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28)
128 기름진 잔치
4년 만에 찾아온 휴일이 희비가 엇갈리며 지나갔다.
최대근 사장은 소속 정당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호남 국회의원이 됐다. 그 당이 지금까지 호남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었던 것에 비춰 놀라운 결과였다.
상대 당의 거센 돌풍 속에서 첫 출마로 국회의원을 거머쥔 최 사장, 아니 최 의원은 주가가 엄청 올라갔다.
내 일도 아니지만, 기뻤다.
나와 우리 회사에 큰 도움이 되어 준 최 의원의 당선이 기뻤고, 열 달이 됐는데도 출산을 막았던 박철원 그놈이 확실한 패배를 당한 것이 기뻤다. 내심 선거비 보전도 못 받을 득표를 기대했지만, 그건 좀 아쉽다.
최 의원이 정신없이 바쁠 것 같아서 화분 하나 보내놓고 축하 문자만 보냈다. 국회의원 됐다고 질척거릴 이유가 없지.
문자 보낸 지 한참이 지나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고, 최 의원님.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성실한 의정 활동 당부드립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 지 사장님 도움이 컸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사업하는 데 어려움 없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시 알고 있군. 대놓고 나서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나름 도움도 많이 줬다. 국회 가서 좋은 활동 많이 하라는 뜻이니까 열심히 하셔.
“잘 아시겠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이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하. 나도 사업했던 사람인데 잘 알지요. 그래서 내가 정치하겠다고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열심히 할 테니까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는 회사 열심히 키워서 나주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겠습니다.”
서로 낯간지러운 소리 없는 담백한 대화가 마무리됐다.
의도적으로 이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보다는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를 가지면 될 것이다. 서로 그러면서 도움이 됐으니 앞으로도 그러겠지. 일이나 하자.
생산동은 아침부터 초집중 상태다.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 시제품을 뜯어내서 다시 조립하느라 소란스럽다.
“공장장님. 이번엔 소음 조금이나마 줄어들겠죠?”
“그러도록 해야지. 변압기가 한 번 뜯고 나면 오히려 안 좋아지긴 한데, 그거 감안해서 봐야지. 아몰퍼스코아가 너무 예민해.”
“온도 시험은 합격했으니까, 소음만 잘 잡아 주세요.”
변압기 수리는 아주 지랄 같다. 절연유에 푸욱 담근 중신을 꺼내 최대한 기름을 빼낸 다음에 조립 역순으로 해체한다. 여전히 기름 범벅이라, 몸에 묻고 미끄러지고 난리도 아니다. 해체가 끝나면 다시 조립에 들어간다. 몸에 묻는 기름이 더 많아진다.
“아니아니. 여기서 이렇게 하란 말이야! 여기가 울었잖아. 틈이 생기면 안 된다고. 그렇지, 그렇지. 테이프 붙여서 고정하고 절연지로 감싸.”
“좋았어. 이대로 들어서 바닥에 내려놓자고. 일단 코아는 잘 끼웠으니까 조임쇠만 잘 채우면 되겠군.”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양쪽을 똑같이 조여야 해! 아니, 임팩트를 그렇게 썼으면 딱 감이 있어야 할 것 아녀! 그래, 그렇지. 그렇게 하란 말이야.”
공장장과 김신우 이사가 코아 끼우는 과정에서부터 유격대 조교로 변신해 훈수를 쏟아 낸다. 내가 작업자였다면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새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이리 어려운 것이다. 출산의 고통이 보통 고통인가.
시제품이 다시 조립됐다. 대한전력 소음 기준이 50데시벨 아래이지만, 합격을 위해서는 45데시벨 밑으로는 나와야 한다. 대한전력으로 소음 시험하러 가는 도중에 코아가 흔들려 소음이 높게 나오고, 방음실 시설에 따라 편차가 있으니 말이다.
“전기 투입하겠습니다.”
1호 시제품의 2차 소음 시험이 시작됐다. 변압기에 전기가 투입되자 역시나 우우웅 소리가 난다. 약간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 이거 긴장되네.
“1번 48. 많이 떨어졌습니다.”
저번 시험 때 54데시벨이었으니, 6데시벨이나 떨어졌다. 쭉 이렇게만 나와라.
“2번 50데시벨. 떨어지긴 했는데 높긴 합니다.”
“3번 52, 4번 53.”
안 봐도 불합격이네. 소음 잡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더니, 역시나다.
“평균 51데시벨 나왔습니다. 앞뒤는 많이 낮아졌는데, 좌우가 조금 높네요.”
“불합격이긴 해도 51이면 저번보다 4데시벨 낮아졌네요. 재조립인 것 감안하고, 앞으로 고무패킹 달 것 생각하면, 다음엔 합격선에 들어올 것 같은데요. 공장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공장장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었다는 뜻인가?
“불합격은 불합격이지. 늘 하던 대로는 안 된다는 뜻이군. 진짜 변압기는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공장장님. 제가 코아가 잘 나온 것인지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아무리 조립을 잘해도 코아가 제대로 안 나왔으면 소음이 높게 나올 수 있거든요.”
“아니야. 아까 치수 다 재 보지 않았나? 설계대로 잘 나왔구만 뭐. 보조 없이 잡아 보려고 했더니만, 쉽지가 않네.”
김 이사의 위로에도 불만스러운 표정이 여전하다.
고무패킹이라는 보조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모양이다. 변압기 만드는 사람이 교과서에 있지 않은 방법을 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
“공장장님. 고무패킹 다는 것도 기술이에요. 특허도 신청해 놨습니다. 일반 변압기였으면 그냥 해도 되지만, 이건 아몰퍼스변압기잖아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무패킹 달아서 시제품 다시 만들어 보시죠.”
“30년 가까이 변압기 만들면서 소음으로 문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거 참…… 고무패킹은 언제 들어오나?”
“금형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금형만 있으면 바로 해서 보내 준다고 하네요. 아마 다음 주 초엔 들어옵니다.”
“그럼, 그때까지 시제품 다시 만들어 보고, 이것도 계속 뜯어서 고쳐 보겠네.”
공장장의 저 표정 간만에 본다. 이글거리는 눈빛 보니까 현장 직원들 고생 좀 하겠다 싶다. 고생해도 개발만 성공하면 몇백억짜리니까 잘 이겨 내길.
소음 시험이 끝나자마자 공장장은 변압기 현장으로 들고 가 다시 뜯기 시작했다.
비누로는 어림도 없어서 주방 세제로 바닥에 범벅인 기름기를 닦아 낸 직원들이 다시 기름 묻힐 생각에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1급 발암 물질 함유된 절연유가 아닌 것을 감사히 생각할 수밖에.
퇴근 시간이 임박했을 무렵 공장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방음실로 빨리 오라는 독촉이었다.
“어휴. 몇 번을 뜯으신 겁니까?”
“다섯 번째 측정인데, 이번엔 결과가 좋아. 이 부장, 다시 해 보자고.”
소리만 듣고 수력으로 만든 전기인지, 화력으로 만든 전기인지 구분할 귀가 아니라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1번 47.”
2차 측정 때보다 겨우 1데시벨 줄었으면 큰 의미는 없다. 환경에서 따라 1~2데시벨은 거뜬히 왔다 갔다 하니 말이다.
“3번 49.”
앞뒤보다 좌우가 소음이 높았는데, 좌우가 확실히 낮아졌다. 이거 잘하면 기준 안으로 들어오겠는데?
“8번 46. 평균 48.4데시벨. 여유가 없긴 하지만, 합격입니다.”
“와우. 아까 2차 때보다 3데시벨 정도 떨어졌네요? 어떻게 하신 겁니까?”
“휴우. 십년감수했네. 기름 땜에 살갗 번들거리는 것 좀 봐. 하하. 뭐 별건 없고, 조임쇠에 볼트 채울 때 와셔 하나씩 더 껴 줬더니 이리되더라고. 상철이 그 자식이 와서 보더니 평와셔 껴 보라길래 혹시나 했더니만, 이거 괜찮네. 하하.”
SPRD 생산 관리하라고 ODI로 보낸 조립의 신 이상철 이사가 공장장 개고생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찾아온 모양이다. 바로 옆 공장이니 금방 오긴 하지만.
“조립하면 우리 이사님 아닙니까? 이렇게라도 소음이 어느 정도 잡혔으니 안심입니다. 고무패킹 달면 아주 안정권으로 들어올 것 같은데요?”
“상철이를 ODI로 보낸 것이 영 아쉽단 말이야. 저놈은 나랑 같이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하는데. 허허.”
“이웃사촌인데 뭘 걱정하십니까? 하하. 2차 시제품 바로 제작해 주세요. 다 준비해 놨다가 다음 주에 고무패킹 입고되면 바로 테스트해 보죠.”
대한전력이 연간 구매하는 아몰퍼스변압기가 450억 원 정도이다. 그러나 높은 효율 때문에 구매 액수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입찰에서는 500억 원은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고효율을 개발했으니 구매액이 더 늘어나겠지? 신제품 개발로 20퍼센트 우선 배정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100억 원 이상이다.
거기에 이 정도 난이도면 개발에 성공한 회사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못해도 150억 원 정도는 먹을 수 있다.
아몰퍼스코아 판매로도 100억 원 이상은 거뜬하다. 내년에도 매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샤워실에 바디워시를 돌려라!
일주일이 지나고 2호 시제품이 완성됐다. 1호 시제품을 네 번이나 뜯어서 고치면서 습득한 노하우와 문자님의 비기인 고무패킹이 적용된 2호 시제품. 문자님은 완벽한 분이시니 결과는 빤할 것이다.
“전기 투입합니다.”
막귀가 들어도 소음이 확연히 낮아졌다. 그냥 합격이다.
“1번 44데시벨. 2번 45데시벨. 3번 45데시벨.”
방음실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이 텔레토비 동산을 비추는 해님으로 바뀌었다.
“측정 끝. 평균 45.2데시벨 나왔습니다. 어떤 변수가 있어도 이 정도면 완벽하게 합격입니다.”
이규철 부장의 퍼펙트 합격 판정이 끝나기 무섭게 환호성이 터졌다.
며칠 동안 개고생을 하긴 했지만, 신제품 개발이 이렇게 빨리 끝나 버린 것은 기적이다. 설계가 잘 나와서, 시제품 수십 대는 기본으로 만들어야 겨우 가능한 일을 단기간에 끝내 버렸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런 날은 그냥 넘어갈 수 없죠. 오늘 일 일찍 마치고 회식하러 가시죠!”
“이게 이렇게 금방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김 부장님, 설계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공장장님이랑 김 부장님은 개발 일지 잘 작성해 주세요. 제가 이 결과물 들고 대한전력 가서 신제품 개발 확정 받아 오겠습니다!”
“사장님, 이거 개발 승인 받으면 매출 얼마나 됩니까?”
“하하. 약소하게 300억 예상합니다.”
텔레토비 해님들이 더 환하게 웃는다. 연봉이 얼마나 오를 것이며, 성과급은 얼마나 나올지 계산하기 바쁘겠지. 선글라스 낀 채 부동산 매물을 살펴보는 이들이 아른거린다.
자회사 포함해서 전체 직원이 120명을 넘어서면서 전 직원 회식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처음 회사 세웠을 때 인천 공장에서 7명이서 밤새 마셔 댔던 첫 회식이 그립기도 하다.
이 많은 인원을 먹이기 위해 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통돼지바비큐. 날도 좋겠다, 공장 마당에서 신 나게 먹고 마시고 토하자고.
혁신도시에 있는 가족들까지 다 불러와서 성대하게 잔치를 치렀다.
대학 축제가 생각나는 저녁이다. 테이블과 의자는 열악하고 불편하지만, 잡초 뽑아 지져 댄 부침개조차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던 그 축제.
다음에는 아이돌도 섭외해야겠다.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군부대 위문 열차도 놀라서 도망갈 지경일 것이다. 유라유라하거나 보라보라한 아이돌.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네. 흐흐.
“아이고, 강 사장님.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아니, 이 동네 전세 냈나! 시끄러워서 일을 할 수 있어야지 말이야. 하하하.”
우리 공장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안성파워까지 시끌벅적함이 전달됐나 보다. 강호창 사장이 직원 서넛을 데리고 공장에 찾아왔다.
“오셨으니 고기 좀 드시지요.”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이리 돼지를 많이 잡았나? 이야, 회식을 이렇게 하는 것도 좋아 보이네.”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무리 좀 했습니다.”
“이거 보니까, 뭐 또 개발했구만?”
“하하. 사장님은 제 속을 읽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아몰퍼스변압기 성능을 개선한 신제품이 성공했습니다.”
“아몰퍼스? 그거 쉽지 않을 텐데? 역시 지 사장이야. 이러다 관수 변압기 다 여기로 오게 생겼네. 하하.”
강 사장 눈빛에 시기나 질투가 보이지 않는다. 저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눈빛이다. 한배를 탄 든든한 동반자. 이런 호인을 만난 것도 행운이다. 한 번에 고기 두 점씩 먹어도 모른 체해 줘야겠다.
“지 사장. 다들 한식구나 마찬가진데, 여름 되기 전에 체육 대회 한번 여는 것 어떤가?”
“좋죠! 우리 직원들 축구랑 족구 아주 잘합니다. 하하.”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5월이나 6월쯤 날 잡아서 제대로 한번 해 보자고.”
안성파워를 이길 기회가 찾아왔다. 홍철아, 애들 훈련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