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58)
158 멩지란
중국 땅에 발을 디딘 지 고작 5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이 짧은 시간에 창저우트란스퍼와 우리 직원들 단내가 진하게 나게 할 계약을 체결했다.
판타지 같은 이 기쁜 상황을 만끽하기 위해 내 기꺼이 성대한 만찬을 베푸리라.
“저녁 시간이 됐으니 식사하러 가시죠. 큰 성과를 얻었으니, 제가 아주 융숭하게 대접하겠습니다.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집으로 가시죠.”
“아이고,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여기 오자고 한 거니까 당연히 제가 대접을 해야죠.”
내가 호기롭게 저녁을 사겠다고 선언하자,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하고 나섰다. 중국에 와서도 서로 밥 산다고 이러고 있다. 김 사장 참 맘에 든단 말이지.
나와 김 사장이 티격태격하는 이유를 전달 받는 리춘궝 종징리가 큰 소리를 치며 참전했다.
“사장님, 리 종징리가 손님이 그러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하네요.”
유민희 빼고 서로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고집 부리는 상황. 그만큼 모두가 만족하는 계약이 이뤄졌다는 뜻일 것이다.
“누가 사든 일단 가시죠.”
이게 무슨 인연인지, 리 종이 데리고 간 식당은 오늘 묵기로 한 호텔에 자리한 곳이었다.
사업이 잘 풀리려니 이렇게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네. 이것 가지고도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웃을 때 같이 웃지 못하고 부지런히 통역하는 민희가 고생이네.
우리나라 호텔을 생각하며, 이 식당도 가격 꽤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김치찌개 하나에 2~3만 원을 받아먹고, 달걀프라이를 스테이크라고 팔아 젖히는 천인공노할 짓을 떠올렸는데, 이 집, 호텔치곤 꽤 혜자스럽다.
리 종이 자기가 대접하니까 마음껏 먹으라면서 한참을 주문한다. 일단 푸짐하게 시키고 보는 풍습 여전하군.
“민희야, 이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채소랑 밥은 남기지 말라?”
“네, 맞아요. 부셩차이 부셩퐈안. 반찬을 남기지 말고, 밥을 남기지 말라는 뜻이에요. 중국 사람들이 많이 시키잖아요. 먹을 만큼만 시키라는 캠페인이죠.”
“리 종 시키는 것 보니까 음식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너도 오늘 분발해야겠다. 다이어트 생각 말고 마음껏 먹어.”
“푸히히. 저 다이어트 안 해도 되거든요? 그래도 뭐 최선을 다해 먹겠습니다.”
메뉴판에 있는 요리는 다 시킨 것 같다. 쉴 새 없이 접시가 들어온다. 음식 나올 때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기도 귀찮다.
저번 출장 때 마셨던 중국 8대 명주가 나왔다. 블루 시리즈 중 젤 좋다는 멩지란. 도수가 무려 52도나 된다. 이거 마시다 뻗어서 바로 호텔 방으로 기어 들어가면 되겠네.
술이 나오자 리 종이 술병을 들어 직접 따라 준다. 알코올 냄새가 방에 가득 찼다. 냄새 아주 죽이네. 관용적으로 말하는 죽인다가 아니라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
“사장님, 중국에서는 건배하면 무조건 원샷이에요. 술 남기면 실례예요. 아, 우리나라도 그렇긴 하네요. 헤헤.”
민희의 조언을 들으니 아찔하다. 생존 확률을 계산하는데, 리 종이 우렁차게 소리친다.
“창저우트란스퍼와 프라임일렉트릭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란답니다.”
“좋아. 건배!”
빼갈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독한 기운이 식도를 불태운다. 다행히 불은 안 나온다.
서로 잘 살아 보자는 건배사로 만찬의 시작을 알린 리 종이 입을 열었다. 민희는 그 독한 술을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통역을 한다. 다들 술 잘 마시네.
“사장님, 리 총징리가 우리 회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믿기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직원 수가 몇 명이냐고 물어보네요. 제가 알아서 대답할까요?”
“후우, 술 세네. 콜록콜록. 직원 150명에 올해 매출 2천억 원 예상한다고 대답해 줘.”
“사장님! 직원 150명에 그 매출이 가능합니까? 제조업이면 그 인원에 많이 나와야 500억 정도 아닙니까?”
김 사장이 놀라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믿기 어렵겠지. 제조업, 그것도 중소기업은 직원 1인당 매출이 많아 봐야 3억 넘기기 어려운데, 우리 회사는 10억 넘게 거뜬히 찍고 있으니 말이다.
오로지 순수 제조업으로 이 인원에 이 매출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일 것이다. 문자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 회사 세울 때 생산성 높이는 것을 1순위로 잡았습니다. 자꾸 고민하다 보니까 운이 좋았던지, 결과가 좋게 나오더라고요. 직원 150명으로는 조금 무리고, 못해도 200명까지 늘리긴 해야 합니다.”
“저는 사장님께서 중국 수출 생각하신다고 하셔서 단가 때문에 가능할까 싶었는데, 다 비결이 있었군요! 역시 프라임일렉트릭 탄탄하다고 소문이 괜히 나도는 것이 아니네요.”
“부산까지 소문이 났습니까? 하하.”
“돈 잘 버시는데, 제가 공급가 좀 올려도 되겠습니다? 하하.”
“아휴, 살살 해 주세요.”
김 사장과 잡담하는 사이에 리 종이 흥분하며 말을 쏟아 낸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꿈의 수치이겠지.
“어떻게 150명으로 변압기를 한 달에 18,000대나 만드냐고 물어보네요. 저도 뭐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출장 와서 중국 공장들 보니까 우리나라가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민희도 본 것이 있으니 리 종의 흥분을 이해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변압기 공장을 가 봐도 중국 공장이랑 별 차이가 없다. 우리 회사가 그만큼 특출 난 것이다.
“우리나라가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회사가 대단한 거야. 아마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만큼 하는 곳은 없어. 자부심 가져도 돼. 리 종한테는 사장이 대단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얘기해 줘.”
“아, 네에. 사장님이 대단하시긴 하죠.”
유민희 이 자식. 사장이 대단하니까 그런 회사가 가능하단 말이야!
첫 중국 출장 전 회의 때 말 편하게 해 달라는 당돌한 요구 이후로 민희에게서 사장을 대하는 어려움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격이 활달해서 그런지 이제는 술 한잔하고 한 손에 조카들 좋아할 과자 들고 온 삼촌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입사한 지 반년이 넘은 박아름 대리는 여전히 긴장이 가득한데, 민희는 분위기에 금방 적응해서인지 여유가 느껴진다. 저마다 개성이 다양한 이들을 상대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사장 말을 안 믿는 눈치네? 내가 귀국하면 다른 변압기 공장 보여 줄 테니까 진짠지 아닌지 경험해 봐.”
“맞습니다. 저도 여러 회사 돌아다녀 봤지만, 프라임일렉트릭 같은 회사는 본 적이 없습니다. 민희 씨는 정말 좋은 회사 다니고 있는 겁니다. 사장님, 나중에 대기업 돼도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하하.”
역시 김 사장이야. 아부를 늘 경계해 왔지만, 회사를 이 정도 키웠으면 아부 좀 들어도 된다. 내가 받아먹는 아부지만, 잘 모아서 고스란히 문자님께 드릴 것이다.
기분 좋아 그 독한 멩지란을 넙죽넙죽 마셨다. 식도가 타들어 가는 느낌에 테이블 가득 쌓인 음식들이 입속에서 구분이 안 된다.
이 맛있는 음식들이 어떻게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식도 어딘가에 불 뿜는 드래곤 세 마리가 자리한 것 같다. 아후, 죽겠네. 대너리스도 이 불타는 술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야.
대충 아부 타임이 지나가자, 리 종의 독무대가 시작됐다. 회사를 어떻게 키워 냈고, 돈을 얼마나 벌었으며, 차가 몇 대인지 등등. 돈 자랑할 때 대단하다는 표정 지으며 띄워 주자.
리 종의 신 나는 자랑질을 힘겹게 통역하던 민희가 진 빠진 표정을 짓는다. 너도 고생이 많다. 오늘 비싼 호텔 잡았으니까 푹 쉬렴.
“리 종징리가 돈 많이 벌었다는 얘긴데, 이 정도면 충분하죠? 아휴, 말씀이 너무 많으세요. 히잉.”
“리 종 표정만 봐도 무슨 말 하는지 알 것 같다야. 그 정도 통역했으면 충분해.”
“근데 사장님. 제가 잘 아는 건 아닌데, 중국이 어찌 보면 진짜 자본주의예요. 여기는 돈 자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요. 돈 없는 사람도 자기들이 덜 노력해서 못 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남들이 돈 자랑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요.”
“민희 씨가 잘 보셨네. 중국 사람들은 돈 벌면 돈 자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죠. 우리나라였으면 대번에 욕먹을 일이죠.”
돈 자랑이라. 요플레 뚜껑 안 핥아먹고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술 따르다가 병 입구에 묻은 술 방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닦아 빨아먹을 뻔했다. 소파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바짓가랑이로 손이 가듯이 궁상맞았던 삶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넉넉한 삶의 체득. 올해 나만의 위시리스트이다.
리 종의 돈 자랑을 지겹게 들으며 술을 마시니 더 취하는 기분이다. 술이 알딸딸하게 올라온 리 종이 뭐라고 떠들자, 민희의 얼굴이 뻘쭘한 표정으로 가득 찼다.
“사장님, 리 종징리가 저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는데요.”
올 것이 왔군. 여자 직원을 대동했는데도 리 종의 불타는 욕망을 잠재울 수가 없네. 하긴 나도 더 마시면 이성을 잃을 것 같다.
“사장들끼리 따로 술 마시고 싶어서 그런 것 같은데? 피곤할 텐데 먼저 들어가서 푸욱 쉬어.”
“에이, 사장님. 저도 다 알아요. 사장님도 남잔데요, 뭐. 헤헤. 술 살살 드세요.”
“아이 진짜. 바에 가서 술 좀 마시자는 거겠지! 괜히 회사 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사장님 덕분에 비즈니스석 타고 출장 다니는데요. 저는 먼저 올라가서 쉬겠습니다. 내일 7시에 모닝콜 해 드릴게요.”
민희가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회 초년생에게 개저씨로 찍히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네. 리 종 저 사람은 보양식을 얼마나 먹고 다니길래, 이리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저러냐.
민희의 퇴장으로 김 사장이 통역자 바턴을 이어받았다. 리 종이 술 더 하자며 가자고 하는 곳은 역시나였다. 오늘도 호텔방에서 몇 시간 못 자겠군.
덕준이에게 배운 대로 페트병에 화장지를 집어넣고 열심히 팡파르를 불었다. 소화기 색소폰도 빠질 수 없지. 김 사장이 벨트 색소폰으로 보조를 맞춰 준다.
열심히 뛰어 놀다 보니 술이 좀 깨는 것 같았는데, 김 사장이 정성껏 말아 준 폭탄주 두 방에 결국 패배를 선언했다. 아이고, 나 죽네.
목이 말라서인지, 정신이 돌아와서인지 모르겠지만, 동이 트겠다고 시동을 거는 새벽녘에 눈을 떴다. 용케 살아서 객실까지 들어오긴 했네.
“씨발,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터졌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이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세상에서 억울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이 상황. 클럽에서 헌신적인 노력으로 파트너를 찾아 밖으로 나왔는데, 술에 떡이 돼 기억을 못하는 그 억울한 상황이 여기서 재현되다니!
원치 않았어도 이 상황이라면 기억이 나야 나름 보람이 있을 텐데! 이래서 술 못 마시는 놈은 술을 멀리해야 하거늘. 에잇, 잠은 다 잤네.
샤워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묘령의 여인이 부스스한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알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군. 어휴, 몸매가…… 남방 계열인가 보네. 아침부터 힘 쏠리네.
영어로 몇 마디 건넸는데, 순진한 표정을 보니 전혀 못 알아먹는 것 같다. 나도 중국말 못 알아먹고. 불끈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100위안짜리 지폐를 건네주고 내보냈다. 마오쩌뚱이 널 위로하리라. 날 위로하는 것은 담배.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마시고 놀았다는 것은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 어제 급작스럽게 체결한 계약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다는 것일 테지.
중국 온 지 5시간, 리 종 만난 지 1시 반 만에 부랴부랴 계약 맺은 것치고는 놀라운 성과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냥 사인하고 악수하러 간 것에 불과하다.
세 번을 찾아가며 밑밥을 깔아 놓은 김 사장의 노고, 김 사장을 신뢰하는 난퉁전기 양푸첸 종징리의 도움, 연체 위기에 처한 창저우트란스터 리 종의 다급함이 딱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리 종에게는 빠른 납기로 보답하면 된다. 양 종에게는 자재 많이 구매해 주고 술 한잔 사 주면 될 것이고, 가장 큰 역할을 한 김 사장한테는 앞으로 중책을 맡길 테다. 김 사장! 우리 진짜 오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