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27)
127 지안
-소음 절감 방법.
문자님 감사합니다! 다 지켜보고 계셨군요!
첨부 파일을 열어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번듯한 설계라도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간단했다.
아몰퍼스코아 끼울 때 절연지로 감싸는 방법, 코아 조임쇠 조립 방법, 조립 시 고무 패킹 사용하는 법이 다였다. 겨우 이것?
이제야 문자님이 그동안 조용히 있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 개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분명 완벽한 설계를 주었을 것이다. 그럴 분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문자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컴팩트지상변압기는 공장장의 역량으로 개발에 성공했고,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도 1차 시제품은 불량이지만, 그래도 만들어 냈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문자님 도움 없이도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뜸해진 문자에 서운한 마음도 든다. 별 얘기가 없는 것을 보면 특별한 이슈도 없는 것이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하루 뜸을 들이고 나서 문자님께 받은 신탁을 공개했다. 공장장과 김진욱 부장이 함께한 기술 회의 자리였다.
“아하! 이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외함이랑 중신 연결 부위만 고무 패킹으로 잡아 줘도 소음이 꽤 줄어들 것입니다. 조립할 때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하겠지만, 일단 소음 잡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김 부장이 자책하는 표정으로 신탁이 확실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의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발상의 전환이 신기술로 이어지는 법이겠지.
“코아 조임쇠 조립 방법은 어떻습니까, 공장장님.”
“이것까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그 쩐주분은 대단하네. 아니, 소음 오버됐다는 얘기 듣고 바로 이렇게 얘기하던가?”
“네. 혹시나 방법이 있을까 여쭤 봤더니 이렇게 해 보라고 말씀해 주시네요.”
문자님 관련해서는 여전히 구라를 잘 풀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무덤까지 비밀 지키려면 이빨 잘 터는 수밖에 없지.
“허허. 이런 방법을 생각하다니, 대단하네, 대단해. 자, 봐 봐. 조임쇠를 그냥 조이면 미세하게 서로 균형이 안 맞을 수 있단 말이지. 균형이 어긋나면 코아가 많이 떨리겠지? 소음 측정표 보니까 이쪽이 소음이 높게 나왔단 말이야. 그럼 이쪽으로 코아가 쏠렸다는 소리 아니겠나?”
“그렇습니다. 소음이 전체적으로 높게 나오면 설계가 문제가 있거나 코아 조립을 잘못한 것일 텐데, 한 방향에서 유독 높게 나온다면 조임쇠 조립도 문제가 있단 소리일 수 있죠.”
김 부장이 조심스럽게 분석 결과를 내놓다. 조립에 문제 있었다는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싸움이 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공장장은 그런 것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니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단 소음이 전체적으로 높긴 하니까, 코아 끼울 때부터 다시 진행해 보시죠. 이렇게 절연지를 감싸면 아무래도 코아 흔들림이 좀 잡히니까 개선될 것 같기는 합니다.”
“네, 사장님. 저도 설계 다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대개 코아랑 권선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소음이 높게 나오긴 하는데, 우리야 자동권선기가 뽑아 주니까 그럴 가능성도 낮고. 아무래도 설계를 뜯어 봐야겠습니다.”
“김 부장. 아니네, 아니야. 내가 봤을 때 설계는 아주 잘 나왔어. 오늘 보니까 특성도 아주 잘 나왔더만. 특성 잘 나오면 온도는 보나 마나야. 소음이야 조립 문제이니까, 사장님이 가져온 방안대로 조립 다시 해 보겠네. 그렇게 해서 소음 잡히면 땡큐지.”
다른 회사 같았으면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책임만 떠넘기면서 신명나게 싸웠을지도 모른다.
개발 과정에서 제일 힘든 것이 부서 간에 누가 더 잘못 많이 했는지 꼰지르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이런 편안한 분위기 아주 좋다.
확실히 회사 경쟁력은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1차 시제품이 완벽한 실패로 끝났지만, 서로 남 탓을 하지 않는다.
의좋은 형제가 회사를 살리는 법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나도 부담 없이 판정을 내릴 수 있겠다.
“제가 봤을 때도 설계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몰퍼스코아가 워낙 예민하니까, 끼울 때 조금만 방심해도 소음이 확 올라가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쪽으로 경험도 많지 않으니까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해 봐야죠. 김신우 이사님이 아몰퍼스코아 전문가니까 같이 머리 맞대고 개선해 보세요.”
“사장님, 고무 패킹은 어찌할 생각인가? 이 정도 두께면 시중에 있는 걸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
“패킹 업체에 물어보고, 없으면 금형비 지원해서라도 바로 제작해야죠. 그건 시간이 걸리니까, 일단 코아랑 조임쇠만 조립 다시 해 보고 결과 보죠. 그래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알겠네. 온도 시험 끝나는 대로 해체해서 다시 조립 들어가겠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모레부터 하시죠.”
“아이, 이거 참. 꼭 이럴 때 쉬는 날이 있다니까. 이럴 때는 하루 종일 일만 해도 피곤한지를 모르는데.”
“공장장님. 높은 사람들이 안 쉬고 부지런 피우면 밑에 직원들이 힘들어집니다. 하하.”
식목일이 빨간 날에서 빠진 이후로 4월은 7월, 11월과 함께 잔인한 달이었다. 잔인함을 씻어 주기 위해 4년마다 한 번씩 쉬는 날이 돌아온다.
총선! 대부분 중소기업은 선거고 나발이고 무조건 출근이다로 모시지만, 그렇게 인건비 아껴 봐야 좋을 것 없다. 빨간 날은 무조건 유급 휴일이지!
이 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최대근 사장은 여론 조사 공표 금지 전까지 당선이 유력했다.
나는 도의상 후원금 100만 원 보낸 것 말고는 일절 도움을 주지 않았다. 운명 공동체 같은 느낌이라 우리 회사가 잘나가는 것 자체가 선거 운동이지만.
선거 운동이 종료되는 선거 당일 0시가 되자마자 최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움은 주지 않았지만, 관심은 많았다. 최 사장 당선은 곧 우리 회사를 엿 먹이려 한 박철원 그놈에게 쓴맛을 안겨 주는 것이기에.
“아, 지 사장님.”
“아휴, 최 사장님 목이 다 쉬셨네요. 선거 운동 기간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혹시나 서운하게 생각 안 하셨으면 합니다.”
“아닙니다. 보니까 직원분들이 후원도 많이 해 주시고 아주 고맙습니다. 우리 지 사장님은 존재 자체가 선거 운동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하.”
난 직원들 시켜서 후원하라고 한 적 없는데? 덕준이 자식이 저번에 10만 원 환급 받으니 하면서 애들 앞에서 뭐라고 하던데, 그건가? 그러고 보면 덕준이도 이미 운명 공동체이지.
“사장님, 오늘 당선증 받는 것이죠? 하하.”
“뚜껑 열어 봐야죠. 자체 조사로는 충분하긴 한데, 워낙 추격이 거세서 말입니다. 아따, 초반에 그렇게 고꾸라졌는데도 따라오는 것 보니까 바람이 무섭긴 무섭습디다. 열심히 했응께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피곤하실 텐데 너무 시간을 뺏은 것 같습니다. 고생 많으셨고, 좋은 결과 기원하겠습니다, 의원님. 하하.”
최 사장이 국회의원 된다고 해서 내가 득 될 것은 없다. 그저 우리 회사 잘되라고 많이 도움 준 사람이 잘되길 바랄 뿐이다. 권선징악이고 인과응보이지.
* * *
모처럼 휴일이라 광주로 달려갔다.
한 달 넘게 못 본 최유리가 살아 있는지 확인을 해야지. 평소엔 주말마다 나주 본가로 왔었지만, 학기 시작하고 나서는 아주 죽어지내는 모양이다. 공부 방해될까 봐 연락하기도 꺼려질 정도였다.
“아휴, 오빠! 얼굴 잊어 먹는 줄 알았네.”
“우리 최변, 얼굴 보니까 살 좀 빠진 것 같네?”
간만에 본 유리는 봄기운 따위는 없는 얼굴이다. 평소에도 꾸미고 다니지 않았지만, 더 안 꾸민 얼굴을 보니까 나도 저절로 법전이 외워질 정도이다.
“나름 체력 관리한다고 밥은 꼬박꼬박 먹는데 살이 쭉쭉 빠지더라. 엉덩이도 더 펑퍼짐해진 것 같어.”
“기운 빠지면 연락하라고 했잖아! 내가 몸보신 좀 시켜 줘야겠네. 참, 투표했어?”
“오늘 풀로 쉬어 보려고 사전 투표했지.”
“누구 찍었어? 보니까 광주도 시끌벅적하던데?”
“비밀. 내가 찍은 사람은 꼭 당선되니까 이번에도 그러겠지. 아, 저번에 대선 때는 아니었구나.”
투표 몇 번이나 했다고 부채도사 노릇을 하려 하다니. 아직 제철은 아니지만, 늘 옳은 장어나 먹으러 가자.
“비싼 거니까 부디 많이 먹거라.”
“어머? 평소랑 말투가 다르네?”
“너 핼쑥한 얼굴 보니까 마음이 아파서 진심이 우러나온다야.”
“호호. 그럼 양껏 먹겠습니다, 사장님. 나 진짜 많이 먹는 것 알지?”
탕수육 부먹찍먹 논쟁만큼 장어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논쟁도 치열하다.
양념도 물론 맛있지만, 역시 장어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소금구이지. 많이 먹으면 비리지만, 민물과 바닷물의 체취를 느끼려면 소금 살짝 친 채로 구워서 생강이랑 먹어야지. 아, 침 고인다.
“맞다. 오빠, 저번에 기자한테 소송 건 건 어떻게 됐어?”
“형사는 기소 유예고, 민사는 손해 배상 삼백. 변호사비 부담하는 걸로.”
“그래도 삼백이면 잘 나왔네. 명예 훼손이라고 해 봐야 일이백 정도거든. 그 기자는 변호사비까지 다 하면 천만 원 넘게 날아갔겠네?”
“기사 하나 잘못 써서 그 정도면 뭐 충분하지. 앞으로 그런 짓 못하겠지. 우리 최변께서 조언하신 대로 됐으니까, 얼른 시험 합격해서 우리 회사 자문 변호사로 오자?”
“하하. 나도 그러고 싶어. 2학년 올라가면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아휴 죽겠어 진짜.”
예전과 다르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상대의 하소연도 기분 좋은 소리로 귀에 들어온다.
예전에 여자 친구랑 헤어지기 직전엔 말 들어 주는 것조차 힘들고 짜증이 났었는데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진실이다.
“맞다, 맞다. 오빠 신문에 나왔데? 하하하. 그거 보고 바로 연락해야지 하다가 깜빡했네.”
“왜 이래. 나 은근히 신문에 잘 나와.”
“기부도 오빠답더라. 이앙기. 푸하하.”
“그거 반응이 얼마나 좋았는데! 이제 나주 일대 돌면 나훈아는 저리 가라야.”
신문이 지면 시대였다면, 잘 안 보는 중간 면의 맨 하단 구석 정도에나 실렸을 텐데, 인터넷 시대다 보니 검색만 하면 플래카드 들고 찍은 사진이 바로 나온다.
살짝 기대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반응도 좋았다. 곳간이 넘치니 인심 베풀면서 살아야지.
“돈 그렇게 벌어서 어디다 쓰나 했더니 그렇게 좋은 일 하면서 사는구나? 오빠는 얼굴에 좋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니까.”
“그건 회사 돈으로 한 건데…… 난 어째 만날 거지야. 돈 생기면 잘 모아서 회사에 고스란히 도로 들어가니.”
“회사 잘나가는데 뭐. 투자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지.”
“회사는 엄청 키우고 싶은데, 이상하게 딱히 돈 욕심이 생기지는 않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돈이 더 잘 벌리는 것 같고. 참 돈이란 것은 알 수가 없어.”
“그거 알면 다들 부자 되겠지.”
한 달에 월급으로만 4천만 원 가까이 들어오지만, 돈과 거리가 있던 삶을 오래 살았던 탓인지 내 돈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이, 그렇게 생각하니 돈이 더 잘 벌린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사 먹을 정도는 되니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깟 차와 시계 따위가 뭐 중요하랴.
“아휴. 진짜 배부르다. 사장님, 너무 잘 먹었습니다. 하하.”
“많이 먹는다더니 얼마 먹지도 않았네? 커피나 마시러 갑시다. 가만가만, 내가 다 낼 테니까 조용히 있으셔.”
찬 성질의 장어에 커피까지 이어지면 오늘 밤 오들오들 떨게 생겼다. 그래도 커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수지.
“부모님이나 최 사장님이 뭐 안 물어봐?”
“오빠랑 만난 거? 그런 거 안 물어봐. 우리 집은 약간 방임이랄까? 다른 쪽으로 워낙 들들 볶아서 그런지 남자 만나는 걸로는 별 얘기 안 하더라고. 뭐 아직 들들 볶일 나이도 아니고.”
“다른 쪽이라면?”
“지금 하는 거. 아마 로스쿨 졸업하고 변호사 되면 이제 선 보라고 들들 볶을지도 몰라. 좀 어련히 잘하겠지 하고 내버려 두지.”
회사 경영도 직원들이 어련히 잘할 것이란 믿음으로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겠지. 실제로도 그렇고 말이다.
“아휴. 오늘 극진히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에 힘이 좀 나는 느낌인데?”
“힘내서 공부 열심히 해!”
“네, 선생님! 오랜만이라도 이렇게 보니까 좋네.”
“공부한다고 앉아만 있는 것도 좋은 건 아냐. 가끔씩 바람도 쐬고 그래야지.”
“아무래도 난 독종기가 좀 있나 봐. 하하. 뭐 그렇게 안 하면 따라잡기 힘들기도 하지만.”
모처럼 오랜 시간 신 나게 수다를 떨다, 서로를 격려하며 헤어졌다. 매번 만날 때마다 격렬한 움직임을 갖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서로 편안한 시간을 가졌으면 된 것이지.
유리, 편안함에 이르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