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57)
157 하오하오
창저우트란스퍼 공장은 소음을 내며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분주히 돌아다니는 직원들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서 힘내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
이 드넓은 공장이 이리 바삐 돌아가는데, 소화할 양이 너무 많다는 고충이 가득하단다. 내가 그 고충을 해결해 주겠다.
리춘궝 종징리가 공장 설비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한다. 이전 두 업체에서는 지나가는 길에 대충 훑어보는 수준이었는데, 여긴 달랐다. 사업을 구라로 하는 사람과 진짜로 하는 사람의 차이인가?
공장 이모저모를 설명하는 리 종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가득해 넘쳐 날 지경이다. 다음에 우리 회사 초대해야겠군. 우리 공장을 보고도 저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 유지될지 궁금하다.
통역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유민희가 침 튀기며 쏟아 내는 리 종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말을 천천히 좀 하지.
“사장님, 리 종징리가 지금 권선기랑 코아 삽입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거든요? 굳이 통역 안 해 드려도 되겠죠?”
“그래. 빤한 것들까지 들을 필요는 없지. 그래도 너무 조용히 있으면 기분 상할 수 있으니까 그냥 아무 말이나 해.”
“네. 히히. 오늘 저녁 뭐 먹을지 살짝 기대되는데요. 근데 오늘 저녁에 또 술 드시러 가실 거예요?”
진짜 아무 말이나 막 한다.
변압기 초짜인 민희가 입사했을 때 다른 변압기 회사들은 이러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다른 회사 갔다가 허접한 설비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 큰 실례일 것이다. 다행히 표정 관리 잘하고 있다.
그나저나 저런 설비로도 변압기를 그리 싸게 만들 수 있다니. 사람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
“이제 사무실로 가서 차 한잔하자고 합니다.”
“사장님, 가시죠. 아마 당장이라도 계약하자고 할지 모릅니다. 하하.”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기대감을 잔뜩 불어넣어 준다. 에이전트 케이처럼 중국에 살면서 오랜 세월 밭을 갈았던 것은 아니지만, 의욕과 정열로 중국 시장을 쑤시며 약을 쳐 놨다고 했으니, 그 성과를 기대해 보겠다.
창저우트란스퍼는 덩치가 있는 회사답게 사무실이 꽤 고급지다. 사무실 직원들 유니폼도 있는 것을 보니 20년 전 우리나라 대기업 모습 같기도 하다. 벽에 붙은 금색 부적과 여기저기 눈에 띄는 빨간색도 구림을 더해 준다. 돈 꽤 들인 것 같은데, 저 인테리어는 영 아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호화스러운 사장실로 들어가니 비서가 차를 가지고 온다. 비서도 고용할 정도로 돈을 좀 버는 모양이네.
근데 비서가 입고 있는 유니폼이 꽤 야시시하다. 저렇게 짧고 타이트한 치마를 꼭 입혀야 했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지만, 이게 회사인지 단란한 곳인지 모르겠네.
차를 내려놓고 돌아가는 비서의 타이트한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던 리 종이 입맛을 다시다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 이거 사장이 아니라 왕 노릇을 하고 있네.
“사장님, 리 종징리가 월 생산량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봅니다.”
리 종의 눈빛이 민희를 위아래로 훑지 않길 바라며, 답을 건넸다. 월 18,000대 생산! 아주 깜짝 놀랄 것이야!
“대단하다고 하네요. 김 사장님이 보여 준 사진으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들으니 더 놀랍다고 합니다.”
대화 초반답게 상대방 띄워 주기로 분위기를 달궈 주는군.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에티켓이지.
“장쑤성 최고의 변압기 회사라고 들었는데, 기대대로 공장도, 사무실도 아주 훌륭합니다. 우리 회사가 창저우트란스퍼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못 알아먹어도 웃으며 알아듣는 척하던 리 종이 통역이 전달되자 더 환하게 웃는다. 아가리 품앗이는 이 정도로 하고 본론에 들어갑시다.
“아몰퍼스변압기가 많이 필요한데, 몇 대나 생산 가능하냐고 합니다.”
“물량은 원하는 대로 다 맞춰 줄 수 있으니까 원하는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세요.”
내 대답을 들은 리 종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오하오!”
좋다는 뜻이지? 돈만 잘 줘 봐. 내가 얼마든지 만들어 줄 테니까.
김 사장이 이미 난퉁전기 양푸첸 종징리와 함께 길을 잘 닦아 놨으니 긴말도 필요 없다. 이 차가 식기 전에 계약이 체결될지도 모른다.
“사장님, 단가나 결제 조건은 김 사장님이랑 다 얘기가 끝났는데, 만족하는지 여쭤 보네요.”
“나도 하오하오.”
단가가 조금 아쉽지만, 김 사장의 노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존 두 회사보다는 아주 살짝 싸게 공급하지만, 물량이 엄청나다면야.
“만족한다면 당장 아몰퍼스변압기 위주로 발주를 내고 싶다고 합니다.”
이번엔 내가 대답했다.
“하오하오!”
창저우트란스퍼를 포함한 중국 세 업체에 넘기는 변압기 단가는 일반형이 대한전력 납품가 대비 78퍼센트 수준이다. 그러나 아몰퍼스변압기는 87퍼센트에 달한다.
중국 변압기 설계가 대한전력보다 널널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달콤한 꿀이다. 단가도 높은데, 생산 원가가 낮아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아몰퍼스코아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승부수가 이렇게 효자 노릇을 한다.
중국 난퉁전기가 만든 아몰퍼스메탈을 은하무역이 싸게 수입해서 우리에게 싸게 공급한다. 그럼 나는 그걸로 코아 만들어서 변압기에 집어넣는다. 중국 창저우트란스퍼는 짭짤한 가격에 사 간다. 국제무역 한번 화려하게 하는구만.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리 종이 당장 계약서 사인하자고 보챈다.
변압기 확보가 당장 시급하다는 김 사장 말대로 번갯불에 콩을 볶는 중이다. 콩 볶는 냄새가 고소하다.
그래도 약간 당혹스럽긴 하다. 그 정도로 다급한가?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은 비서의 뒷모습을 감상하던 리 종의 여유로움은 온데간데없다.
아무리 꽌시를 잘 닦아 놨다고 해도 너무 급한데? 적어도 3번은 만나고 사귀자고 해야 하는데, 만나자마자 회사에다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꼴이랄까?
“김 사장님, 전개가 너무 빠른 것 같은데, 이래도 괜찮습니까? 리 종이 보기에 조건이 좋아서 그런 걸 수 있지만, 어휴, 미팅한 지 1시간도 안 지났는데 이거 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난퉁 양 사장과 절친인데, 양 사장이 보증하겠다고 하니 시간 끌 이유가 없죠.”
“그 양 사장은 뭘 믿고 우리 회사를 보증한다고 그런답니까?”
“저를 믿으니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사람들이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꽌시가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이런 게 바로 꽌시의 힘입니다.”
오고 가는 우리말에 리 종이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자, 민희가 원어민 발음으로 안심을 시킨다.
“리 종징리에게 우리 사장님께서 좀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는데요, 빨리 마무리하고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네요.”
“푸하하하. 이 사람 성질 한번 급하네.”
꽌시를 믿고 돈을 퍼 주겠다는데, 속도 조절이 무슨 소용인가 싶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업 한번 화끈하게 하네.
“민희야, 발주량과 방식 좀 물어봐 줄래?”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몰퍼스변압기인데, 용량이 10, 20, 33, 50, 75, 100. 이렇게 6가지라고 해요. 수량은 토털 2,500대. 7월 중순까지 맞춰 줄 수 있냐고 합니다.”
7월 중순이면 40일도 안 남았는데? 설계야 다 나와 있긴 하지만, 첫 납품인 것을 감안하면 꽤 빠듯하다. 후반 작업까지 생각하면 못해도 이달까지 생산을 끝내야 한다.
대한전력 물량과 중국 두 업체 물량에 창저우트란스퍼 물량까지 처리하려면 생산부 사람들 간만에 곡소리 좀 내겠군. 요 몇 달 널널하게 보냈으니 곡소리는 내도 군소리는 안 하겠지?
좋다! 뭐 대한전력 그 미친 물량도 연체 없이 처리했는데, 당연히 해내야지!
“하오하오!”
내 입에서 나온 세 번째 하오하오. 리 종이 소파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한다. 이거 뭐 사귀지도 않았는데 육아 휴직이 승인된 것 같은 느낌이네.
“사장님, 리 종징리 얘기가 두 달에 세 번 정도 발주가 나가는데, 한 번에 3천 대 정도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아몰퍼스변압기인데, 일반형도 250, 333킬로로 꽤 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자식, 만들기 어려운 것만 주문하네. 그냥 주문 받아도 꽤 남지만, 이왕이면 수익을 생각해야겠다.
“물량 많은 것은 상관없는데, 용량은 가급적 단순화시켰으면 좋겠다고 전해 줘. 무슨 말인지 알지?”
“같은 용량으로 쭉 만들어야 좋다는 말씀이시죠?”
“빙고. 상점 1점.”
상점 1점에 좋아 죽는 표정이다. 이런 자리에서는 표정 관리 좀 하지. 그래도 회사 들어온 지 이제 석 달 된 민희가 제법 서당 개 노릇을 하는 건 기특하다.
“지금 납품이 밀려 있어서 당분간은 여러 용량으로 발주가 나가는데, 이것만 정리되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답니다.”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네. 급한 것을 이용해 재미 좀 볼까 싶다가, 관뒀다. 물에 빠진 사람은 일단 구하고 보는 것이 상도겠지.
중국 사업가들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빼 주지만, 이용해 먹고 배신하는 사람은 지옥 끝까지 쫓아간다고 하지 않나? 이럴 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 좋겠다 싶다.
“사장님, 다 얘기가 된 것 같은데 바로 계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네요. 속도가 너무 빠른데 괜찮으시겠어요?”
“사장님,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가가 조금 맘에 안 드시겠지만, 결제 조건도 아주 좋고, 발주 물량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리 사장이 저나 난퉁전기 양 사장 믿고 얘기하는 것이니, 기분 좋게 사인하시면 됩니다.”
대형 계약을 이리 손쉽게 잡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나로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조건이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만년필을 대령하라!
미팅이 1시간도 걸리지 않았는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통역을 감안하면 30분이나 걸렸을까? 1시간짜리 시차 적응도 안 됐는데, 월 30억 원짜리 계약이 체결됐다. 아쉽게도 차는 진작 식어 있다.
달짝지근한 계약을 맺은 기분에 리 종이 요구하는 3퍼센트 리베이트를 거뜬히 받아들였다. 3퍼센트 줘도 수출 계약 맺은 두 업체보다 더 남는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법이지.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하하. 저야 뭐 여기 와서 차만 마셨고, 사장님께서 다 준비하시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물건 부지런히 만들 테니, 잘 보내 주세요.”
월 30억 원 매출을 확보한 내가 월 1억 원을 확보한 김 사장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스케일은 다르지만, 돈을 번다는 것 자체는 기쁜 일이 분명하다.
사인까지 끝냈으니 이제 기분 좋게 밥 먹으러 가면 된다. 그러나 그 전에 궁금증을 꼭 해소하고 싶다.
“사장님, 중국은 납품 지연 시 연체료가 얼마나 되길래 저렇게 다급해한답니까?”
“글쎄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저기 유민희 씨, 좀 물어봐 주실래요?”
민희의 질문에 리 종이 한참을 떠든다. 리 종의 입에서 나온 침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보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떠든다. 연체료에 피가 말린 모양이다.
“연체료가 하루에 납품액의 0.3프로라고 하네요. 연체료도 비싼데, 연체가 석 달 지속되면 납품 자격이 박탈된다고 합니다.”
대륙답게 연체료도 화끈하다. 대한전력이 하루에 0.002퍼센트를 물리는 것에 비하면 엄청 혹독한 조건이다. 리 종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유를 알겠네. 이왕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는 김에 화끈하게 도와주자.
“첫 발주 납기가 7월 10일까지인데, 더 빨리 납품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생산하겠습니다.”
“하오하오! 셰셰!”
서로 잘 먹고 잘 살자는 건데 고마울 것까지야. 2,500대면 대략 컨테이너 40개 분량이다. 회사 공간도 부족한데, 물건 나오는 족족 포장해서 바로 보내 줘야겠군. 나야 신 나게 돈 버는 일이지만, 도와주는 척 포장해 귀인 대접이나 받자꾸나.
기존 하청 업체들과 왜 문제가 생겼는지도 궁금했지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은 삼가는 것이 예의겠지. 궁금함은 이 정도로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저녁밥이 아주 술술 들어가겠다. 나를 서운하게 했던 기내식이 생각나지 않도록 성대한 만찬을 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