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48)
148 전몰장병
중국 본토 미세먼지가 더없이 상쾌하다. 폐가 말끔히 정화되는 느낌이다. 문자님, 감사합니다.
“출장 와서도 전화는 여전하네. 로밍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야. 그치?”
다행히 덕준이가 눈치를 못 챘다. 지금까지 쩐주라는 미지의 인물로 잘 포장해 놨지만, 지금 상황은 누가 봐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걸렸으면 엄청 추궁했겠지. 어휴.
“다 피웠으면 들어가자. 오늘 어떻게든 계약 마무리 짓고 내일 기분 좋게 귀국하자.”
회의실에 들어가니 쳔 종과 에이전트 케이는 여전히 자리를 비운 상태다. 박준희 사장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담배 피우니까 마음이 좀 편해져요? 참, 제가 준 담배는 어땠어요?”
“비싼 담배라 그런지 좋더라고요. 하하.”
문자님의 가호가 있고 나자 여유가 생겼다. 이번 건 무조건 성사된다는 확답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박 사장님. 제가 오늘 무조건 계약 성사시키겠습니다.”
“뭐 뾰족한 수라도 있어요?”
“일단 믿고 지켜보세요.”
잠시 후 두 사람이 돌아왔다. 둘이 뭐 쎄쎄쎄 한 것도 아닐 테고, 오래도 얘기했네.
“오래 기다렸죠? 아휴, 제가 희생하기로 했어요.”
에이전트 케이가 난데없이 희생을 운운한다. 꽌시의 힘을 발휘한 것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리베이트 2.5프로로 하기로 했어요. 이것까지만 양해해 주세요. 대신 제가 받는 수수료 조금 떼어 주기로 했어요. 제가 계약 성사시키려고 이렇게까지 한답니다. 호호.”
“수수료 2프로라 해 봐야 얼마 안 되는데, 그걸 또 쳔 종한테 양보했어요? 이거 죄송해서 어떡해요?”
“대신 물량 확실하게 밀어주기로 했으니까 많이만 만들어 줘요. 아휴, 진짜 사업 힘드네요.”
둘이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큰 고비 하나 넘겼으니 됐다. 에이전트 케이, 참 멋진 사람이네!
“자,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요?”
예상대로 쳔 종은 선금 지급을 완강히 거부했다. 몇 년 거래하면 모를까 처음 거래하는 업체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공방이 오가고 나서, 박 사장이 귓속말을 건넨다.
“주상이야 어떻게 처리한다고 해도, 민수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3천, 4천짜리 고압일 텐데 어그러지면 타격이 너무 커요.”
“안 내키시는 거죠?”
“저야 뭐 아쉽지만, 난징변압기랑 계약한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요. 난징이 주상이 많아서 별로 안 남겠지만, 학습 비용으로 생각하죠 뭐.”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자,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쳔 사장! 마, 느그 할아버지 군인이었지? 내가 마! 다 알어!
“김 사장님, 쳔 종징리 조부께서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었는지 여쭤봐 주실래요? 제가 알기론 성함이 쳔줭진일 겁니다.”
“네?”
예상대로 나 빼고 다 놀란 표정이다. 가장 놀란 사람은 쳔 종이다.
“어머어머. 할아버지가 인민 지원군으로 항미원조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고 하네요. 잠깐만요.”
쳔 종이 한이라도 맺힌 듯 속사포로 말을 쏟아 낸다. 남의 나라 전쟁터까지 가서 전사한 것도 억울한데, 유해도 못 찾았으니 할 말이 많겠지.
서로 언어도 문화도 아주 많이 다르지만, 수천 년을 지지고 볶으며 형성된 동아시아 문화권 안에 있다. 우리 못지않게 중국도 핏줄과 가문에 대한 인식이 강할 것이다. 돈 좀 번 사람들은 유독 더하지 않나!
“재작년에 대한민국 정부랑 중국군 유해 송환 합의가 있어서 할아버지 유해가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여전히 소식이 없어서 낙담하고 있었대요! 자기보다는 아버지가 간절하다고 하네요.”
“제가 무조건 찾아 드리겠다고 전해 주세요. 계약 선물로 드리는 것이라고요. 절대로 허황된 소리 하는 것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후 사정은 나중에 들으시고, 일단 그렇게 전해 주세요.”
내 말이 통역되기 무섭게, 쳔 종이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온다. 지방이 적절히 낀 두툼한 손을 내민다. 내 어찌 꽉 잡지 않을쏘냐!
“김 사장님! 할아버지 유해가 김포 봉성산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국방부 유해 발굴단이 유해 발굴 중이라고 전해 주세요. 유전자 감식까지 끝내려면 아무리 빨라도 1년 정도는 걸리는데, 제가 최대한 빨리 유해 송환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쳔 종이 침을 튀기며 말을 쏟아 내고 나서 나를 끌어안는다. 이제 우리 친구가 된 것인가?
“지 사장님! 쳔 종이 큰 신세를 졌다네요. 할아버지 유해만 돌아온다면 자손 대대로 은혜 잊지 않겠다고. 호호. 아이구야. 지 사장님은 진짜 대단한 분이셔.”
“유해 송환 조건은 계약서에 넣어도 되니까 계약하자고 하시죠. 난징변압기와 똑같이 선금 50프로 조건으로요.”
박 사장은 여전히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다. 표정 관리가 잘 안 되겠지. 누나!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후훗.
그 지난했던 공방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협상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에이전트 케이가 왕 종과 체결할 때 썼던 계약서를 급히 수정해 출력해 왔다. 이제 남은 절차는 사인하고 악수하고, 술 담배 주는 것뿐이다.
“잘해 봅시다.”
다시 세 명의 사장이 함께 손을 잡았다. 오늘 열린 더블헤더 모두 승리했다.
복귀하면 설비 확충부터 해야겠다. 이거 물량이 얼마나 쏟아질지 감이 안 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은하무역하고 추진했던 두 번째 루트는 하지 말 걸 그랬나? 이런 행복한 고민이라니!
술과 담배 선물 증정식까지 이어지니 쳔 종이 호탕하게 웃으며 기분 좋음을 만방에 과시했다.
치트키 덕분에 쳔 종이 많이 양보한 것 같지만, 서로 윈-윈 하는 결과이다. 나와 박 사장은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했다. 쳔 종은 물량으로 보답해 주면 된다.
우리가 공급하는 변압기로 쳔 종은 사업을 키울 수 있고, 우리도 변덕스러운 대한전력 물량질에서 풀려나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리스크를 줄인 것만큼 소중한 성과가 어디 있겠나!
“쳔 종이 오늘 계약 기념으로 저녁 대접 제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호호.”
두 건의 계약 체결로 한 달에 1억 가까이 벌게 된 에이전트 케이가 아주 신 났다. 반신반의했지만, 계약 체결하고 보니까 훌륭한 에이전트더라. 이리 사람이 간사해. 후훗.
이제 고민은 유해 발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구라를 쳐서 납득시키냐이다. 머리가 아파 온다.
이래서 치트키는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닌데…… 먹히든 안 먹히든 양껏 구라를 치자. 계약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기분 좋게 전장시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으로 이동했다. 중국은 맛집이라고 하면 일단 크고 화려하다. 으리으리한 규모에 주눅 들라는 것인지 원.
우리나라 최악의 건물 랭킹을 매기면 항상 상위권에 드는 건물이 국회의사당과 한국방송 본관이다. 주변과 조화, 실용성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고, 크면 아름답다는 공구리 정신으로 만든 건물이라 그렇단다.
이틀 동안 둘러본 중국도 대륙의 스케일답게 이름 좀 있다는 곳들은 거대하게도 지어 놨다. 거기에 빨강과 금색으로 치장하는 환상의 인테리어까지.
더 놀라운 것은 이리 큰 규모의 식당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는 것이다. 인해전술이라는 말도 중국이니까 만들어졌을 것이다. 여러모로 대단한 나라다. 근데 축구는 왜 그리 못하는지 모르겠네.
“주문은 제가 쳔 종이랑 상의해서 결정했어요. 우리 지 사장님 못 먹을 만한 것은 뺐으니까 안심하고 마음껏 드세요. 호호.”
에이전트 케이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음식이 쏟아져 들어온다. 끝도 없이 밀려온다.
“뭘 이리 많이 주문했어요?”
“호호. 중국은 손님 접대할 때 접시 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해요. 우리나라도 푸짐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중국은 더 해요. 양껏 드세요.”
인간적으로 다 맛있다. 향신료도 취향을 벗어나지 않는다. 맛있어서 계속 먹는데도 음식이 여전히 한 상이다. 이등병한테 초코파이 한 박스 먹이는 것도 아니고 원.
“지 사장님. 쳔 종이 할아버지 얘기를 계속하네요. 아버지가 2살 때고, 고모는 유복녀였다고 해요.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유해가 돌아온다면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다네요. 아휴, 얘기를 워낙 많이 해서 최대한 줄여서 전달했어요. 호호.”
“저는 약속한 일은 무조건 지킨다고 얘기해 주세요.”
“중국도 이름을 유행 따라 짓는데, 6ㆍ25 이후에는 위엔짜오, 그러니까 항미원조에서 원조를 따서 이름 짓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만큼 6ㆍ25에 대해서 각별하게 생각하는 거죠. 우리 지 사장님 아주 준비를 잘해 오셨어요.”
내 얘기를 전해 들은 쳔 종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아주 예쁘게 생긴 술병을 들어 술을 따라 준다. 천지람? 병이 너무 예쁘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저 술도 엄청 독할 것이다.
역시 술이 내장에 들어갈 때까지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한숨을 내뱉으면 불이 나올 것 같다.
“지 사장님. 이게 중국 8대 명주로 꼽히는 술이에요. 빼갈이죠. 텐지란, 하이지란, 멩지란 이렇게 있는데, 텐지란은 가볍게 마실 때 먹는 술이에요.”
“가볍게 마신다고요? 도수가 꽤 센데요? 어휴, 화끈화끈하네요.”
“42도밖에 안 해요. 빼갈은 독한 맛으로 먹는 거죠. 호호.”
우리나라 농업생산량이 고려 시대 때 크게 증가했다는 기억이 난다. 몽골에서 소주가 전래되면서 고된 농사일을 잊게 해 준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 도수의 술이라면 백 마지기 논도 한 큐에 끝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술잔이 비기 무섭게 또 채워진다. 기분 좋게 마시고, 기름진 음식이 가득하니 마실 만하다. 식도를 타고 들어가는 느낌이 쎄하지만, 콧속을 파고드는 향이 위로를 해 준다.
“그나저나 지 사장님. 좀 전의 일 좀 설명해 주세요. 솔직히 믿기지가 않잖아요?”
“맞아요. 쳔 종 할아버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에이전트 케이가 운을 띄우고 박 사장이 받아친다. 이제 시작이군. 후하.
“하하. 뭐 상대방 조사는 기본 아니겠습니까? 구글링하면 별의별 자료가 다 나오더라고요. 유민희 씨 그렇죠?”
“네? 아, 네. 맞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사전 조사 열심히 했습니다!”
우리 민희 예뻐해 줘야겠다. 눈치가 제법 있군. 구라를 그럴싸하게 풀어야 할 때는 공범이 필요한데, 제 역할을 해 줬네.
“검색하면 그렇게까지 나와요?”
“그럼요. 뒤지다 보니까 중국군 유해 송환을 위한 유전자 등록 명단이 나오더라고요. 쳔 종 아버지 이름이 쳔지엔화입니다. 부자가 같이 등록했더군요. 쳔 종 조부를 검색하니까 1ㆍ4후퇴 이후에 김포 봉성산 전투까지만 행적이 나와서, 거기서 전사했구나 싶었죠.”
구라가 그럴싸한지 모르겠다. 일단 지르고 보자. 이 자리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니, 대충 비비면 넘어가겠지.
“아니 근데, 아까 유해 무조건 찾아 주겠다고 한 건 뭐가 있으니까 그렇게 얘기한 것 아니에요?”
누나! 누나! 집요한 사람 같으니.
“뭐 빤한 것 아니겠습니까? 봉성산을 찾아보니까 올해부터 유해 발굴단이 조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건너 건너 알아보니까 중국군 유해가 백여 구 나왔다고 하니 거기 묻혀 있겠구나 싶었죠.”
“그저 추측 가지고 그렇게 장담을 해도 괜찮은 거예요?”
“솔직히 도박이긴 한데, 제가 약속한 일이니 산을 다 파헤쳐서라도 유해 송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우리 사장님께서 가끔 신기 있는 행동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저도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믿기 힘든 얘기도 나중에 보면 현실이 됩니다. 사장님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믿어 보시지요.”
덕준아, 고맙다. 덕준이가 총대 메고 수습에 나섰으니, 나중에 덕준이한테만 해명하면 되겠다. 친구 사이야 뭐 대충 얼버무리면 끝이지.
“계약 성사를 기념하는 자리니까 일단 쳔 종이랑 대화하면서 즐기도록 하죠.”
“사장님, 쳔 종이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에요. 사장님하고 사업하면 회사가 잘될 것 같다고 그러네요. 호호. 아주 말이 그냥. 한 시간 전만 해도 그렇게 꼬장꼬장하던 사람이 진짜.”
사업가의 눈으로 봤을 때, 난징변압기 왕웨이 총경리는 사업가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계약이 수월했겠지.
반면, 진강특수변압기 쳔즈쉬앤 총경리는 사업가 냄새가 너무 심하다. 협상이 마냥 길어져서 한 번 만나는 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친분이 있는 에이전트 케이도 별 힘을 못 쓰니, 왕 종과 계약한 것으로 만족할 생각까지 했다.
문자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상황이 급변할 수 있었을까? 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지만, 문자님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사랑합니다, 문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