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
****************************************************
[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11화>011 협력 업체
며칠 지나지 않아 법인 설립에 사업자등록증까지 나왔다. 시작이 반이랬으니, 이제 반이나 했다.
“덕준아, 이 형아는 설비 사러 간다.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올게.”
“응? 뜸북새 논에서 우는데 말 타고 서울 가실라고?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먹고 개드립을 쳐 주는구나. 이런 것이 오래 묵은 팀워크이지!
“뭐 해야 하는지 알지?”
덕준이에게는 각종 인증 준비와 갖춰야 할 서류 과제를 잔뜩 던져 줬다. 입이 댓발 나왔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라며 욕을 잔뜩 섞어 가며 다정하게 달래 줬다.
“맞다! 우선 근로계약서부터 작성하자. 내가 특별히 지금부터 월급 챙겨 주는 거야.”
“아이고 사장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여기다 사인하면 되는 거야?”
“이 새끼야. 좀 읽어 봐라.”
“어차피 인터넷에서 긁어 온 것 아녀? 근로계약서가 다 뻔하지.”
“나름 심혈을 기울였다고!”
인터넷에서 표준근로계약서 보고 만들기는 했지만, 내 경험을 담아 약간 수정을 했다. 각 조항마다 달린 단서 조항은 가급적 뺐다. 단서 조항 하나로 이현령비현령 되는 경우 많이 봤기 때문이다. 계약서는 심플해야지. 돈 줄 테니 일 열심히 해라, 이거면 되는 것 아닌가.
“어디 보자. 뭐 그럴싸하게 해 놓긴 했네. 월급이…… 으음…… 292만 원?”
“왜? 만족스럽지 못해? 연봉 3,500을 그냥 12로 나눈 거야. 3,500이면 괜찮다면서!”
“아! 그래? 그럼 좋네. 엄마아빠 내복 하나씩 사 주고 남은 돈으로…… 흐흐.”
“미친놈아. 정신 좀 차려. 너 인마 처음으로 월급 받는 것 아니냐?”
“하여간 이놈아는 흥 깨는 데 뭐 있다니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내가 진짜 그러겠냐. 개그 좀 치겠다는데 내셔널지오그래픽 틀고 자빠졌냐.”
아차! 우리 사이에 걱정이라니, 내가 오지랖이었네. 서로 욕하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이 친구이지만, 얘기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이해해 주는 것이 또 친구가 아닌가! 저놈이 유흥에 나락으로 빠질 놈이었으면 같이 일하자고 데리고 오지도 않았지!
덕준이를 전철역으로 보내 놓고 거금 350만 원짜리 말티즈에 올라탔다. 이제 이놈과도 작별이겠군.
사람들은 ‘첫’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첫 차. 첫 차인 350만 원짜리 말티즈가 내겐 첫사랑과도 같은 의미이다. 그래도 이젠 타지 못할 것이다.
허례허식이라고 하지만, 사장이라는 자가 경차나 아방떼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뻔하다. 사장이 검소하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구두쇠라거나 돈 못 버는 회사라고 생각해 버린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장이 타고 다니는 차는 회사의 얼굴이다.
* * *
첫사랑과 연민에 빠져 있는 동안 설비 회사에 도착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지 과장 왜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는 그만뒀어? 소문 다 났어!”
변압기 제조 설비로 20년 밥 벌어먹고 사는 박창준 사장이다. 이 바닥에서 독점하다시피 한 회사라 가격이 많이 비싼 것이 흠이다. 박 사장은 그걸 이용해 비싸게 받아먹는 데 도가 튼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다. 코 안 베이게 잘하자.
“멀쩡히 잘 안 다녔어요. 하하.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그래, 거기가 사장 바뀐 뒤로 소문이 너무 안 좋아. 뭐 그 전 사장도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저 회사 차립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뭐? 회사 차린다고? 으하하하. 서당 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더니. 이제 사장 되게 생겼네. 돈 좀 모았나 봐?”
서당 개가 맞긴 한데, 대놓고 그렇게 얘기하면 좀 그렇잖아! 과장이 사장이 되는 변화. 럭키금성이 엘지가 된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 모양인데, 기다려 봐. 이 업계를 바닥부터 흔들 게임 체인저가 될 테니까.
“뭐 쫌. 나주에다 하나 세울려고요.”
“나주? 지 과장 잘 생각해야 해. 대한전력에서 이런저런 혜택 준다는데도 왜 이 바닥 날고뛴다는 사장들이 꿈쩍도 안 하겠어?”
박 사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공장장이 박 사장이라면 하도 이를 갈아서 나까지 안 좋게 보여서 그런가…….
“뭐 각자 생각이 있겠죠. 저는 확실하다 싶으니까 사업하겠다는 거고요. 그나저나 관수도 해야 하는데, 설비 싸게 나온 것 좀 있습니까?”
“어이쿠야. 관수까지 할려고? 변압기가 아주 쉬운 사업이긴 한데, 돈 놓고 돈 먹기라고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야.”
“그래서 제가 사장님 찾아왔잖아요. 아주 땡처리로 싸게 해 주실 거니까요. 하하하.”
“있는 것들이 더한다더니. 기계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그래!”
사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시험설비, 충격기, 건조로, 소둔로, 코아성형기, 권선기 등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설비만 대략 5억 원이 넘어갔다. 매출을 생각하면 여러 대를 갖다 놔야 했다.
“얼추 5억 정도 계산하고 왔는데, 사장님이 좋은 물건 나오면 좀 잡아 주세요.”
“이야. 5억 정도면 얼마나 크게 차릴 생각이야? 뭐 믿는 구석 좀 있나 봐?”
“새 놈으로 계산했을 때 5억 정도 나오겠더라고요. 중고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예산 짜기가 쉽지 않아서 말이죠.”
“이 사람이 사업 망해 먹을라고 작정을 했구만. 누가 새 걸로 사. 뭐 누구든 회사 차리면 좋은 놈으로 갖다 놓고 싶겠지. 그래도 돈을 좀 벌면서 바꿔 나가야지, 안 그래? 내가 중고로 싸고 괜찮은 놈 구해다 줄 테니까 돈 아껴.”
귀가 움찔했다. 돈 욕심 많은 저 사람이 내 돈 아끼게 해 주겠다고? 돈 냄새를 맡았구만. 중고에 대충 뺑끼칠 해서 돈 붙여 팔겠다는 소리구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개뿔. 새 것 만드는 것보다 중고 파는 것이 더 짭짤한 것 뻔히 아는데. 물론, 좋은 물건 싸게 사면 좋지만, 박 사장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 나중에 어떤 물건 내놓을지 보자고. 나를 호구로 생각했다 싶으면 고생 좀 할 것이야.
“공장 가동은 언제부터야?”
“늦어도 내년 3월부터는 시작해야죠.”
“아직 시간 많이 남았네. 어디 보자. 내가 한번 알아봐 줄게. 쓸 만한 것 없으면 뭐 서비스라 치고 내가 싸게 해 줘야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말은 저렇게 해도 분명 온갖 이유 붙이면서 값을 올릴 것이 뻔하다. 그래도 이 바닥 몇 안 되는 전문가이니 일단 믿고 맡기자. 필요 설비랑 수량을 정해 놓고 계약금조로 천만 원을 놓고 왔다.
설비 가격으로 대충 5억 잡았으니, 벌써 20억 원이 날아갔다. 휴우, 내 돈.
돈 아까워할 때가 아니지! 나온 김에 자재 업체들 돌면서 비타300이나 던지고 오자. 태양전기 있을 때 얘기할 사람은 다 얘기해 놨긴 했는데, 사장 직함 달고 정식으로 인사는 해 줘야 하는 법이지.
* * *
“박 부장님! 저 왔습니다.”
박민창 부장을 찾았다. 알루미늄과 구리를 가공하는 하꼬방 회사에서 일하는 영업쟁이다. 서로 시간이 안 맞아 인사를 전하지 못해 가장 먼저 찾아갔다.
노예처럼 지낼 때 나를 제일 많이 도와준 사람이었다. 한밤중에 꼰대 부장이 내일 아침까지 자재 안 들어오면 큰일 난다고 난리쳤을 때도 밤을 새워서라도 다음 날 아침에 자재를 갖다 준 고마운 사람이다. 물론 그 자재는 그날 쓰지도 않았다.
“지 과장님! 아이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아시면서 뭘 물어보세요. 그 회사 계속 다녔으면 저도 죽지만, 부장님도 제명에 못 살걸요?”
“태양전기 진짜 징글징글하죠. 요즘은 결제도 잘 안 해 줍니다. 아주 죽겠어요.”
“그렇게 해야 업체들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고 하잖아요.”
“에휴. 들어가서 차나 한잔 하시죠.”
이 바닥에서 차라고 하면 무조건 종이컵에 노란색 막심이다. 아침에 마시는 막심은 대장 활동에 지대한 공헌을 하지만, 하루에 세 잔쯤 마시면 속이 쓰려 버티기 힘들다. 담배와 함께 곁들이면 그 심각한 아가리똥내도 커다란 단점이다.
“그래서 어디 좋은 데로 가셨어요?”
난 대답하지 않고 핸드폰 화면을 보여 줬다. 대표자로 내 이름이 찍힌 사업자등록증 캡처본이다.
“와우! 이게 뭡니까? 회사 차리셨어요?”
“네. 일생일대 최대 도박입니다. 하하하하.”
“프라임일렉트릭이라, 좋네요.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화분이라도 하나 보내 드렸죠!”
마냥 좋은 사람이다. 하꼬방 공장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나한테는 뭐라도 하나 더 해 주겠다고 저러니 말이다. 우리가 서로 회사 욕하면서 피웠던 담배가 몇 보루였던가!
“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사 찾아왔습니다.”
“과장님, 아니지. 사장님인데 물심양면으로 도와 드려야지요. 공장은 어딥니까?”
“나주인데요, 아직 공장을 못 세워서, 내년 초까지 빈둥빈둥 놀 판이에요.”
“나주요? 안 그래도 요새 여기저기 나주로 내려가니 마니 말들 많던데…… 사장님이 선수를 치셨네요.”
“나주라도 자재 수급은 문제가 없겠지요? 공장 준공되면 바로 미친 듯이 물건 만들어야 해서 엄청나게 주문하려고요.”
“그거야 당연히 걱정 없게 해 드려야죠. 제가 우리 사장님한테 얘기해서 특별히 결제도 신경 써 드릴게요. 익월 말 결제면 좋으시죠?”
아직도 어음 거래하는 회사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 달 말에 마감해서 다음 달 말에 결제하는 조건으로 거래한다. 배짱부리는 회사는 익익월로 넘기기도 하면서 자재 업체들 속을 끓이게 하기도 한다. 태양전기 같은 회사.
“아이고. 저는 초짜 회사라 바로 현금 지급 각오하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전 누구처럼 대금 가지고 장난질 안 할 것입니다. 우리 부장님 스트레스 안 받게 해 드릴게요.”
“사장님, 로또라도 되셨나 봐? 하하하.”
다들 생각하는 것이 똑같구나. 이래서는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겠네.
“이참에 부장님도 독립하시죠? 제가 회사 잘돼서 부장님네 자재 부지런히 사 봐야 회사만 좋은 일 시켜 주는 것 아닙니까? 제가 화끈하게 밀어 드릴게요.”
“안 그래도 요새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있긴 합니다.”
박 부장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기도 거기랑 똑같잖아요. 사장 딸 들어온 뒤부터 아주 말들이 많아요.”
“혹시 회사 걱정에 잠을 못 잔다는 소리는 안 하던가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날마다 불러다 놓고 하는 소리예요.”
“하하. 진짜 교과서라도 있나 봅니다. 어째 하는 소리들이 다 똑같은지……. 부장님 힘내세요. 곧 좋은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장님이 부럽네요. 저야 뭐 처자식 키우느라 함부로 나가지도 못하고, 참. 차 다 드셨으면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태우시죠?”
“담배 좋죠.”
내가 그리는 그림에서는 박 부장이 나를 위해 자재 회사를 차리는 걸로 그려져 있다. 나를 그토록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줬던 사람이니 마땅히 은혜를 갚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면야 당장이라도 회사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지만, 아직 그럴 형편이 아니니 운 띄워 놓고 바람을 불어넣자. 내 사업은 확실할 것이니, 박 부장도 확실히 도와주고 싶다.
“부장님, 요건 김칫국물 들이마시는 건데요. 제가 자리 잡으면, 부장님도 독립해서 나주에 하나 차리시죠. 저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장님 은혜를 갚아야죠.”
“아이고.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요새 고민 중이긴 한데, 당장 월급 안 나오면 처자식이 손가락 빨아야 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죠.”
“기운 내세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 들어가니까 아무쪼록 많이 도와주시고요. 조만간 식사나 한번 하시죠.”
“벌써 가시게요?”
“차 마시고 담배 피웠으면 됐죠 뭐. 하하하.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닐 데가 많아서요. 그래도 제가 처음 온 곳이 여깁니다. 부장님 아니었으면 전 진짜 어디 관 속에 들어가 있었을 겁니다. 크크.”
“별말씀을……. 다 사장님이 누구보다도 고생한 것 아니까 그런 것이죠. 아무쪼록 사업 번창하길 빌겠습니다. 또 연락하자고요.”
모든 업체가 다 이랬으면 좋겠지만, 공장 바닥 곤조로 가득한 회사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내 사업은 변압기로만 끝내지 않을 생각이다. 외주로 돌린 자재들을 품을 것이다. 도와줄 사람은 확실히 도와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볼 필요 없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으로 볼 생각 없는 회사라도 지금은 고개 조아리며 들어가야 한다. 이 바닥 생리를 따라 줘야지 어쩌겠는가.
* * *
“아니, 지 과장 무슨 일이야?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바쁜데.”
“죄송합니다, 사장님. 근처 올 일이 있어서 인사차 한번 들렀습니다.”
“그래 일단 앉어. 퇴사했다더니 얼굴 좋아졌네. 어디서 좋은 것만 먹고 다니나 봐?”
외함 업체 김근배 사장이다. 얼굴에 대놓고 ‘나 거만하오’를 써 놓고 다닌다.
그냥 철판 잘라다가 이어 붙이면 끝인 것이 외함이지만, 핵심적인 자재인지라 업체 파워가 보통이 아니다. 외함 납품 안 한다고 땡강이라도 부리면 답이 없다. 다른 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외함이 없으면 제품을 완성할 수 없으니 살살 길 수밖에 없다.
나중에 당신과 볼 생각은 없지만, 일단 수그리고 살살 비유 맞춰 주자.
“사장님. 저 회사 하나 차렸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지 과장이 무슨 돈이 있어서 회사를 차렸대? 돈 많나 보네.”
“여차저차 그리됐습니다. 준비해서 내년 8월에 대한전력 입찰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사장님 도움이 절실합니다.”
“민수가 아니라 관수를 한다고?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닐 건데?”
이젠 식상하기까지 하다. 돈 어디서 났냐, 돈 많이 들어갈 거다, 사람은 어떻게 구할 거냐 등 귀에 인이 박혔다.
“오늘은 그냥 말 그대로 인사차 들렀습니다. 조만간에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안 그래도 나갈 참이었는데 말이여. 여튼 또 보자고. 지 과장 좋은 사람인 거 아는데, 그거랑 사업은 또 다른 문제니까.”
저 거만한 놈. 1년만 지나 봐. 저 입에서 온갖 아쉬운 소리 다 나오게 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