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49)
149 촉감
화려하고 푸짐한 만찬이 끝났다. 참석자 모두가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는데도, 음식이 꽤 남았다. 음식 남기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로서는 저걸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지경이다.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호텔로 갈 채비를 하는데, 에이전트 케이가 붙잡는다. 또 술이겠군.
“지 사장님. 쳔 종이 많이 아쉽다고 하는데, 호텔에서 짐 풀고 나서 술 한잔 괜찮으세요? 어제처럼 딴 데로 새지 마시고요.”
“다들 가겠다고 하면 가야죠. KTV 이런 데 가자는 건 아니죠?”
“뭐 저야 상관은 없는데, 박 사장님은 불편하시겠죠? 저랑 박 사장님은 빠져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괜찮죠?”
“김 사장님 없으면 말도 안 통하고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박 사장님도 계시는데 빼놓고 가는 것도 좀 그러네요.”
“호호. 뭐 보니까 남자들은 말 안 통해도 잘만 놀던데요?”
부인할 수 없다. 덕준이도 말 안 통하는 왕 종이랑 의형제까지 맺고 오지 않았나? 술이 있다면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것이 남자의 세계이니까.
“쳔 종이 바라는 곳이 있겠지만, 그건 다음에 기회 있을 때 가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다 같이 건전하게 마시죠.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사장님은 참 독특한 데가 있어요. 남들은 중국 왔다고 하면 KTV부터 찾는데 말이에요. 호호. 뭐 그렇게 얘기하시니까 쳔 종에게 잘 얘기해 둘게요.”
나라고 왜 좋은 데라는 곳에 안 가고 싶겠나? 글로벌하게 놀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넘치지. 그렇다고 사람이 욕망대로 살면 그게 짐승이지. 평판을 생각하며 살자, 욕망의 온도를 낮추자.
아쉬움을 간직한 채로 호텔에 들어갔다. 시설이 어제보다 좋아 보인다. 내일 조식은 폭식이다!
“덕준아, 나랑 박 사장이랑 이따 쳔 종하고 술 한잔하기로 했으니까, 민희 데리고 동네 구경이라도 해. 아직 8시밖에 안 됐는데 호텔 방에 처박혀 있기는 아깝잖아?”
“박 사장 있어서 KTV는 못 가겠네? 어제 가 보니까 너 말대로 뒷짐 지고 있는 애들은 2차가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애들이 훨씬 이쁘더라. 나야 뭐 목석처럼 있다가 왔지만, 쩝.”
“우리나라도 텐프로는 2차가 안 된다고 하잖아? 생각해 보면 그냥 술집에서 마시면 될 걸, 왜 비싼 돈 내고 거기서 마시는지 모르겠어.”
“뭐 자기 돈 내고 가나? 우리 같은 일개미들이 부지런히 벌어오면 사장이 그 돈 들고 검사니 그런 사람들 데리고 허세 부리는 거지 뭐.”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야. 암튼 민희 데리고 잘 놀고 있어. 그리고 혹시라도 나 네발로 기어 들어올 수 있으니까 비상 대기하고 있어라.”
“생전에 담배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한 대 피우고 가.”
계약서 사인까지 끝낸 마당이라 굳이 술까지 사 주면서 대접을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것도 영업의 일환일지니라. 어제부터 강행군의 연속이네. 출장 힘들어.
로비로 나가니 박 사장과 에이전트 케이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해맑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이모와 조카가 함께 여행 온 것 같네. 시간에 여유가 있어 다 같이 쇼핑센터라도 갔다면, 어깨 축 늘어진 채 짐꾼 노릇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뭘 해도 강행군이겠군.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 가시죠.”
“사장님, 저 때문에 좋은 데 못 가서 어떡해요?”
박 사장이 살짝 비꼰다. 기껏 생각해서 같이 가자고 했구만!
“아이, 진짜. 저한테 그렇게 말하기 있습니까? 하하. 우리는 협력자 아닙니까? 술 마시러 가도 함께 마셔야죠.”
“이야, 의리남 멋지네요. 하하. 술 마시러 가죠.”
우리가 향한 곳은 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 KTV였다. 단란한 곳도 으리으리하게 짓는구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KTV가 유흥업소라고만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중국은 술집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술만 마시려면 바에 가거나 노래방처럼 KTV에 가서 노는 경우도 있어요. 흔한 건 아니지만요.”
“우리나라도 진짜 노래 부르러 노래방 가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 거라고 보면 되겠네요?”
“호호. 박 사장님은 어떻게 그런 것을 안데요?”
“하하. 직원들이랑 회식하고 노래방 가면 자꾸 나가줬으면 하고 눈치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도우미 부르고 싶으면 부르라고 해요. 하여간 남자들은 진짜.”
박 사장이 나를 야려 본다. 난데없이 나한테 화살이람?
“왜 또 그래요? 전 노래방 가면 노래만 부릅니다.”
“우리 지 사장님은 수도생활하나 봐요.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박 사장님 안 그래요?”
“좀 그런 것 같죠? 호호.”
오늘 저 여인네들의 먹잇감은 나인가보다. 누구처럼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벨트를 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참.
“아휴, 그만 갈구고 들어갑시다.”
KTV 내부는 외관만큼 화려하다. 룸살롱에서 살롱이 원래 프랑스 귀족들이 저택에서 놀던 것을 말한다듯이 베르사유 궁정도 부럽지 않을 정도 휘황찬란하게 꾸며 놨다.
식당도 그렇고, 여기도 이렇게 돈을 처바르고도 운영이 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먼저 와 있던 쳔 총경리가 반갑게 맞이한다. 반가운 표정 어딘가에 아쉬움이 있어 보인다. 이따 상황 봐서 옆방 하나 더 잡아 줄 테니까 가서 실컷 놀게.
내가 사겠다고 큰소리치면서 과감히 조니워커 블루로 시켰다. 조니워커가 위조 방지 라벨을 붙여 안전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위조 양주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내 몸은 소중하니까.
호기롭게 주문을 마쳤는데, 쳔 종과 마담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참을 떠든다. 왜 그래?
“김 사장님, 무슨 일이에요?”
“아, 여기가 아가씨 나오는 곳이잖아요? 마담이 아가씨를 초이스해야 한다고 하고, 쳔 종은 단골한테 그러지 말라고 하고.”
“에이 진짜, 기분 좋게 왔는데. 그래서 티씨가 얼마예요? 그냥 비용 지불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1인당 인민폐 500원. 십만 원도 안 하는 돈으로 티격태격하고 있네 진짜.
“제가 지불할 테니까 이따 계산서에 청구하라고 하세요.”
가오는 이럴 때 세우는 것이다. 쳔 종, 너한테 벌 돈 미리 쓰는 거니까, 네가 냈다고 생각하렴.
여자를 부르지 않았는데 시중드는 종업원이 룸에 상주해 있다. 진짜 인력이 넘쳐 나는 중국답다. 에이전트 케이를 쳐다보니 바로 눈치채고 설명해 준다.
“저 사람을 꽁쥬, 우리말로 공주라고 해요. 여기는 외국인들 출입이 가능한 곳인데, 저렇게 꽁쥬가 있어요. 그냥 시중들어 주는 사람이니까 엉큼한 생각 하면 안 됩니다? 호호.”
“김 사장님은 아주 전문가시네요.”
“중국에서 벌어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어요?”
술이 한두 잔 오가고 나니 쳔 종의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올해로 45살이라는데, 사업 시작한 얘기부터 구구절절이다. 자수성가 출신들은 라떼로 시작하는 말을 참 좋아한다. 터진 말문을 통역하는 에이전트 케이가 참 고생이네.
“자기는 엄청 고생했다고 하는데, 들어 보니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네요? 김 사장님, 이건 통역하지 마세요.”
“제가 봤을 때는 정수 씨가 사업 가장 쉽게 한 사람 같은데요? 하하. 2년도 안 돼서 이렇게 성공하는 건 말이 안 돼요! 그 능력이 참 부럽네요.”
“아이고. 제가 어찌 누나의 능력에 견주겠습니까? 제가 지상계라면 누나는 천상계 아닙니까?”
“어라? 아주 입만 열면 아부예요.”
박 사장과 아부 섞인 말들을 주고받고 있으니, 에이전트 케이가 제지하고 나선다.
“쳔 종이 노래 하나 부르겠대요. 자꾸 둘이만 얘기하는 것 같아서 안 되겠대요. 호호.”
저 사람 노래 부르면 어색하게 박수 쳐 주면서 들어 줘야 하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꽁쥬는 시중만 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음악 소리가 나오자 현란한 솜씨로 탬버린을 흔들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한다. 저 사람 프로다!
자연스럽게 화곡동 호박나이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뚱이를 흔들어 댔다. 독한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여러 잔 마셨더니 알딸딸해서 부끄러움도 모르겠다.
박 사장이 바턴을 이어받아 목을 푼다. 아휴, 천상계가 확실하구만.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으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르을!”
한겨울에도 꽃이 필 것 같은 화사한 분위기다. 쳔 종이 기분이 좋은지 저질스러운 몸뚱이를 흔들며 박 사장 앞에서 얼쩡거린다. 저 자식, 우리 누나랑 부비부비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그렇게 하도록 놔둘 수 없지!
내가 나서기 전에 에이전트 케이가 능숙하게 쳔 종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박준희 누나 구하기 성공이다. 천상계에서 잠시 내려온 우리 누나 건들지 마라.
“정수 씨도 한 곡 뽑아 줘요.”
“전 노래 부르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제가 부르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아이, 어때요? 분위기 맞춰서 하나 불러요.”
“제가 부르면 분위기 망친다니까요.”
“에이, 진짜.”
박 사장은 상습범이다. 툭하면 팔짱을 낀다. 아휴, 술 마셔서 알딸딸한데, 이러면 곤란한데…….
큰 용기를 내어 마이크를 잡았다. 덕준이가 제발 노래만큼은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술김이니 뭐 어때!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으음.”
마냥 좋은 우리 형 노래. 차마 따라 부르지 못하고 생각날 때마다 듣던 그 노래에 과감히 도전했다. 탬버린 프로 꽁쥬도 어쩌지 못하는 이 분위기. 하아.
“스탑! 하하. 제 노래는 여기까지입니다.”
“왜요! 끝까지 불러야죠!”
박 사장이 말은 저렇게 해도, 난 그 표정을 읽었다.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더니 이제 보니 순 구라였네. 어정쩡해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에이전트 케이가 긴급 투입됐다.
“죽도록 너만 사랑하는데, 왜 날 믿지 못하니!”
분위기 띄워 주는 건 고마운데, 왜 나를 바라보면서 이럴까?
이거 재밌네. 박 사장에게 다가가는 쳔 종은 에이전트 케이가 차단하고, 나를 향하는 에이전트 케이는 박 사장이 차단한다.
에이전트 케이의 부담스러운 몸짓을 온몸으로 막아 주는 박 사장이 고맙다.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살결도 고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술이 웬수네 진짜.
한참을 마시고 흔들다 보니, 술이 바닥이 났다. 아휴, 힘들어. 놀 만큼 놀았으니 이제 좀 자자. 더 있다가는 이성을 잃을 것 같다.
“김 사장님, 여기서 마무리하죠? 쳔 종이 아쉽다 하면, 아시죠? 제가 사기로 했으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하세요.”
“호호. 저 사람 부담 가질 사람은 아니에요.”
제일 고생한 꽁쥬에게 팁을 쥐여 주고 KTV를 벗어났다. 쳔 종은 역시나 더 있다 가겠단다. 짐승 같은 놈, 체력도 좋네.
“고생들 하셨어요. 내일은 일정 없으니까 마사지 좀 받고 상하이 구경하다가 비행기 타는 걸로 하죠. 내일까지 계속 미팅할 줄 알았는데, 일이 잘 풀려서 좋네요.”
“김 사장님 덕분이죠. 하하. 근데 박 사장님 괜찮아요?”
“네! 저 아주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박 사장의 약간 흐트러진 모습이 생경하다. 술 못 이겨 내는 걸 보니 사람이긴 하네.
호텔로 복귀하는 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박 사장이 내 어깨를 베개로 삼는다. 이 장면 기시감이 드는데? 나도 피곤한데 편히 앉지도 못하겠네.
고개만 꺾은 박 사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체를 기울인다. 관성의 법칙. 우회전 그만하고 좌회전을 하란 말이야! 준희 누나 고꾸라지지 않게 팔로 버텨 내기 힘들다고!
역시나 촉각을 가진 모든 신경이 미친 듯이 왼팔로 달려갔다. 촉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니, 지금 느끼고 있는 말랑함의 정체가 눈에 보일 지경이다.
호텔이 가까워서 다행이다. 보름달이 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늑대인간이 됐을지도 모른다.
“누나! 다 왔어요!”
“으음. 아휴, 차 타니까 확 올라오네.”
“정신 차리고! 김 사장님한테 인사하고 들어가죠.”
다행히 박 사장이 강한 의지로 두 발로 걷는다. 좀 휘청하긴 해도 내가 부축할 정도는 아니다. 나를 사람으로 행동하게 만들어 준 누나, 감사합니다.
“정수 씨, 잘 자요!”
박 사장이 객실 앞에서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보내는 아리까리한 눈빛을 보니,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덕준이가 있는 방으로 속히 돌아가라는 천사와 박 사장을 저대로 보낼 것이냐는 악마의 치열한 싸움이랄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문 열어! 이 새끼야!”
난 기꺼이 보증도 서 줄 수 있는 덕준이를 택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지.
아우, 근데 뭐가 몇 방울 나온 것 같은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