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2)
012 계획 변경
띠룽 띠룽 띠루루룽.
“여보세요?”
“사장님. 저 혁신산단 이정용입니다.”
“네! 과장님.”
“저기,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나주혁신산단 이정용 과장의 어색한 말들이 주는 뉘앙스가 불안감을 안겨 준다. 찰나에 온갖 생각이 막 떠다닌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요, 아니. 문제는 아니고. 사장님께서 첫 투자 기업이라 저희가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위에서 좀…… 그러네요.”
“무슨 말씀인지 도통 모르겠는데요. 전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일단 죄송합니다.”
뭐야? 일단 죄송하다니. 절단 신공을 부리면 내 속이 타들어 간다고!
“과장님, 죄송한 일인지는 제가 판단하니까 그냥 말씀해 주세요. 무슨 영문인지 저도 알아야죠.”
“VIP가 오시는 행사이다 보니까, 도에서 의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자꾸 태클을 걸어 오네요.”
“VIP요? 대통령이 오신다고요?”
“아니요. 도지사님이 오셔서 투자 약정서에 서명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사장님께서 신설 법인인 데다가 투자 규모가 크지 않아서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제가 초짜라 가오가 안 산다 이 말입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것은 아니고요.”
“뭐가 아니에요. 맞구만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도에서 의전 담당하는 비서관요. 말로는 정무부지사가 결제를 반려하고 있다고 하던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네요. 솔직히 저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희가 뭐 힘이 있습니까.”
이거 스팀이 살살 올라오네. 왜 나를 즐겁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냐!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저…… 며칠 전에 투자 의향을 밝힌 회사가 하나 있는데요. 중소기업이긴 한데 규모도 좀 있고 투자 규모도 커서 거기를 1호 기업으로 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무슨 회산데요?”
“거기도 변압기 회사라고 하던데요. 안성파워라고…….”
“아! 거기요?”
알다마다, 이 바닥에서 세 손가락에 안에 드는 회사 아닌가. 연매출이 1,000억 정도 한다고 하던데, 이번에 몽땅 나주로 옮기려나 보구만. 순간 위기감이 몰려왔다. 안성파워 같은 회사가 나주로 간다면 다른 기업도 우르르 몰려갈 것이 뻔했다. 내 800억 원이 마구 쪼개지게 생겼다!
“빠르면 내년 하반기에 150억 정도 투자해서 공장 크게 세우겠다고 하더라고요. 중소기업치고는 엄청난 것이죠. 사장님 말씀대로 아무래도 도에서도 가오가 설 것 같다고…….”
내년 하반기? 그렇다면 대한전력 내년 입찰은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이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겠는데? 아니, 아주 좋은 기회이지!
“저야 1호 기업이니 뭐니 하는 간판은 필요 없고요. 뭐 도에서 그걸 바란다면 그렇게 해 드려야죠. 대신 공짜는 없는 것 아시죠?”
“저희가 규정 내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최대한으로 해 드려야지요. 그것은 당연히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 말고요.”
1호 기업 타이틀을 내주는데, 더 많은 것을 받아 내야지. 안 그렇습니까? 공정한 거래를 해야지요.
“예? 그것 말고는 저희가 해 드릴 것이 없는데…….”
“보니까 잔금이 계약 후 6개월이더라고요. 그럼 공장 가동까지 거의 1년은 걸린다는 얘기잖아요?”
“네. 뭐, 그렇겠죠.”
“당겨 주세요. 늦어도 내년 초엔 공장 착공할 수 있게요. 가능하죠?”
“공단 부지는 다 조성됐다고 해도 무방하긴 한데…… 아직 준공이 안 떨어져서…….”
“그럼 준공 떨어지면 바로 들어가도 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공장 하루라도 빨리 세워야 한단 말이죠. 안 되는 거였으면 바로 안 된다고 하셨겠죠. 그렇죠?”
“일단 저희 사장님께 여쭤 보고 되는 방향으로 추진해 보겠습니다.”
내 뜻대로 된다면 내년에 20퍼센트 우선 배정 독차지이다. 양복 빼입고 비싸 보이는 만년필로 사인하는 하나 마나 한 짓에 목매일 필요가 없다. 가오는 공무원 나리님들이나 챙기세요. 전 실속을 챙길랍니다.
그나저나 안성파워의 나주 이전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바닥 나름의 대기업인 안성파워가 본사를 이전할 정도로 나주에 올인한다는 것은 나주에서 금맥을 봤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 말고도 나주의 꿀단지를 눈여겨본 사업가가 있었다니.
행여나 내가 준비 미흡으로 내년에 대한전력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면 내년 장사 망치는 것은 물론, 내후년부터 내 꿀이 쩍쩍 갈라진다.
이거 한시가 급하군. 일단 급한 대로 공장 하나 임대해서 준비해야 하나? 그렇지!
“저기 이 과장님!”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지원 조항을 살펴보면, 수도권에서 이전하는 중소기업이 가장 혜택이 많더라고요. 혹시 제가 수도권과밀억제권역에 제조 법인 세우고 나서 나주로 이전하는 걸로 하면 이전 기업으로 혜택받을 수 있습니까?”
“아! 그렇게 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혜택은 신설 기업 기준이었고, 이전 기업이면 국비 지원이 많고, 법인세도 6년간 면제됩니다. 아마 가능할 겁니다.”
“가능할 겁니다가 아니라 가능하게 해 주세요! 우리 과장님, 저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제가 1호 기업이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장 착공 당기는 것은 제가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뭉그적거릴 이유가 없다. 덕준이를 급히 호출했다. 온갖 미사여구로 점철된 쌍욕을 퍼부을 것이 분명했다. 감내하자. 유치하게 치고받을 때가 아니다.
“뭐? 인천에 공장 세운다고? 뭐 이랬다 저랬다야!”
“지금 급똥이 나올 상황인데 어쩔 수 있냐. 일단 급한 대로 싸고 봐야지. 일단 내가 임대로 공장 하나 구해 올 테니까 제조업으로 변경하고 인증부터 서둘러 받자.”
“네 시부랄탱탱 사장님아. 알겠습니다.”
* * *
역전의 용사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회의실은 늘 그렇듯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 고깃집이다.
“그렇게 됐네요. 제가 이달까지 공장 계약하고 설비 들여놓겠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전기연구원 시험부터 진행하시죠. 설계야 다 있으니까 그대로 만들기만 하면 문제없겠죠?”
“번갯불에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구만. 지 사장 이렇게 무리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뭐 창업했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하면 좋긴 한데.”
“지 사장. 변압기가 그냥 깡통에 나까미 집어넣으면 되는 것 같지만, 이게 생각보다 예민해. 똑같은 설계로 뽑아도 성능이 다 제각각이라고. 급하다고 서두르다 보면 제품이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어. 시험 불합격 맞아 봐. 돈 몇천 그냥 날아간다고. 돈만 문제야? 몇 달 헛고생한 것이나 똑같아.”
상무와 공장장 둘 다 한목소리로 우려 사항을 내놓는다. 하여간 걱정이 많다. 그래도 회사 중역이라면 우려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사장이라고 해서 독단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가 너무 많다. 감정적으로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웃긴 것은 온갖 꼼바리 짓을 서슴지 않으면서, 욱한 상황에서는 몇천만 원도 우습게 써 버리는 것이다.
밥값도 아까워 인원보다 2~3인분 적게 점심을 시켜서 서로 나눠 먹게 하는 사장이, 화장실 물 내리는 것이 아까워 남자들은 담벼락에 싸라고 할 정도인 사장이 경쟁 기업 때문에 욱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저놈 죽여야 한다며 판매 가격을 후려친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수천만 원을 손해 보고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경쟁 기업이 손을 들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한다.
그동안 입은 손해는? 당연히 직원들 몫이다. 영업을 왜 그따위로 했느냐, 야근을 왜 이리 많이 했느냐 등등. 회사가 살아야 너희도 살지 않겠다는 말이 빠질 수 없지. 그러면서 SNS에는 해외여행 가는 사진에 ‘모처럼 휴양’ 따위를 적어 놓는다. 참 나.
불경기니 어쩌니 하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 그놈의 불경기. IMF 때 이후로 불경기 아닌 적이 없다. 오죽했으면 IMF 때가 최대 호황기라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겠는가.
성공하면 사장이 다 자기 덕이라고 으스대고, 실패하면 애먼 직원들에게 책임을 지운다. 하긴 그래야 중소기업이지. 디스 이즈 더 중소기업!
“우선 관수만 놓고 얘기하자면요. 저희가 내년 8월 입찰 들어가려면 못해도 여름 전에는 무조건 공장 가동 들어가야 합니다. 시제품 만들어서 시험 의뢰하고, 사람 뽑아서 교육하고, 각종 인증 받고. 시간이 촉박해요. 내년 대한전력 입찰엔 무조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리를 빨리 잡을 수 있어요. 내후년부터는 경쟁사 마구 늘어납니다.”
“자네 말대로 인천에서 임시로 자리 잡고 한다고 쳐.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건데? 몇 달이라도 같이 일하면 손발이 맞아야 할 텐데, 그 사람들이 다 나주로 가겠다고 하겠어?”
여전히 사람 걱정인 공장장이 재차 우려를 내놓았다. 역시나 사람이 걱정이긴 하다.
“일단 인원은 최소한으로 하죠. 상무님 검사하실 줄 아시죠? 당분간은 상무님이 검사 맡아 주시고. 공장장님도 조금만 고생해 주세요. 사람은 나주 가는 조건으로 급한 대로 3명 정도로 해서 일단 뽑죠?”
“공장장님, 해 봅시다. 어차피 같이하기로 한 것이니 밀어붙여 보자고요. 우리 사장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시간 빠듯한 것은 사실이니까.”
영업쟁이 상무는 확실히 생각이 유연하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 영업이라더니, 든든하다.
“그래요. 일단 부딪혀 보자고요. 우선 민수 변압기부터 서둘러 진행하고, ISO 받으면 관수도 바로 진행할게요. 두 분 다 쓸 만한 사람들 구해 주시고, 공장장님은 시제품 확실하게 만들어 주세요. 괜찮겠죠?”
“그러지 뭐. 인생 뭐 있나. 그나저나 다음 달부터 합류하려면 내일 당장 사표를 써야 하는데, 걱정이네.”
“공장장님 왜요? 사장이 지랄할까 봐요? 저 당한 것처럼? 하하.”
“최현아 걔가 보통내기가 아니잖아. 나야 어려서부터 봐 와서 그냥 딸자식 같고 그런데, 승질머리가 지 아비랑 똑같아. 어휴. 내 딸자식이라면 몽둥이질을 하면서라도 고쳐 놨을 텐데. 며칠 전에는 나한테 일을 시키는 대로 똑바로 해야지 왜 말을 안 듣느냐고 막 뭐라고 하더라니까. 사장인 줄 아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데, 얼굴이 어찌나 화끈거리던지 원.”
“지 사장, 지 사장. 공장장님 또 말문 터졌다. 얼렁 막아야 해. 자, 자, 건배 한번 합니다.”
“이놈아. 간만에 말 좀 하려는데 말이야.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자, 자, 최 사장이 지랄할 것 같다 싶으면 잘 녹음해 두세요. 우리 회사 기둥이 될 사람들인데, 그런 대접을 받게 해서는 안 되죠! 제가 몇 배로 앙갚음해 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어휴야. 내가 우리 지 사장 어떻게 나갔는지 뻔히 아는데, 어휴야 갑갑하다.”
“푸하하하.”
중역 두 명이 동시에 나간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일까? 안 봐도 비디오다. 알고 보니 할머니 간호해야 한다고 개지랄 떨면서 나간 나랑 같이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누가 곱창을 굽나? 어디서 이리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이야? 아~ 고소해.
* * *
일단 방향이 결정됐으니 속전속결이다. 당장 인천 남동공단에 임대 공장 하나 마련했다. 보증금 5천에 월 300. 아깝지만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뭐.
공장을 샀으니 설비를 사야지. 박창준 사장을 찾아갔다.
“급한 대로 몇 개 구해 놓긴 했는데, 가격이 맘에 안 들 것인데?”
급하니까 가격을 붙이시겠다? 내 피 같은 돈을 이렇게 뜯길 수 없지.
“물건 좀 봅시다.”
“뭐 보고 말 것이 어디 있어? 나 박 사장이야! 내 물건 좋은 건 세상 사람이 다 아는데!”
“어서 보러 가죠. 한두 푼도 아니고 달라는 대로 다 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대한전력 입찰에 응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설비가 많다. 개나 소나 뛰어들지 못하게 어느 정도 진입 장벽을 만들어 놨다고 할까? 변압기 회사들이 이름만 걸어 놓고 마진 따먹기로 해먹는 경우가 있어서, 이를 걸려 내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가장 비싼 설비인 충격기만 해도 1억이 훌쩍 넘는다. 변압기가 번개에 맞고도 이상이 없는지 시험하는 설비이다. 22만 볼트가 넘는 초고압을 만드는 만큼 가격도 억 소리가 난다. 충격기가 작동할 때는 근처만 가도 즉사이니 싸다고 어설픈 것 샀다가는 사람 여럿 골로 보내기 십상이다.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 툭하면 내뱉는 것이 한일병원 얘기이다. 대한전력이 운영하는 감전 전문 병원이다. 전기쟁이라면 여기 한 번쯤은 가 봐야 한다면서, 감전되면 팔다리부터 잘라야 한다느니, 온갖 끔찍한 얘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다.
나름 이 바닥 무용담이다. 문제는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이다. 정작 감전당한 사람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 것인데, 호사가들에게는 그저 자기가 겪은 무용담으로 변질하는 것이다.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니 싼 것만 찾을 수는 없다. 결국 시험 설비는 돈을 들여 쓸 만한 것으로 골랐고, 생산 설비는 최대한 싸게 후려쳤다. 그래도 3억 가까운 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달라는 대로 줬다면 3억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박 사장 이놈 진짜.
어휴야, 3억! 간이 어지간히 크지 않으면 사업도 못하겠구나 싶다. 그래도 이 재미로 사업하는 것 아니겠어? 돈 쓰는 맛이 아주 달달하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