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26)
126 그리운 임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을 피우는 잔인한 달 4월이 찾아왔지만, 우리 회사에는 더없이 여유가 가득했다.
3월에 이어 대한전력 발주가 납기별로 3천 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직원들은 6시 땡 퇴근의 삶으로 돌아왔다.
자재 생산도 타사 공급이 가능할 정도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자회사 ODI는 다음 달로 예정된 공장 완공만 기다리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관수 매출이 월 60억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민수와 자재 매출이 빈자리를 절묘하게 채워 주면서 월 매출 100억을 넘어섰다. 당초 계획했던 연매출 1,200억을 거뜬히 넘을 수준이다.
돈벌이는 계속되는데, 회사는 한결 여유로운 상황. 더할 나위가 없다. 공장장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야, 공장장님. 이젠 멋도 부리시네요?”
“하하. 이따가 퇴근하고 산에 올라가려고.”
“산에 가는데 왜케 머리에 힘을 주셨어요?”
“아이, 진짜. 할망구들 있는데 아무렇게나 하고 갈 수 있나. 허허.”
20대들은 나주 시내나 혁신도시로 가고, 유부남들은 애 보러 집으로 가고, 50, 60대는 산에 갔다가 영산포로 넘어가 홍탁으로 마무리한다.
월급도 짭짤하고 집이 해결됐으니, 직원들의 퇴근 이후 삶이 꽤 풍족해진 것 같다.
회사 일은 UDT훈련 못지않게 빡세지만, 누구도 불만을 내비치지 않는다. 일이 몸에 익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고생하면 한 만큼 되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요새 민수가 많아져서 좀 귀찮긴 하죠?”
“만들기야 관수만 한 것이 없지. 깔아 놓고 쭉쭉 뽑으면 그만인데, 민수는 안 그러잖아. 그래도 민수도 민수만의 재미가 있어.”
“가끔 예전에 전부 다 손으로 하던 때가 그립지 않습니까?”
“하하. 부싱 조일 때 그 맛이 생각나긴 한데, 기계 돌리는 맛도 짭짤해. 그러고 보니까 요새 쩐주 그분은 별 얘기가 없나 봐?”
그렇다. 1월에 태인산업 인수하라고 한 이후로 문자님이 영 조용하시다. 회사가 자리 잡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일까? 문자님 도움 없이도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내심 섭섭하다. 한우 암소 투뿔짜리 꽃등심이라도 보내 주고 싶은데…….
“네, 요즘은 별말씀 없으시네요. 그 정도로 회사가 너무 잘나가니까 마음이 놓이신 것 같아요.”
“우리 사장님이 가장 고생했고 직원들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분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다고 봐. 내가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꼭 전해 주게.”
나도 그러고 싶다.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지.
“공장장님, 이때가 제일 한가할 때인 것 아시죠? 내년에는 일이 더 많아지니까 내년 농사 준비 잘해 주세요. 직원들 교육도 꾸준히 해 주시구요.”
“그럼그럼. 내가 저번에 보고한 대로 권선 감는 것이나 부싱 조이는 것 다 가르칠 생각이네. 설비가 다 해 준다고 넋 놓고 있으면 안 되지. 직접 해 봐야 머리에 확 들어온다고.”
“좋네요. 권선공은 어디 가도 환영 받죠. 직원들이 뭐 정년까지 있으면 싶지만, 사람 일은 모르니까요. 이럴 때 가르쳐 주면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른 곳 같으면 언제 나갈지 모르는 놈한테 왜 가르쳐 주냐고 뭐라 했을 텐데, 역시 우리 사장님은 맘 씀씀이가 넉넉해. 하하.”
“사장이 맘을 쓰고 손을 내밀어야 직원들도 회사에 애정을 쏟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
당연히 뒤통수치거나, 제 잇속만 차리려는 직원도 있을 것이다. 사람 맘이 다 한결같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회사 분위기가 중요하다. 회사에 고마워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다수가 되면 미꾸라지들도 그 분위기에 녹아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장장은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장장이 데려온 베테랑들도 그걸 잘 알고 있고 말이다. 난 그저 월급 넉넉하게 주는 것으로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 회사가 운 좋게 자리 잘 잡았으니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참, 설비도 계속 잘 나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설계꾼들이 변압기며 설비며 짝짝 뽑아 주니, 이거 뭐 일도 없네.”
“말 나온 김에 연구실 가서 숙제 잘하고 있나 점검해야겠네요.”
“그려그려. 너무 맡겨 두지만 말고 종종 가서 잔소리 좀 하라고. 하하.”
사무동 3층에 있는 연구실로 달려갔다. 설계 베테랑 3명에 보조 인력이 계속 추가되면서 연구실이 제법 그럴싸해지고 있다.
“김 부장님. 안 바쁘시면 옥상에서 담배 한 대 태우시죠?”
“아, 네네. 한 대 생각나는 참이었는데 잘됐습니다.”
공장장이 데려온 김진욱 부장이 자리에 일어나 기지개를 펴면서 담배를 챙겨 들어 일어섰다. 세원변압기에서 15년간 고생만 하다가 팽당한 것이 우리 회사엔 큰 축복이었다.
김 부장은 오자마자 자동 설계 프로그램 만들어서 일일이 손으로 설계를 뽑던 공장장 입을 벌어지게 했다. 민수 변압기는 소비자 요구가 워낙 다양해서 수시로 설계를 해야 하는데, 이제는 숫자 몇 개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설계가 나오니, 공장장이 놀라지 않을 수가.
“요즘 민수 주문이 많아져서 좀 힘드시죠?”
“뭐 힘들면 이렇게 옥상 올라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그러죠. 하하.”
“공장장님이 아이디어 낸 각진 코아는 어떻게 잘될 것 같습니까?”
“공장장님 안 지 오래 됐는데, 이야, 달리 보이더라구요.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데, 막상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지금 세세한 것까지 체크하고 있으니까, 다음 달부터는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문제없다고 해도 제작하려면 코아 라인 수정이 필요하니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공장장이 구상한 각진 코아. 소둔 처리 없이도 성능을 낼 수 있어 생산성이 월등히 높아지는 데다, 대한전력으로부터 10퍼센트 우선배정을 받을 수 있는 꿀기술이다. 계획한 대로만 되면 내년 입찰에서도 우선배정 넉넉히 받을 수 있다. 올해도 그렇고 내년에도 꿀이다.
“여기 오셔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설계쟁이가 설계만 하면 되는데 뭐 일이랄 게 있습니까?”
“그래도 다른 데는 뭐 문제 생기면 설계가 다 뒤집어쓰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것도 엄청 스트레스라고 하던데요.”
“다른 데니까 그렇죠. 하하. 우리 회사야 문제 생길 일도 없지만, 공장장님이 다 책임져 주는데 스트레스랄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옥상 올라와서 담배 한 대 피우면 그만입니다.”
생산과 검사의 사이도 좋지 않지만, 생산과 설계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검사해서 문제가 생기면 생산과 검사가 한바탕 싸우지만, 생산이 검사를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생산은 설계로 책임을 돌린다. ‘너 땜에 불량 났으니까 알아서 해, 난 몰라’라는 말이 그냥 나온다고 하더라. 이 바닥에서 설계 좀 한다는 사람들 얘기 들어 보면, 혼자서 변압기 다 만들어 낼 정도로 숙달된 조교가 된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야 설계 마스터인 공장장이 있으니, 물이 억류해 넘칠 일이 없다. 크로스체크로 설계가 문제 생길 일도 없지만, 행여나 불량이 나도 공장장이 알아서 뜯어고치고는 뭐가 문제였는지만 사후에 알려 주니 말이다.
“계속 연구실에만 계셔서 그런지 배가 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예전엔 현장 수시로 내려가서 땀 한 바가지 쏟아 내고 그랬으니 살찔 새가 없었는데, 이거 운동 좀 해야죠.”
“1층 강당에 헬스장도 만들어 놨는데, 자주 이용하시죠. 부장님 같은 분 쓰라고 만들어 둔 겁니다. 하하.”
직원들 건강 챙겨 준다고 트레드밀이랑 쇳덩이 넉넉하게 사다 놨더니, 체력 넘치는 20대들만 이용한다. 배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30, 40대들도 분발하시라. 애 키우는 것도 체력전이겠지만, 운동과는 다르니 쇳덩이 부지런히 들라고!
헬스장에 더해서 식당도 차렸다. 직원이 백 명을 넘어서면서 배달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5군데 식당에서 배달해 먹었는데, 반찬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광경을 보는 것도 아닌 것 같더라.
구내식당 자리로 점찍어 둔 곳에 5천만 원 들였더니, 반응이 아주 좋다. 시켜 먹는 가격보다 덜 들지만 더 높은 퀄리티가 보장되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시화공단에 있던 생태탕 가게 주방장을 데려오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지금 조리사도 손맛이 아주 좋다. 덕분에 직원들이 밥 먹는 양이 많아졌다. 운동도 좀 하시라.
신제품 개발 진행 상황 알아보려다 식당 얘기까지 해 버렸네. 회사 분위기에 취했는지 툭하면 배가 산으로 가 버리네.
“부장님.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 개발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남산이 놀랄 정도로 나온 배를 보며 환하게 웃던 김 부장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모양이다. 효율도 높이고 크기도 줄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겠지.
“그게, 일단 설계상으로는 될 것 같은데, 온도가 계속 걸리네요. 방열기 빼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온도 일이 도 낮추는 것이 쉽지가 않거든요.”
“물론이죠. 쉽게 될 것이었으면 다른 업체도 진즉 내놓았겠죠. 급할 것 없으니까 완벽하게만 만들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근데 온도도 온도지만 소음이 걱정입니다. 소음이야 시제품 만들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는 거라 어떻게 손볼 수도 없고 마냥 걱정이네요. 아몰퍼스코아가 워낙 예민해서 조립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단 설계가 나오는 대로 계속 만들면서 익혀야죠.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만 개발하면 당분간 관수 쪽은 여유가 있을 테니까, 조금만 참고 힘써 주세요.”
대한전력 배전용 변압기 메인 4개 중에서 일반형과 내염형은 고효율 주상변압기로 대체가 되고, 지상설치형도 곧 공개할 컴팩트지상변압기로 대체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아몰퍼스변압기인데, 다른 회사가 먼저 개발하기 전에 당연히 우리가 먼저 해내야 한다.
“부장님. 최 부장님하고 관계는 어떠십니까? 뭐 문제없죠?”
같은 부장에, 김 부장이 최형택 부장보다 3살 어리지만, 당연히 연구실장을 김 부장에게 맡겼다. 변압기 회사는 변압기 설계가 메인이니까.
김 부장이 연구실장이지만 최 부장을 불편해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몇 년 안 되는 직장 생활이었지만 강직하고 마이웨이를 부르짖는 직원이 있으면 같이 일하는 사람이 불편한 경우도 있다.
“뭐 문제랄 것이 있습니까? 최 부장님이 남 말 잘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놔두면 성과 잘 내지 않습니까? 성과를 못 내면 모르겠는데, 잘 하면 냅둬야죠. 그래도 같이 술 한잔하면서 얘기해 보면 잘 통합니다.”
“김 부장님 고생 덜 하라고 설계자 뽑았는데, 설비 설계만 하고 있으니 어쩌나 해서요.”
“설비 설계도 중요하죠. 변압기 설계야 뭐 박 과장도 잘하고, 대리들도 부지런히 하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설계자들 고생하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땀 흘리는 것만 보는 것 아니니까, 내년에 아시죠?”
“하하. 이거 담배가 달달합니다.”
달달한 격려가 큰 힘을 발휘했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 첫 번째 설계가 나왔다. 김 부장은 온도가 규정에 모가지로 걸린다고 걱정했지만, 일단 만들어 보고 나서 수정하면 된다.
“공장장님! 시제품 언제 나옵니까!”
“아주 기다리다 죽겠지? 허허. 좀 전에 건조로에서 나와서 지금 조립 들어갔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혹시 몰라서 완성되자마자 바로 소음 시험부터 할 생각이네.”
“그럼 여기서 기다리죠. 뭐라도 도울까요?”
“사장님은 현장에서 구경만 해. 팔 걷어붙이는 순간 직원들 긴장한다고.”
초조한 마음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제품이 나왔다. 지금까지 6만 대 넘게 조립을 했으니, 다들 조립의 신이 된 듯하다.
“자, 방음실로 가시죠.”
외형과 특성이야 설계에서 문제가 없으면 실제로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온도와 소음은 워낙 변수가 많아 반드시 실물을 가지고 테스트를 해 봐야 한다. 온도 시험을 바로 할 수 없으니, 일단 소음부터 들어 보자.
“전기 투입합니다. 소리 내지 마세요.”
이규철 부장이 전기 투입 후 방음실 문을 닫았다. 2초 후 정적을 깨는 소리가 난다. 우우우웅. 코아 떨리는 소리다.
“소음 측정하겠습니다. 1번 54데시벨. 좀 높네요.”
동그란 변압기를 순서대로 돌리면서 여덟 번을 측정해 평균값을 낸다. 평균값이 소음 규정 안에 너끈히 들어와야 된다.
“2번 56데시벨. 역시 높네요.”
여덟 번까지 다 측정하고 평균값을 내니 55데시벨이 나왔다. 완전 불량이다. 규정을 5데시벨이나 넘어 버렸다. 이런!
“안정화가 안 된 것 감안하면 이것보다 훨씬 낮게 나와야 합니다. 그냥 불량입니다.”
이 부장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불량 판정을 내렸다. 이거 쉽지 않겠군.
방음실에서 나와 꺼 둔 휴대폰 전원을 넣자마자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발신 번호 없는 문자라.
문자님!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