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50)
150 마지막 일정
2박 3일 중국 출장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그 흔한 관광조차 못해 볼 정도로 숨 가쁘게 지나갔다. 밥 먹고, 미팅하고, 밥 먹고, 미팅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큰 성과를 얻어 냈다. 물론 몇 년 동안 밑밥을 뿌리며 낚시터를 가꾼 에이전트 케이 덕이 가장 크다. 좋은 낚시터라도 대어를 낚는 것은 낚시꾼의 역할 아니겠는가!
난징변압기와 전장특수변압기 사장들이 언급한 것을 토대로 추정하면 월 20억 원은 거뜬하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우리 회사에서 관수 다음으로 많은 매출을 올릴 사업을 일군 것이다.
상큼하게 일어나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니, 덕준이가 가운 차림으로 모닝 담배를 태우고 있다. 요염하군.
“사장님아, 오늘은 아무 일정 없는 거지?”
“마사지 받고 상하이 가서 뭉그적거리다 뱅기 타고 집에 가는 거지.”
“생각해 보면 딱히 힘든 건 없는데, 이게 은근히 신경 쓰여서 그런지 디게 피곤하네.”
“내가 회의를 왜 싫어하는지 알겄지? 그냥 얘기하면 괜찮은데, 회의한답시고 얘기하면 괜히 더 힘들다니까.”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달까? 회의라는 형식이 되면 그 자체가 피곤으로 몰려온다. 월급쟁이 생활 동안 시간 잡아먹고 피곤하게만 만든 회의만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뭐 회의도 아니었지. 교장 훈화 말씀? 군대 정훈 교육?
“그래도 성과 두둑하게 챙겨서 회사 돌아가면 엄청 좋아들 하겠지? 물량이야 뭐 다들 달인이니까 걱정 안 할 거고.”
“계약만 했다 뿐이지, 아직 갈 길이 멀어. 뒷처리할 것이 많잖아?”
“영업으로 넘어가길 천만다행이네. 서류 작업만 해도 한 트럭일 것 아녀? 원산지 증명이니, 신용장 개설이니 어휴. 박 대리랑 민희가 잘해 줄 거야. 후흐흐.”
“걔네들한테 가서, 예전엔 이랬네 저랬네 하면서 꼰대 소리 하지 말고.”
“내 인생 좌우명이 꼰대가 되지 말자야.”
좋은 말씀. 1만 시간의 법칙이랬나? 3년만 빡세게 일하면 전문가가 되는 세상인데, 먼저 경험해 봤다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우습지. 자기주도형 학습. 일을 잘하든 못하든 3년은 기다려 줘야지.
태양전기 다닐 때 생각해 보면 꼰대가 참 많았다.
분명 효율적인 방식이 있는데도, 하라는 대로 안 한다고 지랄하는 놈들.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냐고 하면 말대꾸한다고 지랄. 더 나은 방식을 생각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고집 부리는 꼰대들.
망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회사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능력한 사장, 꼰대력 가득한 직원,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능력 있는 직원을 내치는 회사. 3박자가 두루 맞아떨어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야.
“우리도 나이 먹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꼰대가 안 되게 해 보자고.”
“예전엔 네가 이렇게 진지 먹는 소리 하면 그렇게 오글거릴 수가 없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그냥 그러네. 나도 공장 밥 먹으니까 많이 변했구만.”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짐 챙겨서 나가자. 오늘은 조식이 기대된다야.”
기대했던 대로 식욕을 마구 자극하는 조식이다. 부산에서 묵었던 호텔보단 못하지만, 어제보단 진수성찬이다. 아침부터 육식으로 부드럽게 위장을 달래 줘야지!
“민희야, 이번 출장 어땠어? 괜히 포장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 봐.”
“헤헤. 솔직히 한 것이 없으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여긴 이제 물꼬를 터 놨으니까 앞으로는 혼자서 길 잘 닦아 놔.”
“넵!”
대답은 씩씩하게 하는데, 시선은 접시에 담긴 베이컨에 쏠려 있다. 아침부터 저렇게 먹는데도 늘씬한 몸매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한단 말이야.
“저기 박 사장님 오시네요.”
살짝 부은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등짝에 강력한 방어구를 장착해야겠다!
“아이고, 박 사장님. 편히 주무셨습니까?”
“아휴, 어제 좀 과음했죠? 간만에 스트레스 좀 풀긴 했는데, 어제 뭐 실수한 것 없죠?”
“실수했으면 이렇게 태평하게 밥 먹고 있겠습니까? 하하.”
어제 천사와 악마의 대결에서 악마가 이겼다면, 내가 실수할 뻔했지. 어지간해서는 흐트러지지 않는 박 사장이 나한테 보낸 눈빛은 참 묘했는데 말이야. 빨리 잊고 밥이나 먹자.
“오늘은 일정이 없으니까 확실히 여유가 생기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이라도 챙겨 올 걸 그랬어요. 수영하기엔 호텔 수영장만 한 데가 없잖아요?”
수영복 입은 박 사장 모습을 상상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어젯밤 차에서 뭉클함의 윤곽을 느낀 왼팔이 아우성치는 느낌이다. 밥 먹자, 제발.
“박 사장님도 4시 비행기로 끊었죠?”
“네, 홍차오공항에서 김포공항 가는 걸로요.”
“귀국길엔 오붓하게 같이 가겠네요.”
“거기서 바로 나주까지 내려가려면 힘드시겠어요.”
“하루 더 묵고 무안행 직항기 탈까 생각도 했죠. 혹시나 계약 안 되면 기분 잡칠 것 같아서 바로 복귀하는 걸로 했는데, 아쉽긴 하네요.”
“말도 안 통하는데 하루 더 묵고 뭐 하려고요? 호호.”
우리 비밀 병기 유민희를 여전히 몰라보다니. 다음 중국 출장 때는 일정 넉넉하게 잡을 테다.
호텔에서 유일하게 제값을 한 조식을 끝내고 짐 챙겨서 호텔을 나왔다.
6시간 남짓 자고, 샤워 두 번 하고, 아침밥 먹는 걸로 이 돈을 낸 것이 참 경제적이지 못하다. 비즈니스호텔이란 이름으로 모텔 수준의 호텔이 성행하는 이유를 알겠다. 출장 갈 때는 좋은 호텔을 고집하지 말자.
에이전트 케이가 변함없는 얼굴로 로비에서 우릴 기다린다. 당신은 오늘 완벽한 가이드가 되시오.
“상하이로 가기 전에 여기서 마사지 받고 가죠. 굳이 상하이에서 비싸게 받을 이유가 없잖아요? 전장같이 작은 도시가 물가가 싼 편이라서요.”
“전장이 작은 도시예요? 인구가 300만이 넘던데요?”
“장쑤성에서는 작은 편이죠. 오백만은 넘어 줘야 명함을 내밀죠. 호호.”
이젠 대륙의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법도 한데, 이거 참. 10만 명이 겨우 넘는 나주와 비교하니 입이 쩍쩍 벌어진다. 150만도 안 되는 인구로 어디가 더 큰 도시인지 경쟁하는 광주와 대전이 우스울 지경이다.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대륙에서 신 나게 돈 벌자. 지금이야 월 20억 정도로 중국치곤 소소하지만, 몇 년 지나면 확 늘어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군.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마사지사의 손길 때문인지, 몸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마사지 받다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데, 얇디얇은 팬티 한 장으로 감춰지지 않으니 좀 부끄럽네. 마사지사 손이 자꾸 그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주기도문과 사도신경까지 암송하면서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겼다. 뭉친 근육 풀러 왔다가 근육만 더 뭉치게 생겼네.
1시간가량 개운하게 마사지를 받고 나니 목욕탕에서 3시간 정도 지진 듯이 얼굴에 화색이 돈다. 회사 커지면 마사지사 고용해서 직원들 근육 좀 풀어 주겠다고 다짐한 것이 이제야 생각난다. 귀국해서 할 일이 또 생겼군.
다들 개운한 얼굴들이다. 역시 마사지는 늘 옳다.
“얼굴에 꽃들이 만발했네요? 호호. 다들 잘 받으셨죠? 제가 나름 알아보고 잘하는 곳으로 섭외해 놨죠.”
“아, 개운합니다. 김 사장님 덕분에 이제야 외국 나온 기분이 나네요.”
“제가 일정을 좀 빡빡하게 잡은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마지막 날에 이렇게 여유가 생기니 낫네요. 시간이 좀 애매하니까 점심은 상하이로 넘어가서 먹고 와이탄 구경하다가 비행기 타는 걸로 하죠.”
“외탄 야경이 좋다는데, 아쉽네요.”
광대가 붉게 상기된 박 사장이 알은척을 하고 나선다.
외탄이 중국어로 와이탄인가 보네. 한자 문화권인데 표기가 다르니 은근 헷갈린다. 상해, 상하이. 난징, 남경. 모택동은 마오쩌둥인데, 공자는 그냥 공자다. 혼란하다, 혼란해.
까오티에를 타러 찾아간 전장 남역도 중국 소도시답게 으리으리하다. 중국은 역을 일단 크게 짓고 보는구만.
“사장님, 여기 물요.”
상하이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도 물을 챙겨 오는 유민희.
“대체 어디서 물을 가져오는 거야?”
“아! 중국은 열차표 있으면 물 한 병씩 줘요. 이게 신장 지역에서 나는 물이라는데, 잘은 모르겠어요. 물이 물이죠, 뭐.”
열차표 하나당 물 한 병이면, 일 년에 몇십억 병은 나가겠지? 중국에서 물장사해도 짭짤하겠네. 하긴 얼렁뚱땅 생각해서 중국 왔다가 망하는 사람 수두룩하겠지? 하던 것이나 잘하자.
갈 때도 느꼈지만, 올 때도 밖을 보니 도심이 끝없이 나온다. 논밭 좀 나온다 싶으면 또 도시. 양쯔강만 바다 같은 줄 알았는데 호수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신기한 척 안 하려고 했는데, 에이전트 케이가 눈치를 챘나 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쉴 새 없이 떠들어 준다.
“이제 창저우로 진입했어요. 여기서부터는 상하이까지 전부 다 하나의 큰 도시라고 보면 돼요. 창저우부터 우시시, 쑤저우, 상하이까지 서울만 한 도시들이죠. 쑤저우가 정말 볼 곳이 많은데!”
“다음에 갈 일 있으면 여유 있게 올 테니까 가이드 좀 부탁할게요.”
“호호. 지 사장님이 부탁하면 당연히 해 드려야죠. 언제든 오세요.”
에이전트 케이가 쏟아 내는 가이드 정보를 듣다 보니, 스케일로 주눅 들게 만드는 상하이 훙차오역에 도착했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지만, 끊임없는 대화가 시간을 왜곡되게 만든 것 같다. 갈 때보다 올 때가 더 금방인 것 같네.
상하이는 엄청난 대도시답게 하늘이 누리끼리하다. 우리나라도 미세먼지로 고통 받는데, 중국은 더하겠지. 여기에 우리나라 123층 타워 갖다 놓으면 딱 사우론이겠다 싶다.
택시를 타고 상하이 상징이라는 와이탄으로 향했다. 열차에서 대충 검색해 보니 야경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자, 여기가 상하이의 유럽이자 월스트리트인 와이탄이에요. 예전에도 좋은 곳이었는데, 엑스포 한다고 돈을 때려 부어서 더 좋게 만들었어요. 일단 점심 먹고 가볍게 산책하는 걸로 해요.”
“이야, 이쪽은 유럽이고 강 건너는 월스트리트인가 보네요?”
이국적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다. 한쪽에서는 영화 패왕별희의 OST가 흘러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밥 제임스의 엔젤스 오브 상하이가 흘러나올 것 같은 분위기이다. 하늘만 청명했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 같다.
“그렇죠. 유람선도 타고 놀다가 야경 보고 가면 좋겠는데, 뭐 여기 앞으로 안 올 것도 아니니까 다음을 기약하죠.”
휘황찬란한 광경에 신 난 덕준이를 에이전트 케이가 잘 달래 준다. 저게 동방명주로군. 직접 보니 좀 촌스럽기도 하네.
강 건너 화려한 빌딩숲보다 유럽식 근대 건물이 자리한 이곳이 더 좋아 보인다. 엄청나게 큰 동인천 조계지 같다랄까? 왠지 공화춘 짜장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는 짜장면은 없지만, 기름지게 맛있는 음식들이 계속 나온다.
콜라와 김치가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 없이도 충분히 과식했다. 향이 안 맞으면 고생 좀 한다더니, 나랑은 아주 잘 맞는다. 이따 기내식 먹을 배만 남겨 놓자.
“공기만 좋았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어요. 그쵸?”
와이탄을 산책하며 자연스럽게 나와 짝이 된 박 사장이 미세먼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우리나라 있을 때는 중국이 미세먼지 보낸다고 욕만 했는데, 여기 보니까 중국 사람들도 죽을 노릇이겠네요.”
“이게 다 바람 타고 우리나라로 온다고 생각하니까 끔찍하네요.”
“이왕 여기 왔으니 기분 좋게 산책하죠. 하하.”
역시나 어정쩡하게 이격된 간격. 이 간격이 나와 박 사장의 관계이다. 자꾸 보면 정든다더니, 사업하며 알게 된 누나라는 생각이 많이 희석되고 있다.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단체 사진 한번 찍고 가죠?”
“그래요! 자, 모여요!”
와이탄 명물이라는 황소상 앞에서 최대한 친하게 섰다. 왼쪽에 선 박 사장과 오른쪽에 선 민희가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다.
“아쉽지만 이제 공항으로 가죠. 여유 있게 가서 면세점 구경도 하셔야죠.”
그렇게 2박 3일의 아주 짧은 출장이 마무리됐다. 비행기 타고 기내식 흡입하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밥 먹고 바로 잠들었으니 충치 생기겠네.
“사장님, 한 부장님, 민희 씨. 다들 고생 많았어요. 주말 푹 쉬고 다음 주부터 또 열심히 일하자고요.”
“사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 사장과 작별 인사 후 서울 온 김에 본가에 들렀다 가겠다는 덕준이를 떼어 놓고 나주로 부지런히 내려갔다. 나주까지 4시간. 어째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넓은 것 같네.
“민희야, 출장 가서 한 일 없다고 했지?”
“네? 네. 그냥 멍하니 있다만 온 것 같아요. 죄송해요. 헤헤.”
“이제 일 많아질 테니까 각오해. 아주 단내 날 거야.”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2의 고향, 나주가 저 멀리 보인다. 상하이 야경이 좋다지만, 영산포 야경도 좋다! 내 고향 나주에 왔으니 이제 또 부지런히 달릴 일만 남았다. 달려,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