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34)
134 에이전트 K
회사가 양적으로 성장하며 자생할 여건은 갖췄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질적 성장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그저 봉사하겠다고 가입했던 로타리클럽이 의외로 많은 도움이 된다.
로타리클럽 회원인 강호원 교수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매년 우리 직원 20명씩을 전기공학의 세계로 인도하기로 했다. 2년간 가르치고, 성과가 좋으면 나주에 있는 4년제까지로 보낼 생각이다. 많이 가르치면 그만큼 회사에 도움이 되는 법이다.
이 좋은 소식을 회사에 전달하지도 못하고, 덕준이를 데리고 바로 금성전기 나주 공장으로 달려갔다.
혁신산단의 네 번째 변압기 회사. 그것도 남도 아닌 박준희 사장의 공장이니 모른 척할 수 없지.
“박 사장님! 축하합니다! 공장이 아방궁 같습니다. 너무 좋은데요?”
“하하. 더 좋은 공장이면서 말은. 선물 고마워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누나가 나주 입성하는데 소 한 마리 잡는 게 뭔 대수겠습니까?”
박 사장 얼굴이 약간 상기됐다. 소 한 마리에 감동하기는.
안성파워에 이어 금성전기 완공식에도 축하 선물로 LA갈비를 돌렸다. 여기 살면서 계속 마주칠 사람들인데 이렇게 인덕을 쌓아야지.
안성파워 때는 통장 잔고가 출렁이긴 했지만, 금성전기는 직원이 80여 명밖에 되지 않아 돈도 얼마 들지 않았다. 광고비치고는 싸게 먹혔지.
“이따가 에이전트 오기로 했으니까, 여기서 간단하게 요기하고 같이 얘기해요.”
“그럼요. 그거 땜에 여기 왔는데요. 제가 완공식 보러 왔겠습니까? 하하.”
“으이구, 진짜.”
자주 만나서 그런지 호칭이 편해져서 그런지, 농담도 자연스러워졌다. 선을 지키면서도 편하게 지내는 사이, 딱 좋다.
“강 사장님이 더워지기 전에 체육 대회 한번 열자고 하시던데, 누나도 동참하실 거죠?”
“아, 그래요? 그럼 우리가 우승할 텐데요? 호호. 그나저나 강 사장님은 좀 늦으시네요.”
양반이 되지 못한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신같은 타이밍이네.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길래 이렇게 귀가 간지러워?”
“어서 오세요. 체육 대회 얘기하고 있었어요. 사장님도 오셨으니까 오늘 체육 대회 확정 짓고 가죠?”
박 사장이 적극적으로 체육 대회를 밀어붙인다. 종목이라 해 봐야 축구나 족구, 달리기, 줄다리기 정도일 텐데, 아주 자신이 있는 모양이네? 그 오뚝한 코를 내가 꺾어 주겠다!
“체육 대회 좋지! 그냥 넌지시 한 얘기인데, 역시 젊은이들이라 추진력이 좋아. 그래, 어디 제대로 붙어 보자고.”
혁신산단 변압기 3호 기업 아주전기 이충원 사장까지 모여 체육 대회 얘기로 한참을 떠들었다.
판이 커졌다. 나주종합운동장 빌려서 뽀대나게 열기로 했으니 준비 잘해서 우승 깃발을 흔들어야겠다. 우리 직원들 축구 실력 보면 깜짝 놀랄 것이야. 후훗.
따사로운 봄기운을 만끽하며 내 편들과 대담을 나누니 맘이 편안하니 좋다. 요 근래 진상 부리는 애들이 없으니 이래 편할 수가 없다. 이럴 때일수록 갈 길을 빨리 가야지.
완공식이 끝나고 금성전기 사장실에 네 명이 자리를 잡았다.
은근히 낯가림이 있는 덕준이는 박 사장 미모에 얼었는지 묵언수행 중이다. 여자 앞에서 참 약하단 말이야. 공교롭게도 중국 에이전트도 여성이다.
“안녕하세요. 김미애입니다. 조그마한 회사 하나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에이전트 케이라고 부르는데, 편하게 김 사장이라고 해 주세요.”
타이트한 H라인 스커트도 소화하는 것을 보니 관리 잘한 중년 여성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살과의 싸움에서 백기를 드는 경우가 많은데, 대단한 사람이네.
“제가 그렇게 중국 수출해 보자고 찔렀을 땐 꿈쩍도 안 하던 박 사장님이 왜 이렇게 생각이 달라졌나 했는데, 여기 지 사장님 덕분이었네요? 호호.”
“노하우도 쌓이고 여건도 조성되니까 그러셨겠죠. 제가 뭐 도움 드린 일은 없습니다.”
브로커건 에이전트건, 이들과 대화는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 같은 느낌이다.
말로야 원하는 것을 다 해 줄 것처럼 하지만, 계약서 서명할 때까진 쉽사리 마음을 열 수 없다. 계약하고도 쉽지 않다. 수출한다고 에이전트와 계약 체결했다가 고생한 회사들 많이 봤다. 긴장하자.
“김 사장님은 중국 어디서 활동하십니까?”
“장쑤성 아세요? 옛날에는 강소성이라고 했죠. 장쑤성이 어디냐면 상하이 바로 위에 있어요. 난징대학살 들어 보셨죠? 그 난징이 부성급,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도청이 있는 곳이에요.”
장쑤라고 할 때 발음이 이질적이다. 중국말도 혀 꽤 굴린다. 발음 들으니 중국통이 확실하다 싶다.
“장쑤면 난퉁시가 있는 곳이죠?”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난퉁이 상하이 바로 위라서 성장이 엄청나요. 자고 일어나면 빌딩 들어설 정도예요.”
“거기에 우리 거래처가 있어서요.”
중국에 거래처가 있다는 소리에 박 사장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에이전트 케이에게 서툰 짓하지 말라는 뜻으로 던진 말인데, 에이전트 케이는 덤덤한 표정 그대로이다.
“지 사장님, 중국에도 거래처가 있어요?”
“저희가 자재도 만들잖습니까? 원자재가 거의 수입인데, 중국이랑 거래를 안 할 수가 없죠. 안 그래도 난퉁에 있는 거래처가 변압기 완제품 수출도 해 보자고 하는데, 박 사장님이랑 약속했으니 여기 김 사장님이랑 논의를 해 봐야죠.”
일단 냅다 구라를 질렀다. 서로에게 솔직할 수 없는 것이 사업인 것 같다. 돈이 걸린 문제이고, 욕심을 버리기 어려운 사람이란 존재이기에.
“호호. 지 사장님은 중국 잘 아시겠네요? 잘됐네요. 좀 아는 분이랑 같이 해야 일이 수월하죠.”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진행해 보시죠. 그러면 김 사장님께서는 장쑤성을 다 커버하십니까?”
“아휴. 장쑤성이 얼마나 넓은데요. 딱 남한 크기겠네요. 근데 인구가 7천만이 넘어요. 엄청나죠? 호호. 저는 창저우랑 난징에서 활동해요. 그러니까 상주, 남경이죠.”
나름 공부한 덕인지, 머리에 지도가 딱 그려진다. 상하이 위에 난퉁이 있고, 서쪽으로 들어가면 창저우, 그 옆에 난징. 공부한 보람이 있군.
생각해 보면, 학창시절에 중국에 대해서 배운 것이 거의 없다.
일본이야 주요 대도시들이 어디에 있다는 것쯤은 상식 수준이지만, 중국은 베이징, 상하이, 홍콩 정도? 일본을 두고 가깝고 먼 나라라고 하는데, 중국도 만만치 않다.
“난징하고 창저우가 오래된 도시라 바닷가 쪽에 비해 발전이 더뎠는데, 최근에 확 크고 있어서 전기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제가 그래서 박 사장님한테 몇 년 전부터 변압기 수출하자고 그렇게 졸랐는데…….”
“하하. 지금이라도 하면 되죠. FTA도 체결됐으니까 관세도 없어졌고, 이제는 할 만하죠. 제가 지 사장님이랑 함께 잘 만들어 볼 테니까 많이 팔 수 있게 해 주세요.”
박 사장이 전의를 불태운다. 내 도움이 아니었다면 중국 수출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자동권선기를 그리 비싸게 팔았는데도 오히려 고맙다고 고기 대접까지 했으니, 나를 얼마나 고마워하겠나?
“김 사장님. 조건을 말씀해 주시죠.”
“호호. 지 사장님 성격도 급하시네. 서로 호구 조사하면서 속속들이 알고 나서 얘기해도 안 늦어요.”
“하하. 제가 서론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본론 얘기하고 나서 서론 얘기하시죠.”
박 사장이 잘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저건 천상의 미소이다. 어쩜 저런 미소가 나올 수 있나? 덕준이를 쳐다보니, 사고가 정지된 표정이다. 올라프 같은 놈, 어지간히 얼어라.
“뭐 조건이랄 것도 없어요. 일단은 중국 변압기 회사에 납품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죠. 제가 2개 업체 알고 있는데, 관수고 민수고 변압기만 갖다 달라고 성화예요.”
“단가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건 사장님들께서 맞춰 주셔야죠. 메인이 50kVA니까 그걸 기준으로 하면, 80만 원 언더로만 해 주면 나머지는 제가 처리할게요. 가능하죠?”
80만 원. 생각보다 단가가 괜찮다. 대한전력에 납품하는 가격이 105만 원이니까 25퍼센트 DC. 그 정도면 아주 괜찮다. 80만 원에 팔아도 15퍼센트 가까이는 남으니까 말이다. 아니지, 부가세 환급을 빼먹었군. 할 만하네.
“어떻게든 맞춰야죠. 손해 볼 것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중국 규격으로 설계 뽑아서 단가 맞춰 보겠습니다.”
“관수보단 민수가 더 낫긴 해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초고압 변압기 수출하고 있긴 한데, 가격이 높거든요. 사장님들께서 저렴하게만 해 주면 좋죠. 중국 공장은 워낙 덩어리가 커서 대용량 변압기 수요가 많아요.”
“변압기 만드는 것이야 문제가 아닌데, 중요한 것은 보증 아닙니까?”
“맞아요. 우리 같은 제조사들은 재고 부담을 안고 가는 것이라 못해도 절반은 선금을 주셔야 해요.”
나와 박 사장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태양전기가 망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실상 중간 유통상이었던 에이전트 말만 믿고 물건 잔뜩 만들어 놨다가 자금줄이 막혀 버린 탓이다.
일단 물건 받고 대금 결제 안 하고 버티면서 온갖 이유를 달아 단가를 내리치는 것이다. 말을 잘 안 들으면 물건 만들어 놓게 한 다음 인수를 차일피일 미룬다. 그렇게 궁지로 몰아넣고 재미를 보는 것인데, 태양전기는 그 꼴을 당하다 결국 문을 닫았다. 바보들.
“호호. 저야 사장님들 원하는 대로 해 드리고 싶죠.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중국 업체가 처음 거래하는 업체에 선뜻 선금을 주겠어요? 중국 애들이 얼마나 돈 계산이 철저한데요. 손해 볼 짓은 절대 안 해요.”
“아시겠지만, 수출 변압기는 만들어 두면 어디 쓸데가 없어요. 김 사장님 말만 믿고 변압기 만들었다가 수출 못하면 그냥 폐기물 되는 것 아닙니까?”
“알죠, 알죠. 제가 돈만 많으면 제 돈으로 해 드리고 싶을 정도예요. 호호. 그러지 말고 다 같이 한번 가시죠. 제일 좋은 건 직접 가서 현지 업체랑 미팅하면서 친분을 쌓는 거죠. 꽌시 들어 보셨죠?”
“부대 비용이 들어간다는 말씀이시군요?”
얘기가 핵심으로 들어간다. 수출에 리베이트가 없을 리 없다. 선박 같은 경우는 대놓고 계약금의 1~2퍼센트를 리베이트로 지급한다. 합법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국제 관례라고 하더라.
“뭐 뒷돈이야 해 주면 좋아는 하겠죠. 자, 제가 설명을 드릴게요. 수출하면 포장비, 운반비, 선적비 등등 대략 6~7프로 나올 거예요. 박 사장님은 잘 아시죠?”
“네, 포장에서 돈이 많이 들어가긴 하죠. 우리가 직접 해 보려고 했는데, 나무 사서 재단하고 고정하는 게 손이 많이 가더라구요.”
“포장 어설프게 했다가 변압기 파손 나면 왔다 갔다 비행기 값으로 돈이 더 들어요. 여튼 거기에 에이전트비로 2~3프로 나가는데, 저는 딱 2프로만 받아요. 이거 엄청 저렴하게 해 드리는 겁니다.”
슬쩍 박 사장을 쳐다보니 인정한다는 표정이다. 에이전트 케이도 일한 만큼 대가를 챙겨 가긴 해야겠지. 2프로 인정.
“그럼 10프로는 빠진다고 보시면 되는데, 수출은 부가세 환급해 주잖아요? 그래서 그걸로 퉁치면 됩니다. 변압기는 관세 즉시 철폐 품목이라 관세 부담도 없구요.”
“사장님께서 포워딩은 안 하시죠?”
“이것만으로도 바빠요. 호호. 포워딩은 싸게 해 주는 업체 잡으면 될 거예요. 포장까지 같이 해 주는 포워더면 더 좋죠.”
수출 경험이 많은 박 사장이 입을 연다. 그냥 물건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서, 경험자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박 사장에게 잘해야겠군.
“지 사장님. 이게 컨테이너로 나가잖아요? 포장이 아주 중요해요. 포장을 얼마나 잘하냐에 따라 들어가는 변압기 숫자가 달라지거든요. 포장비 아낀다고 싸구려 나무 썼다가 컨테이너 안에서 무너져서 돈 날린 회사도 많구요. 우리랑 거래하는 업체도 있으니까 나중에 같이 봐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수출 포장은 대한전력 포장같이 하나 마나 한 짓이 아니었다.
나무로 짜서 변압기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고, 중량 계산하면서 2단으로 올리기도 하고 말이다. 컨테이너에 집어넣는 것도 장난 아니더라.
사업 시작한 사람이 부가세 납부 생각 못하고 돈 잘 번다고 즐거워하다가, 부가세 신고 때 피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다. 수출도 포장을 상수로 두고 계산해야겠군.
“제가 마저 얘기하자면요, 리베이트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조금 챙겨 주는 곳도 있고, 크게 떼어 주는 곳도 있고 다양해요. 넉넉잡고 삼사 프로 정도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이건 사장님들 능력에 달렸습니다.”
“지 사장님. 어때요? 당장이라도 중국 한번 가죠?”
박 사장은 이미 중국에 가 있다. 중국 수출하기로 맘먹었다더니, 시원하게 밀어붙이는군.
“그래요. 제가 가이드해 드릴 테니까 같이 오세요. 관광도 좀 하고, 쇼핑도 하고요.”
얘기가 자연스럽게 중국 여행 계획 짜는 것으로 흘러갔다. 에이전트 케이와 얘기해 보니 사기꾼 냄새는 안 난다. 사람 속은 모르지만, 같이 사업해 볼 만하다 싶다. 박 사장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사장님들. 제가 중국 현지 업체랑 컨텍해서 스케줄 잡아 볼 테니까 확정되면 바로 출발하시죠? 용량별로 맥시멈 단가 보내 드릴 테니까 견적 잘 뽑아 주시구요.”
에이전트 케이와 악수를 나눴다. 손을 세게 쥐자, 에이전트 케이가 도발적인 눈빛으로 응답한다. 그래, 잘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