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3)
013 창업 선물
“유세차 갑오년 팔월 스물아흐레 날. 프라임일렉트릭이…….”
그냥 절하고 돈 꼽는 것만 하고 돼지머리나 썰어서 먹고 말자니까 공장장이 기어코 기원문을 읽으시겠단다. 기원문 태우다가 불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다.
공장장과 상무는 역시나 태양전기 최현아와 우진택 부부의 개지랄을 무차별적으로 맞아 가며 우여곡절 끝에 퇴사했다. 공장장이 섭외한 직원 3명도 나란히 회사 잠바를 입었다. 공교롭게 2명은 이전 회사에 있던 형님들이다.
사람 빼 가기가 아니다. 본인들이 공장장과 함께할 것이라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란다. 최현아 부들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어디 지진 났나? 태양전기 흔들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나는구나! 후훗.
기원문 태우고 나서 내가 첫 타자로 절을 했다. 사장답게 돼지주둥이에 50만 원을 꽂아 넣었다. 태어나서 경조사로 이렇게 많은 돈을 써 보기는 처음이다.
가난에 찌든 몸이 기억하는 것일까?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구질구질 비루한 생활은 잊자. 라면 같은 구황작물은 그만 먹자. 사장이면 사장답게 행동하자!
“사장님, 한마디 하셔야지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한 얼굴인 공장장이 막걸리 병에 숟가락을 꽂아서 건넨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셋셋.”
덕준이가 개수작 부린다고 쌍욕을 퍼부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친구야. 그냥 할게.
“사장 지정수입니다. 우리가 처음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할 것입니다. 앞으로 많이 바빠지겠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좋다!”
“모든 임직원들의 노력과 땀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버는 만큼 여러분도 벌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지화자!”
“여러분도 저를 믿고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땀 흘려 주세요. 서로 밀고 당겨 주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 가는 회사로 만듭시다!”
“박수!”
많은 이들이 인건비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계산기 두들겨 보면 그리 큰 부담이 아니다. 사장들이 인건비에 벌벌 떠는 것은 직원들한테 주는 만큼 자신과 가족이 가져갈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월급에 법인 차, 법인 카드, 업무 추진비, 상여금, 각종 수당 등 줄 수 있는 것은 다 책정해 놓고 남은 돈으로 직원들 월급 주려니 돈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지. 일 안 하고 돈만 받아 가는 유령 직원이나 없애든가. 일가족이 다 직원이라 가족 같은 회사라고 하는 것이야?
난 줄 수 있는 만큼 다 줄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동화는 어렵지만, 최대한 인력 낭비가 없게 만들 생각이다.
어떻게? 아직은 모르겠다. 수십 년 전기쟁이도 못 내놓은 답을 햇병아리인 내가 당장 내놓을 리 없지. 그래도 방향은 잡아 놨으니, 계속 고민할 생각이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본의 아니게 직원들을 가혹하게 굴릴 일이 생길 것이다. 근무 시간에는 딴 짓 못하게 하면서 빡세게 일을 시킬 것이다. 그 보답으로 충분한 휴가와 급여를 지급하면 될 것이다.
먹고살 걱정을 없게 만들어 줘야 직원들이 흥이 나서 열심히 일을 하지 않겠나? 순간 회사 캐치프레이즈가 생각났다.
“자, 제가 우리 회사 캐치프레이즈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일은 빡시게, 놀 때는 화끈하게, 보상은 두둑하게!”
“와! 좋다 좋아!”
“사장님! 마이크 잡은 김에 노래도 한 자락 하셔야지!”
“하하하. 제가 노래 부르면 다들 귀 썩을 건데요?”
“맞습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우하하하. 한 과장 뭐야! 그럼 너라도 불러야지!”
“저 노래 시작하면 오늘 다들 집에 못 들어갈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냐, 오늘 다들 죽자!”
걸쭉한 술판이 벌어졌다. 술을 사러 두 번을 나갔다 와야 했다. 월급쟁이 6명은 다들 웃통 까고 얼싸안으며 난리가 났다. 엄혹했던 군 시절 내무반별로 1박 2일로 보내 준 병영 엠티가 생각나는 밤이다. 아! 짐승 냄새.
혹시나 해서 전열기를 미리 사 놨길 다행이다. 공장용 전열기라도 없었으면 웃통 깐 채 잠든 저 짐승들은 분명 입이 돌아갔을 것이다. 개업식이 장례식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들어올 이들도 저렇게 형 동생하면서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60대가 1명, 50대가 1명, 40대가 3명, 30대가 나랑 덕준이 2명이다. 새로 들어올 사람은 이왕이면 20대들이었으면 좋겠지만, 크게 기대는 안 한다.
급여나 복지는 둘째 치고 세대 차이가 은근 무서운 것이다. ‘꼰대’ 대 ‘요즘 것들’ 구도를 무시했다가는 조직이 안남미 바람에 날리듯 흔들리기 십상이다. 연령대별 고른 채용이 좋겠다 하면서도 편이 갈라지면 어쩌나 고민도 된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차차 고민해야겠다.
“자, 자! 일어나세요. 주말은 집에서 보내야지요!”
나이 먹어 아침잠이 없는 공장장은 일찍 눈을 떴지만, 숙취가 심한지 석굴암 본존불처럼 꿈쩍을 못한다. 나머지 5명은 요단강을 건넜는지 서로 부둥켜안은 채 기척이 없다. 저 그로테스크한 자태는 기록으로 남겨 놔야 할 장관이다.
어쩔 수 없다. 안 일어나는 사람 깨우는 특효약을 쓸 수밖에……. 악어의 눈물을 머금고 전열기를 껐다. 역시나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시체인 줄 알았더니 살아 있었군.
“일어납시다. 해장국 드시러 가야지요! 이렇게 복지 좋은 회사가 또 있습니까! 하하하.”
“아이 추워. 가을은 가을인갑네.”
“야, 이 개…….”
덕준이가 평소대로 아름다운 쌍욕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후훗. 난 사장이고 넌 과장이야!
“해장들 하시고 주말 푹 쉬었다가 월요일부터 빡세게 일합시다.”
“어휴. 어제 왜케 마신 거냐.”
“저 한 과장이 미쳐 날뛰는 통에 다들 정신 잃었지 뭐. 한 과장 대단해 아주.”
“과찬이십니다.”
* * *
직원들 내보내고 창업 공신만 남았다. 굳이 얘기 안 해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확인은 해야지 싶었다.
“민수 변압기는 최대한 빨리 만들어서 시험 면제 신청부터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기 연구원 업무는 상무님이 잘 아시니까 안 밀리게 잘 체크해 주세요.”
“안 그래도 전화 미리 해 놨어. 우리 것 들어가면 바로 좀 해 달라고. 다행히 요새 일이 없어서 금방 될 것 같대.”
“다행이네요. 그리고 어차피 공장 남아도니까 민수 변압기는 되는대로 마구 만들어 놓죠. 시간 있을 때 미리 만들어 놔야 할 것 같네요.”
“그래야지. 내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 사발 풀어 놨어. 시험 면제증 받으면 주문 폭발할 거야. 공장장님, 빡세게 만들어 줘. 알았죠?”
“이놈이 나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만. 가져만 와! 밤새워서라도 만들어 줄 테니까!”
서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팀워크를 맞춰 온 공장장과 상무인지라, 그저 든든하다. 입으로는 서로 못 갈궈서 안달인 톰과 제리 같지만, 일에서만큼은 부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찰떡궁합이다.
“관수는 시간이 꽤 걸리니까 이 공장에서 끝내고 나중에 공장 변경으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모든 품목을 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덩어리 큰 것만 진행하죠. 개발비도 안 나오는 것은 빼겠습니다. 그래도 4개 품목이나 되니까 준비할 것이 많죠. 4개 다 한 방에 통과할 수 있게 빡세게 해 보십시다.”
“그래야지. 우리가 계속 만들던 것이니까 올해까지 어떻게든 대한전력에 등록까지 끝내는 걸로 하자구. 근데 설계 괜찮을까?”
“태양전기에서 가만 안 있을 것이란 말씀이시죠? 이 바닥 설계야 공용이나 마찬가지이긴 해도, 최현아랑 우진택이 분명 시비 걸겠죠. 그 성질머리에 가만있을 사람도 아니고.”
“나나 김 상무 나갈 때까지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원. 나야 그럴 생각 없었지만, 이 부장이랑 재준이가 따라 나오겠다고 사표 냈으니, 사람 빼돌렸다고 얼마나 이를 갈고 있겠어? 그러는 판에 변압기까지 똑같아 봐. 자기네 기술 훔쳐 갔다고 난리 치겠지. 송사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 피곤하게 하는지 겪어 봐야 알어. 내가 말이야…….”
“공장장님!”
“응? 왜?”
“설계는 새로 할 거야? 우리 설계 얘기하자구.”
공장장과 몇십 년 손발을 맞춰 온 상무가 능숙하게 산으로 가던 배를 끌고 왔다.
“공장장님! 설계 새로 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태양전기 설계도 공장장님 다 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어차피 규격이야 대한전력에서 정해 준 것이니까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새로 한 것이 분명하니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지 않겠습니까?”
“음…… 나야 사장이 어디서 구해 온 설계 살짝 손만 본 수준이지. 어디서 얻어 왔는지 아주 말 같지도 않은 걸 가져왔지 뭐야. 수정하느라고 애 좀 먹었지. 그딴 거 가져와 놓고 행여나 훔쳐 갈까 봐 어찌나 눈을 부라리던지 원. 응? 알았어! 까짓것 설계 하나 뽑지!”
띠링.
“잠깐만요. 문자가 왔네요.”
이건 뭐지? 문자님께서 지령을 내리셨다!
-고효율주상변압기 설계. 올해 안에 끝낼 것. 특허 등록 필.
꽤 큰 용량의 PDF 파일까지 첨부돼 있다. 이렇게 구체적인 얘기도 할 줄 아는구나. 이딴 감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잠깐만요. 컴퓨터로 확인 좀 하고 올게요.”
후다닥 사무실 책상으로 달려가 핸드폰을 연결해 첨부된 PDF를 컴퓨터로 옮겼다. 늘 보던 설계 양식이다. 외관은 확실히 기존 것과 많이 다르다. 그나저나 어휴, 페이지 좀 봐. 일단 출력하자.
“공장장님! 잠깐 이것 좀 보실래요?”
“뭔데 그러나. 이건 뭐야?”
“저 도와주는 분이 보내 준 설계인데요. 어떤 것 같으세요? 기존 것과 많이 다르긴 한 것 같은데요.”
“이야, 대단하네. 이게 가능한가? 그 도와준다는 분이 직접 설계한 거야?”
“글쎄요.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고효율주상변압기라고 하네요.”
“고효율? 그거 두성전기가 작년부터 개발한다고 난리치고 있는 것 말하는 건가? 계속 실패해서 올해도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니.”
“이거 되면 우리가 개발품 지정받아서 우선 배정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또 대박이다. 문자님 감사합니다!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개량된 제품을 개발하면 개발 선정품으로 지정돼 관련 조항에 따라 대한전력에서 3년간 배정물량 20프로를 우선 배정 받는다.
문자님 명대로 제품 구현에 나서면, 어후야. 이게 얼마야!
저 품목 연간 발주액이 3천억 정도니까, 거기서 20프로면 600억 원! 나주 우선 배정 800억까지 합치면 1,400억! 미쳤다 미쳤어. 둘 다 3년간 유효하니까 3년간 못해도 천억 매출은 보장되는 것이다. 아! 하늘을 날 것 같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누군지 몰라도 설계 하나는 기똥찬 양반이구만. 이런 설계 뽑을 사람이 없는데 말이지.”
공장장님. 설계자 누군지 유추해 봐야 소용없어요. 전지전능한 문자님이시라고요!
“공장장님, 어찌 제작이 되겠어요?”
“제작이야 설계대로만 하면 되는 건데…… 이거 참 놀랍네 놀라워. 그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야? 이 바닥이니까 내가 분명히 아는 사람일 텐데.”
“그분이 재정적으로도 많이 도와주시는 분인데요. 공개하면 안 된다고 해서, 아직은 말씀 못 드립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냥 우리 회사 쩐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 사장, 이 바닥 좁은 것 다 알잖아? 이런 설계를 할 사람이 없어. 이거 참. 설계를 보고도 놀라네.”
“공장장님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설계예요. 자책하지 마세요. 자, 자, 기존 품목은 그것대로 진행하고. 이것도 바로 진행하시죠.”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짬밥이 무섭다고, 공장장 저 양반이 가지고 있는 경력이나 기술은 절대로 무시받을 수준이 아니다.
“안 그래도 빨리 만들어 보고 싶어. 이거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데.”
“둘이 무슨 작당 모의야. 빨리 나와. 집에 좀 가자!”
안 그래도 나주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집안 분위기가 살얼음판인 상무가 살기 위해 절규한다. 어제 외박까지 한 데다, 오늘도 늦게 들어가면 분명 쫓겨날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모가 쏘아 보낸 텔레파시로 살기를 느낀 것이 분명하다.
“제가 회의한답시고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네요. 아무튼 할 것들 착착 진행해서 차질 없이 쭈욱 나갑시다!”
* * *
이주일이 걸려 드디어 시제품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시제품은 이전 회사에서 매일 만들던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공장장님, 시제품은 아주 잘 나온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고효율변압기는 어때요? 만들만 합니까?”
“안 그래도 신경 써서 만들고 있어. 어찌나 신경을 썼는지 흰머리가 더 늘어난 것 같어. 외함이 타이트해서 걱정이긴 한데, 뭐 설계대로만 하면 문제없겠지.”
“네, 공장장님 고생 많으십니다. 그럼 시제품 시험하시죠.”
“자, 시험 들어갑니다! 일반형주상변압기 일 다시 일 번!”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시제품에 전기가 투입된다. 이제 모니터에 여러 특성치들이 나열될 것이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