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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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165화>165 은인 대접
믿기지도 않게 28억 원이 생겼다. 그 돈으로 회사를 세우기로 작심했다. 그렇게 난 덕준이와 나주로 내려갔고, 나주혁신산단의 이정용 과장과 유아란 대리를 만났다. 은인들이었다.
은인이라는 감사함과 달리 제대로 된 사례조차 못했다. 명절마다 소고기 세트를 보내긴 했지만, 그것으로 입 닦을 생각은 아니었다. 바삐 살다 보니 사람 구실도 못했구나 싶다. 내가 직접 소고기 구워 주자.
“어서 오세요. 제가 대접하겠다고 말만 하고 이제야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과장과 유 대리가 변함없는 얼굴로 식당 룸에 들어왔다. 일 때문에 종종 보긴 했지만, 사적으로 만나기는 참 오랜만이다.
덕준이가 유 대리보고 베이글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늘 입던 청바지 차림 그대로이지만, 덕준이 말을 듣고 나니 더 곡선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같고……. 잡념을 버리자.
“나주에서 제일 성공한 사장님 아니십니까? 바쁘신데도 이렇게 소고기 사 주신다고 해서 냉큼 달려왔습니다.”
“하하. 퇴근하고는 한가한데 그동안 괜히 바쁜 척했습니다. 유 대리님, 제가 급하게 약속 잡은 건 아니죠?”
“아, 네. 미리 연락 주셨으면 준비 좀 했을 텐데, 그건 좀 아쉽긴 하네요. 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왔는데 흉보지 마세요.”
집에 늦게 들어간다는 기쁨이 한가득인 이 과장과 달리 유 대리 얼굴이 환해 보이지 않기에 급만남이 실례인가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뭐 우리 사이에 화장에 집착해? 화장할 것 다 하고 온 것 같은데?
“대리님은 화장 안 해도 늘 눈부십니다.”
“아, 호호.”
요즘은 외모 칭찬하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지만,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유 대리 얼굴이 환해졌다. 시원한 에어컨 때문이 아니라, 내 칭찬 덕일 것이다.
“오늘은 맘 편히 마음껏 드세요. 메뉴판 가격 가리고 마음대로 시키세요.”
“역시 우리 사장님! 시원하십니다! 고기 익는 동안 기다려야 하니까 육회도 한 접시 시키죠.”
덕준이의 짤랑거림으로 대환장 고기파티가 시작됐다. 오늘 몇백만 원을 써도 전혀 아깝지 않다.
오늘은 내가 호스트니까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부지런히 이빨을 털어 줘야 한다. 일단 가볍게 혁신산단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논해 보도록 하자.
“과장님, 혁신산단 이제 분양 많이 됐죠?”
“아휴, 아직 멀었습니다. 사장님께서 많이 좀 사 주시죠. 하하. 사장님 오신 뒤로 빠르게 분양되긴 했는데, 50프로 넘기고 나서부터는 머뭇머뭇하네요.”
“혜택이 많은데도 안 내려오는 걸 보니까 그 혜택이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수도권에서 내려오기가 쉽지 않죠. 사람 구하는 것도 그렇고, 혜택이 아무리 많아도 수도권 땅값 오르는 것만 못하니까 그렇겠죠 뭐.”
그 많은 보조금과 지원금 그리고 대한전력의 여러 혜택이 있는데도, 혁신산단으로 오는 기업들이 그리 많지 않다. 수도권이 가진 경쟁력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 안 내려오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대한전력에서 공대 세운다고 하던데, 그거 생기면 좀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공대 생긴다고 해서 혁신도시 집값도 들썩들썩합니다.”
주워듣는 것이 많은 덕준이가 희망을 얘기했다.
최대근 의원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수면 위로 올라온 대한전력 공대 설립이 얼마 전에 공식화됐다. 혁신산단을 세계적인 에너지밸리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문제는 그런다고 기업들이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아휴, 공대 아직도 멀었습니다. 2023년 개교 목표라고 하니까 아직도 7년이나 남았어요.”
“과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공장에서 볼트 조일 직원이 필요한데, 카이스트 몇 개 세워진다고 달라지겠습니까? 대기업이면 모를까 중소기업 들어선다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으니 문제죠.”
이 과장과 내가 주거니 받거니 덕준이의 희망을 짓밟았다.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취지로 에너지밸리로 별칭을 지었지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햄버거 먹으면서 컴퓨터 두들기는 일이 아니라 얼굴에 구리스 바르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 회사처럼 대우 잘해 주면 저 멀리 강원도에서도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왜 그, 얼마 전에 직원 뽑을 때 보호종료아동으로 안 채워져서 일반 채용했는데, 사람들 많이 몰렸잖습니까?”
“대우 잘해 주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 아니야? 하하. 과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돈을 많이 주거나, 정년 보장해 주면 어디든 가죠. 그런 회사가 없으니 문제죠.”
덕준이가 재차 밟혔다. 우리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소문이 빨리 퍼진 것은 우리 집 근처에만 없다는 좋은 회사가 드디어 생겼다는 기쁨의 발현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좋은 회사 찾기가 어렵다. 제조업은 특히나 더.
“대리님은 회사 생활 만족하세요?”
남자 셋만 너무 떠들었다는 생각에, 묵묵히 고기 먹고 있는 유 대리를 대화에 참전시켰다.
“네, 그럭저럭 잘 다니고 있어요.”
“표정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하. 슬슬 업무량 많아져서 확실히 예전보단 많이 힘드시죠?”
“휴우. 뭐 저야 만족하면서 지내려고 하는데, 요새 입주 기업 늘어나면서 진상이 많아지긴 했어요.”
“지원센터라고 하니까 온갖 것 다 해 주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나 보네요?”
“네, 맞아요! 얼마 전엔 자기네 수도관 터져서 그런 걸, 누수됐다고 고치든지 수리비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더라니까요!”
“하하. 어디나 진상이 있는 법이죠. 앞으로 입주 기업 더 늘어날 텐데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뭐, 과장님이 그럴 때마다 힐링시켜 주시긴 하지만, 업무가 달라서 어떤지는 모르실 거예요. 진상한테 안 당해 보면 몰라요.”
이 과장이 힐링시켜 준다고? 순간 덕준이를 쳐다봤더니 눈빛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가 일본 작품을 너무 많이 봤었던 것 같아. 고기나 먹자.
“이제 변압기 회사들이 8곳이 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3곳 더 입주할 텐데요. 저희끼리 모여서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유 대리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뜻에서요. 정기적으로 모여서 진상 짓 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잔 받으시죠.”
“아, 네. 감사합니다. 진짜 변압기 회사만큼이라도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하하. 저희는 진상, 꼰대는 양성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술잔이 오고 가며 1인분에 4만 원이 넘어가는 고기들이 빠르게 소진됐다. 혁신산단 현안 얘기로 시작된 대화도 빠르게 소진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사를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과장님, 애는 잘 크고 있지요? 몇 살이라고 했죠?”
“아주 잘 커서 문제죠. 5살인데 슬슬 미운 짓 할 때라 매일매일 도 닦는 기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하.”
“벌써 미운 짓을 합니까? 미운 7살 아닌가요?”
“아이고, 미운 7살은 옛말이에요.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서 그런지 4살부터 시작해서 5살이 절정이라고 하더라구요. 말로 훈육하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 막 욱할 때가 있어요.”
“사장님, 과장님 애기 디게 이쁘게 생겼어요. 과장님은 닮았는데도 정말 신기하게 예쁘더라니까요.”
“아이, 유 대리 왜 또 그래.”
자식 얘기는 부모를 늘 웃게 만드는 모양이다. 사춘기 접어들기 전까지 말이다.
유 대리가 은은하게 디스하는데도, 이 과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핸드폰을 꺼내 든다. 자식 얘기 나오면 피할 수 없는 시간이다. 사진 보면서 감탄사를 뿜어 줘야 하는 시간.
“와, 눈이 부리부리하니 예쁘네요. 이렇게 보니까 과장님 판박인데도 희한하게 예쁘네요. 하하.”
유전자의 강력한 힘. 피는 물보다 진하고, 속일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하하. 우리 애가 요새 미운 짓을 좀 해도 자는 거 보고 있으면 그냥 좋아요. 이건 애 안 키워 보면 절대 모릅니다.”
“사진 보니까, 진짜 우리나라 드라마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겠네요.”
“아, 출생의 비밀요?”
분위기가 편해져서 그런지 유 대리가 말도 잘 받아 준다. 근 1년 만에 가진 자리라 어색했을 수도 있을 텐데, 술과 고기 덕분인지 예전 폼이 금세 나온다.
“이거 보면 누가 봐도 우리 과장님 딸이지 않습니까? 근데 드라마 보면 자식인지 모르고 구박하고…… 드라마 작가들 각성해야 해요.”
“푸하하. 저번에 과장님 애기 실제로 본 적 있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냥 과장님 미니미예요. 근데 이뻐요. 참 희한해요.”
딸바보는 좋아 죽는다. 꼰대와 진상들의 거센 공격을 막으며 겨우 일을 끝낸 가장이 집에 도착했을 때 달려드는 자식을 보면 그 자체가 우루사와 핫식스라고 하던데, 이 과장은 생각만 해도 좋은 모양이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해서 좀 걱정되긴 했는데, 지금은 좀 안심입니다. 하하.”
“둘째 생각은 없으세요? 요즘 저출산이니 어쩌니 해도 기본으로 두 명은 낳는 것 같던데요.”
“둘째요? 에이,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에요. 하하. 뭐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
“하하. 무슨 자유당 시절도 아니고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가볍게 웃고 지나가는 말들이었지만, 이 과장의 얼굴에 어둠이 살짝 드리워졌다. 내가 남의 가정사에 너무 깊숙이 들어갔나 싶다.
“뭐 말로는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큰다고 하는데, 그저 사랑만으로 키울 수는 없더라고요. 집도 넓혀야 하고 들어갈 돈도 많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죠. 이것도 애 안 키워 보면 모릅니다. 하하.”
빤한 월급 받는 외벌이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아빠도 나 하나 키우겠다고 그 고생을 했지만,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나?
도움 줄 것도 아니면서, 괜히 혼자면 외롭니 어쩌니 하면서 팔자 좋은 소리 하지 말자.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경험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얘기하는 것, 그것이 꼰대의 대화일 것이다.
“과장님, 혹시라도 회사 생활 맘에 안 드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제가 과장님 위해서 책상 하나 늘 비워 놓겠습니다. 아, 여기 유 대리님도 마찬가지구요.”
“우리 사장님께서 인재를 보면 참지를 못하는 성미 아닙니까? 뭐, 제가 그래서 부장으로 승진하기도 했구요. 하하.”
덕준이가 나를 띄워 주는 척 자기 자랑하는 기술을 선보이며 다시 분위기를 정돈시켰다.
이 과장이 혁신산단 때려치우고 우리 회사로 오겠다고 하면 대환영이다. 사람을 계속 충원하고 있는데, 관리직은 늘 부족하다.
고참 생산직 몇 명에게 관리직 제의를 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나마 관리직이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생산직과 관리직 간의 갈등은 누가 더 힘드냐를 놓고 시작한다. 우리 회사 생산직들은 관리직으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배 나올 바엔, 몸만 힘들고 말자고 생각하기에 갈등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건 다행이긴 한데, 인재에 대한 갈망이 더 심해진다.
“하하. 감사합니다. 혁신산단이 박봉이긴 해도 안정적이잖아요. 일단은 뼈를 묻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야죠.”
“과장님, 왜 그러세요? 매번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하시더니.”
“유 대리야. 고기 좀 먹어. 너무 익히지 말고.”
저 말 돌리기. 안 힘든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힘든데 급여까지 힘들어서 짜증 나는 것이지, 어디든 힘든 건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우리 회사는 돈이라도 많이 주는데. 정말 생각 없나?
“사장님은 아직도 솔로이십니까?”
대화에 잠시 텀이 발생하자, 결국 나에게로 화살이 돌아왔다. 남의 사생활을 파헤친 대가가 이렇다.
“네 뭐, 소개팅도 하면서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일에 매진할 때라서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하구요.”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니야? 과장님, 나주 바닥에서 우리 사장님이 수도사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한 부장아, 고기 많이 먹어. 너무 익히지 말고.”
나도 할 것 다 하고 다닌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조용히라도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군. 쳇.