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38)
138 출정식
육회비빔밥 만찬이 아주 풍성하다.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도 풍성하지만,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꺼낸 말이 풍성 그 자체이다.
넌지시 제안만 했을 뿐인데 이미 밥상을 다 차려 온 김 사장이니, 이것저것 더 물어보자고. 아주 의욕적인 표정으로 대답해 줄 것이야.
“사장님, 혹시 납기와 결제 조건도 얘기해 보셨습니까?”
“구체적인 것까지는 얘기를 못했는데, 납기는 대략 발주 후 40일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결제는 일반적으로 발주 때 30프로, 컨테이너 봉인 때 30프로, 납품 때 40프로라는데, 사장님께서 원하는 조건에 맞춰 다시 조율해 볼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저희도 한번 가야겠는데요? 아무래도 스펙같이 기술적인 얘기를 하려면 저희가 직접 가는 것이 좋겠다 싶네요.”
“좋지요. 제가 길 잘 닦아 둘 테니 같이 가시죠.”
김 사장과 손잡는 것도 좋은 선택 같다. 두 루트로 수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겠군. 그렇다면 김 사장이 얼마를 가져갈지 들어 봐야겠다.
“사장님께서는 수수료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장님께서 절연지와 아몰퍼스메탈 구매하시니까 잘 아실 겁니다. 저희 진짜 얼마 안 붙이고 공급해 드리는 겁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손해 보시는 것은 아니죠?”
“하하. 그럼요. 사장님께서 가져가시는 물량이 워낙 많아서 충분히 먹고삽니다. 변압기 수출은 저희도 처음 시작하는 거고, 사장님께서 저를 믿고 맡기시려고 하니까 기분 좋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몇 프로 받아 갈 생각이냐고! 우리나라 사람들 뜸 들이는 데 이골이 날 지경이네. 보리차나 마시자.
“만족하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말씀드리겠습니다. 맘에 안 드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두 번째 뜸이다. 이 사람, 이거 쪼는 맛 참 좋아하네.
“원화 기준으로 수출 대금의 2.5프로 어떠십니까? 원래 3프로 얘기할까 하다가, 좀 아닌 것 같아서 2.5프로로 했습니다.”
무난하다. 뭐 하는 일이 있다고 2~3퍼센트씩 떼 가냐고 하겠지만, 난 그렇고 그런 중소기업 사장은 아니다.
별 얘기를 안 하니까 김 사장이 맘에 안 드는 줄 알고 살짝 긴장한 표정이다. 사람, 참 의욕적이네.
“사장님, 저희가 포워더도 같이하는 것 아시죠? 포워딩 비용도 당연히 포함입니다. 사장님께서는 변압기 포장해서 컨테이너에 적재만 해 주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운임도 제가 맡겠습니다.”
덤덤한 표정으로 물수건을 들어 손을 닦았다. 포워딩과 운임까지 포함해서 2.5퍼센트만 가져가겠다는 혜자스러운 조건에 악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 자선 사업가인가!
“김 사장님.”
“네, 말씀하시죠. 수수료가 맘에 들지 않으십니까?”
“잘해 봅시다.”
김 사장 손을 힘껏 쥐었다. 악력이 좋군.
오늘 이 자리는 내가 사겠다. 풍성한 말로 대접을 받았는데, 가만있을 수 없다. 몰래 카드를 꺼내 덕준이 허벅지를 찔렀다.
젓가락으로 반찬으로 나온 육회를 가득 집어 먹으려던 덕준이가 놀래 육회를 떨어트리려 한다. 의지의 한국인 한덕준. 기어코 하나도 흘리지 않고 입에 집어넣는군.
허벅지 찔림의 의도를 간파한 덕준이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우리 회사 클 수 있게 잘 도와주세요. 아시겠지만, 저희는 상생이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하지 않습니까?”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얘기가 잘돼서 제가 다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잠깐 실례를 하겠습니다. 보리차가 맛있어서 많이 마셨더니만. 하하.”
덕준이가 눈치껏 카드를 쥐어 밖으로 나갔다. 내가 이래서 이놈을 어여뻐하지 않을 수가 없지.
“사장님 덕분에 중국 수출도 시작할 수 있게 됐으니 저도 감사드립니다. 나중에라도 손해 본다 싶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사업은 서로 재미를 봐야지, 혼자만 재미 보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저희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으니 손해 안 볼 자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 인트라 아시아 컨운임이 바닥을 모르고 내려가고 있어서, 제가 다 부담해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전문 용어 등장에 안타깝게도 바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부끄럽군. 인트라 아시아면 한중일 노선인가? 컨운임은 컨테이너 운임을 얘기하는 것일 테고. 그럼 중국 가는 배 값이 얼마 안 든다는 뜻이겠군.
“식사 다 하셨으면 저희 회사로 가서 차 한잔하면서 마저 얘기하시죠.”
전문 용어 해석하느라 받아칠 타이밍을 놓쳐 화제를 돌렸다. 수출하려면 알아야 할 용어도 많겠네. 부지런히 공부해야겠다.
방에서 나와 신발을 신기 무섭게 김 사장이 카운터로 달려간다. 이미 늦었지만, 그 모습이 좋아 보인다. 혜자스러운 조건을 받고도 밥까지 얻어먹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
“사장님! 아니 왜 그러십니까? 제가 사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건 아니죠.”
“손님 대접을 소홀히 하면 되겠습니까? 실랑이는 계약서 쓰면서 하시죠.”
“아이, 이거 참. 부산 싸나이 가오 안 살게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갑이라고 공손한 모습만 보이던 김 사장이 화를 벌컥 낸다. 카운터 앞에서는 먼저 계산한 사람한테 화를 내도 오히려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이 강호에서 통용되는 도리일 것이다.
회사로 복귀해 김 사장에게 공장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줬다.
변압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침을 튀겨 가며 우리가 가진 설비의 판타스틱함을 설명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김 사장의 놀람과 감탄의 표정에서 연기의 기운이 느껴진다.
“사장님, 공장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다다음주 중국 가서 보여 주면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럼요. 얼마든지 찍으세요. 이따 사무실에서 결제 조건이나 변압기 스펙에 대해서 말씀드릴 테니까 잘 정리해서 협의해 주세요. 저는 사정상 당장 중국을 갈 수가 없어서, 얘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 같이 가겠습니다.”
여권아, 빨리 나와라. 비자가 기다린다.
“네, 알겠습니다. 계약은 창저우트란스퍼랑 협상이 마무리되면 그때 진행하시죠.”
“그러시죠. 사진 다 찍으셨으면 사무실 가서 차 한잔하면서 마저 얘기 나누시죠.”
변압기 강의가 곁들어진 대화가 한참 이어졌다. 중국 진출을 위한 투 트랙 전략이 먹혀 들어가고 있다.
위안화가 황해를 건너 나에게 올 채비를 하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여권일 뿐이다.
김 사장이 부산으로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 드디어! 여권이 나왔다! 10년 동안 해외를 드나들 수 있는 여권!
바로 여행사를 찾아가 중국 비자 발급 대행을 의뢰하고 회사로 복귀했다. 함께 간 덕준이 여권을 보니까 도장이 꽤 찍혀 있었다. 외국물 많이도 먹었군.
“어디를 그렇게 다닌 거냐?”
“가 봐야 중국 아니면 동남아지. 첨엔 엄마 따라 홈쇼핑에서 파는 거 몇 번 갔는데, 이건 뭐 관광인지 쇼핑인지 모르겠더라.”
“쌀수록 쇼핑 엄청 돌린다더만.”
“생각해 봐. 왕복 비행기 값도 안 되는 돈으로 파는데, 어디서 적자를 메우겠어?”
“그래도 호텔에서 재워 주고 밥 주고, 구경할 것은 다 하지 않았어?”
“그만큼 쇼핑을 엄청 돌린다니까. 10년 전에 만리장성 본다고 북경 갔었거든? 4박 5일에 오십 얼마였는데, 쇼핑만 여덟 군데는 간 것 같어.”
“안 사면 되는 거잖아? 그냥 쉰다 생각하고 앉아 있다 오는 거지. 안 그래?”
“처음에는 쇼핑 바가지니까 절대 사면 안 된다고 다짐하지. 근데 뺑뺑이 엄청 돌다가 가게 들어가잖아? 몸이 노골노골해서 안 살 것도 사게 된다니까. 내가 다신 패키지 안 가야지 했는데, 결국 패키지로 여기저기 다니게 되더라고.”
저가 패키지 여행의 폐해를 온몸으로 설명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덕준이를 보는데, 좋았겠다는 생각만 든다. 나도 이제 많이 나가고, 일 잘하는 직원들도 지겨울 정도로 보내 주자.
이제 비자만 나오면 모든 준비는 끝이다. 쥐어짜서 나온 최저가 견적도 산출해 냈고, 카탈로그도 개정판이 나왔다.
때맞춰 에이전트 케이에게 연락이 왔다.
“사장님! 중국 회사랑 미팅이 잡혔는데, 다음 주 수요일에 2박 3일로 가는 거 괜찮죠?”
“물론이지요. 접촉한 회사는 어디입니까?”
“두 군데 다 컨택했어요. 하나는 난징삐엔야치라고, 그냥 우리말로 할게요. 남경변압기라고 나름 장쑤성에서는 이름 좀 있는 회사예요. 여기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데, 혹시 몰라서 진강특수변압기라는 회사도 섭외해 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케줄은 사장님께서 잡아 주시는 거죠?”
“그럼요. 짐만 챙겨서 오세요.”
다행히 은하무역에서 접촉한 변압기 회사와 겹치지 않았다. 3개 회사와 다 거래를 틀 수 있으면 좋겠네.
싸게 파는데 물량이라도 많이 확보해야 하지 않겠나! 중국 놈들만 재미 보게 할 수는 없지.
출장 날짜가 잡혔으니, 중국 원정대를 불러 모았다. 덕준이와 히든카드이자 중국어 능통자 신입.
“유민희 씨, 우리는 무안공항에서 출발하니까 항공권 예약해 주세요. 셋 다 비즈니스석으로요.”
“비즈니스석요? 헤헤. 네, 알겠습니다.”
신입 직원 얼굴에 감추지 못한 미소가 만개했다. 박아름 대리 절친으로 들어온 유민희는 당돌함이 마음에 들어서 보자마자 채용을 결정했다. 면접 자리에서 주눅 들지 않고 싱글벙글 웃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영업 잘할 사람이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입이 해외 출장을 간다는 것도 좋겠지만, 비즈니스석을 타고 간다니, 얼마나 좋겠나? 저 들뜬 표정을 좀 가라앉혀 줘야겠군.
“회사 출장 규정에 항공권은 이코노미석으로 제공한다고 돼 있는데, 질문 없나요? 당연히 출장 규정과 어긋난다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 네. 맞네요. 그래도 사장님이 가시는 거라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미간 잔뜩 찌푸리고 내뱉은 말에 신입에게서 긴장한 냄새가 가득 품긴다. 환한 표정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엄마 화장품으로 장난치다 걸린 아이 표정으로 바뀐다.
“사장도 직원입니다. 규정에 따로 언급이 없으면 모든 직원이 똑같은 조건이에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규정 숙지 잘하겠습니다.”
“변압기 용어는 다 숙지했습니까?”
“네, 부지런히 외우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이어야죠. 외우고 있습니다가 아니라 외웠습니다가 나와야 한단 말입니다.”
“이크. 죄송합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분위기 파악 못한 직원 놀려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멋모르는 신입 당황하게 하는 것은 유구한 전통 아닌가. 덕준이가 또 시작이라는 표정이다.
신입 놀릴 만큼 놀렸으니 일하자. 이런 것이 위력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일 것이다. 한 번이야 재미겠지만, 맛 들려서 계속하다 보면 중독된다. 뭐든 중독은 안 좋은 법이지. 알면서 담배는 왜 못 끊는지 원.
“유민희 씨 장난이에요, 하하.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으니까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네? 히잉. 사장님, 왜 그러세요. 저 진짜 울 뻔했어요.”
“민희 씨, 회사 생활 뭣 같죠? 같이 담배 한 대 피우고 노동청으로 갑시다.”
긴장이 풀려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입에게 덕준이가 쐐기 골을 날린다. 가만있을 놈은 아니지. 더 하다간 울겠다.
“좌석 업그레이드는 제 사비로 하는 거예요. 돈 내란 소리 안 할 테니까 출장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비행기 표 예약하면 김지연 대리한테 결제해 달라고 하고, 추가비용은 제 월급에서 공제하라고 하세요.”
“네에. 이건 진짜죠? 헤헤. 변압기 용어는 오늘까지 다 외울게요. 히잉.”
울상이더니 금세 싱글벙글로 바뀐다. 잘 웃는 직원도 좋고, 절친이라는 박 대리처럼 표정 변화 별로 없는 직원도 좋고, 다 좋다. 회사 분위기에 잘 적응하면서 일만 열심히 해 다오.
회사 더 다녀 보면 알 것이다. 우리 직원들이 만날 이러고 논다는 것을. 간혹 선이 안 지켜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갈구고 장난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아주 맘에 든다. 일할 때만 빡세게 해 주면 됐지.
“자, 회의 시작하죠. 유민희 씨는 회의록 정리 맡아 주세요.”
잠시간의 일탈을 마무리하고 일 분위기로 전환시켰다. 중국 출장도 잡혔겠다, 이제 제대로 해 보자. 지금 회의가 출정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