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33)
133 직업 훈련
직원들 대학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영산포 시내에 자리한 제일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인근에 있는 참치집으로 오라는 것을 보니 대접 좀 하려는 모양이다.
“지 사장 어서 오시게. 여기는 강 교수. 인사 나누게.”
“안녕하십니까?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반갑습니다. 강호원입니다.”
참치집 룸에는 로타리클럽 회장인 박창규 제일병원장과 강호원 교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 교수. 50대 정도의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이다. 대학 시절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며 선배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상담 결과는 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단 집에 돈이 좀 있어야 된다는 것이 제일 큰 걸림돌이었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돈 없어서 주경야독하면 시간만 버린다는 것이었다. 씁쓸했다.
두 번째 이유는 진짜 공부가 좋아서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면 생각도 말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교수 자리는 스카이와 미국 유학파 아니면 힘들고, 연구원 자리라도 얻으려면 남을 짓밟아야 하는데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밤낮없이 동고동락하던 동료를 밟아야 하는 비인간적인 경쟁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선배의 말이 귀에 아른거린다.
강 교수를 보니까 남을 밟기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게 생겼다.
그런 사람의 길은 뻔하다. 시간강사로 보따리장수를 전전하다 운이 좋으면 지방대 자리 하나 얻는데, 말이 교수지 학생 영업해야 하는 현실.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잡숴. 강 교수는 지 사장 처음 보는 거지?”
“네. 제가 활동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돌덩이 위에 아름답게 올려 있는 참치가 나왔다.
첫 번째로 나오는 참치는 무조건 옳다. 1번 도로, 2번 도로 위주로 마블링이 예술이다. 한 점 씹으니, 이거 해동도 예술이다. 참치는 해동을 잘해야 한다. 해동만 잘하면 투뿔 암소도 뛰어넘는 엄청난 맛을 느낄 수 있다. 아, 맛있다!
“이 집 참치 좋네요. 아주 맛있습니다.”
“괜찮지? 이 동네가 홍어가 유명해서 그렇지, 이 집 참치도 아주 좋아. 입맛 깔끔하고 얼마나 좋아? 여기가 내 단골이니까 올 때마다 내 이름 슬쩍 얘기하라고.”
“이렇게 훌륭한 집을 놔두고 왜 매번 홍어만 먹으러 가야 합니까? 하하.”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것 아닌가? 여기 사장님이 참치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높아. 가격이 좀 높긴 해도, 어디 가서 이만한 것 못 먹네.”
내가 너무 감격스러운 말투로 참치를 극찬했나 보다. 박 원장이 눈치 없게 참치 얘기로 끌고 간다. 그렇다면 바로 만남의 목적으로 이끌어야지.
“교수님. 회장님한테 전화로 듣긴 했는데, 학생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지방대 현실이 뭐 그렇죠. 사장님께서는 고조선대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도 나주 살지만, 회사 일만 하느라 나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네요.”
“대학이 넘쳐 나는데, 나주 사람도 모르는 촌구석 대학에 누가 오려고 하겠습니까? 저도 뭐 월급 받고 살고 있지만, 대학이라고 이름 붙이기 부끄러운 곳이 참 많습니다.”
강 교수가 자조적인 고백을 하는데, 대학 이름 때문에 표정 관리가 쉽지 않다.
고조선대는 좀 웃기긴 하다. 재단 이사장은 무슨 생각으로 고조선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차라리 동예대나 옥저대면 좀 나은데, 고조선대는 아휴. 그것도 나주에 고조선이 웬 말이야!
“지 사장. 강 교수가 일본 유학 다녀온 전기 박사야. 전기면 공학 박사인가?”
“네, 맞습니다.”
“우리 강 박사가 고생해서 박사까지 땄는데, 시간강사로 10년 넘게 고생만 하지 않았나? 이제야 자리 잡았는데, 우리가 잘되라고 도와줘야 하지 않나 싶어.”
“원장님, 감사합니다. 수시 전형이 9월부터인데, 벌써부터 아주 죽겠습니다. 작년에 겨우 5명 들어와서 올해 과를 없애니 마니 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영업 사원이 따로 없어요.”
교수가 연구를 해야지, 학생 모집한다고 영업하고 있다. 학계도 참 안타까운 점이 많다. 생계 걱정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주면 좀 좋나?
“학생 유치에 그리 바쁜데 연구는 언제 하십니까?”
“아유, 부끄럽습니다. 1년에 논문 한 편 쓰기도 힘듭니다. 이게 참 웃긴 것이 업적 평가 때문에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데, 정작 학교는 신경도 안 씁니다. 학생 많이 유치하는 것이 최고다 이거죠.”
연구자와 영업맨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영업 실적 좀 올려 줘 볼까?
“교수님. 우리 회사 직원들 대부분이 보육원 출신인 것은 알고 계시죠?”
“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원장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가 직원들 전기 박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보호 종료되자마자 우리 회사로 들어오는 케이스라서, 대학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하더라구요.”
“아, 그렇습니까? 20대라면 대학 입학해서 MT도 가고 술도 진탕 마셔 봐야죠. 그때가 아니면 언제 또 그러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화무십일홍인데, 꽃이 지기 전에 실컷 놀아야 한다. 우리 직원들이야 지금도 저들끼리 잘 놀고 있지만, 대학생 경험도 하면 더 좋겠지.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그냥 얻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혹시 등록금 걱정이시라면 말씀드렸다시피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절반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되고, 나머지 절반도 학교에서 장학금으로 처리해 줍니다. 입학금까지요. 그냥 2년 동안 공짜로 교육 받을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등록금은 해결. 돈이 든다고 해도 내가 지원해 주면서 가르칠 생각이었으니 좋고말고.
“일하면서 대학 수업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혹시 편의를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강 교수가 눈이 확 커졌다. 구체적인 물음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인들 대상으로 하는 여러 지원 제도가 있습니다. 그게 없더라도 제가 일에 지장 없도록 해 드려야죠.”
“이 사람들아! 참치나 들고 얘기하게. 우리 지 사장이 직원들 아끼는 마음은 알겠지만,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입학을 시켜? 허허. 자, 자, 술 한 잔씩 받게.”
내가 너무 급했나? 박 원장도 있는데, 입학 설명회를 열고 있었네. 입학식 열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던 강 교수가 한풀 꺾인 표정이다. 그래, 예열 좀 하자고.
“하하. 죄송합니다. 요즘 직원들 교육으로 고민하던 차에 이런 자리가 생기니, 저도 모르게 맘이 급해졌습니다.”
“이 좋은 참치를 놔두고 말이야. 숨 좀 돌리고 얘기하게. 하하. 지 사장, 보육원 아이들은 어떤가?”
“아무래도 직업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 어려움이 좀 있긴 하죠. 그거 감안하고 채용한 것이긴 하지만요.”
“일도 제대로 안 하고, 툭하면 도망가고 그런다던데?”
역시 편견의 벽이 높다. 그런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고 말았을 텐데, 보육원 출신들에 대해서는 전체의 문제로 이해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습니다. 젊은 애들이라 저들끼리 싸우는 경우는 있어도, 일할 때는 확실하게 합니다.”
“나야 뭐 주변에서 하는 얘기만 듣고 그런가 보다 했지. 사람들이 하는 얘기 좀 가려 들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구만.”
“사는 곳이 달랐을 뿐이지, 우리랑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그래, 자네 술잔 비었나? 내 술 한 잔 받게.”
괜한 소리에 민망해진 박 원장이 술을 권한다. 몰라서 그랬을 수 있지. 이젠 알았으면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안 하고 다니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급 냉랭해진 것 같아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강 교수님. 학생 모집 어려운 것은 다른 과도 마찬가지입니까?”
“그나마 전문직 쪽으로 갈 수 있는 과는 사정이 낫죠. 이를테면 치위생이나 유아 교육, 물리 치료 쪽 말이죠. 그런데 아니고는 학생 모집이 쉽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저희 과가 제일 힘들죠. 허허.”
“그래도 신재생에너지과면 여기 대한전력도 있고, 좀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2년제라 별 볼일 없습니다. 그냥 편입 자격 받으려고 2년 채우는 정도죠. 이래저래 힘듭니다.”
“지 사장이 우리 강 교수 좀 많이 도와 드려. 지역 인재가 많아져야 지역이 좋아지는 법 아니겠는가?”
박 원장이 재차 도움을 요청한다. 나주에 2년 살아 보니까 확실히 서울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혁신도시는 덜하지만, 나주 시내만 나가도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방 소도시만의 목가적인 분위기라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역민들은 발전에 목말라 있다. 그나마 나주는 광주라는 대도시에 붙어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광주로 가면 영화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고조선대학, 이름이 웃기긴 하지만, 내가 지역 발전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드리리다.
“강 교수님. 아까 얘기하다 말았는데, 혹시 우리 회사에 오셔서 강의해 주시는 것도 가능합니까?”
“당연하지요. 산학 연계 과정이라고 직장인들 편의 봐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실기 수업은 힘들지만, 이론 수업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주 1회로 몰아서 하거나 원격 수업으로 하거나 어떤 방식이든 다 가능합니다.”
“이왕 대학 들어가기로 했으면 뭐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아주 훌륭한 인재로 키워 드리겠습니다.”
대화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강 교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교수가 아니라 진짜 영업 직원 같다. 정원 20명짜리 학과를 혼자서 책임져야 하니, 학생 모집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도 있을 텐데, 우리 회사 직원들만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이게 좀 부끄러운 얘긴데, 등록만 해 놓은 유령 학생이 워낙 많아서 수업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학교도 그거 감안해서 월급을 말도 안 되게 줍니다. 하하. 남들은 교수라고 해서 돈 잘 버는 줄 아는데, 진짜 민망할 정도입니다.”
강 교수, 이 사람은 말만 하면 자조가 가득 묻어 나온다. 왜 이리 자존감이 없나? 청운의 부푼 꿈이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치면 이렇게 되는 것인가? 굳이 동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안쓰럽긴 하다.
“좋습니다. 교수님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 교수가 어정쩡하게 일어나 손을 덥석 잡는다.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데 동아줄 내려 준 사람으로 대접하는 모양새다. 내가 또 사람 하나 살렸네. 후훗.
“사장님, 감사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변압기 박사로 만들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보육원 출신을 직원으로 뽑다 보니까 제일 힘들었던 점이 전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직업 교육도 다 떠안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생 기업이라 교육에 어려움이 많더라구요.”
“제가 현장 실무는 모르지만, 최대한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 전기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에 대해서도 외부강사를 초빙해서 교육해 보겠습니다.”
“교수님. 정원이 20명이니까 제가 매년 20명씩 보내겠습니다. 우리 회사와 잘 어울리는 커리큘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 교수가 너무 굽실거리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박 원장이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그래, 내가 뭐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준 것도 아닌데 표현이 너무 과해. 나야 회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직원들 대학 보내는 것뿐이라고.
“하하. 강 교수! 로타리클럽 아니었으면 우리 지 사장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겠나! 이제 활동 좀 열심히 하라고.”
“앞으로 얼굴 자주 비추겠습니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다 보니까 만사가 다 귀찮아지더라구요. 하하.”
낮은 자존감의 원인은 스트레스였군. 하긴, 나도 태양전기 다닐 때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었다. 서로 도움 주고받기로 했으니, 이제 즐겁게 살아 봅시다.
그나저나 이 집 참치 맛있네. 두 번째, 세 번째 들어오는 참치도 아주 좋아. 참치 생각나면 여기로 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