다고 하지만, 똑같은 월급쟁이가 그러면 안 되지.
회사 들어가서 밀린 일 해야겠다. 근데 삭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