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37)
137 창저우트란스퍼
이른 시간에 찾아간 육회집은 한산했다. 곧 점심시간이라 한산한 이 집도 도떼기시장으로 바뀔 것이다. 문전성시 맛집이 바로 이곳이다.
묘한 것이 이 집에 올 때마다 허름하긴 해도 대화하기 좋은 방을 항상 차지한다는 것이다. 사람 많아서 테이블에서 먹었더라면, 수어로 대화를 나눠야 했을 것이다.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과 덕준이. 셋이 음식을 기다리며 설렌 마음을 양껏 드러냈다. 이 집 맛을 아는 나와 덕준이는 이미 넘쳐 나는 침을 주체 못하고 있다.
“제가 나주 내려온 지 2년이 됐는데, 이만한 집을 못 봤습니다. 명불허전이니 제대로 즐기시죠.”
“그렇습니까? 그럼 뭐 등심으로 할까요?”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고,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다고 하지만, 선뜻 등심을 얘기하는 김 사장의 마음씨가 고맙군. 하지만 오늘은 육회비빔밥이다.
“등심은 다음에 둘 다 잘되면 먹기로 하고, 오늘은 육회비빔밥으로 하시죠? 맛보시면 못 잊으실 겁니다.”
“하하. 사장님이 추천하시는데 육회비빔밥으로 해야죠. 반주도 하실랍니까?”
“다음에 1박 하실 생각으로 오시죠. 제가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아주 적극적이라는 덕준이의 평이 생각났다. 기저에는 돈을 벌겠다는 욕망이 깔려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일을 키워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일욕심이 있어 보이는 것이 맘에 든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잠깐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약방의 감초 같은 덕준이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대화를 이끈다.
“김 사장님, 중국에 변압기 수출하는 것이 승산이 있어 보이십니까?”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일 테니 대답은 빤하겠지만, 그래도 뭐라고 답할지 기대된다. 김 사장이 도자기 컵에 담긴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신다. 꿀꺽.
시원한 보리차로 입가심을 마친 김 사장이 입을 열었다.
“저야 프라임일렉트릭이랑 같이하는 건 뭐든 다 좋습니다. 저번에 부장님께서 수출 얘기하셨잖습니까?”
“네. 사장님께서 중국통이시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연락드렸죠.”
“연락 주신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저번 주에 부장님 전화 받고 나서 중국 출장길에 바로 난퉁전기에 가서 미팅을 진행했죠.”
“추진력이 아주 대단하십니다.”
덕준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덕준이 말 한마디에 바로 중국 업체를 찔러 보러 갔다니, 그 추진력이 나를 즐겁게 한다. 우리와 같이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열의가 느껴진다.
“별말씀을요. 그저 중국 간 김에 얘기 꺼낸 거죠 뭐. 하하.”
“그래서 난퉁전기 갔더니 뭔가 나왔습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창저우트란스퍼라는 변압기 회사에서 오퍼 비슷하게 왔나 보더라구요.”
“트란스퍼요? 트랜스퍼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트랜스퍼라고 부르니까 굳이 트란스퍼라고 고쳐 주더라구요. 중국 사람들이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트란스퍼라니 그렇게 불러 줘야죠.”
“우리가 예전에 도란스라고 부르는 식이네요?”
육회비빔밥 야무지게 비벼서 한 입 넣었다가, 덕준이의 도란스 발언에 밥알 몇 개가 튀어나올 뻔했다. 도란스, 진짜 오랜만에 들어 보네.
김 사장이 전하는 말이 흥미진진하다. 트랜스퍼건 트란스퍼건 뭐가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겠지?
얘기는 덕준이와 김 사장 둘이 하라고 하고, 난 얼마나 좋은 소식이 될지 지켜보자고. 이 집 육회비빔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단 말이야.
“근데 변압기회사가 왜 난퉁전기에 연락을 합니까?”
“난퉁전기가 변압기 자재를 취급하니까, 변압기 회사들과 거래가 많죠. 창저우트란스퍼 사장이 난퉁전기 사장하고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괜찮은 업체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물량이 달려서 하청업체를 찾는 것 같은데, 난퉁전기랑 친분이 있어서 알아봐 달라고 한 모양입니다. 제가 운 좋게 때맞춰 간 것이죠.”
“난퉁전기가 사장님께 그 얘기를 했다는 건 조건만 맞으면 창저우트란스퍼랑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이네요?”
김 사장 눈이 이글거리는 것이 맡기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을 준다. 패기의 김 사장이냐 관록의 에이전트 케이냐. 선택지가 복수라 좋군.
“맞습니다. 제가 그래서 바로 창저우로 가지 않았겠습니까?”
“아휴,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거리가 꽤 될 텐데요?”
묵묵히 듣고만 있으려 했는데, 대화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사장이 저리 적극적으로 달려드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아닙니다. 고속철도로 2시간밖에 안 걸립니다. 중국에서 그 정도 거리는 동네 마실 나가는 정도입니다. 하하.”
“변압기는 취급 품목이 아니라 힘드셨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모르면 공부해야죠. 절연지만 팔면 사업이 되겠습니까? 사장님 덕분에 아몰퍼스메탈도 거래해 보니까 사업을 키워 보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아닙니까?”
패기로 밀어붙이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많지만, 패기와 그 경험 자체는 높이 산다. 도전하지 않고 어찌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겠나!
“창저우트란스퍼 가셔서 얘기를 해 보셨습니까?”
“듣기로는 매출 800억 원 정도 되는 회사라고 하던데, 직접 가 보니까 공장만 크게 지어 놓고 설비니 사람이니 형편없더라구요.”
“공장만 차려 놓고 변압기는 하청으로 받는 곳이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회사가 있긴 하지만, 걸리면 아작 난다. 직접생산 확인과 대한전력 실사로 하청을 엄격하게 막아 놨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음알음 외주로 돌려 마진 장사하는 곳도 꽤 있다. 중국도 다를 바가 없나 보다.
“난퉁전기 얘기 들어 보니까 그런 회사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중앙 정부랑 지방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먹고사는 회사죠. 변압기 받아서 돈 붙여 납품하면 그것도 꽤 남는 장사이고 말이죠.”
“보조금요? 중국은 기업에 돈도 줍니까?”
“말도 마십시오. 돈이 얼마나 많은지 온갖 명목으로 돈 펑펑 쏴 줍니다. 우리나라가 그랬으면 바로 WTO 제소감이죠.”
“사장님 그런데요, 저희가 하청 받아 만드는 회사와 가격 경쟁이 되겠습니까?”
마이크를 나에게 넘기고 육회비빔밥을 정신없이 밀어 넣던 덕준이가 핵심을 찔렀다. 밥만 먹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잘 듣고 있었군.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거래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둘 다 손해가 없다는 계산이 서야 가능한 것 아니겠나?
“중국이 예전에야 저임금으로 재미 봤지, 지금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건비가 많이 올랐어요. 농민공이야 여전하지만, 숙련공들은 돈 꽤 받습니다. 그래서 창저우트란스퍼도 고민이 많은 것이죠.”
“그러니까 전까지는 싸게 사서 재미를 봤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지금도 싸게 살 수 있는데, 품질이 워낙 떨어져서 사후 관리에 돈이 더 들어간다고 하더라구요. 아몰퍼스변압기 같은 것은 물건 받기가 힘들다 하고요.”
“아몰퍼스변압기가 소음 잡기가 쉽지는 않죠.”
우리와 중국의 기술 격차가 확 느껴진다. 중국이 전 세계 공장으로 우뚝 섰다고 한들, 아직 기술력으로는 우리나라와 격차가 분명히 있다.
우리 회사는 고효율 아몰퍼스변압기 개발까지 끝냈는데, 중국은 일반 아몰퍼스변압기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가 가서 파란을 일으켜 주고 싶구만.
“창저우트란스퍼 사장이랑 얘기를 하는데, 좀 다급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급하다니요?”
“회사 키우겠다고 납품 계약을 따냈는데, 변압기 수급이 쉽지 않아서 고생 좀 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요새 중국전력청이 불량 변압기 솎아 낸다고 검사를 엄하게 한다던데,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난퉁전기 통해서 차차 구체적인 얘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도 모르는 대로 얘기하는 모습에 신뢰가 생긴다. 이 사람, 우리랑 어떻게든 함께해 보려고 노력하는구나 싶다. 이런 사람은 적극 도와줘야 한다.
“계속 말씀을 드리면, 그래서 미팅을 해 보니까 가격을 높이더라도 우리나라 변압기를 수입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하더군요. 수입하면 단가가 좀 올라가겠지만, 어차피 보조금이 엄청나서 그걸로 먹고살면 되니까요.”
“이거 알아서 준비 많이 하셨네요? 하하.”
우리 회사와 수출 사업 해 보겠다고 중국을 헤집고 다닌 열정이 대단하다. 저 정도 열정이면 경험이 미숙해도 함께할 이유가 충분하다.
“아닙니다. 이 정도도 안 하고 뭐 하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나저나 육회비빔밥 아주 좋네요. 부산에서 이 정도로 먹으려면 만5천 원은 거뜬히 줘야 하는데, 역시 전라도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많이 잡숴. 지금까지 들은 얘기만으로도 밥값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까.
아직 이야기보따리 다 안 푼 것 같으니, 많이 먹고 술술 풀어 보시게. 김 사장이 밥 사겠다고 했지만, 나주까지 온 손님한테 어찌 밥을 얻어먹겠나? 내가 혁신산단의 터줏대감인데!
“나주 자주 놀러 오세요. 제가 맛집 많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거 기대되네요. 하하.”
대화가 루즈해진다 싶으니 덕준이가 어김없이 치고 들어온다.
“창저우트란스퍼랑 미팅하실 때 단가 얘기도 하셨습니까?”
“그럼요. 가장 중요한 것이 가격인데, 당연히 얘기해야죠. 근데 제가 변압기를 잘 몰라서 괜찮은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판단이야 변압기 만드는 저희가 하니까 염려 말고 말씀해 보시죠.”
김 사장이 진하게 소주 한 잔 마셔야 할 타이밍인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는 표정으로 보리차를 들이켜고 나서 입을 열었다.
“주상은 키로당 85위안, 삼상은 60위안을 얘기하길래, 뭣도 모르고 일단 가격 높이고 보자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더니, 키로당 5위안씩 더 얘기하더군요. 그 이상은 절대 안 된다고는 하는데, 제 경험상 충분히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키로라는 단위가 무게 재는 킬로그램은 아니죠?”
덕준이의 헛소리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이 자식, 오늘 여러 가지로 웃게 만드네.
킬로그램이면 당장 달려가서 계약 체결한다. 어떤 미친놈이 변압기를 킬로그램으로 가격을 매기냐! 50kVA 변압기 중량이 300Kg 정도니까, kg당 90위안이면 말도 안 되는 미친 가격이잖아!
“단위 잘못 알면 큰일 나죠. 그래서 키로가 정확하게 무슨 단위냐고 물어보니까 킬로볼트암페어라고 하네요. 우리가 쓰는 것과 같죠?”
변압 용량은 kVA라는 단위를 쓴다. 편의상 키로라고 부르는데, 이와 관련된 슬픈 일화가 있다.
IMF로 온 나라가 신음하고 있을 때 수출 기업들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한 변압기 회사도 수출로 재미 좀 보려고 필리핀 업체 하나를 물었는데, 상대방이 단가를 말도 안 되게 후려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구제 금융 받는다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이었겠지.
알고 보니 필리핀 업체가 제시한 조건이 kVA가 아니라 kg였다는 것을 알고 땅을 치고 후회했었다고 한다. 그때 환율이었으면 떼돈을 벌었을 텐데 말이다.
호사가들 입을 거쳐 많이 과장됐을 것이다. 그래도 믿기 힘든 얘기가 현실일 정도로 이 바닥은 회사 같지 않은 회사가 많았다.
김 사장이 들고 온 조건이면 주상 50kVA가 77만 원이니까, 에이전트 케이가 얘기한 80만 원 언더와 큰 차이가 없다. 김 사장이 단가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으니, 더 나은 조건일 수도 있다. 좋군.
“그 가격이면 일단접지, 그러니까 주상은 좀 빠듯하고, 삼상은 괜찮은 조건이네요.”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가격이 좋다는 평가에 김 사장이 평온한 표정을 보인다. 가격 조건만 맞으면 5부 능선은 넘은 셈이니, 기대감이 부풀었을 것이다.
“사장님, 제가 2주 뒤에 또 중국을 가니까, 그때 다시 한 번 얘기하면서 조건을 높여 보겠습니다. 술 한번 제대로 사면 되죠 뭐. 하하.”
“가격이야 많이 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사장님만 믿겠습니다.”
이쯤에서 서로 협정서 교환하면서 정면 카메라 바라보며 악수 나눌 법도 하다. 아직 중국 땅에 발도 안 디뎠는데, 수출 계약이 성사된 기분이다.
문자님의 암시가 누구와 거래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앉은 김 사장과 함께하면 뭔가 잘될 것 같다.
덕준이 이 자식, 괜찮은 사람을 데려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