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39)
139 계산기
대륙 진출을 위한 출정식이 열렸다. 사장실에서 나와 덕준이와 유민희, 세 명의 수출 전사가 대륙을 향한 선전포고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출정식이 시작됐다.
“우리가 방문할 업체가 난징변압기와 전장특수변압기 두 곳입니다. 유민희 씨는 일단 오늘 중으로 두 업체 조사 좀 해 주세요. 제가 구글링 돌려 봤는데, 잘 안 나오네요.”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려고 검색을 돌렸는데,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중국 중소기업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국내 변압기 회사들도 홈페이지는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것들에 불과하지 않은가? B2B 업체들이라 굳이 홈페이지 관리에 돈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아예 홈페이지조차 없는 것을 보니 우리보다 더한 것 같다.
“사장님, 은하무역은 그것대로 하고, 이것도 이대로 할 생각입니까?”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을 초빙한 덕준이는 그쪽에 애착이 가는 모양이다. 그 말을 받아치려는데, 유민희의 웃음소리가 고막을 건드렸다. 왜 웃어?
“유민희 씨, 왜요? 뭐 재밌는 거라도 찾았어요?”
“아니요. 두 분 친구라고 들었는데 서로 존대하는 게 웃겨서요. 저 있다고 그러시는 것 같아서요.”
회의라는 공식 절차이니 당연히 존대해야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유민희 말도 맞다. 나랑 덕준이만 있었으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민희 씨 아주 당돌해. 패기 좋아. 회의면 그렇게 아무 말이나 일단 하고 보는 거지.”
덕준이가 뼈를 담아 한마디를 건네는데, 못 알아먹은 것이 분명하다. 웃음이 예쁜 직원이긴 한데, 뭐든 일단 웃고 보는구나.
“헤헤. 서로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리고 저한테도 말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한참 위신데, 민희 씨 이러는 게 그러잖아요.”
덕준이가 뭐라고 하려는 걸 막았다. 뭐가 됐건 회의나 하자고.
“그래요. 뭐 편하게 하는 게 낫지. 격식 차리자고 회의하는 게 아니니까. 일단 회의나 합시다. 아까 뭐 얘기했었지? 아, 그래. 은하무역. 민희 씨. 그래, 뭐 호칭 별로라니까 그냥 민희라고 할게. 회의할 때는 회의에 집중하자.”
“아, 네. 죄송해요.”
애먼 곳에서 배가 산으로 갈 뻔했네. 하여간 높임말 있는 우리 말 참 골치가 아프다.
“덕준이 네가 한 말대로 서로 조건 비교해서 좋은 쪽으로 선택해도 되겠지만, 이왕이면 다 잡아 보고 싶어. 물량이 감당 안 될 것 같으면 캐파를 더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김 사장 말로는 창저우트란스퍼가 한 달 납품하는 양이 3천 대 정도 한다고 하던데?”
집중이 흐트러져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덕준이도 결국 민희 말대로 편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신입 사원의 당돌함에 동화돼 버렸군. 후훗.
“세 업체가 물량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9천 대. 여기서 난징이랑 전장은 금성전기랑 나눠야 하니까, 넉넉하게 잡으면 6천 대 되겠네?”
“물론 그 물량을 우리가 다 할 리는 없겠지만, 행여나 물량 많아져서 관수 납품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되네. 몇 달 뒤면 대한전력 새 입찰 들어가서 물량 또 많아질 것 아니야?”
대한전력 물량이 한 달 평균 7천 대 정도이다. 수출까지 넉넉하게 뽑아내려면 캐파를 더 늘려야 한다.
캐파를 월 1만 대로 늘리기로 하면서 수출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운을 띄워 놓긴 했다. 당연히 힘들겠지만, 월 1만 5천 대까지도 늘릴 준비는 돼 있다.
나는 다다익선이라고 본다. 우리 회사야 많이 만들수록 이익이 커지니 말이다.
그러나 덕준이 생각은 다르다. 들쑥날쑥한 관수 발주를 경험했기에, 수출을 또 다른 메인이 아닌 보조적인 역할로 생각하는 듯하다.
관수와 수출이라는 두 마리 말이 이끄는 회사라는 내 그림이 별로야?
“그 말도 맞는데, 수출 단가 생각하면 물량을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어. 관수야 비수기 때 재고로 미리 만들어 두는 식으로 대응해야지. 월 기준으로 관수 7천 대, 수출 5천 대 이렇게 가면 딱 좋겠네.”
“아이고, 살살 하자고. 회사도 천천히 키워야지, 너무 빨리 성장하면 성장통이 큰 법입니다요.”
“이왕 하기로 한 것 초반에 확 밀어붙여야 나중이 편해질 텐데? 위험 부담이 있지만, 달릴 때 달려 주는 것이 좋지 않겠어?”
“우리 사장님, 또 승부사 기질 나왔네. 우리 회사가 너무 순탄해서 그렇지, 위험은 항상 가득한 법이지. 가끔씩은 돌다리도 두들겨 봅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사업을 정말 쉽게 하고 있다.
창업 2년 만에 연 매출 천억을 바라보는 회사로 키우는 동안 큰 문제가 없었다. 일반적이라면 직원 300명 정도로 꾸려 가면서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졌어야 하는데 말이다.
직원 열 명도 안 되는 소기업도 파벌이니, 라인이니 하면서 중상모략이 횡행하는데, 우리 회사는 아직까지 조용히 잘 가고 있다.
직원 130명으로도 충분하게 만들어 준 문자님과 직원들이 허튼짓 못하게 한 공장장 덕이다. 중간 관리자 역할을 120퍼센트 해낸 덕준이 덕이기도 하고, 보육원 출신들 잘 다독거리는 홍철이 덕이기도 하다.
이들을 믿고 난 좀 달려 보자.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지는 않아. 나도 돌다리 충분히 두들기니까, 이번 수출도 화끈하게 해 보자고. 한 부장아, 넌 잘 알잖아? 내심 불안해 보여도 나 믿고 따라오니까 결과가 확실하잖아?”
“에라, 모르겠다. 그래, 좋다. 중국 가서 갈고리로 싹싹 긁어 옵시다!”
출정식이 한참이 이어졌다. 김진욱 부장이 뽑아 온 견적서를 토대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고, 시나리오에 맞춰 계산기를 두들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확실한 것은 어떻게든 수출이 성사된다는 것이다. 문자님이 암시해 주셨으니까!
워낙 시크하신 분이라 구체적인 정보 따위는 알려 주지 않지만, 되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계산기 두들기며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이 내 일이겠지.
“아무리 협상을 개판 쳐도 10프로 이상은 충분히 나올 것 같은데?”
“그렇지? 협상 잘하면 25프로까지도 가능할 것 같어. 진짜 우리 회사 원가 쩌네. 이 정도면 캐파 걱정만 하면 되겠어. 이거 뭐 돌다리 두들길 필요도 없네.”
우리가 인심 쓰듯 단가를 후려쳐도 충분히 남는다는 계산이 나오자, 덕준이가 신중함 따위를 벗어던져 버렸다. 문자님이 보우하시니, 우리는 달리기만 부지런히 하면 된다니깐.
김진욱 부장이 설계를 아주 알뜰살뜰 쥐어짰다. 예상보다 5퍼센트 정도 더 낮게 최저가 견적을 뽑아냈으니, 계산기 두들기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빠듯하게 설계 빼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답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대한전력 변압기였으면 이 정도까지 안 내려갔을 텐데, 확실히 중국 규격이 널널하긴 하네.”
“사장님, 이쯤 했으면 충분하니까, 이제 금성전기 가서 서로 조율하시지?”
“그래, 여기서 더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겠다야.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슬슬 걸어갔다 오자고. 민희야 너는 자료 조사 알지?”
금성전기 갈 채비를 하려는데, 신입이 우렁찬 목소리로 갈 길을 막아선다. 아까 겁먹긴 했어도 씩씩한 것은 아주 맘에 드네.
“사장님! 방금 대충 검색해 봤는데, 말씀하신 업체 둘 다 홈페이지가 없어요. 진강특수변압기면 전장트어슈비엔야치일 텐데, 영어로 해도 안 나오고 간체자로 해도 안 나오네요.”
“취급 품목을 알아 두면 좋긴 한데, 아쉽네. 회사 규모나 매출 정도라도 조사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근데요, 사장님. 저는 출장 가서 뭘 해야 합니까?”
해외 영업 담당이라고 뽑아 놨지만, 변압기에 대해 잘 모르는 문과생 데리고 가 봐야 딱히 할 일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할 일도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눈치만 보며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걸 깨달았으니 물어봤겠지?
“가서 얘기 잘 듣고, 맛있는 것 먹고, 시간 남으면 놀고. 그렇게 하면 돼.”
“네?”
“말 그대로. 따로 시킬 일 없으니까 귀만 쫑긋 세우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야. 오케이?”
우리에게도 옵서버가 있어야 한다. 통역이야 에이전트 케이가 맡는다고 하지만, 대화에 담긴 뉘앙스까지 알려면 나에게도 귀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에이전트 케이에게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없다는 것도 고려했다. 맘먹고 장난치면 당할 수밖에 없으니,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중국어 능통자인 우리 신입이 그 역할을 해 주면 된다.
“오케이! 혹시나 통역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임무를 잘 파악하는 신입. 눈치 빠른 직원은 이래서 좋다.
“한 부장아, 우린 갑시다.”
금성전기랑 손잡고 시작하는 수출이니, 중국 업체에 제시할 견적을 맞춰야 한다. 어떤 시나리오든 우리는 남는다. 금성전기랑 보조만 잘 맞추면 된다.
“덕준아. 너 또 박 사장 앞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놀이 할 거냐?”
“글쎄. 인사 정도는 해야지?”
“이 자식. 그럴 거면 뭐 하러 따라오냐?”
“연예인 구경 좀 할라고. 후후. 이상하게 말이 안 나오더라고. 나랑 완전 상극인가 봐.”
“그래, 연예인 구경이나 실컷 해라.”
변압기 업계 연예인이 환하게 우릴 맞이해 준다.
누가 봐도 갓 지은 티가 확 나는 사무실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남자만 득실거리는 이 업계에서 이런 세심함이 부럽다. 10분마다 향 뿌려 주는 칙칙이라도 달아야겠구만.
“어서 오세요. 가까우니까 이렇게 자주 보네요.”
“걸어서 5분 거리라 이웃사촌이 따로 없네요. 하하.”
“이번 출장 때 한 부장님도 가시나요?”
박 사장이 덕준이에게 말을 건다. 말할 줄 아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일지도.
“네.”
덕준이가 한 글자로 답변을 끝냈다. 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놈.
“우리 회사 영업부장이니 해외 물도 먹어야죠. 우리 한 부장이 과묵해도 능력은 아주 출중합니다.”
“저희 김 부장님한테 듣기론 달변가라고 하시던데, 과묵하다니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네요.”
누나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 맞습니다. 누나 때문에 과묵해진 것이니 더 이상 캐묻지 마세요.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해외 영업 담당으로 한 명 뽑았는데, 그 직원도 데려갑니다.”
“전 혼자 가는데, 역시 큰 회사라 달라도 다르네요.”
“금성전기야 수출 베테랑이고, 저희는 처음 아닙니까? 직원 교육 차원에서 동행합니다. 여자 직원이니까 사장님께서 잘 챙겨 주세요.”
서론 적당히 주고받으며 분위기 달구고 나서 본론에 들어갔다. 선빵 날리는 것을 좋아하는 박 사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50키로 기준으로 얘기하면, 아무리 쥐어짜도 최저가가 75만 원이에요. 그 밑으로 가면 저희는 힘들어요. 삼상이야 넉넉하게 나오는데, 주상은 단가 낮추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75만 원이 마진까지 붙인 금액이죠?”
박 사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손사래를 친다. 세상에, 저런 표정을.
아무리 경국지색이라도 자꾸 보면 질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박 사장은 그렇지 않다. 표정이 풍부해서 그런가? 덕준이가 왜 연예인 보듯 하는지 체감하겠다.
“자재비랑 인건비에 잡비 5프로 붙인 게 딱 그거예요. 잘하면 뭐 일이만 원이라도 남을 것 같긴 한데, 솔직히 남긴다는 생각을 하긴 힘드네요.”
“남는 것도 없는데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주상이야 서비스 개념으로 들어가고, 삼상에서 뽑을 생각이에요. 우리 회사가 잘하는 쪽에서 승부를 봐야죠. 잡비로 5프로 붙였으니까, 주상도 손해 보는 것은 아니에요. 그 정도면 만족합니다.”
“그럼 주상은 50키로 기준으로 75만 원에서 80만 원 사이에서 잡으면 되겠네요.”
김진욱 부장이 쥐어짠 설계로 계산한 적정 견적가가 65만 원이다. 러프하게 잡은 것이 그 정도이니, 물량 뽑아내기 시작하면 더 떨어질 것이다.
가격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던 중국 수출이 알고 보니 한 대 팔 때마다 십수만 원씩은 거뜬히 남는 벌꿀집이었다. 우리에게만 벌꿀집이고, 이 바닥에서 날고긴다는 금성전기에게는 여전히 말벌집이다.
역시 자동권선기가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 회사의 경쟁력을 따라잡기는 힘들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금성전기조차 이러니 다른 데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회사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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