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46)
146 해골 물
변압기의 첫 중국 수출. 그것이 성사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수수료로 2퍼센트를 가져가는 에이전트 케이도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얼마든지 만들어 낼 테니까 발주만 많이 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하하.”
박준희 사장도 감격에 겨운 표정이다. 동남아 변압기 시장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수출을 성사시켰으니 말이다.
중국에 수출하는 업체라는 소문이 나면 동남아 시장에서도 수출 길이 탄탄대로 아니겠는가? 그 감격 그대로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왕 종징리에게 건넸다. 비싼 담배 선물에 왕 종도 감격에 겨웠군.
“김 사장님, 제가 오늘 점심 살게요.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으로 안내해 주세요.”
한턱내겠다는 박 사장. 역시 밥 잘 사 주는 누나답다. 1초만 늦게 얘기했어도 내가 사겠다고 했을 것이다.
박 사장 말을 전달받은 왕 종이 시끄럽게 소리치며 방방 뛴다. 중국도 누가 밥 사느냐를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양이다.
“미스터 왕이 사겠다고 하네요. 호호. 손님인데 어찌 그럴 수 있냐면서요.”
“하하. 누가 사든 일단 가시죠.”
에이전트 케이가 이끄는 대로 기분 좋게 달려간 식당. 중국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누가 보면 호텔인 줄 알겠다.
특이한 것은 왕 종 운전기사도 아무렇지 않게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어제 한식당에서도 그러길래 좋아 보이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해서 물어보니, 문화가 그렇다더라. 그래서 운전기사가 의외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더라. 좋은 문화 같긴 한데, 불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뭐 먹자고 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양껏 먹고 가자.
가이드를 담당하는 에이전트 케이가 이 집을 소개한다.
“난징에 유명한 곳이 많은데, 여긴 해산물을 아주 잘해요. 이 지역이 해산물로 유명하긴 한데, 그중에서도 잘하는 집으로 섭외했습니다. 중국에 왔으니 제대로 된 중국 요리 맛봐야죠.”
어느 중국 식당에나 있을 것 같은 돌아가는 원형 탁자. 우리나라도 이걸 널리 보급했으면 좋겠다. 팔 뻗기 애매한 곳에 위치한 음식들은 맛도 못 보고 넘기는 안타까운 상황은 없어야 한다.
요리가 쉴 새 없이 나온다. 맛없어 보이는데 먹으면 괜찮다. 맛있는 음식을 맛없어 보이게 플레이팅하는 것도 능력이랄까?
“김 사장님, 이 괴기스러운 것은 뭔가요?”
“호호. 그게 오리 혓바닥이에요. 나름 고급 요리로 통해요.”
아휴, 씁. 좀 특이한 꼴뚜기인 줄 알았는데, 오리 혓바닥이 웬 말이냐.
해산물 맛집이라더니 오리도 해산물인가!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다더니 온갖 것을 다 먹네. 어라? 유민희가 겁도 없이 날름 집어서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용감한 녀석!
“하하. 지 사장님, 혹시 겁나서 못 드시는 거예요? 고급 요리라니까요. 겁먹지 말고 먹어 봐요.”
에이전트 케이의 재촉에 용기 내어 입에 집어넣는데, 반건조 오징어 먹는 것 같은 식감에 나름 먹을 만하다.
그런데 너무 괴기스럽다. 이게 원효대사 해골 물 같은 거다. 모르고 마시면 무안 단물이지. 그래도 해골 물인 것을 안 이상 더 먹지는 못하겠다. 유민희 너 많이 먹어라.
요리가 계속 나온다. 실로 돌돌 묶인 게찜이 나왔다. 1인당 한 마리씩인가?
음식 나올 때마다 나와 박 사장 시선이 에이전트 케이로 향한다. 모르고 먹는 것이 가장 좋지만,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게 이 지역 명물이에요. 양징후따자씨에라고 민물 게인데, 제철이 아니라서 좀 아쉽긴 하네요. 지금은 좀 싸지긴 했는데 10년 전만 해도 마리당 10만 원씩 했어요. 담백하다고 할까? 암튼 먹어 봐요. 후회 안 할 거예요.”
꽃게나 대게에서 맛볼 수 있는 짭조름한 부드러움은 아니다. 묘하게 맛있네. 제철에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니, 그 맛이 궁금하다. 그나저나 많이 좀 주지, 감질나게시리.
배가 좀 찼다 싶을 때 박 사장이 민수변압기 발주를 거론하고 나섰다.
“난징변압기가 관수 위주라고 하는데, 민수변압기도 발주 내 주시는 거죠?”
“말씀 잘하셨어요. 미스터 왕이 민수로도 사업을 넓히고 싶어 해요. 지금 당장은 많이 나오지 않겠지만, 앞으로 늘어날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물어볼게요.”
관수로 나가는 주상변압기보다 민수로 나가는 삼상변압기가 많이 남는 금성전기의 사정을 에이전트 케이가 잘 다독거려 준다.
“미스터 왕이 6천까지도 만들어 봤다고 하더라고요. 한 대 만들면 아주 짭짤해서 앞으로 많이 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그런데요? 왜 뭐 걸리는 게 있어요?”
“용량이 클수록 많이 남는데, 수입은 안 될 거라고 하네요. 컨테이너에 안 들어갈 거라고요.”
“아…… 그러네요.”
박 사장이 그걸 생각 못했다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도 아쉬워질 지경이다.
컨테이너가 아닌 그냥 변압기째로 내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치솟는 운송비 빼고 나면 남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덕준이가 미팅할 때 보던 자료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외형 치수를 확인하려는 것이겠지?
“저기, 난징변압기에서 제작 가능하다는 용량들 방금 봤는데, 3천 키로까지는 될 것 같은데요? 4천은 애매하긴 한데, 설계만 슬림하게 만들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싶네요.”
“아, 그래요? 그걸 또 그새 확인해 주셨네요. 고마워요.”
덕준이의 센스에 박 사장이 다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걸 받아들이는 덕준이의 표정이 아, 말로 설명을 못하겠다.
“제가 방금 미스터 왕한테 얘기했는데, 그러면 3천 키로까지라도 자주 발주할 테니까 잘만 만들어 달라고 해요. 그만큼 단가가 맘에 들었다는 뜻이에요.”
“아휴, 감사합니다. 이거 술 한 잔 드려야 할 타이밍 같은데, 대낮이라 아쉽네요.”
첫술에 배부를 생각 없다던 박 사장. 그래도 욕심이 안 날 수 없을 것이다. 고생해서 변압기 만들어 파는데 수익이 안 나면 재미없지. 역시 박 사장도 인간계였다.
뭐가 됐든 일이 잘 풀려서 좋다.
나는 주상으로도 충분히 뽑을 수 있으니 계약만 성사되면 오케이였지만, 내심 박 사장이 걸리긴 했다. 같이하는데 금성전기만 재미 못 보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왕 종이 삼상변압기도 자주 발주하겠다고 하니, 이제 모두가 다 웃을 수 있다.
이제 밥 먹는 데 집중하자. 오리 혓바닥까지 먹었는데 뭐든 못 먹으랴.
민희가 돌림판을 돌려 닭도리탕같이 생긴 음식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사장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아주 맛있어요.”
이건 누가 봐도 닭이네. 역시 맛도 딱 닭고기다. 맛있네. 중국 식문화도 의외로 우리나라랑 비슷한 데가 많다니깐.
맛있다고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에이전트 케이가 재료의 정체를 밝히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사장님은 어렸을 때 개구리 많이 드셨나 봐? 잘 드시네요. 닭고기랑 비슷하죠? 뭐든 맛있게 요리하면 다 먹을 만해요.”
확인 사살. 머릿속에 개구리가 연상되니 못 먹겠다. 양서류가 언제부터 해산물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 미끌미끌한 피부.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오늘 해골 물 많이 마시네.
“진짜 중국은 안 먹는 것이 없네요?”
“네, 중국 사람들은 정말 다 먹어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데, 중국 따라가려면 멀었죠. 광둥 지방 가면 바퀴벌레도 튀겨 먹어요. 호호.”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고역이라고 하던데, 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식 재료가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배는 부른데 기분은 영 찝찝하다.
“지 사장님. 음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
“아닙니다. 아주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저 많이 먹었어요.”
“다행이네요. 중국 처음 오셨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거든요.”
내 먹거리까지 걱정해 주는 에이전트 케이가 고맙다. 다음에는 먹을 만한 재료로 맛있게 요리하는 집으로 갑시다.
“근데 미스터 왕이 지 사장님 인상이 아주 좋다고 그러네요. 돈 잘 벌 관상이래요. 호호. 그런 관상이 따로 있나 봐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 돈 잘 벌게 많이 도와 달라고 전해 주세요.”
내 말을 전달받은 왕 종이 호탕하게 웃으며 하오하오를 외친다.
“회사 잘 키워서 발주 많이 하겠답니다. 변압기 문제 안 생기게 아주 잘 만들어 달라네요. 그리고 저기 한 부장님이랑 언제든 놀러 오랍니다. 어제 같이 술 못 마셔서 아쉽다고. 그러게 어제 같이 한잔하시지 그랬어요.”
“아, 네. 시간 나는 대로 종종 찾아오겠다고 전해 주세요. 김 사장님도 저 가이드 해 주신다는 약속 잊으시면 안 됩니다.”
“호호. 아휴, 그럼요. 언제든 찾아오세요.”
여러 덕담이 오고 가며 화려한 오찬이 마무리됐다. 나오는 요리들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양서류 생각에 잠시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먹기는 잘 먹었다.
서로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실랑이가 있었다. 그만큼 계약 당사자 모두가 만족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첫 수출 계약이 잘 성사됐으니, 이제 다음 계약을 위해 움직여 봅시다.
“제가 미스터 왕이랑 계속 연락하면서 그때그때 전해 드릴 테니까, 오늘은 이만 작별하고 다음 일정 소화하러 가죠.”
에이전트 케이의 일갈에 왕 종과 진한 악수를 나누고 서둘러 차에 탑승했다. 빡빡한 일정에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전장특수변압기로 향하는데, 박 사장이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말을 걸었다.
“정수 씨, 기분 어때요?”
“물어보나 마나 아닙니까? 하하. 마진이 조금 아쉽긴 해도 수출 물꼬를 텄으니 기분이 좋지요. 다음 업체랑도 얘기가 잘됐으면 좋겠네요.”
“저는 솔직히 어제까지 조금 걱정했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비웃을지 모르겠는데, 둘 다 잘돼서 주문이 너무 많아지면 어쩌나 말이에요.”
박 사장, 이 사람 아주 김칫국물을 항아리째로 들이켰구만? 소개팅하자마자 신혼집 걱정하는 꼴일세.
“주문 많으면 많이 만들면 되죠.”
“비웃은 것 맞죠? 정수 씨네 회사야 쭉쭉 만들 수 있어도 우리 회사는 그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걱정 안 되세요?”
“정수 씨가 어제 자동권선기 5대 팔겠다고 했잖아요. 총 10대면 한 달에 5천 대 넘게 나오니까 한숨 돌렸죠. 자재야 정수 씨가 책임지고 공급해 줄 것이고.”
“하하. 저한테 큰 신세 지신 겁니다. 차차 보답하세요.”
1년 반 동안 신 나게 부려 먹은 자동권선기를 팔고도 이리 대접을 받다니. 박 사장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군. 가격 좀 깎아 주지 뭐.
박 사장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점심 때 경험한 요리 냄새와 향수 냄새가 섞여 코로 들어온다.
“정수 씨, 고마워요.”
귓속말에 귀가 따뜻해졌다. 차 안이라 남들이 들을까 봐 부끄러웠던 것일까? 그것도 그거지만, 건넨 말에 평소보다 공기가 많이 함유된 것 같다. 아휴, 닭살 돋아.
“전장특수변압기 가서도 미팅 잘해서 물량 화끈하게 받아 옵시다.”
“제아무리 자동권선기라도 너무 많이 받아 오면 힘들어요. 정수 씨가 우리 물량도 대신 해 줘야 할 수 있단 말이에요. 하하.”
나도 김칫국물 좀 마셔 보자. 난징변압기에서 받아 온 물량이 월 3천 대 수준이다. 이제 곧 도착할 전장특수변압기는 규모가 좀 작으니까 월 1~2천 대 정도는 될 것이다.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물어 온 창저우트란스퍼도 그 정도는 되겠지? 그럼 넉넉잡아 월 8천 대.
관수 물량보다 더 많아질 수 있겠다. 배가 터질 수도 있겠네. 그래도 한 달에 15억 원가량 떨어진다. 박 사장처럼 항아리 들고 김칫국물 드링킹하는 것이지만, 기분이 몹시 좋구만.
“무슨 생각 하시길래 그렇게 실실 웃고 있어요?”
“하하. 수출 역군 되는 게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싱겁기는.”
박 사장이 타박하지만, 본인도 얼굴에 미소가 만연해 있다.
다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사업가에게는 회사가 커지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으니까. 이 기분이라면 해골 물도 마음껏 들이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