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4)
014 이상적인 회사
“오케이. 철손, 동손 아주 좋고, 무부하 유도도 통과.”
“나이스!”
“자, 이제 온도 상승 들어갑니다.”
“상무님. 오랜만에 검사 일 하니까 어때요?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실랍니까?”
“어휴. 이 짓을 또 하라고? 난 못해. 못 합니다, 사장님.”
“제가 봤을 때는 딱 어울리는데?”
“검사 인원이나 빨리 뽑아 줘!”
온도만 문제없으면 9부 능선은 넘는다. 하루는 기다려 줘야 하니 일단 기다리자.
“한 과장!”
“네에,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부르면 어디서고 달려오는 딸랑이 한 과장입니다.”
“중소기업 확인, 직접 생산 확인, 이노비즈, ISO, 벤처 기업, 연구소 인정, 또 뭐 있지?”
“좀 기다려 봐. 최대한 빨리 끝낼라니까 도장 찍으라는 거나 잘 찍어 주쇼.”
“그거 빨리 끝내야 대한전력 제품 신청할 수 있으니까 신경 좀 씁시다. 오케이?”
“이거 얼마짜리인 줄 알지? 진짜 월급 몇 배 치 이득을 안겨 주는 것이야. 나니까 척척 해내지. 후후.”
“뻘소리 그만하고, 말 나온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자. 뭔가 정신도 없고, 이럴 땐 담배가 딱이지.”
2층 사무실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향했다. 왜 모든 공장은 사무실이 2층에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전 회사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계단 오르내리느라 무릎이 나갈 지경이었다. 돈 벌면 에스컬레이터를 꼭 설치해야겠다. 아니지, 사장 방에 테라스를 하나 둬야겠구만.
“칙칙. 라이터는 왜케 안 켜져. 이 동네 바람 잘하네.”
공장 밀집한 곳은 길이 잘 통해서인지 바람이 아주 좋다. 바람이 어찌나 좋은지 마당에 물건 적재해 두면 먼지로 뒤집어쓸 정도지.
“덕준아, 이거 온갖 공해와 중금속 가득한 바람이여. 깊이 들이마셔.”
“폐가 짜릿한 것이 변비가 말끔히 해소될 기분이다야. 사장님아, 나 지금 3일째 똥을 못 누고 있어. 아주 죽겄어.”
“니 평생 폐인같이 살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려니까 똥구녕이 삐쳐서 안 열어 주는 것 아니냐? 내가 특효약 하나 알려 줄까?”
“꼬챙이로 쑤시네 이딴 소리 할 거면 하지 말아라.”
“일어나자마자 공장 한 바퀴 쓰윽 돌고 나서 고급 아라비카 원두를 고집하는 막심 한 잔 마시면서 담배 피우면 직빵이야. 봇물 터지듯 콸콸. 난 단 하루도 어긋난 적이 없었어. 이젠 몸이 기억해서 아침에 막심 안 마시면 똥이 안 나와.”
“빈속에 마시면 속 쓰리잖아.”
“그래서 담배도 같이 피우라는 거지. 담배 피우면 빈속 아니잖아.”
“오호, 그럴싸한데? 근데 고급 원두 맞냐? 그냥 설탕물 아니었냐? 크크. 근데 사장님아, 내일도 실패하면 인간적으로 변비약 정도는 제공해 주라. 진짜 죽겠다.”
“관장약 콜!”
회사에서 이렇게 개소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오피스와이프라나? 회사에 맘이 통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자체가 복이다.
현실은 성격 개차반인 사장과 꼰대력이 금강불괴 수준인 노인네들에 둘러싸여 아침부터 들들 볶이는 것이었지. 유일한 낙은 구석에 짱 박혀서 담배 한 대씩 피우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3년을 넘게 고생을 했는데, 이런 격세지감이 다 있나!
살짝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싶다. 공장장이나 상무는 워낙 베테랑이니 알아서 잘하고 있고, 덕준이도 처음 하는 일이지만 잡기를 발휘하며 잘 적응하고 있다.
나만 괜히 공장 어슬렁거리며 꼰대 짓이나 하고 있나 싶다.
“지 사장 뭐 할라고?”
“일손 부족한데 저라도 거들어야죠.”
“아이고 사장님요. 그냥 사무실에 앉아 계세요. 시제품이라 신경 써야 하는데 괜히 망칠라. 허허.”
“공장장님 왜 그러십니까? 저 베테랑이에요. 제가 말만 사무직이었지, 현장에서 온갖 일 다 하지 않았습니까? 서당 개 노릇만 3년을 했는데…….”
“사장이 그러면 어디 직원들 부담스러워서 일하겠어?”
그렇지! 사장은 게을러야 해. 사장이 부지런하면 직원들 피곤해져. 부지런한데 멍청하면? 최악이지. 또 전에 다니던 회사가 생각난다.
어찌나 부지런하고 아침잠 없는 사람들인지, 공장은 출근 1시간 전부터 나와서 부산 떠는 자들 천지였다.
그렇게 부지런한 이들이 많았지만 물건 나오는 속도는 크게 차이가 없다. 점심시간에 굳이 5분 정도 늦게 오면서 회사 일 혼자 다 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사람들. 사장이 보인다 싶으면 괜히 뛰어다니는 사람들.
이유야 뻔하다. 사장이 직원들 노는 꼴을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으로 보장된 휴게 시간인데도 공장이 멈추면 회사 망할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사장 앞에서 누가 맘 편히 쉬겠나. 다들 부지런히 일하는 척만 하는 것이다. 기계가 아닌 사람인데 종일 일만 할 수 있나.
덕분에 난 한 번에 할 일을 두세 번에 나눠서 하기 일쑤였다.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는 척해야 사장이 좋아했기 때문에 꼰대들이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두세 번에 할 일을 한 번에 해 버리면? 잔머리를 쓰니, 요령을 피우니, 온갖 개소리가 난무하다 못해 귀에 인이 박힌다. 나 같으면 그 잔소리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만들겠다! 니미럴.
난 똑똑한데 게으른, 똑게가 되자. 내가 방향만 잘 잡아 준다면 직원들이 척척 잘 해낼 것이다!
* * *
그렇게 3일을 보내고 나니, 문자님께서 주신 설계가 드디어 제품으로 구현됐다!
“공장장님 어때요?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어휴, 겨우 집어넣었어. 외함이 너무 타이트해. 그나저나 성능이 잘 나와야 할 텐데. 이게 방열기가 없잖아. 방열기도 없이 온도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규격을 다 맞추는 걸로 설계를 뽑았겠지만, 직접 만들고도 믿기지가 않아. 어이, 재준아. 너 이거 조립할 때 어땠냐? 좀 뻑뻑하긴 했지? 이게 그렇다니까.”
공장장과 대화하려면 응당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일 것이니 새겨듣자. 휴우.
“외함이 도면대로 제대로 들어온 것 맞나요?”
“살짝 작아. 5미리 정도? 왜 작게 했냐니까 맞는 금형이 없더래. 쌍놈의 시끼들. 금형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도면대로 만들어야지. 하여간 그 새끼들 배때기가 불렀어. 그러게 왜 거기를 택했어? 잘하는 데 많잖아?”
“여러 업체 고민했는데, 나주 내려가서 그 많은 물량 소화하려면 태진기업만 한 데가 없더라고요.”
“태진 김 사장 그놈 아주 목에 깁스 하고 다니는 꼴 보고 있으면 분통이 터져.”
역시 외함 업체가 말썽이다. 자재 제작까지 영역을 넓히겠다는 계획에서 외함을 1번 타자로 내보내야 할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나주 내려가면 직접 외함 제작해 보려고요. 말 안 듣고 목에 깁스 하고 다니는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잖아요?”
“나쁘지는 않네. 역시 지 사장 생각하는 것이 남달라. 가만있어 보자. 기흥에서 일하던 애들 지금 놀고 있다는데 한번 알아볼까?”
“대한전력 등록하려면 외함 업체 필수니까 일단은 태진하고 진행해야죠. 나주 내려가면 설비 사서 외함 직접 할 것이니까 일단 그렇게 알아 두세요. 자, 자, 신제품 시험하러 가시죠?”
“그래그래. 그래야지. 김 상무! 어서 시험합시다!”
검사실에 서 있는 모두가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전기가 투입됐다.
“이야. 철손 좋네. 역시 좋은 자재 써서 그런지 자알 나오네.”
일차 시험인 특성 시험이 끝났다.
“성공이네요! 오우야, 이거 특성 좋네요. 효율 좀 보세요. 기존보다 0.3에서 0.4프로 정도는 올라간 것 같은데요?”
“특성이 문제가 아니라 온도가 문제야. 김 상무 어떨 것 같어?”
“그거야 모르지. 통이 얄쌍하고 방열기도 없어서 괜찮을지 모르겠네. 그런데 지 사장, 이거 성공한다고 해도 대한전력이 인정해 줄라나?”
주변에서 주워듣는 얘기가 많은 우리의 연합 통신인 상무가 우려를 내던졌다.
“왜요? 무슨 문제가 있어요?”
“이거 대한전력이 개발 과제로 두성이랑 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걸 딱 내놔 봐. 어떻게 생각하겠어?”
“고깝게 볼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지. 이제 막 창업한 회사가 무슨 수로 이걸 만들었나 의심하겠지. 그리고 아직 대한전력에서 구매 규격도 안 만들었잖아. 대한전력이 채택 안 해 주면 그냥 낙동강 오리 알 되는 거야.”
오리 알 하니까 숙성 오리 알 요리가 생각나네. 맛있겠다. 다음 회식은 중화요리로 할까나? 연상 작용이 이리 무섭다. 정신 차리자.
“대한전력이 양아치도 아니고, 이건 무조건 채택입니다. 이렇게 효율이 좋으면 전기를 얼마나 아낄 수 있는데, 이거 안 쓰면 손해죠.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대한전력이 워낙 거대 기업이라 좀 뻣뻣하게 구는 것은 있다. 그래도 신기술은 언제나 환영하는 회사이니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걱정이 된다면, 다른 변압기 회사들이겠지. 내가 20퍼센트 가져가면 죽는소리하면서 난리 치겠지?
역시나 공장장이 한마디 꺼낸다. 정말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중전기 조합에서 가만히 있을까? 나주 가면 20프로 가져간다면서? 그것만으로도 난리 칠 텐데, 이거 개발했다고 또 20프로 가져가면 업체들 다들 들고 일어설 것 같은데? 이 바닥 아주 지랄 같은 것 알잖아.”
“하하.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우리가 뭐 특혜 받는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얻는 결실인데, 뭐가 무섭습니까? 그리고 조합요? 지금까지 우선 배정 받던 업체가 한두 곳도 아니고, 말만 많았지, 아무것도 못했잖아요? 누가 지랄하면 제가 아주 조져 버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태양전기 3년 다니면서 쌓인 것 엄청 많으니까 그거 푼다 생각하고 제대로 지랄해 버릴게요.”
“와, 우리 사장 장난 아닌데?”
“제가 몸속에 사리가 한 가마니입니다.”
다음 날 온도 상승 시험도 대성공했다. 국제 표준에 넉넉하게 들어왔다. 아주 좋다!
이제 이 결과물을 가지고 대한전력과 승부 보는 것만 남았다. 찾아가서 이거 보여 주면 끝이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면서 아주 놀랄 것이다. 고민하고 말 것도 없다.
“사장님~ 낼 ISO 심사하러 온답니다!”
“아이고 빨리도 오네.”
“아나. 잣 빠지게 했습니다요!”
ISO 심사를 끝으로 전기 연구원 시험 합격을 제외한 모든 인증과 증명이 마무리됐다. 3년 정도 늙어 버린 듯한 덕준이가 핫식스 한 캔을 원샷하며 그간의 고생에 대해 자축했다. 그래 고생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나주에 같이 내려가자!
* * *
모든 준비가 마무리됐으니, 묵혀 둔 돈을 펑펑 쓸 차례가 됐군. 미루고 미뤘던 법인 차량부터 사자.
나도 그렇고, 공장장과 상무까지는 차를 해 줄 생각이다. 적어도 임원은 대우해 줘야,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동력으로 삼지 않겠나! 덕준이는? 내가 타던 말티즈나 주자.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야. 후훗.
“지 사장.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마운데, 내가 회사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 안 그래도 얘기를 하려고 그랬는데, 차야 있으니까 됐고 공장에 방 하나만 마련해 줘.”
“방요? 여기서 주무시게요?”
“어차피 홀몸이자너. 뭣 하러 출퇴근하면서 시간을 버려? 여기서 먹고 자면서 경비나 서지 뭐.”
“자녀분들이 가만있겠어요? 공장장님 부려 먹는다고 쫓아와서 저 머리끄덩이 잡는 것 아닙니까?”
“지들 애 키우고 사느라 바쁘지, 뭐 신경이나 쓸 겨를이 있겠어. 나야 주말이나 해서 가끔씩 들르면 그만이야. 암튼 난 차 필요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어. 난 말했다?”
“공장장님 고맙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돈을 떠나서 공장장님한테는 꺼멓고 그럴싸한 차 꼭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야 뭐 바지나 마찬가지고 실질적으로 우리 회사 기둥인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드리려고 했거든요.”
“에이. 나야 뭐 다 늙어서 쓸모도 없는 노인네구만. 나중에 우리 아들 녀석 행여나 회사 잘리면 여기나 취직시켜 줘.”
“아이고 당연히 그래야죠. 회사 자리 잡고 돈 벌면 섭섭하지 않게 해 드릴게요.”
“아무렴. 나 돈 많이 벌 거야. 월급 많이 줘! 허허허.”
모든 직원이 공장장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직원과 직원의 헌신을 외면하지 않는 회사. 최고의 조합이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만, 절대 안 되겠지? 간신배 같은 직원, 자기만 잘 살려는 직원, 눈치껏 놀면서 시간만 때우려는 직원 등등.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람 관리가 제일 고민이다. 생각해 보니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일단 겪어 봐야 할 것 같았다.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결국 차는 나와 상무만 사기로 했다.
“상무님, 이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업 뛰라는 압박입니다. 아시죠?”
“와! 지 사장 협박이 예술이네. 푸하하. 영업은 걱정 말어. 배가 터질 정도로 받아 올 테니까.”
“차는 산타페 맘에 드십니까? 저도 같은 걸로 합니다.”
“아무래도 비타300이라도 싣고 다니려면 SUV가 낫지. 그리고 50도 안 됐는데 세단은 좀 나이 들어 보이잖아? 난 아직 젊은 오빠야.”
“장기 렌트인지 리스인지는 상무님이 잘 아시니까 부탁 좀 드릴게요.”
“우리 사장 어영부영 일 잘 시켜 아주. 한 과장도 얼마나 일을 시켰는지 죽을라고 하드만.”
“저는 직원들 믿고 맡기는 스타일입니다. 하하하. 참! 저 다음 주에는 한 과장 데리고 나주 좀 다녀올게요. 대한전력 가서 눈도장도 좀 찍고, 공장 부지도 재촉할 겸. 그때까지는 차 나오겠죠?”
“그래. 간 김에 둘이서 서로 팔짱 끼고 오붓하게 단풍 구경이나 하고 오셔.”
“젠장, 설레네요……. 맞다! 우리 공장 지어야 하잖아요. 저 나주 다녀오는 동안 공장장님이랑 같이 와꾸 좀 짜 보세요. 이왕 짓는 것 제대로 쌈빡하게 지어 보자고요.”
“우리 사장님 입만 열면 일이 쏟아져 아주. 좋긴 한데…… 아이고 삭신아.”
당분간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것 같다. 사장 없이도 잘 돌아가는 회사. 얼마나 좋냐! 마음 놓고 나주 갔다 와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